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작의 율동 -ABU 일본방송문화재단 장려상(1975)-
노작의 율동
-ABU 일본방송문화재단 장려상(1975)-
권오성ㆍ이해식
|
<목 차> |
| |
|
| ||
1. 첫 멘트(ment) 2. 방송 다시듣기 1) 성주 목도소리 2) 마산 지점이소리 3) 진주 망께소리 4) 영월 덜구소리 5) 해남 상여소리 6) 점촌 자진상여소리 7) 거문도 노젓는소리 8) 제주 해녀뱃노래 |
9) 제주 멧돌소리 10) 해남 둥당애타령 11) 정선 베틀노래 12) 해남 절로소리 13) 중원 어허굼실대허리야 14) 경산 보리타작소리 3. 분석 연구 4. Station Break 참고 문헌 영문 원고(English Script) |
1. 첫 멘트
나는 대학 졸업 직전에 권오성 선배와의 인연으로 <문화공보부 중앙방송국(KBS) 라디오 제작부 음악계>에 intern으로 들어갔는데, 권 선배는 그때 이미 토속민요 수집과 방송제작으로 명성이 자자한 터였다. 나는 그 얼마 후에 문화공보부 특채 시험으로 정규직원이 되었고 권 선배의 민요수집 사업을 이어 받아서 줄곧 활성적인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또 내가 작곡하는 작품의 정신적 사유적(思惟的) 근거로 삼기도 하였다.
당시 내가 제작 방송하던 <민요의 고장>은 전국의 토속민요를 취재, 구성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KBS-Radio(711㎑) 고전음악반에서부터 새로 개국한 KBS-FM(93.1㎒)에서 내가 퇴직할 때까지 오래 동안 방송되었다.
[사진 1] KBS-Radio 프로그램 <노작의 율동>으로 받은 ABU-일본방송문화재단상(1975). 너무 오래 되어서 빛이 바랬다. 프로듀서/이해식, 국제 방송 콩쿠르여서 KBS 사명(社名)으로 받았다
본문 <노작의 율동>(Rhythm in Labor)은 <민요의 고장> 특집 프로그램으로 1975년 8월 31일 오전 11시 20분에 711㎑ KBS 제1라디오로 방송되고, 그 후 동경에서 열린 아시아방송연맹(ABU/Asian Broadcasting Union) 총회 방송콩쿠르에 출품하여 일본방송문화재단(Hoso-Bunka Foundation) 장려상(special commendation)을 받은 작품이다[사진 1]. 당시 아시아방송연맹에서 시행하는 라디오 부분의 일본방송문화재단상은 최우수상뿐이었는데 그 해에만 예외로 내가 출품한 <노작의 율동>에 장려상을 시상했었다. 비록 이 작품이 최우수상으로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우수한 작품이어서 심사국 대표들이 특별히 장려상을 주자는 데에 의견합치를 보았다는 한국대표의 전언이 있었다.
<노작의 율동>이란 topic은 내가 발상(發想)하고 제작(produce) 했지만, 이것은 권 선배가 수집한 방대한 민요자료가 원천이었으며 원고구성도 역시 권 선배가 맡았고, 본문에서의 채보는 이해식이어서 이 두 사람을 공동 집필자로 하였다.
오늘날의 방송은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다시듣기>, 또는 <다시보기>로써 지나간 방송조차 원형대로 청취, 시청하고 보전保全할 수 있으나 내가 방송사에서 근무하던 70년대만 해도 청취자들은 여러 번 반복하지 않는 한 방송내용을 기록하거나 기억하기 어려운 여건에 놓여 있었다.
방송은 전파에 의해서 일시에 넓은 공간에 있는 불특정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도달하는 공시적인 특장特長과 함께 소멸되어 버리는 특단特短도 있다. 내가 오래 동안 구상하고 준비한 「저승으로 가는 노래- 향두가」는 권오성이 여러 해에 걸쳐서 수집한 상여소리들이 바탕이 된 심층적인 프로그램이다. 이것을 불과 한두 번의 방송으로 끝내기엔 여기에 기울인 정성과 노력도 그렇거니와, 비록 오래 전에 전파로 소멸되어버린 방송이지만 남아있는 자료를 기록으로 정리하면, 지상紙上으로나마 다시듣기의 효과로써 우리 조상이 부르던 상여소리의 정서를 추억해 봄과 함께 학문적인 성과도 거둔다는 점에서 본문을 집필해야 하는 명분을 찾게 된 것이다.
선곡표: 권오성/채록, 이해식/채보
1) 성주 목도소리
2) 마산 지점이소리
3) 진주 망께소리
4) 영덕 덜구소리
5) 해남 상여소리
6) 점촌 자진상여소리
7) 거문도 노 젓는소리
8) 제주 해녀 뱃노래
9) 제주 맷돌소리
10) 해남 둥당애타령
11) 정선 베틀노래
12) 해남 자진 절로소리
13) 중원 어허굼실 대허리야
14) 경산 보리타작소리
연구방법은 방송원고에 채보(採譜 transcription)된 토속민요를 삽입하여 <다시듣기>를 편하게 하고, 채보의 분석적 견해와 설명을 본문의 뒤편에 따로 마련한다. 국제방송 콩쿠르에 제출한 영문원고로 외국어 초록(abstract)을 대신한다.
