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매일춘추, 1991년

임방울 에피소드(2) -추억 & Nina의 죽엄-

노고지리이해식 2011. 7. 30. 01:27

 

 

광주역 2010. 12. 13.

 

 

 

 

   아름다운 친우들!

   노아의 홍수(Noa’s flood) 같은 대재앙으로 돌변한 이번 장마에 우리 동문 친우들에겐 피해가 없는 줄로 압니다. 이어서 불볕 같은 더위가 올 텐데 모두들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에 제가 아는 어느 여성은 발을 쳐놓고 누워서 상여소리를 들으면서 더운 여름철을 난다고 했으니 다소 특이한 피서법 아닌가요?

 

   인생송가인 상여소리는 우선 그 숙연해짐이 깊은 catharsis로 전이되어서 더위를 느낄 수 없음이고, 또 하나는 더위를 風流로 받아들이는 정신인가 합니다.

 

   풍류는 한국 사람이라면 몽고반점처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巫(shaman)의식이고 舞(dance)감각이라고 하겠습니다. 문헌상으로 신라 花郞으로부터 비롯되는 풍류 정신과 사상은 최치원(崔致遠, 857~?)이 玄妙하다고 할 정도로 너무 복합적이고 아주 다의적입니다. 이러한 풍류의 한 켠으로 상여소리를 수용할 수 있음을 저는 독특한 <멋>이고 비어있음(餘白)이라고 봅니다.

 

   지난 번 6월 18일에 전송한 <쑥대머리>와 <별은 빛나건만>에 답장을 보내주신 몇몇 동문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어서 오늘은 <임방울 에피소드> 두 번째를 제가 <받은 편지함>으로부터 전달하겠습니다. 제가 받은 편지함은 임방울의 <쑥대머리>와 <추억>에 관한 내용인데 전반 <쑥대머리> 부분은 지난 번 <임방울 에피소드> 첫 번째 격이어서 省略했고 후반 <추억>만 인용합니다. 사진이 포함된 받은 편지함 문장을 제가 조금 다듬었습니다.

 

받은편지함

<아름다운호수가마을/4대강살리기기공식/임방울 쑥대머리>감상하세요.

보낸날짜 2009년 12월 04일 금요일, 오전 08시 47분 22초 +0900

보낸이 "이성렬" <39sungryul@hanmail.net>

받는이 "이해식" <hsik42@hanmail.net> 추가 주소추가

소속기관 환경나라

 

-前略/쑥대머리 관련-

 

 

임방울(1904~1961)

 

   ...그런 그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즈음, 광주의 기관장들이 환영파티를 열어 준 '송학원'이라는 업소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난다. 임방울이 소년시절에 광주 부잣집에서 고용살이할 적에 그 집의 아름다운 동갑내기 딸이었다. 그들은 철부지의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으나 소년은 그 집을 떠나야 했고, 소녀는 어느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다.

 

   그후 결혼 생활에 실패한 소녀는 김산호주라는 예명으로 광주에 송학원이란 업소를 차려서 광주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여주인이 되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명창 임방울이 김산호주를 만났다. 십여년도 훨씬 흐른 뒤에...

 

   그동안 서로 그리웠던 두 연인은 곧바로 사랑을 불태웠다. 미색이 빼어난 김산호주는 천하명창 임방울을 2년 동안이나 송학원의 내실에 숨겨 두고 사랑의 포로로 만들었다. 세상에서는 임방울이 잠적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전속계약을 맺은 OK 레코드사에서는 임방울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방울은 자신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았다.

그토록 기름졌던 목소리가 탁해져서 고음이 나오지 않고, 소리를 조금만 질러도 땀이 났다. 대경실색한 그는 어느 날, 산호주에게 알리지 않고 지리산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임방울의 행방을 알지 못한 채, 미칠 듯한 그리움과 슬픔에 빠진 산호주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천지사방을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임방울의 지리산 행방을 알아 낸 산호주는 그의 토굴 앞에서 만나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임방울은 끝내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다. 깊은 절망에 빠진 산호주는 임방울을 애타게 그리다가 마침내 30세도 안된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산호주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임방울은 죽어가는 애인을 껴안고 즉석에서 자신의 비통한 마음을 노래 불렀다. 그것이 바로 <추억>이다.

