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MBC-FM fan(글ㆍ사진·이해식)

[날뫼북춤]. 95.3㎒ 대구 MBC-FM fan, 1988년 1월호, 12~13쪽.

노고지리이해식 2009. 3. 7. 12:03

국악의 이해

 

날뫼북춤

1988년 1월호

 

사진/이해식

 

살풀이춤을 하얀 명주 수건을 들고서 추듯이 북춤은 앞에 북을 메고서 장단에 맞추어 추는 춤이다. 살풀이춤의 하얀 명주 수건에서 살을 풀어가는 청결과 정중동(靜中動)의 구수한 멋을 볼 수 있듯이 북춤에서는 역동적인(dynamic)인 춤사위와 명쾌한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장고춤도 크게 보면 북춤에 속하지만 더 섬세한 가락을 구사할 수 있다.

본시 세계 어느 민족의 춤이든 손에 무슨 물건이나 악기를 들고 춤을 추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춤에서 명주 수건이나 장고, 북은 춤과 밀접한 소도구로써 일품에 속한다. 아니 이것은 소도구라고 하기 보다는 춤의 한 분신이라고 하겠다.

북춤의 북이나 징과 같은 타악기는 가장 직설적으로 그리고 순간적으로 인간의 심리를 동요 시킨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가슴을 금새 울렁거리게 하고 흥분하게 한다.

 

 

                                    날뫼북춤. 원활한 북놀이를 위하여 북을 세로로 비스듬하게 맨다.

                                    제2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1983. 10. 21. 안동공설운동장.

                                    Nikon F3 촬영/이해식

 

 

서양에서는 우리 나라와 같은 북춤을 찾아보기 어렵다. 있다면 고적대나 여러 명이 함께 치는 브라스 밴드(brass band)의 사이드 드럼(side drum, 작은북)의 손동작을 일치 시키는 것(formation)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북춤은 북이나 장고만을 따로 메고 치면서 동작(춤)과 음악이 하나의 신체적 구조 속에서의 갈등인가 하면 화답이요 뜨겁게 작열하는 몸부림인가 하면 어느덧 정숙한 한국의 아낙이요 과묵한 장부(丈夫)인 듯하다.

서양의 브라스 밴드에서는 큰북(bass drum)은 세로로 메고 작은 북은 가로로 멘다. 우리나라의 북은 취타(고적대)를 비롯하여 대개의 북춤은 북을 가로로 다. 특히 진도북춤이 그렇다. 장고춤은 악기의 구조로, 승무는 북의 크기와 공간의 조건으로 북을 가로로 메거나 세로 형태로 놓고 친다.

지금까지의 북춤은 독무(solo)인 경우를 이야기한 것이고 대구의 날뫼북춤과 밀양 백중놀이에서 추는 오북춤은 앙상블(ensemble, 群舞)로서 북을 세로로 비스듬하고 나지막하게 멘다. 이러한 형태는 거개의 풍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것은 춤을 추면서 놀이를 원할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대구 <날뫼>의 구체적 행정구역 명칭은 대구직할시 서구 비산동이다. 날뫼의 한자어는 <비산>(飛 山)으로 <날아오는 산>이란 뜻이다. 날뫼라는 지명에 얽힌 전설은 다음과 같다.

아주 먼 옛날 현재의 팔달교 근처인 달내(達川)에서 빨래하던 여인이 서쪽 하늘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풍악소리를 듣고 바라보니 마치 산 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둥둥 떠 옴을 보고 놀라서 그만 “동산이 떠온다”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순간 날아오던 구름산(雲山)이 그 자리에 떨어져서 오늘날의 비산, 즉 날뫼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의 북비산동 원고개는 달성과 금호강 사이의 넓은 들녘을 끼고 있는 서울 나드리 길목이다. 또한 옛날 원님이 부임해올 때 이 고개에서 행차를 멈추었으며 그 때마다 선량한 백성들이 풍악과 춤으로 맞이하였다고 전한다.

