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 예술·

문학⇔음악, 1986년 5월

노고지리이해식 2008. 4. 21. 02:36

 

 

문학 음악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갈수록 음악ㆍ시가(詩歌)ㆍ무용이 한 덩어리의 예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음악과 춤과 연극이 흔히 한데 어우러졌으며 우리나라 상고사에서도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은 시가와 춤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진 제천의식(祭天儀式)이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제례음악(祭禮音樂)도 악(樂)ㆍ가(歌)ㆍ무(舞)가 삼위일체일 때 비로소 완전한 음악을 이루니, 여기서 <악>은 기악이요, <가>는 노래요, <무>는 춤인데, 이중에 노래는 문학과 관계가 밀접하다.

 또 궁중무용인 정재(呈才)는 창사(唱詞)를 부름으로써 춤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문학과의 깊은 관계라고 하겠다.

   특히 백제의 <정읍사>(井邑詞, 학자에 따라서는 고려가요에 넣는 이도 있음)나 고려의 <동동사>(動動詞)는 현재 불리어지지는 않지만 이와 관련된 기악만은 남아 있어서 음악과 가장 관계가 깊었던 시가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조선조 세종시대에 만들어진 <여민락>(與民樂)은 글자 그대로 백성과 더불어 즐기기 위한 음악이란 뜻으로써 정인지ㆍ권제ㆍ안지 등이 지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음악에 올린 문학이다. 이밖에 판소리나 민요는 물론 서양의 오페라도 문학과의 관계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조선조 영조 이후 서민들이 창극(唱劇)으로 부르던 판소리는 고종시대의 신재효(1812~1884)와 같은 대방(大房)에 의해서 문학적으로 음악적으로 다듬어진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재효가 개작한 <춘향가ㆍ심청가ㆍ토별가ㆍ박타령(흥보가)ㆍ적벽가ㆍ변강쇠가>를 포함한 판소리 열 두 마당은 구비문학ㆍ설화ㆍ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문학 그 자체이다. 따라서 판소리를 문학적 견지에서 음악으로 접근함도 흥미로운 일이며 오히려 효과적일 수도 있다.

 

 

                                 판소리는 구비문학ㆍ설화ㆍ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문학 그 자체

                                이다. 따라서 판소리를 문학에서 음악으로 접근함도 흥미로운

                                일이다. ’86 아시아 경기대회를 축하하는 국립국악원 <신춘국악대제전>

                                중에서 박동진이 부르는 판소리 심청가, 고수/김득수.

                               1986. 3. 20. 중앙국립극장 대극장. Nikon F3 촬영/이해식.

 

 

   서양 오페라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음악 애호가인 바르디(Bard, 1534~1612) 백작의 궁정에 음악가와 시인들이 모여서 그리스극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 데서 비롯된다. 이후 전 유럽을 휩쓴 이탈리아 오페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으로써 독일의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가 작곡한 낭만파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ütz)는 독일 국민주의 오페라의 효시를 이루고,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가 악극(Musik-drama)을 창시하는 길목을 열어 주었다.

   바그너는 유년시절부터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서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는 그를 언어학자를 만들려고 할 정도였다. 그는 문학면에서는 섹스피어의 희곡과 호프만의 괴기적이고 환상적인 소설에 도취되고 음악면에서는 베토벤과 베버가 영향을 주었다. 또한 철학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가 그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나 만년에는 벗어난다. 또 포이엘 바하ㆍ니이체, 그리고 동양철학까지도 영향을 주어서 복잡하게 얽힌 그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소년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음악과 문학의 유별난 재능과 함께 종합예술로써의 악극을 완성하게 하는 여건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바그너 자신은 악극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형상화된 음악행위>라는 말로서 작품의 본질적 성격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바그너가 그의 악극에서 취한 국민주의적 경향은 독일의 민화(民話)나 전설 속에서 깊은 영감의 샘을 발견하고 있음은 문학과의 직접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남달리 성공이라는 것에 민감했던 바그너의 음악과 문학의 융합에 대해서 앙드레 구로아의 다음 인용문이 잘 웅변해 준다.

