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3월호 6~8쪽 이해식
국립극장 magazine [미르] 2014년 3월호
▼ 국립극장 magazine [미르] 2014년 3월호 6쪽
▼ 국립극장 magazine [미르] 2014년 3월호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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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극장 magazine [미르] 2014년 3월호 7쪽
▼ 국립극장 magazine [미르] 2014년 3월호 8쪽
-이해식의 음악은 놀이에서 시작된다.-
리듬, 그 안에 충만한 무한 에너지
이해식의 리듬은 역동적이다. 그것은 반복을 거부히는 리듬이다. 굿거리ㆍ자진모리ㆍ휘모리ㆍ엇모리의 리듬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약간 변주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살아 숨쉬는 그의 리듬은 늘 변화무쌍하다. 마치 럭비공처럼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리듬 같다고나 할까. 이러한 이해식의 리듬은 우리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준다.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나서 춤추게 하는 리듬이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충만한 에너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발, 거기에 역동성이 있다.
이해식의 리듬이 역동적일 수 있는 것은 젊은 시절에 ‘발’을 많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 방송국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한반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거기서 많은 사람들의 노래를 녹음했다. 그가 수집한 토속민요 자료는 그대로 방송되기도 했고 작품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토속민요를 바탕으로 진화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해식은 일반인들이 평생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신발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듣다보면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대한민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이해식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는 무엇보다 민요와 굿 등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몸, 곧 춤을 통해 직접 드러내려 했다. 이해식은 동ㆍ서양의 많은 춤을 직접 배우기도 한 작곡가다. 그가 댄스스포츠를 오랫동안 익혔고 이 분야에서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췄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방송, 삶과 예술의 중요한 영역
무대는 모든 작곡가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평가받는 장소다. 그런데 이해식에게는 ‘방송’이 삶이나 예술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영역이었다. 지금은 ‘클래식 에프엠’(classic FM)으로 통하는 KBS-제1FM이 1979년에 개통했을 당시 이해식은 KBS의 프로듀서였다. 그는 방송을 통해 한국 소리가 지닌 매력을 국내외에 알렸을 뿐만 아니라 초창기의 국악 관련 음원을 확보하고 KBS-FM의 국악 프로그램을 자료와 내용의 근본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는 그때 KBS-FM 청취자의 한 사람이었는데 여기서 「원심과 구심」(遠心球心) 같은 이해식의 작품을 들었다. 이해식의 작품이 워낙 동적이기에 때론 여타 음악에 비해 이질적이라는 느낌도 받았지만 그의 작품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고정된 음악적 사고의 틀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두레ㆍ춤ㆍ바람, 음악의 키워드
이해식 음악의 키워드는 두레ㆍ춤ㆍ바람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두레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는 우리네 삶의 ‘원형적인’ 공동체성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해식의 음악을 한자로 표현한다면 ‘무’(巫)라고도 할 수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면서, 또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면서 무한히 춤추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해식은 혹은 이해식과 같은 놀이적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친구는 누구일까? 바로 곁에서 항상 존재를 느낄 수 있는 바람이 아닐까. 한자어로는 ‘풍’(風), 철학적으로 접근하면 풍수지리(風水地理)의 그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자문화권의 ?시경?에서 만나는 풍(風)ㆍ 아(雅)ㆍ송(頌)과도 통할지 모른다.
놀이적 인간, 이해식, 그의 음악은 ‘문화 이전 문화’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학문적이거나 사회적 관습적인 시각에서 그의 음악에 접근하려 한다면 그 음악 속에 내재된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해식의 음악은 20대와 30대의 청년 이해식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음악이라는 능력 하나만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함께 느끼고 즐기려 했던 이해식표 ‘무한도전’인 셈이다.
주목! 이 프로그램
‘두레사리’ & ‘춤두레 1 번’
‘두레’는 이해식 작곡가의 작품 키워드다. 이번 공연에서 연주되는 다섯 작품 중에도 두레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곡이 두 개나 된다. 농경사회에 존재하던 공동체 조직을 뜻하는 두레에는 협동 정신이 배어있다. 이해식 작곡가는 이러한 두레정신이 음악에서의 앙상블, 호흡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두레사리’는 1980년에 초연한 작품이다. 서양합창(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과 민속합창단(고양 호미걸이소리 보존회) 등, 협연자만 60여명에 달하는 대작으로 이해식 작곡가가 이번 연주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해식 작곡가가 KBS 프로듀서로 활동할 때 경기도 고양에서 채집한 호미걸이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했다고 한다. 경기도 무형문화재인 호미걸이는 논매기를 끝낸 후 호미를 씻어 걸어두는 농사놀이를 말한다. 1951년에 단절된 호미걸이를 1971년에 복원했던 고(故) 김현규 씨가 초연 때 모갑이로 출연한 바 있다.
2000년에 초연한 ‘춤두레 1번’은 서양악기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의 협주곡이다. 이해식 작곡가는 서양의 악기가 협주하는 이러한 작품을 인류의 보편적 문화를 생각하며 쓴다고 한다. 인류는 유사이래 전 세계와 활발하게 교류하며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농사꾼들이 두레질로 관개(灌漑)작업을 했던 것어럼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이 새로운 국악이라는 예술을 만들기 위해 협주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주목! 이 협연자
‘춤두레 1번’의 피아니스트 이진상
피아니스트 이진상은 2009년 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스위스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면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했다. 뉘른베르그 심포니 오케스트라ㆍ밤베르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정상급 오케스트라에 초청되어 유럽과 미주 아시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펼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독일 쾰른 음대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쳤으며 김대진ㆍ파벨 갈릴로프ㆍ볼프강 만츠를 사사했다.
서양음악을 해왔기에 국악은 전문적으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학에 가기전, 임동창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우며 국악적 리듬을 배운 적이 있어 친근합니다. 그리고 제 안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국악의 피가 흐르고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의 협연은 처음입니다. 저는 이번 연주에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서양음악으로 저만의 색깔을 내고자 합니다. 서양음악과 국악이 함께 어떠한 화성을 이룰 수 있는지가 이번 연주의 포인트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