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습Ⅰ]. 95.3㎒ 대구 MBC-FM fan, 1987년 7월호, 12~13쪽.
국악의 이해 대사습놀이-Ⅰ- 1987년 7월호 글ㆍ사진/이해식
음력으로 매년 5월 5일은 단오날이다. 이날 전라북도 전주에서는 대사습(大私習)놀이가 아주 성대하게 열리며 강원도 강릉에서는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강릉 별신굿이 벌어진다. ‘사습’(私習)이라 함은 어떤 분야의 예술적 기예(技藝)를 개인적으로 배움인데 오늘날 예능과외로 통용되는 레슨(lessen)이란 말과 가장 가깝다고 하겠다. 비슷한 말로 스승으로 섬긴다는 ‘사사’(師事)라는 말이 있고 글방에서 배운다는 뜻으로 ‘사숙’(私塾)이 있다. 또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은근히 어떤 사람 을 스승으로 삼아서 도(道)나 학예를 닦는다는 ‘사숙’(私淑)이란 말도 있다. 이중에서 선생-敎師-의 예술적 기예를 가장 직접적으로 배워서 남 앞에서 데뷔(debut)하는 경연(競演 contest)을 사습놀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경연을 놀이로 보고 여러 사습이 모였으니 대사습(大私習)이라 함이다. 그래서 대사습+놀이이다. <놀이>가 예술의 모체가 된다는 말이 있고 보면 대사습 놀이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모체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대사습놀이라 하면 오늘날 말로 레슨 받은 결과를 겨루는 일종의 경연대회(競演大會)라 하겠는데 과연 누가 일등이고 누가 이등이며 누가 더 잘하는가 하는 지나친 경쟁의식보다도 출연자나 구경하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놀이의 차원에서 하나로 융합되어 즐겁고 편안하게 행사를 치룸이 특징이라 하겠다. 대사습놀이 선국대회는 금년(1987년)으로 13회째를 맞이했지만 실제로 전주 실내체육관의 스탠드를 꽉 매운 관중들의 참관태도는 참으로 진지하고 질서가 정연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대사습놀이의 프로그램에 의하면 조선조 숙종 때의 마상궁술대회, 영조시대의 물놀이와 판소리 백일장 등, 민속적 무예놀이를 종합대사습놀이라 했으며 영조 8년에 지방 재인청(才人廳)과 가무대사습청의 설치에 따라서 전주에다 4군자정을 새로 짓고 여기에서 최초로 대사습대회가 베풀어진 후부터 매년 연례행사가 되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예능이 겨루어지는 대사습놀이의 제일가는 그랑푸리(grand prix)는 판소리 장원이다. 옛날에는 판소리 장원에 선발된 사람에게는 의관ㆍ통정ㆍ감찰ㆍ오위장ㆍ참봉ㆍ선달 등의 벼슬을 내리고 또 명창칭호를 붙여 주었다. 이러한 관습이 정조ㆍ순조대까지 계속 전승되다가 철종대에 일제의 침략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현재와 같은 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1974년 전주에서 전통예술에 뜻을 같이하는 박영선ㆍ송광섭ㆍ임종순씨 중심으로 전주대사습놀이 보존회를 결성하여 1975년에 판소리ㆍ농악ㆍ시조ㆍ궁도의 4개 부문으로 시작하였다. 그후 1983년부터 문화방송(MBC)의 지원 협력으로 판소리ㆍ농악ㆍ무용ㆍ기악ㆍ시조ㆍ민요ㆍ궁도ㆍ가야고병창ㆍ판소리 일반부의 9개 부문으로 확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문화방송은 초여름의 대사습놀이 뿐만 아니라 매년 가을에는 역시 전주에서 학생 대사습놀이를 열어서 젊은 세대를 위한 전통예술의 저변확대와 전승보존에 커다란 역할을 맡고 있다. 일 년중 가장 좋은 시절이라면 5월 단오의 초여름과 곡식이 무르익는 초가을이라 하겠다. 봄에 볍씨를 뿌리고(播種) 바쁜 모내기(移秧)를 시작한 다음 잠시 틈이 나는 때가 단오절이다. 이때서야 부녀자들은 창포에 머리를 감고 새옷으로 단장하고 즐거운 나들이를 한다. 