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作文 my compositions)

뿡어 얘기와 노자. 2008. 5. 20.

노고지리이해식 2008. 5. 20. 23:42

 

 

 

뿡어 얘기

 

   <뿡어>는 내 외손자의 별명이다. 이 녀석을 막 낳아서 보니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분명한 가운데 유달리 입가장자리가 뿡어처럼 귀엽게 생겨서 내가 즉석에서 붙인 별명이다. 이 녀석에겐 뿡어 말고도 여러 개의 별명이 붙여졌는데 이름이 지어지면서부터 다 사라지고 내가 붙인 <뿡어>만을 지금껏 부르고 있음은 음식을 먹일 때 역시 뿡어처럼 입을 뻐끔히 벌이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주위의 귀여움을 다 차지하는데 뿡어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뿡어 엄아 아빠 외에는 뽀뽀 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서 나는 뿡어와 이마 맞추기를 하여 이게 어느 만큼 친숙해지려는데 제 외할머니가 이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마 맞추기를 하면 예쁜 짱구 머리 골격이 변할 수 있다면서.

 

   <붕어>를 세게 발음하면 뿡어다. 내 어렸을 적의 농경(農耕)에서 뿡어는 가장 흔하고 만만한 민물고기였고 예나 지금이나 민물고기 매운탕이라 하면 정다운 게 뿡어 매운탕이 아닌가 한다.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논에 물을 대는 곳이나 흐르는 똘물(도랑물)에 <쑤기>를 마련해 두면 제법 붕어가 거슬러 올라와서 그 포획의 재미가 쏠쏠하였다. <쑤기>는 고기를 잡는 기구인데 이것은 수기(水器)를 세게 발음하는 사투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나무로 원형 틀(frame)을 만들고 가느다란 싸릿대를 엮어서 원추형으로 두른다. <쑤기> 말고도 농번기에는 동네 방죽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는데 이때 사람들은 지나가는 고기를 덮어씌우는 <가리질>로 붕어는 물론 팔뚝만한 잉어도 잡는다. 쑤기는 옆으로 뉘여서 설치하여 물고기가 오르기를 기다리고, 가리는 두 손으로 들고 다니면서 물고기가 있는 곳을 내리 덮는다. 쑤기나 가리가 [수리민속도록](水利民俗圖錄)에는 <통발>(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리도 대나무로 만든 원형 틀에 굵은 싸릿대 또는 대나무를 원추형으로 엮어서 만든다.

 

 

    [水利民俗圖錄](金提: 東津農地改良組合 水利民俗 博物館, 1981)

          에는 위의 두 가지를 <통발>(筌)로 기록해 놓았으나 내가 자란 김제

                 (金提) 인근의 부안(扶安)에서는 왼쪽을 쑤기, 오른쪽을 가리라고 하였다.

 

 

   외손자 뿡어가 외가에 올 때면 제 외할머니는 내 방에 미리 침구를 깔아놓고 방문을 열어 둔다. 그러면 여석은 놀면서 붕어가 쑤기를 거슬러 올라가듯 방으로 쏙 들어가서 제 친구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제풀에 잠든다. 내 방은 조금 외져서 어린 아이가 잠자기에 딱 좋은데 이 녀석이 잠들면 집안에 무언의 정숙령이 내려진다. 그럼 나는 다용도실로 나가서 유리창 너머로 뿡어가 잠자는 모습을 보는데 어느새 덮어준 포대기도 차버리고 인형도 버린 채로 자고 있다. 처음에는 쑤기에 들어간 붕어가 나오지 못하듯 이 녀석 뿡어도 잠이 깨면 나오지 못하더니 조금 자라면서부터는 잠 깬 신호를 보낸다.

   뿡어는 또 제 엄마 처녀 적의 방으로 들어가서 제 엄마가 쓰던 침대에 오를라치면 한쪽 발을 침대에 턱 걸치는데 이때 내가 한쪽 발을 괴어 주면 뿡어가 쑤기에 힘차게 오르듯 침대 위로 단숨에 올라간다. 올라가서는 돌아앉아서 자랑스럽다는 듯 씩 웃어보이고는 이내 침대 머리를 잡고 일어서서 놀다가 엉덩이부터 침대가장자리로 돌려서 슬금슬금 내려온다.

  

 

                왼쪽: 공놀이 하는 뿡어의 동작이 하도 재빨라서 제 엄마는 한때 <날쌘돌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2008. 4. 1.

                오른쪽: 외손자 뿡어가 다치지 않도록 제 외할머니가 집안의 날카로운 모서리는 모두

                protecting해 두었다. 2008. 5. 20.

 

 

    아이들은 도리도리ㆍ손뼉 치기ㆍ곤지곤지 등의 언어보다 앞선 동작 언어로 귀여움을 받는데 아마 이게 자연스런 춤이 아닐까 한다. 내가 이를 자연스럽다 함은 아이들은 천성적인 동작을 통한 신진대사로써 나날이 성장하고 이게 춤처럼 아름다움에서 귀여움으로 전이되는 거라고 본다. 뿡어의 이런 몸짓들은 각각의 의미가 붙은 귀여운 춤이어서 온 집안에 즐거움과 행복을 꽃피게 한다.

   뿡어의 손뼉 치기에는 “반가워요. 어서 오세요,” 왼손 엄지와 식지를 세우는 동작에는 “뿡어에요, 저는 뿡어에요” 라고 식구들이 의미를 붙였다. 그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동작에는 “사랑해요”라고 제 외삼춘이 몸짓 언어(body language)를 붙여주었다. 그래서 “반가워요. 어서 오세요”라고 하면 뿡어는 귀엽게 손뼉을 치고 “사랑해요”라고 하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다. 그럼 나는 헝클어진 머리칼을 빗어주기에 바쁘다. 요즘 뿡어 외할머니는 화상 전화기로 뿡어의 귀염을 보면서 무척 대견스러워 한다. 이런 뿡어는 엘리베이터나 밖에서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상징 언어로 인사 한다니, 어린 아이의 티 없는 사회성(society)이 빛나는 신록(新綠)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 나는 부엌을 들락거리며 “하루 종일 녹차 마시면서 설거지만 하네” 라고 중얼거렸더니 “진짜 뿡어는 외할아버지구먼.” 뿡어 외할머니의 싫지 않은 핀잔이다.

 

-참고-

노자는 어린아이를 적자(赤子 갓난애)라고 한다(노자 도덕경 제55장).

벌이나 전갈이나 독사도 그를 물지 않고

사나운 새나 맹수도 그를 덮치지 않는다.

뼈는 약하고 근육은 부드러워도 쥐기는 잘 하며...

 

여기서 적자는 깊고 중후한 수양의 경지를 지닌 도가적 이상 인격을 가리킨다.

갓난애는 노자가 주장하는 최상의 덕목들(無名 無欲 虛  和 柔弱 中 無爲 不言 등)을 거의 가지고 있지만,  노자는 갓난애에 있는 특성 가운데  화和를 중심으로 하여 논하고 있다.

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서울: 소나무 2016. 406~4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