옛날에 한 원님이 정사에 열중하다가 순직하였으니 그를 추앙하던 백성들이 이곳에 무덤을 만들고 봄 가을로 제사를 잊지 않았다. 제사 때마다 원님의 외로운 혼백을 위로하기 위하여 북을 치며 춤추었음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서 날뫼북춤과 날뫼농악이 되었다고 한다.

날뫼북춤의 전설적 배경에는 날아오는 산(飛山)에서 천신(天神)신앙을, 또 그것이 땅에 내려앉았다는 결과에서 지신(地神)신앙의 뿌리를 엿볼 수 있다. 이것은 한국인 특유의 민속적 풀이로서 날뫼 지역의 <천왕(天王)메기>놀이에서 지신신앙은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러고 보면 이곳 대구지방의 날뫼는 민속의 고향이라고 불러서 한 점 부족함이 없으리라.

앞서 얘기한 북비산동의 원고개는 오늘날의 국도(國道)처럼 옛날엔 관도(官道) 구실을 했었고 이 관도를 지나는 고관벼슬의 행차에는 으레 춤과 음악이 따랐을 것이고 그것은 관(官)이 주도하는 축제였으리라 미루어 생각할 수 있겠다. 이렇게 길에서 벌어지는 길굿은 거리의 음악, 거리의 춤으로써 하나의 훌륭한 풍속이 되어서 오늘날 우리에게 무형의 문화재로 남아 있는 것이다.

길굿은 이름만 다르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1986년의 아시안게임 때와 1988년의 세계올림픽에서 성화 봉송의 길목마다 민속적인 축제가 벌어졌으니 이것을 곧 흥청거리는 길굿이라 할 것이다. 다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변형시키는 것, 조화와 창출(創出)을 시도하는 것 등의 여러 가지 민속학적 숙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대구의 날뫼북춤은 영남대학교의 김택규 교수가 발굴지도하여 1983년 10월 21일 제2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안동)에서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되고 그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날뫼북춤 중에서 모둠굿. 날뫼 북춤의 전설적 배경에서 천신(天神)신앙과 지신(地神)신앙의

                       뿌리를 엿볼 수 있다. 제2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1983. 10. 21. 안동공설운동장.

                       Nikon F3 촬영/이해식

 

 

날뫼북춤의 편성은 북 12ㆍ꽹과리(쇠) 1ㆍ장고 1ㆍ 징 1ㆍ태평소 1이다.

춤사위는

①전원이 함께 허리춤과 어깨춤으로 돌면서 넘어가는 정적(덩덕?)궁이.

②마지막에 모두 돌면서 덧배기 가락으로 추는 어깨춤과, 허리춤이 홍겹게 전개되는 자반드기(반짓굿), 이것은 마당굿이라고도 한다.

③엎어빼기는 모두 한 바퀴 돌면서 서너 번 엎어빼고 돌아가면서 추는 춤이다.

④다드래기는 일사불란하게 모두 한 줄로 몰아치면서 춤춘다.

⑤허허굿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갈지자(之)로 높이 뛰는 춤이다. 허허굿은 농악놀이 중에 “허허” 또는 “호호”하는 구호를 외치는 과장(科場)이다. 호호굿이 라고도 한다.

⑥모둠굿은 북을 높이 뒤집으면서 추는 춤이다.

⑦살풀이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으로써 농부의 부지런한 농사과정을 상징하는 춤이다. 살풀이는 원래 무속적 의미로써 살을 풀고 제액을 쫓아서 행복해지려는 종교적 기복(祈福) 무용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뜻이 날뫼북춤에 이입되어서 풍년을 구가하는 흥겨운 과장이 구성되었음으로 보인다. 혼자 추는 살풀이에 비하여 장단은 우렁차고 골이 깊은 어깨춤을 춘다.

⑧끝으로 덧배기 사위는 흥겨운 굿거리장단으로 이끌어 간다.  (95.3㎒ 대구 MBC-FM fan, 1988년 1월호, 12~13쪽).

                    

 

 

 

 

 

 

참고 문헌

제2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날뫼북춤 프로그램. 1983. 10. 21.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