 

             음악이 다른 예술보다 많이 문학과 융합되려고 하면, 그것은 바그너가 교묘하게

             증명한 바와 같이 음악이 <국민적인 예배>이기 때문이다.

 

   “가곡의 인기, 시가의 인기, 그리고 이 양자 간의 친밀한 관계를 이해하려면 독일에 살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하이네는 말했다. 과연 하이네와 같은 불후의 명시가 있음으로써 슈우베르트의 주옥같은 노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면 문학은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이거나 선행조건이 아닐까?

   독일에서 프랑스로 눈길을 돌려서 우선 드빗시(Claude Debussy, 1862~1918)를 살펴보자. 그는 독일의 가곡(Lied)으로부터 프랑스 가곡을 독립된 민족적 예술형식으로 확립시킨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보들레르와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그리고 베를레느는 그가 각별히 좋아한 세 사람의 시인이었다. 특히 밤이면 말라르메의 집에 모이는 시인 그룹에 오직 드빗시만이 작곡가로서 동참할 수 있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관현악 작품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Prélude ál'après-midi d’um faune)은 1894년 32세 때의 작품으로써 이교적(異敎的)인 고대의 풍경을 생각나게 하는 말라르메의 전원시에서 영감을 얻은 음시(音詩 music poem)이다.

   시의 간단한 내용은 숲속에 살고 있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동물에 관한 것으로서 드빗시의 출중한 음악적 상상력은 시의 기교적인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고도 남는다. 또한 관능적이며 도피적인 감정은 그가 적절하게 이름 붙인 <조화된 화성>을 타고 현실성과 신비성 사이를 왕래하며 가공적(架空的)인가 하면 진실하며, 또 대단히 지적인 반면 감각적으로 흐른다.

   바그너는 그의 예술의 중심에 놓여있는 거대한 구원의 관념을 화성양식의 해결에 필연적으로 결부시킨다. 이래서 바그너 당대는 물론 사후에도 유럽 전역에 바그너의 음악 핵우산이 배치되어서 프랑스의 지식인들까지도 매혹 시켰다. 그러나 프랑스 정신에 조화되지 않는 이 핵우산을 타파하려고 힘차게 몸부림친 사람이 곧 드빗시이다. 그는 그 힘을 동양음악과 문학, 즉 시가로부터 얻어낸 것이다. 그러면서 바그너나 드빗시는 다 같이 그들의 음악이 문학의 현장 속에서 생동했음이 공통점이라 하겠다. 음악과 시가와의 관계를 바그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악은 온갖 예술 중에서도 가장 숭고한 것이다. 왜냐하면 음악은 오성(悟性)에

                호소하지 않고, 말하자면 제군을 우주와의 직접 관계에 두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음악의 본질을 다음의 몇 마디로써 정의하는 이유이다: “음악은 시가에서

                음악을 만들려고 애쓴다.”

 

   이번에는 미학자 올드리치(Virgil Charles Aldrich)의 예술철학의 입장에서 시와 음악의 관계를 알아본다.

 

              언어는 기본적인 정력학(靜力學 statics)과 동력학(動力學 dynamics)이 있을진

              데 정력학은 음소(音素 phoneme)들과 형태소(形態素 morpheme)들을 단어들(어

              휘)로 옳게 형성되도록 계기적으로 배열하는 것이며, 아울러 문장 안에서 단어들을

              문법적인 순서에 맞춰 나열하는 것이다.

              동력학은 언어의 구성에 있어서의 악센트와 간격들(intervals), 그리고 문학에 있어

              서의 리듬이며 아울러 이런 것들이 주장ㆍ요구ㆍ표현, 그리고 계약 등 주제(의미)와

              의 연관 하에서 사용되거나 기능하는 방법들인 것이다.