단오 때가 일 년 중 가장 좋은 시절, 생명이 자라는 시절이기 때문에 여기에 맞추어서 대사습놀이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제13회 전주대사습놀이 본선에서 판소리 장원 박계향의 심청가 열창. 북/김득수. 1987. 6. 2. 전주 실내체육관. 전주 대사습놀이를 통한 지난날의 판소리 명창들은 권삼득ㆍ신재효ㆍ송만갑씨 등을 손꼽을 수 있으며, 현재 활발하게 활동중인 오정숙ㆍ조상현ㆍ성우향ㆍ성창순 씨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금년 장원은 심청가 중에서 심봉사 황성가는 대목을 열창한 박계향 씨이다. 그녀는 장내가 쩌렁쩌렁 울리는 우렁찬 성음으로 심청가를 자유자재로 불러서 능히 장원을 차지할 만했다. 판소리 장원에게는 대통령상과 거액의 상금이 주어진다. 금년(1987) 단오절은 양력으로 6월 1일이었고 이날 대사습의 열띤 예선을 거친 6월 2일의 본선 실황은 처음부터 끝까지 MBC-TV의 net work으로 전국에 중계방송 되었다. 농악은 전북의 완주농악과 충남무형문화재 세5호인 충남중앙농악회의 웃다리 농악이 본선에 진출 하였다. 특히 충남 웃다리 농악의 장고놀이는 참으로 일품이었다. 농악이라면 흔히 시끄럽다는 선입감이 앞설지 모르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농악에서 ‘흥’과 ‘리듬의 힘’을 느낄 것이다. 농악 리듬의 다양한 변화와 감추어진 역동성(dynamic)에서 힘차게 분출하는 한국 사람들의 독특한 춤사위! 농악은 듣기보다는 실제 눈으로 보아야만 그 멋을 느낄 수 있는 보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웃다리 농악팀이 보여준 장고 놀이의 자지러질듯 가녀린 피아니씨모(pp)는 아주 일품이었으며 관중들을 사로잡아서 박수갈채가 쏟아지게 했음은 연주자와 관중 사이에 흐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교감(交感)이었다고 하겠다. 더구나 이들 장구재비들의 젊음에서 터지고(bombing) 우러나오는 가락은 참으로 신선하기 그지 없었다. 이들의 힘찬 포르티씨모(ff) 춤사위가 압도적인가 하면 피아니씨모로 청충을 감상의 삼매경(三昧境)으로 몰입시켰다. 피아니씨모는 포르티씨모를 잉태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음악을 배우러거든 어떤 음악이든지 피아니씨모부터 습득하라.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적인 악기가 된 피아노(piano)라는 악기의 뜻은 이탈리아 말로 “여리다”이며 원래 온전한 명칭(full name)은 '여리고 세게'라는 뜻인 피아노포르테(pianoforte 포르티씨모(ff) 춤사위에 가락은 자지러질 듯한 피아니씨모(pp)로 흐르는 장고산조의 듀엣! 대조적인 자세(posture)! 충남웃다리농악. 제13회 전주대사습놀이 농악 본선. 1987. 6. 2. 전주 실내체육관. 가야고 산조의 빠른 자진모리에서의 끊어질듯 자지러지게 이어지는 빠른 패세지 (passage)는 듣는 사람을 매료 시킨다. 쇼팽(F. F. Chopin 1010~1849)의 피아노 악보에는 소토 보체(sotto voce)라는 악상용어가 사주 보인다. 이 음악 용어는 소리를 부드럽고 작게 하라는 뜻으로써 피아노 건반을 가만히 치라는 지시이다. 쇼팽 음악의 올바른 해석은 이 <소토 보체>부터 이해함일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고도로 발달한 기악 독주곡은 곧 산조이다. 산조는 무속음악(巫俗音樂 shaman music)으로부터 오늘날 연주회용 음악으로 급속하게 변모된 민속음악인데 가야고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국악기로 연주된다. 12줄을 살그머니 뜯듯, 때로는 복받치고 때로는 조용하게 쏟아지는 장고리듬! 이것이 장고놀이요 가락이며 바꾸어서 말하면 충분히 장고산조라 할 것이다. 리듬(rhythm)이란 원래 그리스말로 “흐른다”는 뜻이고 보면 변화무쌍한 리듬을 구사하는 장고놀이를 장고의 허튼가락, 또는 장고산조라 부르는 데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장고 산조는 춤이 따르기 때문에 더욱 좋다. (95.3㎒ 대구 MBC-FM fan, 1987년 7월호, 12~13쪽, 「대사습 놀이」Ⅰ).
