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 99.1㎒ 국악방송, 이땅의 오늘음악 윤중강입니다. 2005. 7. 1.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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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FM 99.1㎒ 국악방송
이 땅의 오늘음악, 윤중강입니다.
FM 99.1㎒ 국악방송 <이땅의 오늘음악, 윤중강입니다> 서울 서초동 제1스튜디오.
윤중강 vs 이해식. Casio Digital Camera EX-Z57 녹화 및 음원제공/프로듀서 이주연.
2005. 7. 13.
이 달의 작곡가 - 이해식(7월)
이해식류 「젓대독주곡 ‘산조’」(散調 1968), 2005. 7. 1. 16:00.
이해식: 저의 「젓대독주곡 ‘산조’」(散調)는 1968년도 국립국악원 신국악작곡콩쿠르에서 입상한 작품입니다. 이 곡은 저의 작품번호 제1번입니다. 「젓대독주곡 ‘산조’」는 제가 전통적인 산조를 공부해서 썼기 때문에 제목도 「산조」라고 붙였는데, 민속악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산조가 아니고 작품 제목으로 쓰인 고유명사로써의 산조입니다. 모두 3악장인데, 연주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고, 듣기에도 부담이 없는 작품입니다. 공식적으로 저의 작품번호의 제1번이어서 저한테는 특별히 의미 있는 독주곡이라 하겠습니다.
감상: 이해식 작곡 Op. 1 「젓대독주곡 ‘산조’」. 1968. 8. 17. 국립국악원 신국악작곡콩쿠르 입상작품. 젓대/김정수(金晶洙), 장고/김정수(金正秀).
이해식 작곡 「젓대독주곡 ‘산조’」(散調). 서울大學校 音樂大學 國樂科 卒業演奏會,
젓대/金晶洙, 장고/金正秀. 가운데 악보 넘기는 사람은 김용만. 1968. 10. 30.
서울大學校 音樂大學 리사이틀 홀/서울.
「흙담」(1969), 2005. 7. 4. 16:00
이해식: 저의 12줄 가야고 독주곡 「흙담」은 1969년도 문화공보부 문예창작공모에서 국악작곡으로 당선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도 역시 「젓대 독주곡 ‘산조’」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산조에 뿌리를 내린 작품인데, 「젓대 독주곡 ‘산조’」와 가야고 독주곡 「흙담」은 단지 산조적인 정신, 또는 산조에 내포된 민속적인 정서를 나름대로 공부하고 여과해서 쓴 작품입니다. 그러나 작품 어느 곳에서도 산조가락을 변주하거나 직접 느낄 수 있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제목 「흙담」은 제가 생겨나고 자란 농가를 둘러싼 황토 흙담에서 가져왔습니다. 늦가을이면 저의 큰 형님은 볏짚으로 용마름을 마치 세공하듯 아주 촘촘하고 세밀하게 엮어서 지붕과 흙담 위에 얹었는데, 이러한 용마름의 정교한 매듭이 가야고 독주곡 「흙담」에서 음표들로 환치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흙담」의 작곡배경은 곧 제가 성장한 농경민속입니다.
감상: 이해식 작곡 가야고독주곡 「흙담」, 가야고/이지영, 장고/김선옥. 李海植 創作曲集(LP) 「바람과 여자」(서울: 서울음반 SRB-019, 1992), side B track 1~2.
이해식 작곡 기야고독주곡 「흙담」, 가야고/이지영.
KBS 국악춘추(제2회). 1990. 6. 1.
「바람의 춤」(風舞 1979), 2005. 7. 5. 16:00.
이해식: 제가 작곡한 「바람의 춤」의 다른 명칭은 「풍무」(風舞)입니다. 작품 번호 제29번인 이 작품의 소재는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리 사람들이 부르는 논메기 소리 <절로소리>와 솜 타면서 부르는 <둥당애 타령>입니다. 「바람의 춤」 후반에서 피리와 단소가 <절로소리>를 아주 애잔하고 멜랑콜릭(melancholic)하게 연주합니다.
옛날 가옥은 겨울 찬바람을 막기 위해서(防風) 문틈 사이에 문풍지를 붙였습니다. 그래도 매서운 겨울바람이 새어들어서 문풍지를 울려 소리 나게 합니다. 이러한 문풍지의 추억이 「바람의 춤」을 작곡한 단초입니다. 또 우리의 삶(人生)이 잠시 바람의 순간이라는 생각도 「바람의 춤」의 배경입니다. 이 작품의 연주에서는 김영동의 성악적인 캐릭터(vocal character)가 아주 특별합니다.
감상: 「바람의 춤」(風舞). 未來樂會4作曲發表 위촉 작품.
CD: 이해식 국악작곡집 CD [바람과 춤터](서울: 예성음향 YSCD-0083), track 8. 단소/김철호, vocal/김영동, 해금/송권준ㆍ양경숙, 피리/사재성, 타악기/백효숙ㆍ김재운, 지휘/김용만
CD 이해식 국악작곡집 [바람과 춤터]:
「기도」ㆍ「줄풀이 제1번」ㆍ「줄풀이 제2번」ㆍ「춤터」ㆍ「금파람」ㆍ
「바람의 춤」(풍무)
(CD 6-2)
「바람터」(1999), 2005. 7. 11. 16:00.