              정력학은 발음패턴(Speech sound pattern)들을 포함한다. 그것들 중 어느 것은 다른

              것들보다 잘 어울린다. 이 울림(sonority)은 언어예술가에 의해서 주목되고 다양한

              단어 조합들에서 강화된다. 그리고 그 단어 조합들은 예컨대 두운(頭韻 alteration)

             ㆍ화운(和韻 consonance)ㆍ각운(脚韻 rhyme)에 의해서 어떤 음소들을 보다 인상적

              으로 만들도록 배열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언어가 갖는 <토운>(tone)의 성질들이

              가장 잘 활용될 것이고, 이 점에서 언어는 단순히 바르게 발음되어야 할 뿐 아니라

              억양(抑揚 intone)이 붙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억양은 또한 언어의 역동학을 작용시킨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악센트나

              간격의 문제이고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리듬의 문제이다. 리듬의 패턴은 그러한 종류

              의 규칙성이 조력하면 어디에서나 운율적(韻律的 metrical)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시의 운율(meter)을 얻게 되며 이 모든 것은 정동학이 갖는 토운의

              가치들과 함께 어울려 언어의 음악적인 성질들을 구체화한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사용

              해서 콤포지션(composition)을 만들기 때문에 시인은 곧 음악가이며, 그의 매체는 음계

              (scale) 중의 토운들이 가진 울림이 아니라 운율이 부여된 발음들의 울림이다. 바로 이것

              이 모르는 언어로 된 시에도 귀를 기울이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Virgil Charles Aldrich

              (金文煥 譯), [예술철학], 서울: 玄岩社, 1977(2刷), 168~170쪽].

 

 

   시문학이 민요ㆍ가곡과 관계있고 소설이 판소리나 오페라와 관계있으며 또 문학적 image에서 악상을 얻어내거나 춤의 hint를 얻어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문학에서도 음악 용어나 음악적 명칭을 원용하거나 음악적으로 전개한 보기가 드물지 않다

   단편소설 「배따라기」는 김동인(1900~1951)의 초기 작품으로써 1921년 작자 자신의 동인지 [창조](創造)에 발표했던 것이다.

   소설의 처음에 일인칭의 '나'가 등장하여 삼월 삼짇날 대동강의 첫 뱃놀이에서 들려오는 아악(雅樂)과 싱그러운 봄의 계절을 완상하는 중에 구슬픈 배따라기 소리를 듣는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천후토 일월성신

                                                      하나님전 비나이다.

                                                      실낱 같은 우리 목숨

                                                      살려달라 비나이다.

                                                      에~야 어그여지야.

                                                           

   위와 같이 시작되는 <배따라기>의 가락은 마치 배경음악(back music)처럼 소설의 전편을 흐르며 낭만파적인 주조(主調)를 이룬다. 이 소설의 극치는 오해를 극적 전환의 모티브로 선용함에 있다. 즉 아내와 시동생의 관계에 의심을 가져온 주인공이 한 우연한 기회에 자기의 커다란 오해가 그의 주변과 자신에게 파멸을 가져오는 비극의 씨가 된 것을 알고<배따라기>의 여울 속에서 아우를 찾아다니면서 일인칭 '나'를 만나 자기의 숙명적 불행을 이야기하고 그 역시 <배따라기>의 가락을 남기고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배따라기’ 또는 ‘배따래기’는 배가 떠난다는 '배떠나기'의 음변(音變)이다. 지금 서도(西道) 민요로 부르는 <긴 배따라기>와 <자진 배따라기>가 있는데 이것은 서울지방의 <이별가>에 가까우며 김동인의 소설에 나오는 그것과는 음조가 많이 다른 거 같다.

   박지원의 [막북 행정록](漠北行程錄)에 “우리나라 악부(樂府)에 이른바 '배타라기'란 곡이 있었는데 방언으로 선리(船離)이며 그 곡조가 처량하기 그지없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여기서 '배타라기'는 취음(取音)이다.

   또 ‘배따라기’는 서경(西京) 악부의 열두 가지 춤의 하나이며 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나는 사신의 출발 광경을 보이는 춤으로서 조선조 순조 전후부터 궁중의 연회 때 상연되었던 <선유락>(船遊樂)과 같다.

