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 -Ⅱ- 1987년 2월호.
승 무(僧舞) -Ⅱ-
1987년 2월호.
글ㆍ사진/이해식
6. 북과 신화
북은 원시사회에서 신성물에 속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설화를 통한 <자명고(自鳴鼓)>에서 북이 지극히 신성하게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북은 궁(宮)으로써 우주의 본질과 음율을 바꿔 놓은 것이다. 따라서 북은
신기(神器)이며 제왕의 상징이 된다. 1986. 8. 23. 조선 어가(御駕) 행렬.
서울 대학로에서. Nikon FE 촬영/이해식.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episode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14, 고구려 본기 제2에 기록되어 있다. 호동(好童)은 얼굴이 너무 잘 생겨서 왕이 매우 사랑하여 붙인 이름이라 한다. 낙랑의 최리가 가지고 있던 신성한 악기는 적병이 몰려올 때 스스로 울리는 자명고와 저절로 소리나는 자취각(自吹角 피리)이었다. 호동은 낙랑공주를 시켜서 두 개의 악기를 부수게 한 것이다. .
신성한 악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2에 기록된 만파식적(萬波息笛)에서도 볼 수 있다. 간단히 소개하면
신라 신문왕이 동해 바다에 떠 있는 산 위에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는 대나무를 보고서 이상스럽게 여기매, 한 마리의 용이 아뢰기를
“두 손이 맞아야 소리가 나듯이 대나무도 합쳐져야 소리가 나는 것이오니,
왕께서는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시면 온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하므로 이윽고 왕은 대궐로
돌아와서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신적(神笛)이라 하여 월성의 천존고에
잘 간직토록 하였다.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고가 없어지며,
기후가 좋아지므로 만파식적이라 하여 국보로 삼았다.
기록대로라면 낙랑의 북과 피리(鼓角)는 적병이 몰려올 때 저절로 소리나며 신라의 피리(笛)는 비로소 사람이 불 때에 적병이 물러가도록 되어 있음이 대조적이다. 이 설화는 다 함께 국가의 안위에 관계됨이 공통이다. 이러한 음악적 치료를 M. 엘리아데는 음악주술이라 부른다. 그리고 삼국사기 권 제3의 백율사(栢栗寺) 조에 의하면 신라 월성의 천존고에는 현금(玄琴 거문고)이 신금(神琴)으로써 만파식적과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낙랑과 신라의 신기(神器)들은 각각 둘 씩으로 쌍을 이루고 있다. 북과 피리, 그리고 거문고와 피리는 각각 음(陰)과 양(陽)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거문고는 현악기이지만 술대로 줄을 치기 때문에 타악기로 분류할 수 있는 악기이다.
C. 작스에 의하면 타악기는 여성적이며 관악기는 남성적인 악기이다. 이렇게 보면 낙랑의 북과 피리, 신라의 거문고와 피리는 모두 음과 양의 기(氣)가 조화되어 악기와 얽힌 것이고 이러한 신기를 가진 사람이 궁(宮)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음이다. 즉 능력자(帝王)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궁은 곧 음율이며 적병을 막는 신비요 만물의 진실을 잴 수 있는 가늠자이며 음악의 출발점이 된다.
7. 「마적」(魔笛)
한국의 신기한 피리와 관련하여 서양에서는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오페라 「마적」(魔笛 Die Zauberflöte)을 연상할 수 있다.
「마적」은 모차르트가 죽기 몇 달 전의 마지막 작품으로써 전편에 유모어와 휴머니티가 넘쳐 흐르는 징시필(Singspiel=Sing+spiel) 오페라이다. 징시필이란 마치 우리나라의 창극처럼 민속적인 연극형태로서 노래가 풍부하게 삽입되고 희극적 내용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핀란드의 동화집에 나오는 회교도의 전설인 「마적」의 간단한 줄거리는 먼 나라의 타미노라는 왕자가 밤의 여왕의 딸 파미나를 찾아 나서는데, 밤의 여왕은 타미노에게 호신용으로 마법의 피리(魔笛 Magic flute)를 주고 그의 길동무인 파파게노에게는 은색의 종을 준다. 파파게노는 종을 울림으로써 위험을 벗어나고 그의 연인 파파게나를 만나며, 파미나를 만난 타미노는 마법의 피리를 불어서 불과 물의 시련을 무사히 빠져나와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 제1막 중에서 타미노의 피리 소리에 동물들도
기뻐한다. 1979. 9. 10. 영국 로열 오페라단 프로그램에서 전재.
세종문화회관/서울.
