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fieldwork)

시인 정호승 님의 운주사 와불(臥佛) 얘기. 2017. 7. 27.

노고지리이해식 2017. 7. 30. 11:48

 

[정호승의 새벽편지] 내 인생의 스승 운주사 석불들

동아일보 기사입력 2011-01-27 03:00:00 기사수정 2011-01-27 03:00:00

 

시인 정호승 

 

겨울 운주사(전남 화순군)를 다녀왔다. 새해에 내 인생의 스승을 찾아뵙고 엎드려 절을 올리고 싶어서였다. 누군가에게 엎드려 절을 올린다는 것은 진정 나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므로 연초에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누구를 찾아뵙긴 어려웠다. 찾아뵙고 싶은 분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셔서 그 대신 운주사 석불들을 찾아뵙고 절을 올렸다.  골목서 마주치는 이웃같은 얼굴
그동안 몇 번 운주사를 찾아갔지만 눈 내린 겨울 운주사를 찾은 건 처음이었다. 석불들은 찬바람에 말없이 눈을 감고 고요히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어떤 석불은 눈이 채 녹지 않아 머리에 흰 고깔을 쓰고 있는 것 같았고, 칠성바위 위쪽에 계신 와불은 가슴께에 눈이 좀 남아 있어 마치 흰 누비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았다. 석불들은 내가 절을 올리자 두 팔을 벌리고 나를 꼭 껴안아주었다. 어릴 때 엄마 품에 안겼을 때처럼 아늑하고 포근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고통과 상처로 얼어붙었던 내 가슴이 이내 따스해졌다. 다시 한 해를 살아갈 힘과 용기가 솟았다.
운주사에 가면 다들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마치 부모형제를 찾아뵌 것 같다.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석벽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석불들을 보면 마치 오랫동안 집 떠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다정한 식구들 같다. “왜 이제 오느냐, 그동안 어디 아프지는 않았느냐” 하고 저마다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사가지고 간 만두나 찐빵이라도 내어놓으면 당장이라도 둘러앉아 다들 맛있게 웃으면서 먹을 듯하다.
그런데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하나같이 못생겨서 오히려 더 반가운 생각이 든다. 그들은 대부분 코가 길고 이마 쪽으로 눈이 올라붙은 비대칭 얼굴인 데다 거의 다 뭉개졌다. 오랜 세월 만신창이가 된 탓인지 이목구비를 제대로 갖춘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평소 내가 참 못생겼다고 생각되는데 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난다. 그래서 그들을 볼 때마다 부처님을 뵙는다기보다 골목에서 마주친 이웃을 만난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정이 간다. 어떤 부처님은 너무 위압적이어서 공연히 주눅들 때가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경주 석굴암 대불이 당대의 영웅이나 권력자를 위한 석불이라면 이들은 민초들을 위한 석불이다.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는 그런 영웅적 존재가 아니라 운주사 석불 같은 평범한 존재다.
그들은 항상 겸손의 자세를 가르쳐준다. 가슴께로 다소곳이 올려놓은 그들의 손은 겸손하게 기도하는 손이다. 부처는 인간으로부터 기도의 대상이 되는 존재인데 그들은 오히려 인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인간사회의 사랑과 평화를 염원하는, 이 얼마나 이타적 삶의 겸손한 자세인가.
20년 전 삶의 방향을 알려줘
운주사 석불 중에 눈을 뜨고 있는 이를 찾긴 힘들다. 다들 눈을 감고 있다. 눈을 감고 양손을 무릎 아래로 손바닥이 보이게 내려놓고 있는 자세는 무엇 하나 소유하지 않고자 하는,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자세다. 눈을 감으면 비로소 남이 보인다. 내가 보인다 하더라도 남을 위한 존재인 내가 보인다. 그동안 나는 나를 위해 항상 눈을 뜨고 다녔다.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는 다 나를 위한 존재였다. 이 얼마나 오만하고 이기적인 삶인가. 지난여름엔 매미가 너무 시끄럽게 운다고도 싫어하지 않았는가. 매미는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인데 나는 매미만큼이라도 열심히 산 적이 있었던가.
20여 년 전 운주사를 처음 찾았을 때 와불을 찾아가는 산길 처마바위 밑에 있는 한 석불을 보고 나는 그만 숨이 딱 멎는 듯했다. 마모될 대로 마모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영원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버린 듯 고요히 앉아 있는 석불의 모습에 울컥 울음이 치솟았다. 고통의 절정에서도 고요와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석불의 모습에서 아마 내가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나는 오랫동안 그 석불 앞에 울며 서 있었다. 그러자 석불이 고요하고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울지 마라, 괜찮다, 나를 봐라.”