참고 문헌 Johan Huizinga(權寧彬 譯), [호모 루덴스], 서울: 弘盛社, 1981.
대사습놀이Ⅱ- 1987년 8월호
지난 호에 이어서 전주 대사습놀이를 설명하겠다. 매년 음력 단오날 전주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대사습놀이는 판소리ㆍ농악ㆍ무용ㆍ기악ㆍ시조ㆍ민요ㆍ궁도ㆍ가야금 병창ㆍ판소리 일반부의 9개 부문인데 어느 부문이나 가득 넘치는 정성과 열기로 진행된다. 궁도(弓道 활쏘기)는 국악은 아니지만 거기에도 국악이 담겨지며 이러한 대사습놀이를 명실 공하게 국악 등용문이라고 일컫는다. 오랫동안 레슨(lesson) 받아서 음악적 기량을 기름을 적공(積功)이라고 한다. 이렇게 적공한 사람들의 열띤 대사습 발표를 보고 느낀 점은 어딘가 깊이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판소리ㆍ농악ㆍ무용ㆍ가야고 병창 등이 텔레비전이나 서울의 국악 무대에서처럼 화려하거나 인위성(人爲性)이 없어서 보고 듣기에 편안하였다. 단지 대사습놀이의 프로그램이 텔레비전 방송 위주로 짜여져서 진행자의 반복되는 announcement가 너무 많았고 군데군데 도식적인 진행이어서 지루한 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제13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벌어진 전주실내체육관. 1987. 6. 2. 대사습의 발상지가 전주이며 또 호남지역은 민속음악의 전통이 깊이 뿌리내린 곳인데도 민요부분 본선에서는 경기잡가인 유산가와 제비가로써 서울 거주자들만 출연 했을뿐 정작 대사습의 흠 그라운드(home ground)인 본 고장 사람들의 민요 출연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사습이 끝난 후의 에필로그(epilogue)에서도 서울 거주의 유명한 전문민요꾼들이 나와서 박연폭포ㆍ양산도ㆍ자진방아타령을 불렀을뿐 전주 국악의 독특한 지방색은 살리지 못했다. 대사습이 전국으로 중계방송 되는 전국대회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국악적인 지방색이 두드러진 편은 아니었다. 이 점이 오늘날 국악 분야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국악 전문가로서 빛을 보려 하거나 국악인으로서 직업을 가지려면 서울에 모여야 되고, 그렇게 하여 국악적인 지방특색이 소멸된 지는 오래다. 혼자서 부르는 판소리를 여러 사람이 배역을 맡아서 부르는 양태를 이 바닥에서는 입체창이라 한다. 이러한 입체창으로 과거의 대사습 판소리 부문의 장원 네 사람이 나와서 심청가를 불렀는데 사전 연습이 충분함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판소리를 배역한다 함은 연극적인 요소를 강하게 한다는 뜻이겠는데 배역을 맡은 사람들이 그냥그냥 맹숭하게 서서 소리만 나누어 부를 뿐 보기에도 어색하고 듣기에도 싱겁지 않을 수 없었다. 판소리는 그냥 혼자서 부를 때 진면목의 가치가 있다. 가야고 병창도 역시 혼자 부르는 게 가장 음악적이다. 이날 여러 사람이 가야고 병창으로 호남가를 불렀는데 기악이든 성악이든 남도(南道) 음악은 미분음(micro tone)이 그 핵심이기 때문에 이러한 음악을 그룹으로 연주하면 미분음의 예술성이 그만 반감되고 만다. 가야고 병창이나 산조를 그룹으로 연주함은 음량을 늘이거나 눈 사치 외에 음악적으로는 별스런 의미가 없다. 이날 마지막으로 연희된 「익산지게목발노래」는 가장 토속적이고도 흥겨운 프로그램이었다. 이 노래는 전북 익산군 삼기면 오룡리 검지부락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 민요는 앞소리를 메기는 박갑조씨를 중심으로 두레농사를 짓는 일련의 노래로써 지게목발치기노래ㆍ작대기타령ㆍ상사소리ㆍ꿩타령ㆍ둥당개타령ㆍ산타령ㆍ긴방아타령ㆍ벼베는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에 긴방아타령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태고라 신농씨는 천하지대본은 농사로다 천지건곤 풍년이 되니 우리 농군 시절이로다. 저 건너 갈매봉에 비 묻어 들어온다. 우장을 두르고 삿갓을 쓰세 오동추야 달 밝은데 님 생각이 절로 난다.