  

 

                             <배따라기>는 배를 타고 떠나는 이별이다(船離). 사진은 ’86 아시아

                             경기대회를 축하하는 국립국악원 <신춘국악대제전> 중에서 사신이 배를

                             타고 외국으로 출발하는 광경을 춤으로 그린 궁중무용 <선유락>이다.

                             가운데 배 위에 떠나는 사람이 앉아 있고 그 주변은 ribbon dancing이다.

                                1986. 3. 20. 중앙국립극장 대극장. Nikon F3 촬영/이해식.

 

 

   문학에 선천적인 재능을 타고난 김동인의 음악 관련 용어를 사용한 단편으로서 1920년 「배타라기」 앞에 발표된 「피아노의 울림」이 있다. 피아노는 가장 널리 보급된 그리고 가장 보편적이고 긴요한 악기이면서 문학의 제목으로 흔히 사용된다. 김성종의 소설 「피아노 살인」이 있고, 시인 김영태의 산문집으로 [물 위에 피아노]가 있다. 피아노와 관련된 단편으로 다시 김동인의 탐미주의적인 「광염(狂炎)소나타」가 있다.

   1930년에 발표된 「광염 소나타」도 「배따라기」와 같이 일인칭 '나'를 통하여 마치 소나타 형식(sonata form)처럼 소설이 전개된다.

   혼전 임신으로 태어난 천부적인 음악가의 아들인 백성수는 가난 속에서 자라나 병석의 어머니를 치료하려고 애쓰던 중 담배 가게에서 돈을 훔친다. 그러나 바로 뒷덜미가 잡혀서 경찰서로 가고 이어서 반년 동안 감옥에 살다 나와보니 어머니는 비참하게 죽고 분묘조차 찾을 수 없다. 이리하여 백성수는 원수의 집에 불을 지르고 어두운 예배당에 들어와 치솟는 불길을 보며 피아노로써 야성적이면서 귀기스런 즉흥적인 음악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순전한 야성적 음향이었습니다. 음악이라 하기엔 너무 힘 있고 무기교

                였습니다. 그러나 음악이 아니라기에는 거기에는 너무 괴롭고도 무겁고 힘 있는

               '감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야반의 종소리와도 같이 사람의 마음을

                무겁고 음침하게 하는 음향인 동시에….

 

   위의 인용문은 소설의 '내'가 백성수의 천부적이고 즉흥적인 피아노 솜씨를 묘사하는 대목이다. 김동인은 미술가가 되려고 일본에서 미술학교를 다녔으며 또 다른 단편으로 「광화사」(狂畵師)를 발표했지만 음악에도 유별난 조예가 있었던 듯하다. 「광염 소나타」는 C sharp minor로 탄주되며 수준 이상의 음악이론과 용어가 구사되었다. 대개 C sharp minor는 격정적이고 애달픈 정서를 나타내는 음악에 많이 쓰이는데 쇼팽이나 리스트의 피아노곡이 그렇다.

   쟌 발장이 한 조각의 빵을 훔친 일로 인생의 길이 바꾸어지듯이 백성수는 몇 닢의 돈을 훔침으로써 그의 인생의 기회가 달라진다. 「배따라기」의 모티브가 '오해'이듯 「광염 소나타」의 모티브는 인간에게 다가오는 '기회'이며 소설 제목이 강력한 인상을 주듯이 '불'이 소설의 첫 시작을 이룬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실라르(Gaston Bachelard)는 불에 대한 미학적 정신분석적 견해로서 몇 권의 저작을 남겼다. 그에 의하면 불은 그 형태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누는데 첫째 자연의 불, 둘째 부자연의 불, 셋째 자연에 반(反)하는 불이 그것이다.

