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과 물미역, 강원도 오두막집
배경음악은 이해식이 1994년에 작곡한 [기도]입니다.
단소/이준호, 18현금/이지영, 타악기/김현호
법정 스님과 물미역
법정 스님!
저는 해조류를 참 좋아하는데 그중에 물미역을 먹을 때마다 산중 생활에서 물미역을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재미와 맛을 얘기하신 스님이 생각납니다.
법정 스님!
저는 스님께서 쓰신 [무소유] 이후 세상에 나온 스님의 저서 중에 22권 째 읽다가 3월 10일 보도에서 서울삼성병원에 입원하심을 알았고, 12일 이른 아침 인터넷으로 스님의 부음을 들은 후에 마침 스님께서 사랑한 책들을 엮은 [내가 사랑한 책들]을 배송 받았습니다. 비록 출판사에서 엮은 책이지만 스님의 방대한 독서목록을 한 데 모은 마지막 책이 되었습니다. 절판된 다섯 권은 인근 도서관에서 빌려다 마저 읽었습니다.
저는 책을 구입한 날짜와 독파한 날짜를 적는 습관이 있는데, 스님의 [무소유]를 읽은 후에 제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주고서 2년 후 2009년 1월 19일에 다시 구입해서 1월 23일 사이에 또 읽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이 책만은 소유하고 싶다던 [무소유]….
스님의 입적이 저의 옆구리께를 허전하게 함은 스님의 저서들을 읽는 동안 제가 스님에게 많이 경도되어선가 합니다. 보도를 보니 스님의 저서는 제가 검색한 26권보다 더 많아서 이제 이들 나머지를 싸목싸목 읽어나갈 작정입니다.
스님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제가 명랑해짐은 가끔 보이는 <싸목싸목ㆍ호락질ㆍ벼늘(낟가리)ㆍ사그라짐ㆍ시들시들> 등의 전라도 농경사회의 독특한 탯말(胎生語)들이 있어서입니다. 스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옆구리께>도 전라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어휘이지요. 이들 탯말처럼 송광사 예불(禮佛)에서 남성스님들이 부르는 장엄한 범패(梵唄 불교음악)에도 전라도 토리(idiom)가 들어 있는 듯해서 저의 관심꺼리이고 연구대상입니다.
제가 송광사에서 묵던 날은 바람이 요사(寮舍)쪽으로 불어와서 밤새 가람 중앙에 있는 정랑 냄새를 맡았지만 저 Tibet 승려들의 배음(倍音 overtone) 예불처럼 송광사 새벽의 장엄한 예불은 그런 냄새 따위는 아랑곳없이 그 예불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라틴춤ㆍ피아노ㆍ국악관현악을 위한 작품을 작곡하고서, 그 제목 「춤수레」(舞輪 dancing cart)를 스님의 [화엄경]에서 얻었습니다. 이 작품의 작곡노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해식 작곡 「라틴춤, 피아노ㆍ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수레’」(舞輪 dancing cart) 2009.
나는 작곡하면서 책을 읽는 습관이 있는데 그러다가 종종 마감시간을 넘기기 일쑤이다. 이참에 읽은 책은 [화엄경](법정)이었는데, 마침 곡목 「춤수레」(舞輪 dancing cart)는 [화엄경]에서 수미산을 받치고 있는 삼륜(三輪)의 하나인 풍륜(風輪)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춤수레」는 세 개의 라틴춤(flamencoㆍchachaㆍjive)과 피아노와 국악관현악, 이렇게 셋을 함께 싣고 가는 수레라는 의미이다.
후반에서 복조(複調 polytonal)ㆍ복리듬(polyrhythm)ㆍ당김음(節分音 syncopation) 등으로 곡의 분위기가 혼돈(chaos)스러워지다가 이내 추슬러진다(이해식).
수미산을 떠받치고 있는 삼륜(三輪) 중에서 가장 아래에 풍륜(風輪)이 있고 그 위에 수륜(水輪), 또 그 위에 금륜(金輪)이라고 했지요. 저는 풍륜, 즉 바람수레(wind cart)에서 무륜(舞輪), 즉 춤수레(dancing cart)라는 작품제목을 얻었습니다. 이 삼륜 중에서 특히 바람 관련의 풍륜은 제게 많은 작품을 암시합니다. 바람은 제 작품의 저변이고 화두(話頭)여서입니다. 바람은 우주의 호흡이고 음악이라고 스님은 말씀하셨지요.
바람은 고행으로 인해 생기는 격렬한 호흡을 말한다(법정, [숫타니파타], 주 64).
스님의 저서 중엔 바람에 관한 부분이 자주 있습니다. [오두막 편지] 48쪽에서 “바람은 왜 부는가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저는 <요한복음 3장 8절>을 생각합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리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Do not be surprise because I told you. 'All of you need to be born from above.' The wind blows where it pleases and , though you hear the sound of it, you neither know whence it comes nor where it goes. It is the same with every one who is born of the Spirit.” In response).
스님은 바람과 함께 사시다 바람처럼 홀연히 가신 듯합니다. 대부분의 중생들이 잠시 머무르는 바람 사이 삶에서 시기질투하고 탐욕 집착함에 여념이 없고 저도 그렇습니다.
스님의 가르침대로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이 중요함을 스스로 일깨우고 거듭 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본래 청정함을 돌이키려고 호념(護念)합니다.
자기자신을 거듭거듭 쌓아나가려면 홀로 있는 시간이 없어서는 안 된다. 고독이 가진 진정한 뜻을 알아야 한다. 고독을 모르면 때가 묻는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말이 적어야 한다. 말이 많으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속이 비게 된다.
저는 지금 변택주, [법정 스님 숨결]을 읽고 있으려니 마치 스님의 저서들을 복습하는 느낌입니다. 또 이책에 간간으로 들어 있는 동아일보 이종승 기자의 사진이 스님의 법문들을 명징하게 합니다. 위의 인용은 이 책의 64쪽입니다. 67쪽에 스님의 어머님에 관한 “내 생명 뿌리가 꺾였구나”를 읽으면서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들으시는 음악은 제가 1994년에 작곡한 [기도]라는 작품입니다. 부디 극락으로 가심을 합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