전북 익산군 삼기면 오룡리 검지부락 사람들이 「익산지게목발치기노래」에서 두 손에 든 대나무 도막을 치면서 흥겨운 춤을 춘다. 제13회 전주대사습놀이 본선. 1987. 6. 2. 전주실내체육관. 「양구 바랑골 지게놀이(싸움)」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 지역 대암산 화전민들의 고유한 민속으로, 고사반소리ㆍ짱치기ㆍ지게상여소리ㆍ회다지소리ㆍ지게싸움놀이 등 다섯 마당이다. 위 사진은 제45회 전국민속예술축제에 출연한 바랑골 사람들의 지게싸움. 2004. 10. 6. 부여 백마강 둔치,
1995. 8. 25. 경복궁 종합민속예술제/서울.
<익산 목발치기소리>를 소재로 이해식이 작곡한 「대굿」(竹祭). 국립국악원 제23회 한국음악
창작 발표회 위촉 작품. 위 사진은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국악과 제15회 국악연주회 「대굿」 리허설. 지휘/김길운.
1997. 11. 20. 부산문화회관 대강당. Sony CCD-TR2 녹화/이해식.
익산목발치기노래는 너무 세련되어 이제는 토속적인 순수한 맛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 목발치기노래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원숙한 연기자가 되어서 원근의 행사초청에 바쁘다고 한다.
「작대기타령」은 작대기로 등 뒤에 진 지게다리를 리드미컬하게 두들기면서 부른다. 산에 나무를 하러가거나 꼴을 베러 갈 때 작대기로 빈 지게 다리를 두들기면서 부르는 것이 산타령이요 들노래요, 또 방방곡곡에 널리 퍼져 있었으련만 이러한 농경사회 소리는 세월과 함께 소멸되고 오로지 익산에만 남아 있는 듯하다.
익산 지게목발치기노래의 또 한 가지 특색은 두 손에 든 대나무 토막을 부딪치면서 유쾌한 리듬을 만들어 냄이다.
대나무는 우리 생활에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 곧음으로써 충절과 정절의 상징이 되고 늘 푸르름으로 굳은 의지의 상징이 되며, 매듭은 유절(有節)함을, 잎은 다양한 변화성으로 사군자(四君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양에서 관악기라면 모두 대나무로 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나무는 한국전통음악에서 관악기를 통칭한다. 대나무는 사실은 나무가 아니라 풀에 속한다. 줄기가 자라면서 단단한 고체가 되기 때문에 통상 대나무라고 부른다.
대나무는 굿을 할 때 신이 내리고 인간의 절실한 기원을 하늘에 올리는 통로가 된다. 굿에서 인간과 신이 연결되는 매체(media)이다.
이 해식 작곡 국악관현악 「대굿」(竹祭)은 대나무로 장단을 치는 「익산 목발치기노래」에서 소재를 얻은 창작국악이다. 국립국악원 제23회 한국음악 창작 발표회 위촉 작품인 「대굿」(竹祭)은 김정길 교수의 지휘로 1985. 12. 13(금),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초연된 바 있다. (95.3㎒ 대구 MBC-FM fan, 1987년 8월호, 12~13쪽, 「대사습 놀이」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