 

 

앞산도 첩첩허고 뒷산도 첩첩헌디 혼은 어디로 향하신가

황천이 어디라고 그리 쉽게 가럇든가

그리쉽게 가럇거든 당초에 나오지를 말았거나

왔다가면 그저나 가지 노던 터에다 값진 이름을 두고가며

동무에게 정을 두고 가서 가시는 임을 하직코 가셨지만

세상에 있는 동무들은 백년을 통곡헌들 보러 올 줄을 어느 뉘가 알며

천하를 죄다 외고 다닌들 어느 곳에서 만나 보리오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전생에 무슨 함의로 이 세상에 알게 되어서

각도각골 방방곡곡 다니던 일을 곽 속에 들어서도 나는 못잊겄네

원명이 그뿐이었든가 이리 급작스리 황천객이 되얏는가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어데를 가고서 못오는가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을 보고지고

 

검색:   임방울/추억(녹음 상태 양호하지 않음)

                    추억(임방물)-1.wma

 

 

   이후 박초월 명창 등과 <동일 창극단>을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면서 최고의 명창으로 대중들을 울리고 웃기던 임방울은 1961년 공연 도중에 피를 토하고 쓰러져 5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상 처음 국악예술인장으로 치러진 임방울의 장례식에는 200여 명의 여류 명창들이 소복하고 그의 상여를 따라가며 상여소리를 불렀다. 그런데 행렬 끝에 100여 명의 거지가 눈물을 흘리며 따라와 눈길을 끌었다. 공연 때마다 거지들을 무료로 관람시켰던 임방울에 대한 추모의 표시였다.

 

 

                                        임방울 장례식에서 줄무지를 잡고 뒤 따르는 여인네들

 

   10여세부터 서편제와 동편제를 배워서 자신의 고유한 가풍(歌風)을 수립한 전설적 명창 임방울... 민족사의 흐름과 판소리 역사에서 시련과 수난이 가장 심했던 일제 침략기에 민초들의 한을 노래한 명창 임방울... 김창환ㆍ이동백ㆍ송만갑 같은 선배 가객들처럼 조선시대의 벼슬 하나 지낸 바 없고, 후배들처럼 인간문화재로 대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불운한 시대의 진정한 소리광대 임방울... 평생 흰색 한복 두루마기를 즐겨 입었고, 수많은 여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소외된 민초들의 아픔을 위로해주던 아름다운 가객 임방울... 공연 때 마이크를 꺼려했고 입에 발린 공치사나 돈 받기를 외면했으며, 번 돈은 불우한 이웃에게 아낌없이 써버려 유족에게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않은 풍류남아 임방울... 조선왕조가 저물어가는 민족사의 혼란 속에서 태어나 유랑의 생애를 마친 임방울은 정녕 우리 시대의 대표적 명창이다.

 

임방울의 출생지인 광주시 광산구 송정공원에 세워진 기념비

 

   제가 어렸을 적에 동네 사람들에게서 그가 자주 회자됨을 들었으니, 국악가 중에서 본격적인 傳記가 출판됨은 그가 최초인가 합니다(천이두, 1994).

 

앞서 그가

 

앞산도 첩첩허고 뒷산도 첩첩헌디

 

라고 상여소리를 부른 이래,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상여소리에서 이 辭說(가사를 국악에서는 사설이라고 함)이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임방울의 絶唱이던 상여소리와 관련하여 제가 27년 전 1984년 8월 1일, 대구에서 발간되는 매일신문 「每日春秋」에 썼던 column 가운데 “상여소리”를 끌어왔습니다. 또 김소희(金素姬, 1917~1995)가 부른 심청가 중에서 상여소리는 오래된 turn table을 겨우 겨우 이렇게 저렇게 작동하여서 LP를 복사한 것입니다. 5분 48초 동안이니 한 번 들어보시면서 상여소리 column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김소희/심청가 중에서 상여소리 LP(서울: 성음레코드사 SEL-100 026, 1974. Side 2)

                               

                                          심청가상여소리(김소희-1.wma

 

 

                                             *[채보]  

 

 

 

 

                  

 

상여소리(1984. 8. 1)


李海植<嶺南大 국악과 교수ㆍ작곡>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저 건너 저 산봉이 북망이로구나

어허넘차 너허.

다락같은 집을 두고 인지 가면 언지나 올까

어허넘차 너허.