타미나가 받은 마법의 피리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불행한 사람에게는 기쁨을, 독신자에게는 연인을 주는 것”이라 한다. 파미나는 이 마법의 피리를 자기의 아버지가 천년 전에 뿌리 깊은 떡갈나무를 심한 폭풍이 부는 날에 찍어 만들었다고 타미나에게 들려 준다. 마법 피리의 역할은 신라의 만파식적과 비슷하며 파파게노가 울리는 종은 낙랑의 북에 대입할 수 있다. [삼국사기] 「악지」(樂誌)에서 적(笛 피리)을 척(滌)이라 하여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씻는 것이라 쓰고 있으며, 이 점은 더 거슬러 올라가 중국의 [사기](史記)의 「악서」(樂書)에 이른다.
모차르트의 「마적」은 마법 피리에 의하여 어둠이 물러가고 광명이 승리한다는 것으로써 동양적 사고로 말할 때 깨끗하게 씻어짐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악기들이 음과 양의 조화임을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마적」에서 타미노의 요술피리는 파파게노의 종과 한 쌍으로써 음과 양의 조화라고 할 수 있겠다.
종(鐘)도 역시 동양에서는 궁의 위치이다. 종(鐘)은 종(種)으로 통하며 우주의 본질을 음율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동양의 율명(律名)에는 황종(黃鐘)으로부터 협종(夾鐘)ㆍ임종(林鐘)ㆍ응종(應鐘) 등의 율명이 있고 황종의 황색은 중앙, 즉 궁을 의미한다.
북(鼓 drum)은 승무에서 커다란 궁(宮)이요 또한 음(陰)이라면 흰 장삼을 속에서 뚫고 나와 북을 두드리는 채는 양(陽)에 해당된다. 승무는 채로 두드리는 면화무쌍한 리듬을 들으며 강한 박진감(dynamic)을 느끼고 움직이는 춤사위를 봄으로서 음악과 춤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우주를 이루는 굿이 된다.
굿으로써 승무의 깊은 묘미는 다양한 솜씨로 북을 어르는 데 있다. ‘어르다’는 옛말로 ‘혼인하다’는 뜻이며 북치는 사람이 북과 혼인할 정도의 훈련과 정성이 있어야 승무의 경지에 이른다고 할 것이다.
‘어르다’는 ‘어우르다’의 준말로서 여럿이 모여서 조화를 이루거나 한 판 또는 한 덩어리가 되게 한다는 뜻도 있다.
‘어르다’는 서양음악의 협주곡(concerto)에서 독주자가 기량 껏 즉흥적으로 타는 카덴자(cadenza)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서로 독립된 성부가 진행되는 다성음악(polyphony)도 성부의 어우름이며 우리나라의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이나 시나위에서는 피리․젓대의 어우름이 흥겹고, 농악에서는 장고와 꽹과리의 어우름이 돋보인다. 재즈에서는 드럼세트(drum set)의 역동적인 어우름이 몸짓을 이끌어 낸다.
하나의 우주를 이루는 승무는 참으로 한 판의 굿이요 역설적으로는 궁의 범주(範疇 category)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인가 하면, 번뇌의 카오스(chaos)에서 오뇌의 카타르시스(catharsis)로 가속되는 빠른 맥동이다.
승무의 삼매경(三昧境)은 자기를 잊어버리는 엑스타시(ecstasy 脫自)에 있다. 싸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엑스타시를 실감되면서 실감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는데, 승무의 시간적 공간적 상황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사바(娑婆 sabba) 세계에서의 방황인 것 같기도 하고, 해탈의 무중력 상태에 빠진 것 같기도 한 승무! 그것은 또 사바와 열반의 분기점에 있는 인간의 절실한 몸짓인가?
승무는 자명고나 만파식적, 그리고 마법의 피리와 종처럼 뚜렷한 결과를 기대하지 않은 채 그 자체로서 형용하기 어려운 하나의 아름다운 상황이라 하겠다.
북은 신화와도 통한다. 싸르뜨르를 능가하는 금세기 최고의 석학이며 구조주의 인류학자인 C. 레비스트로스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을 신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며, 인간의 지식 중에서 음악을 최고의 신비라고 했다. 베토벤은 음악을 철학 이상의 계시라고 했다. 이어서 이 최고의 신비가 각종 지식을 낳게 한 것이니, 이것이 학문발전의 열쇠를 끼고 있으며, 이러한 음악은 신화와 공통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신화가 음악과 같이 인간정신을 이해함에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신화가 모순을 통합하는 창조적 능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李光奎, [레비스트로스와의 대화](서울: 大韓基督敎書會, 1983), 102~103쪽].
승무야 말로 인간의 깊은 고뇌와 삶에서 생기는 착잡한 모순을 통합하거나 허공에 날려버리는 춤의 신화인 것이다. (95.3㎒ 대구 MBC-FM fan, 1986년 12월호 14~15쪽 및 1987년 2월호 14~15쪽, 「승무」 Ⅰㆍ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