   자연의 불이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타는 불이며 계속해서 강렬하게 타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료의 공급이 필요하다. 이 불은 꾸준한 노력과 인내와 극복이 요구되므로 속으로 타는 남성적인 불이라 할 수 있다. 다음 부자연의 불은 자꾸 꺼지려고 하는 상태의 불이며 이 불은 꺼져서 연기가 된다. 그러나 연기가 되려다말고 되려다 말고 하는 변덕이 심해서 여성적인 불이라 할 수 있으며 자연의 불과는 반대로 밖에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자연에 반하는 불은 자기에게 맞붙으려고 하는 것을 태워서 재로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가진 불을 가리킨다. 이 불에 무엇인가를 넣으면 금방 타 버린다. 자기와 남을 태워 버리려는 이 불은 대개 타인을 위하기보다는 해치기 쉬운 수단으로 사용된다.

   G. 바실라르의 견해에 비추어 보면 「광염 소나타」의 불은 아무래도 세 번째에 해당되지만,  아무래도 주인공의 가슴속에 화병(火病)으로 남아있는 불은 음악과 심리적 문화적으로 얽혀서 단편으로서의 진진한 흥미를 돋구어준다.

   이문구가 1969년에 발표한 단편으로 「몽금포 타령」이 있다. <몽금포 타령>이 황해도 민요로서 몽금포 어부들의 생활과 애환을 노래 부름처럼 공사판 인부들의 합숙소를 통하여 소시민의 인정과 애환을 묘사한 것이 단편 「몽금포 타령」이다. 그러나 민요 <몽금포 타령>의 가락이나 음악적 요소는 조금도 없다.

   너무나도 유명한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프랑소와 사강(Francoise Sagan)이 약관 24세(1959년)에 발표한 단편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가 있다. 이 소설의 간단한 내용은 중년의 이혼녀이며 실내 장식가 폴르가 변덕스런 애인 로제와 연하의 미남 청년 시몽 사이를 방황하는 삼각의 줄거리이며 세 사람의 연애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 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젊은 시몽이 폴르에게 음악회에 동반할 의사를 물어보는 편지에 쓴 말이다. 프랑스 사람인 사강이 왜 독일 음악가를 등장시켰는지 그 의중은 잘 모르겠으나 독신으로 일관한 브람스의 고독한 일생과 그 음악을 세 사람의 인생가적 방황과 원천적 고독으로 결부시켜서 소설을 전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시몽과 폴르의 대화 속에 구체적으로 브람스의 어떤 음악인지 곡목이 소개되지 않고 그저 콘첼토(concerto)라고만 말한 것은 복합적이며 중의적인 세 사람의 심리 묘사와 관계되는 듯싶다. 시몽과 결합될 듯한 폴르는 결국 연상의 로제에게 돌아가는데 사강 자신의 솔직한 고백대로 결혼은 별로 심각성이 없는데 남자는 참 없어서는 안 될 심각한 존재란 말과 소설의 말미와는 잘 부합된다.

   베토벤(Ludwig von Beethoven 1770~1827)의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체르」(Kreutzer, A major, Op.47)는 영국의 혼혈 제금가인 브리지타워(George Augustus Polgreen Bridgetower, 1780~1860)가 빈을 방문하여 베토벤을 알게 된 데서부터 짧은 시간에 작곡되었다고 한다. 베토벤은 그에게 곡을 바치고 자신이 피아노를 담당한 초연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틈이 생긴 베토벤은 1798년 빈을 방문한 베르사이유 출신의 명 제금가 크로이체르(Rodolphe Kreutzer, 1766~1831)에게 다시 이 곡을 헌정한 이후부터 그의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그러나 크로이처는 이 곡을 연주한 적이 없다).