 

▼ 운주사  입장권(2013. 3. 1)

 

운주사(雲住寺):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20

HP: www.unjusa.org

전화:  061-374-0660

운주사는 누어있는 부처 와불(臥佛)로 유명한 사찰임. 

 

이 사찰은 천 개씩의 돌부처(石佛)와 석탑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석불 100여 기와 석탑 21 기가 남아있다고 함. 

 

▲ 군포 시청 월례 인문학 강좌,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에서 운주사 와불을 얘기하는 시인 정호승 님. 2017. 7 .27.

 

 

▲ 정호승 시집

 

▲ 운주사 일주문(밖앗쪽)

▲  일주문(안쪽)

 

▲ 운주사 일주문에서 보이는 진입로 석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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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 같은 이 돌집 양쪽에 석불이 모셔져 있다. 진입로 끝에 있다.

 

▲ 운주사 진입로 오른쪽에 있는 여러 돌부처(石佛)들.

 

▲ 진입로 오른쪽 바위 위에 있는 석탑

 

   ▲ 진입로 오른쪽에 있는 석불들

 

▲ 진입로 오른쪽에 있는 석불들

 

 

▲ 3월 1일, 초봄인데도 바위 틈으로 흐르는 물이 마치 석불 모양으로 얼었다. 

 

▲ 대웅전

 

▲ 대웅전 모서리 연꽃

 

▲ 대웅전 풍경(風磬)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오는 허공을 올려다 보았더니 바람이 풍경(風磬)을 희롱하고 가는 순간이었다. 운주사 대웅전 한 곳에만 오로지 한 개의 풍경이 매달려 있었다.

풍경은 saka라고 하는 수메르(Sumer)어로 신의 정령을 의미한다. 풍경은 또 바람과 뿔이 달린 물고기(정령)라는 의미이다(박용숙, [샤먼 제국], 서울: 소동, 2012, 517쪽).   

 

 

 

▲ 산신각 

 

  ▲ 대웅전 왼쪽으로 와불 보러 가는 길에 있는 석탑을 역광으로 녹화.

 

▼ 운주사 경내에 있는 석불들은 마치 우리네의 친근한 이웃처럼 보이면서도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와불 보러 가는 길에 <석불 '바'(F)>라는 명칭이 부여된 거암(巨巖) 아래에 있는 돌부처들이다.

 

 

▲ 사찰 왼쪽으로 와불과 칠성바위를 안내하는 표지가 있다.

마침내 와불이다. 내 생각으로 누어있는 부처(臥佛)는 산 위에 있는 넓은 자연석에 불상을 새긴 게 아닌가 한다. 운주사에 온 복적은 실로 이 와불을 보기 위해서다.

 

 

▲ 와불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일곱 개의 칠성바위가 있는데,

이것은

거대한 바윗돌을 원형으로 다듬어서 북두칠성(항성)의 위치로 배치하고 역시 탑이 서 있다.

광각(廣角) 렌즈(wide-angle lens)를 가져갔더라면 넓게 배치된 북두칠성 바위(칠성바위)를 온전히 담았을 텐데......

나의 짧은 생각으로 이 칠성바위는 대웅전 서쪽에 있지만 태양을 맞이하는 위치여서

천문관측의 부도(府都)로 보이며, 탑은 솟대라고 생각한다

 

 

▲ 운주사의 탑은 원형인 게 특징인데 여러 기가 있다.

 

▲ 돌부처 앞에서 여러 어린이들이 잔돌을 쌓아올리고 있다. 이처럼 돌맹이를 쌓아올림은 곧 자비를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2017. 7. 27.

 

▲ 스님들 요사(寮舍)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와 장독대.

 

 

▲ 광주 광천시외버스터미널(U-Square) 앞에서

시내버스 같은 시외버스 318번은 운주사가는 삼거리 정류장까지 80여 분, 218번은90여 분이 걸린다.

위는 운주사 가는 삼거리 어느 정류장 업소 옆에 세워진 항아리탑이다.

여기서 운주사까지 도보로는 20~30분 거리이다.

▲ 해질 녘

나는 여기 운주사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오랜 시간 추위에 떨면서 광주행 버스를 기다리는 고생을 했는데 감기들지 않음이 참 다행이다. 여기 정류장이나 운주사 주차장은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썰렁한 벌판이었다.

운주사 주차장에는 천막 오뎅집 말고는 쉴 수 있는 업소가 전혀 없으니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성불(成佛)하시기 바랍니다.

 

                                                            2013. 3. 1.

                                                                                                          -blogger 이해식 合掌-

 

참고문헌

정찬주, "절은 절하는 곳이다," [절은 절하는 곳이다](서울: 이랑: 2011), 287쪽.

정호승의 새벽편지,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서울: 해냄, 2014, 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