2. 방송 다시듣기
아래는 <민요의 고장> 특집 「노작의 율동」 방송원고이며 나의 블로그 http:// blog.daum. net/hsik42 카테고리 <방송다시듣기>에서 청취할 수 있다.
KBS Radio Entry for the ABU Prize 1975
-Rhythm in Labor-
Submitted by Korean Broad -casting System
Staff:
Producer.......Lee, Hae-Sik(이해식)
Script.............Kwon, Oh-Sung(권오성)
Narrator........Shin, Won-Kyun(신원균)
Music Collected by........Kwon, Oh-Sung(권오성)
Sound Recordist.............Moon, Jong-Chul(문종철)
Duration.......18'40".
Type..............7½ i.p.s. Mono.
SIGNAL(풍물)
TITLE 노작의 율동
SIGNAL
NARRATOR 노작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주거니 받거니 엮어 나가는 가락과 그 리듬은 자연 단순하고 소박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일이 힘들면 율동 또한 격렬할 것이니 그 단순하고 소박한 가락에서도 이어지는 구절마다 스며있는 리듬의 강세는 소리만 들어도 그 동작이 연상 될 만큼 이처럼 흥겹고 율동적일 수가 없다.
signal up and down
NAR. 어떤 민요든지 그것이 발생하여 널리 불려지기까지에는 그 나름대로 절실한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몇 사람이 흩어진 돌덩이를 모아 움막을 지을 때 반복되는 일에서 자연스런 변화를 원하게 될 것이요, 단조롭고 힘겨움을 이기기 위해 푸념 섞인 한마디 외침이 절로 나올 것이다. 여기서 동작에 따른 자연스런 감탄과 힘겨움의 외마디 소리가 얽혀 한 가락의 곡조를 만들어내지 않겠는가?
MUSIC 1) 성주 목도소리
NAR. 어느 누가 종이 위에 가락과 리듬을 적어서 전한 바 없으나 자연스럽게 전파되어 온 이 노래는 집지을 돌을 나르면서 부르는 목도소리다. 두 명씩 짝을 지어 무거운 돌을 밧줄로 메어 어깨에 걸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을 맞추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자연스런 노동의 리듬(Rhythm in Labor)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MUSIC 2) 마산 지점이 소리
NAR. “어허 지점이여…,” 즉흥적인 흥겨운 가락…, 집지을 땅을 다질 때 부르던 이 같은 지점이 소리도 불도저(bulldozer) 소리에 밀려 사라지는가 하면, 땅에 말뚝을 박으면서 부르던 망깨소리 역시 점점 듣기가 힘들게 되었다.
MUSIC 3) 진주 망깨소리
NAR. 지점이소리와 망깨소리의 두 가락에서 혼자서 매기는 소리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창작되어 불러지지만 여럿이 받아서 부르는 받는 소리는 일정한 리듬에 의해 마음을 합해야(合心) 하는 노작의 리듬인 것이다. 이 같은 남자들의 일반 노동요는 대체로 막벌이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을 따라 떠돌아다니면서 서로 만나서 입 맞춰 부르기 쉽기 때문에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동작의 통일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진 4] <영덕 덜구소리>를 부른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3동 사람들. 매기는 소리/김성남(앞 줄 마이크 앞에 지팡이 들고 앉아있는 사람). 모자 쓰고 오른 쪽에 앉아있는 사람은 이해식. 1973. 7. 7. Minolta Super 촬영/이해식
MUSIC 4) 영덕 덜구소리
NAR. “어허 덜구…” 죽은 사람을 땅에 묻은 뒤에 흙으로 덮고 여럿이서 무덤을 밟아 다질 때 부르는 덜구소리, 이들 일꾼들에게는 죽은 고혼을 슬퍼하고 위로하는 소리라기보다는 빨리 무덤을 다지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바쁜 마음에서 부르는, 즉 노동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리듬이다.
music up and down 덜구소리
산지조종(山之朝宗)은 곤륜산(崑崙山)이요
수지조종(水之祖宗)은 황하수(黃河水)라
이 무덤을 잡을 적에 도참설(圖讖說)에 의한 명당자리라는 것을 강조 하면서 무덤을 단단히 다지고(踏地) 있는 이들의 발맞춤과 후렴구의 리듬은 흥겹게도 퍼져 나간다. 이런 아이러니(irony)가 극치에 달하고 있는 행상(行喪)소리는 더욱 색다른 노동의 리듬이라 하겠다.