 

 

                               Beethoven, violin sonata Kreutzer. 악보 1은 A major 느린

                              서주(introduction), 즉 전희(前戱) 단계이며, 2는 바이올린이 g'♯→

                               a'→ b'→c"→d"→g" 까지 점차 상승하는 A minor 제1주제이다. 3은 제1주제

                              와 대비되는 제2주제이다. 4는 피아노가 상승하는 Auftakt로  긴박감을

                              자아낸다. 이와 같이 전개되는 Kreutzer sonata는 여러 가지 문학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最新 名曲解說全集] 12 室內樂曲Ⅱ(서울: 世光出版社, 1983), 343쪽.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Lev Nicholaievich, 1828~1910)가 61세(1889년) 때 탈고한 중편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극도의 질투 때문에 제금가와 간통한 부정한 처를 살해한 한 남자의 고백담이다. 이 고백담은 톨스토이가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서 집필에 몰두할 때 그 곳을 방문한 어느 배우로부터 듣자마자 문학적 감흥을 누를 수 없어 즉시 집필에 착수했다 한다. 한 남자의 고백을 통하여 현대 사회의 남녀 관계, 결혼 문제, 성욕 등을 대담하게 해부하고 신랄하게 비판하여 베토벤 작곡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동명(同名)인 소설로 발표하자 당시 각계각층의 비상한 찬탄과 경악, 비난과 저주의 소리가 하늘 높았고 그 넓은 현실적 파문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보다 한층 더 독자에게 실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문제점은 작가가 그 속에 파헤친 노골적이며 기탄없는 인간 성욕관이다. 그는 성욕이 인간의 자기완성을 위한 정신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요, 두려운 적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한편 노년에도조차 절륜(絶倫)이었던 톨스토이 자신의 내면적 고민과 투쟁의 고백이 이 소설에 스며있다고 하겠다.

   음악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첫 부분의 바이올린 독주가 어떤 불안 상태에서 열정적인 스타카토로 몰아가며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고 이어서 피아노가 이것을 반복한다. 이러한 베토벤 음악을 문학적으로 해부한 톨스토이가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쓴 것이 아닐까? 앞에 소개한 제금가 브릿지타워와 베토벤이 어느 소녀를 사이에 두고 싸워서 틈이 벌어졌다는 에피소드도 있고 보면 음악과 문학에서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다 같이 질투와 관계가 있는 셈이다.

   한편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브람스가 헝가리의 제금가 레메니(Eduard Reményi 1828~1898)와의 연주여행에서 반음 낮게 조율된 피아노를 원조(原調)대로 쳤다는 1853년의 episode는 음악사에서 유명한  한 페이지이다.

   대위법(對位法 contrapuntal)은 원래 점대점(點對點 counterpoint)이라는 뜻을 가진 다성음악(多聲音樂 polyphony)으로써 성부를 달리하는 주제와 응답(subject and answer)이 화성적으로 얽혀서 서로 모방하고 대립하면서 전개되는 음악이다.

  다성음악이라면 곧 바로크(baroque) 시대의 푸가(fugue)를 말함인데 라틴어 fuga가 어원인 fugue는 도주(逃走)라는 뜻이어서 둔주곡(遁走曲)이라고도 한다. 다시 말하면 푸가는 주제와 응답이 여러 성부-多聲-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변주되는 음악적 줄다리기이다. 이러한 음악적 줄다리기, 즉 대위법을 적용한 소설이 영국의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 1894~1963)가 34세 때(1928년) 발표한 장편 소설 <연애 대위법>(Point counter Point)이다.

   나는 이 소설을 <사랑 대위법>으로 보는데, 마조리 칼링이라는 한 불우한 유부녀와 그의 순정을 짓밟고서 싫증을 느끼는 웰터 비들레이크라는 내성적 청년이 다른 여인에게 유혹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또한 전형적인 위선자 데니스 벌랍이라는 지식인의 마수에 걸린 노처녀 비아트리스 길레이가 그와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서 희롱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이 서로 끼얹는 물벼락에 욕실은 어지러운 물바다가 되는데 이 꼴이 바로 천당을 방불케 하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헉슬리는 가장 예리하게 영국 지성인들의 허위적인 모습을 성(性 sex)과 관련하여 묘사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성에 대한 선입관으로 그들을 악형에 처한다. 이러한 헉슬리의 따가운 눈초리와 특출한 유전적 분석능력이(그의 형이 유명한 생물학자이며 조부는 다윈의 친구로 진화론을 보급하였음) 융합되어서 나온 것이 곧 [연애 대위법]이다. 이 소설은 음악 대위법처럼 인공적이며 의식적인 소설 기법으로 현대 지식인의 퇴폐적인 군상을 대위법적으로 교착시켜서 풍자한 금세기 최고의 회의적이며 지적인 소설이다. 국내에서는 김성동의 중편 「둔주」를 읽은 기억이 있다.

