거문고 ‘十年 당’의 追憶. 1992. 12. 31.
<서평>
거문고 ‘十年 당’의 追憶
장사훈, [하고 싶은 말 남기고 싶은 글], 청주: 청주대 운초민족음악자료관, 1992. 550쪽.
이 해 식
운초 장사훈(云初 張師勛 1916~1991) 박사님의 유고를 모아서 엮은 [하고 싶은 말 남기고 싶은 글]이 1992년 8월 15일자로 청주대학교에 있는 민족음악자료관에서 발행되었다. 크라운판 550쪽의 분량이니, 결코 적지 않은 귀중한 유고들이다. 선생님 생전에 활동하시던 사진들ㆍ약력ㆍ방대한 저작연표 및 줄기찬 저술활동이 낱낱이 기록되었고, 지극한 정성의 손길로 유고를 정리한 그러면서도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남달리 간절한 박정자 사모님의 머리말이 이 책의 첫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본론의 전개에 앞서 잠시 이 책을 개관해 볼 때 내용은 1)저서와 논문, 2)논설ㆍ평론ㆍ수상, 3)서평ㆍ대담ㆍ기사,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금 자세히 소개하자면, 첫째 저서와 논문에서는 “악복과 무복의 역사적 변천에 관한 연구,” “한국음악의 당위성,” “우조타령과 별우조타령의 비교연구,” “한국의식 악무의 역사적 변천,” “신라시대 불교유적에 나타난 악기,” “한국에 있어서의 중국악무의 변천,” “외래음악의 수용과 융화의 문제점,” “종묘 소장 편종과 특종의 조사연구,” “신라의 음악문화,” “십이가사,” “서도소리 : 화초사거리,” “한국음악과 춤의 특징,” “국립국악원의 과거와 현재 미래,” “국악교육의 요람,” 이상 10편의 논문이 담겨있다. 둘째 부분에는 “다시 보는 한일사” 등 25편의 논설ㆍ평론ㆍ수상이 실렸고, 셋째 부분에는 장사훈 저 [세종조음악연구] 등 12편의 서평ㆍ대담ㆍ기사를 담았다.
내가 쓰는 이 글은 당초 [하고 싶은 말 남기고 싶은 글]의 서평으로 청탁받은 것이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 곧 감히 서평이라는 마음을 품을 수도 없으나, 재학시절 한 때 선생님의 클래스에서 공부했던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선생님의 유고를 대하고 보니, 그 시절 선생님의 말씀들이 유고의 여기저기에 기록 되어 있어 단지 그 말씀들을 다시 상기해 보려는 것일 따름이다. 강의시간에서나 사석에서도 “하루에 원고지 5장씩만 써도 되” 라고 하시던 운초 선생님의 줄기찬 인내력과 학문에 대한 열정이 저 세상에 가신 후까지도 후학들의 귀에 쟁쟁하도록 한 권의 책으로 열매 맺어서 학문의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무언의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일러주고 계시지 않은가?
운초선생님께서는 음악이든 춤이든 전통과 격식에서 조금만 벗어나거나 분명치 않으면 서슴없이 통시적(通時的)인 준거(準據)를 끌어오고 또 논리적으로 주장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셨다. 이러한 면모가 이 책의 522쪽에 기록된 “음악ㆍ무용 남북교류에 대비한다”라는 평론가 박용구씨와의 통일대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선생님께서 추구하신 학문의 방법과 주장은 방송이나 대담과 같은 언변의 차원을 넘어서서 마음이나 몸이 깨끗함을 뜻하는 무구(無垢)의 필치이다. 샘솟는 듯한 선생님의 전거(典據)는 거의 무궁하다시피 하며, 그러한 논문이 이 책의 45쪽에서 첫째로 소개된 “樂服과 舞服의 歷史的 變遷에 關한 硏究”이다. 운초 선생님께서는 강의시간에도 특히 전통춤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자주 보이셨고, 나와의 사석에서도 어처구니없이 변질되어버린 현재의 전통무용에 대해서 맹렬한 성토를 퍼부은 적이 있으시며, 그런 후에 전통춤에 대한 역저 [韓國傳統舞踊硏究](서울: 일지사, 1997)를 내셨다. 전통무용과 관련된 이 책의 첫 번째 논문은 본질에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묵과하지 하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꼿꼿한 학문적 성품을 잘 자타낸 글이다.
첫 논문이 음악인과 무용수의 의상에 관한 고찰이었다면, 131쪽의 “韓國儀式 樂舞의 歷史的인 變遷”은 가장 순수하게 고전적인 것이 현대적이라는 내용의 글이다. 그저 들떠가는 풍조로 음악이나 춤이 terminal show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200쪽의 “韓國에 있어서의 中國樂舞의 變遷”은 외래음악과 춤이 한국화 (韓國化 Koreanization)되는 과정을 서술한 논문이다. 실로 1954년 선생님의 논문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보허자> 관련의 곡들이 중국계의 음악이라는 것을 몰랐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 논문은 값진 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46쪽의 논문은 “韓國音樂과 춤의 特徵”이다. 논문의 첫 머리에 음악과 춤의 불가분의 관계를 몇 마디의 짧은 문장으로 극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 또는 “음악은 세계 공통어이다”라는 통설에 대하여 명쾌한 반박을 전개하고 있다. 그렇다. 대륙에 군소 여러 나라가 밀집한 유럽에서나 통용되는 음악의 국경이나 공통어 운운을 동양에 적용하려는 것은 무리이다. “춤은 음악을 한 자락 깔고 그 위에서 추어지는 것”이라는 운초 선생님의 멋진 어록은 다른 저서에서도 자주 강조된 바 있다. 이 논문에서는 정악과 민속악을, 정재와 민속무용을, 서양음악과 한국 음악을, 서양춤과 한국춤을 이항대립으로 일목요연하게 펼쳐놓은 것이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명문이다.
운초 선생님의 일생동안 굴하지 않은 꼬장꼬장한 선비, 또는 대쪽 같은 학자라는 이런저런 찬사도 찬사려니와, 그보다 더한 것은 항시 옛것을 잘 말씀하시고 반듯이 그것을 오늘에 증명한(善言故者 必驗于今) 한 세대의 확고부동한 증인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에의 물증이 곧 선생님이 피안(彼岸)의 세계에서 건네주신 [하고 싶은 말 남기고 싶은 글]이 아닌가 한다.
운초 선생님 밑에서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문고의 ‘십년(十年) 당’이라는 말을 기억하리라. 거문고를 가르치시는 도중, 그저 보통으로 보이는 듯해도 술대의 쓰임새와 왼손의 운지, 또는 농현에 따라서 그 소리가 다르다는 말씀이다. 그러시면서 손수 <당 동 징>의 소리를 들려주시고는 “이런 소리는 아무나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십년 이상 갈고 닦아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일세” 라는 말씀에서 유래된 말이 바로 저 유명한 ‘십년 당’이다. 실제로 술대 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나 왼손 소지로 문현을 뜨는 모습을 지금 떠올려 보면 한 자락의 아름다운 춤사위인 듯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이렇듯 비록 운초 선생님께서 멀리 떠나셨어도 ‘십년 당’의 그 숨결은 영원히 남으리·….
[韓國音樂史學報] 제9집(경산: 韓國音樂史學會, 1992), 197쪽.
이해식이 동아음악콩쿠르 최초로 서양음악작곡, 국악작곡이
동시당선한 시상식에서 장사훈 선생님과의 기념 촬영.
1968. 11. 5. 동아일보사/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