MUSIC 5) 해남 상여소리
NAR.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애틋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이렇게 마을 친지의 영구(靈柩)를 메고 가는 사람들의 행상소리도 노동과 리듬의 측면에서 보면 무거운 상여를 메고, 발을 잘 맞추어 나가기 위한 일종의 흥겨운 행진곡의 리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요즘의 장의차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멋이 아닌가?
MUSIC 6) 점촌 자진 상여소리
그러면서도 이 상여소리는 한국의 어느 통과의례(通過儀禮 rite of passage) 보다도 가장 보수성을 지니고 있는 민요다.
music up and down 상여소리
리듬은 또한 검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에서 더욱 생생하다.
music up and down 노 젓는 소리
MUSIC 7) 거문도 노 젓는 소리
NAR. 지금 듣고 있는 노 젓는 소리는 재래식의 나무로 만든 고깃배를 찾아 한 섬에서 채집한 것이다. 망망한 대해로 고기잡이를 나가면서 힘차게 노 젓는 소리…, 태고를 부르는 듯 한 소리의 리듬과 맥박이 동작과 일치하는 좋은 보기이다.
effect 갈매기 소리
또한 해녀들이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해녀 뱃노래는 색다른 가락과 리듬의 복잡성(evolutionary complexity)을 보여주며, 남성의 어업 노동요에서 느낄 수 없는 애틋한 정감의 노작 리듬을 들려주고 있다.
MUSIC 8) 제주 해녀 뱃노래
fade in 멧돌소리
NAR. 부녀자들의 살림살이 속에 깃들었던 정다운 리듬도 믹서(mixer)의 모터소리로 바뀌어 지고 그 노래는 이미 부녀자들의 살림살이와 기억 속에서 멀리 살아져 가고 있는 것이다.
MUSIC 9) 제주 맷돌소리
NAR. 솜틀이 나오기 전 창호지문에 활을 대고 솜을 재울 때 부르던 둥당기타령도 부녀노작요의 리듬이다. 요즘은 솜틀도 보기 힘들어졌으니 생활양식의 변화도 점점 빨라져 간다고 할 수 있겠다.
MUSIC 10) 해남 둥당애 타령
NAR. 베틀노래에 얹어 부르던 한국여성의 슬기와 해학의 사설- 그 가락과 리듬도 이제는 여간해서 듣기 어려운 형편이다.
MUSIC 11) 정선 베틀노래
NAR. 방직공장의 기계소리에서 옛 부녀자들이 느끼던 낭만과 노작리듬을 찾아 볼 수는 없지 않은가
effect 새 소리
싱그러운 새벽공기가 여린 나뭇잎에 생기를 불어 넣을 때, 깊은 산 계곡의 품에 안기듯이 잠들었던 농촌 마을에 이제 하루해가 다시 밝아 온다. 일 년 삼백 예순 날, 날이면 날마다 또 하고 또 하는 일이지만 절기 따라 달라지는 일이 마냥 농군의 마음을 재촉하여 하루해를 꼭두새벽부터 술렁이게 한다. 이렇게 농사일이 바쁘니 그 리듬 또한 뚜렷하고 씩씩한 느낌이 든다.
MUSIC 12) 해남 자진 절로소리
NAR. 이와 같은 논매기소리는 실제 동작과 잘 맞는 삼박자의 리듬으로 불려진다. 또 다른 중부지방의 논매기 노래는 그 논매기의 동작을 눈으로 보는 듯 흥겹기도 하다.
MUSIC 13) 중원 어화굼실 대허리야
NAR. 한편, 보리를 베고 나서 타작할 때 부르는 보리타작 소리는 더욱 활기차고 야성적인 리듬을 느끼게 한다. 도리깨로 두들기며 여럿이 입을 맞추어 부르는 빠른 삼박자의 보리타작 소리…, 탈곡을 하는 농부의 기쁨을 솔직담백하게 나타내고 있는 가락과 리듬이 아니겠는가.
MUSIC 14) 경산 보리타작소리
NAR. 생산 의욕을 북돋아주는 이러한 리듬도 탈곡기가 앗아간 지 이미 오래다.
노동의 행태가 달라지면 노작에 따르는 리듬과 가락도 스스로 멎어질 수밖에 없고 발생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일까. 그러나 달라져가는 생활 속에서도 우리 옛 노작요 속에 뿌리 내린 정겨운 가락과 흥겨운 리듬은 수 천 년을 이어온 한국 민족의 정서가 그 속에 숨 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SIGNAL(풍물)
NAR. 음악은 모름지기 노래와 함께 불러지는 <노작의 리듬>의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칼 뷰헤르(Karl Bücher)의 이론을 따르자면, 기계가 대신하는 노작에서는 과연 어떤 리듬이 발생 될는지 궁금하기도 하리라.
signal up and down
지금까지 우리나라 민요 중에서 잊어져 가는 노작과 관련된 노래의 리듬을 각 지방 현지에서 채집하여 소개해 드렸습니다.
SIG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