 

            우리의 인생은 온갖 만사를 다 수용하는 거대한 교향악(Symphony)같은 것이다.

            미움ㆍ사랑ㆍ시기ㆍ질투ㆍ의욕ㆍ창조ㆍ회의 등등….

 

   프랑스의 앙드레 지이드(Andre Gide, 1869~1951)가 50세에(1919년) 발표한 [전원교향악](田園交響樂)은 종지(終止 cadence)가 없는 인간의 비극을 교향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스위스 어느 시골의 목사는 의지할 곳 없는 맹인 소녀 제르뜨뤼드를 데려다가 거두어 키우는 동안에 자기도 모르게 그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목사의 감화로 인생을 한결같이 아름답게만 생각하고 있던 소녀는 수술로 눈을 뜨게 되자 자기가 목사네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고 있었다는 죄를 자각하고 자살한다. 그리고 목사는 자기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눈 먼 이기주의를 발견하고 이미 기도할 수도 없게 된다. 대략 이런 줄거리로 꾸며진 [전원 교향악]은 “인간은 결과적으로 무지(無知)함으로써 행복한 것인가”하는 문제점을 추구한 감동적인 주옥편이다. 우리가 음악 교향악을 듣고 감동을 받듯이 [전원 교향악]은 현대인의 자아를 발견케 하는, 눈으로 읽는 문학적 교향악이다.

    클라우스 만의 소설 [차이코프스키]는 슬라브의 우수와 열광적 도취를 함께 갖고 있으며 유럽다운 우아스러움을 풍부한 선율에 담고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생애와 예술적 감동을 동시에 보여 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삶에 지쳐 있을 때 살며시 다가와서 힘을 내라고 속삭여주는 연인과 같은 작품이다.

   지금까지 음악과 관련된 연애 문학의 면면을 살펴본 반면으로 문학과 관련된 애정 음악으로써는 단연 오페라이다. 그 중에서도 모차르트의 오페라들에는 가장 순수 무구(無垢)함에서부터 가장 야수적(野獸的)이고 노골적인 관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애정 상태가 망라되어 있다.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오페라뿐만 아니라 교향곡이나 실내악이나 소나타에조차 연애감정이 넘쳐흐른다. 

                                          “음악과 문학,” [음악예술], 1986년 5월호(Vol.9), 42~47쪽을 수정.     

 

 

참고 문헌

Aldous Leonard Huxley(金遇鐸 譯), [사랑의 對位法], 서울: 三中堂文庫 285ㆍ286, 1976.

Andre Gide(吳鉉堣 譯), [田園 交響樂], 서울: 三中堂文庫 098, 1981(重版).

Francoise Sagan(方 坤 譯),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서울: 三中堂文庫 445, 1984(重版).

Gaston Bachelard(李嘉林), [촛불의 美學], 서울: 文藝出版社, 1975.

Hugo Leichtentritt(金晋均 譯), [音樂의 歷史와 思想], 서울: 螢雪出版社, 1975.

Jane Stuart SmithㆍBetty Carlson(박희석 옮김), [로뎀나무 아래 -음악의 별들], 서울: 도서출판 샘물. 2000.

Jean Aubry 外(李康濂 編譯), [音樂과 文學], 서울: 國民音樂硏究會, 檀紀 4294.

Lev Nicholaievich Tolstoi(李 徹 譯), [크로이체르 소나타], 서울: 三中堂文庫 327, 1981(重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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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聖東, 「遁走」, [文藝中央] 第4卷 가을號, 서울: 中央日報社, 1981.

李昌培, [韓國歌唱大系], 서울: 弘人文化社, 1976.

[最新 名曲解說全集] 12 室內樂曲Ⅱ, 서울: 世光出版社,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