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대신문:: 문화특집. 1994. 1. 12.
영대신문(1994. 1. 12), 8쪽 문화특집 <국악의 해 세미나> 요약
<엮은이의 말> 아래의 글은 지난 93년 12월 7일 문화체육부 주최로 국립국악원 소극장에서 열린 ‘94 국악의 해 관련 제1차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
1959년 서울대 음대에 국악과가 창설된 이래 현재 여러 대학에 국악과가 개설되어 있다. 또 전국에는 크고 작은 많은 국악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시대의 이러한 국악의 양상들을 초기 낭만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이제 겨우 국악의 싹이 터 있는 상태의 풀뿌리 시대라는 뜻이다. 아직도 충청남도ㆍ강원도ㆍ제주도의 국립대학교에는 국악과가 없다. 그리고 국악단체들의 활동도 그 여건상 서울과 지방도시의 몇몇 관변단체들이 과거 지향성에 안주하여 변화와 진취성의 경향은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시기에 맞이하는 94년 국악의 해는 초기 낭만주의의 풀뿌리 국악이 건실하게 발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요 촉진제가 아닌가 한다. 지금까지 국악발전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타분야에 비하면 사실상 지극히 미미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국악의 해가 세종조 이래 찬란한 국악의 르네상스가 될 수 있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
나는 국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국악이란 말을 싫어한다. 그 중에서도 ‘국’(國)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싫어한다. 국악이란 용어가 일제 강점기에 생긴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나라 ‘國’은 창(戈 창과)을 든 사람(口 입구)이 울타리(口 애운담) 안의 땅(一)을 지킨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국악(國樂)이란 보이지 않는 울타리 안에 갇혀진 좁은 의미의 음악이라고 말한다면 그다지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國’이라는 글자 속에 들어있는 쇼비니즘(chauvinism)만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모든 생활이 급하게 돌아가는 이 시대에 있어서 ‘國’의 지나친 강조는 문화의 중흥에 제동 역할만 할 따름이다. ‘國’에서 탈출한다는 행위에 거듭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러한 의미부여가 국악의 해에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란다.
거듭나는 열린 국악과 관련해서 보면 영화나 TV 영상으로 보여주는, 즉 초목이 우거지고 물이 흐르는 자연 공간의 바위 위에서 한가롭게 젓대를 불거나 가야고를 타는 국악은 이제 국악의 해를 기하여 도회지의 국악으로 더 퍼져나가야 한다.
‘서편제’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고 다만 인간 만사에는 의례히 순기능과 역기능이란 게 있어서 이 두 가지의 속성이 ‘서편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서편제’를 본 일반 관중은 판소리만이 지고의 국악으로 인식할 소지가 있고 실제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곧 예기치 않은 매스컴의 폐해가 아닐까 한다. 국악의 해에는 영상매체의 효과적 대응으로 대다수의 불특정 관중이나 시청자들이 국악을 올바로 이해하고 과거의 국악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데 일익을 맡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국악에는 구전(口傳)의 형태에 머무르고 있는 분야들이 있다. 내가 말하는 구전의 분야란 성악은 물론 산조를 포함하여 국악교육에 걸친 모든 분야이다. 모든 음악은 악보로 남겨짐으로써 이론적 토대가 되기도 한다. 이론적 토대는 학문과 예술의 기초이며 새로운 창작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국악의 해를 기하여 구전분야의 국악이 악보로 채록되어 체계적인 이론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현존의 국악계에서 내가 가장 갈구하는 것 중의 하나는 지휘자이다. 지휘자란 총체적 음악가(total musician)이다. 총체적 음악가란 결코 짧은 기간에 길러지지 않는다. 지휘자와 관련하여 더 많은 국악관현악단이 곳곳에서 창단되어야 한다. 국악관현악단의 탄생은 대학의 국악과와도 서로 자극되어서 취업은 물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게 될 것이다.
국악관현악단과 관련하여 악기개량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악기개량은 국악인의 몫이라기보다는 과학자의 분야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상승하고 관현악이 번창하면 악기개량이나 발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요구된다. 이러한 보기는 서양의 베토벤 시대에서 볼 수 있다. 국악의 해에는 악기개량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국악은 방황과 잠재력의 세대인 젊은 층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의 작품들은 거의 춤과 젊은이들의 감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젊은 대중들이 미디어에 의해 공급되는 범속, 저속문화에 탐닉하려 하고 자신의 고유한 창조능력을 빈곤상태에 두려함이 오늘날 보편적인 현상이다. 94년은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의 역동성과 창조능력을 유발하는 국악의 해였으면 한다.
어느 행사이든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요구하는 손은 많은 법. 국악의 해는 국악하는 사람을 위한 해는 아니다. 오히려 국악을 위하여 국악하는 사람들이 다 함께 땀 흘려야 하는 발상전환의 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한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새롭게 인식전환하는 해로 삼아야 한다.
국악의 해에도 전시행사를 전혀 배제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반면에 온갖 험난한 시련을 뚫고 면면히 이어져 온 국악을 국악의 해 단 일 년 동안에 어떻게 처리해보겠다는 사람도 없으리라 믿는다. 국악의 해는 국악을 완성하는 해가 아니라 완성을 위한 기초 다짐의 역사적인 일 년이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간곡한 제안이다.
[嶺大新聞(1994. 1. 12), 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