맹년 풀이 피면 오실라나 잘 있그라 잘 살아라

어허넘차 너허(예천)


사람의 일생에서 관혼(冠婚 ceremonies of coming age and marriage)은 살아서, 상제(喪祭 funeral and ancestral worship)는 죽어서 치르는 통과의례(通過儀禮 rite of passage)다.

상여소리는 상례 때 부르는 의식민요로서 생활구조가 많이 변천된 지금은 들어보기 어려우나 우리 조상의 생활정서와 인생철학이 새겨진 만가(輓歌 상여소리 funeral song)이다. 초상(初喪)이 생기면 온 마을에 터부(taboo 禁忌)가 발동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의 광장을 이루며 장례를 치르기 위한 협동태세에 들어간다. 이 협동의 구체적인 보기가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상두계(또는 향두契ㆍ喪布契)이며 오늘날도 미풍으로 존속되는 곳이 많다.


                                          앞산도 첩첩허고 뒷산도 첩첩헌데

                                          여보소 상두계원들 이 내 말 들어 보소


이와 같이 청승맞은 초성과 온갖 구성진 너름새로 요령을 흔들며 상여머리 움켜쥐고 소리 메기는 사람을 수번(首番)이라 부르는데 많은 문서(文書 가사)를 알고 있어서 이 마을 저 동네로 팔려 다니기도 한다..


잘도 가네 잘도 가네 우리 기운들 다 잘 맞네


이와 같이 상여소리는 상두꾼의 발맞추기와 무거움의 피로를 견디는 운반노동요의 기능도 가진다. 그런가 하면 출상 전날 밤의 행상 예행연습을 전북지방에서는 대오라기, 충청도지방에서는 장맞이, 한강 연안에서는 건걸(巾車)이라 하고, 국상(國喪)일 때는 습의(習儀)라 한다. 달밤에 언덕 넘어 들려오는 대오라기 소리는 일말의 비장미(悲壯美)를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흥겨움으로 바뀌어서 유희적인 상여놀이가 되는 수도 있다 .

가난한 행상을 육방망이라 하고 풍악 울리고 춤추며 멋거리 있게 놀면서 가는 행상을 줄무지라 한다.

우리 나라는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당을 추구하는 화장(火葬)아닌 매장(埋葬)으로써 긴 시간 먼 거리를 가야했던 장송행렬이 방방곡곡에 독특한 장송가무를 발달케 하였다. 또 상여소리는 탈춤이나 판소리에 삽입가요로써 전해 오는데 다음은 심청가에 나오는 그 일부이다.

 

 

                                    어노 어허넘차 어이가리 넘차 너와 너

                                         땡기랑 땡기랑 어허넘차 너와 너

                                         현철허신 곽씨부인 행실도 음전허고

                                         재질도 특수터니마는 어느 사이 죽었네 그려

                                         어이가리 넘차 너와 너(창/김소희)*


토속민요를 수집하면 자연히 노인들을 상대하게 되는데 상여소리를 권유할 때 가장 송구스럽다. 또 죽음의 극한성이란 선입감 때문에 누구나 다 꺼려 하지만 유불(儒佛) 도교(道敎)의 요소가 복합되고 현실과 이상이 다리 놓아진 상여소리는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 속에 흐르는 재생 추구의 꽃 세계인지도 모른다. 또 우리의 추억 속에 머무는 진실한 인생송가인 것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실라요

                                                 병풍에 그린 닭이 훼를 치면 오실라요

                                                 어이가리 넘차 너와너…

 

 

   참고로 서양음악에서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가 작곡한 「Nina의 죽엄」 악보를 올립니다. 이 악보는 비록 누렇게 변색되었지만 제가 사범하교 시절에 공부했던 소중한 자료랍니다. 그러니까 50년도 넘은 악보지요. 음원은 internet에서 유료구입했는데 전혀 연주자 정보도 없으면서 web에 올려지지 않음은 아마 저작권 관계인듯 하여 부득이 file을 첨부합니다.악보와 함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mail을 쓰다 보니 장문이 되었고 또 주말이고 월말입니다. 모든 친우들!

재밋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해식 dream-

                                                                                                      

 

 

 

 

 

 

니나_192k-1.wma 니나_192k-1.wma

 

 


 

 

추억(임방물)-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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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상여소리(김소희-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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