이해식: 저의 작품 중에 1999년에 발표한 「플루트와 25현금을 위한 ‘바람터’」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KBS-FM 제45회 FM국악무대 <25현 가야금 대축제> 위촉 작품입니다(1999. 6. 12. KBS홀/서울). 곡목 ‘바람터’는 플루트와 25현금의 바람이 회오리치거나 잔잔하거나 때로는 산들거리는 바람이 일어나는(flutter) 터전이요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신운리(新雲里)입니다. 신운리는 새로운 구름 동네라는 뜻이어서 마을 이름이 ‘구름터’입니다. 구름터는 바람과 관련하여 구름이 일어나는 근원이라 할 수 있고, 제가 태어난 신운리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구름터’와 ‘바람터’는 동일한 장소입니다.
지금 소개하는 「바람터」(1999)를 비롯하여 바람 관련의 제 작품으로 「바람의 춤」(1979)ㆍ「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1990)ㆍ「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제2번’」(1990)ㆍ「국악관현악을 위한 ‘부새바람’」(1991)ㆍ「바람의 여자」(風女 1992) 등이 있고, ‘굿’이 들어있는 제목, ‘춤’이 들어있는 제목들이 각각 여럿인데, 제가 바람에 관심을 두는 까닭은 이 세상에서 바람처럼 위력이 크고 가늠할 수 없다싶은 외경(畏敬)에서이고, 바람 앞에서는 아래 인용문처럼 누구나 겸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The wind blows where it wishes, and you hear the sound of it, but cannot tell where it comes from and where it goes. So is everyone who is born of the Spirit(성경/요한복음 3장 8절).
바람을 다르게 말하면 ‘기’(氣)의 움직임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또 작품을 쓰기 위해서 바람과 함께 물의 ‘기’에도 관심을 두었는데 이게 곧 ‘풍수’(風水)입니다. 풍수라 함은 사람이 천성적(天性的)으로 타고나는 지역ㆍ지리, 또는 물이 있는 곳, 땅이 있는 곳의 총체적인 에토스(ethos)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배경으로 하여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을 작곡했고 여기에서 또 「바람터」라는 곡목을 이끌어냈습니다(spin out).「바람터」는 처음에 E 프리지아 선법(Phrygian mode)으로 아주 현란하게, 특히 25현금의 운지(運指 fingering)는 대단히 기교적입니다. 이 작품은 제가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썼는데, 청취자 여러분들의 느낌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감상: 「바람터」, 2003 신악회 정기연주회, flute/김희숙, 25현금/송정민. 2003. 11. 5. 문화일보홀/서울.
이해식 작곡 「플루트와 25현금을 위한 ‘바람터’」, 2003' 신악회 정기연주회,
flute/김희숙, 25현금/송정민. 2003. 11. 5. 문화일보홀/서울. Sony DSC-P7, 녹화/이솔슬.
「금파람」(琴風 1994), 2005. 7. 12. 16:00.
이해식: 제 작품 중에 「금파람」은 18현금 독주곡이지만 25현금으로 타길 권합니다. 제목 「금파람」은 <가야금+바람>인데, 금(琴)은 가야금을 뜻하고, 제가 자란 고향에서는 ‘바람’을 ‘파람’으로 세게 발음합니다. 예를 들면 동풍(東風)인 ‘맞바람’을 ‘맞파람’으로 발음합니다. 마찬가지로 가야금 바람, 즉 ‘금바람’을 「금파람」이라 한 것입니다.
위촉자인 이지영 교수가 「금파람」을 초연했을 때에 여러 사람들이 “이 곡은 초연이자 마지막 연주이겠다”고 말할 만큼 그 연주 기량(技倆 technique)이 대단히 어려워서 연습에 많은 공력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가운데 애잔한 멜로디가 흐르는 작품입니다
윤중강: 「금파람」, 이지영의 18현금독주와 원일 씨의 장고입니다.
감상: 이해식 작곡 「금파람」, CD: 이해식 국악작곡집 [바람과 춤터], track 7.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두레’」(2000), 2005. 7. 13. 16:00.
이해식: 제 작품 중에 서양악기와 국악기 합주(ensemble), 또는 협주(concert)하는 작품으로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두레’」가 있습니다.
가장 서양적인 악기 피아노와 우리 국악기가 서로 협주함은 얼핏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저는 이런 작품을 <인류>(人類)라는 보편적 문화로 생각하면서 씁니다. 인류는 유사 이래 세상 여러 곳으로 아주 빈번하게 교류하고, 그래서 새로운 문화와 예술이 형성되고, 역사란 이런 교류의 기록이라 하겠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의 전통 국악기들도 거의 외래의 길을 타고 들어왔는데 설명하자면 길어지니까, 제 작품만 얘기 하겠습니다.
‘두레’는 농사를 짓는 공동체적인 합심으로 논에 물을 넣는 관개(灌漑) 작업입니다. 그러니까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두레’」는 서양의 피아노와 우리의 전통적인 국악관현악이 새로운 국악이라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 두레질로 물을 대는 관개 작업이라고 하겠습니다(나는 이 땅에서 생기는 새로운 국악을 신향악(新鄕樂)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어떤 형태의 작업인가? 춤추면서 하는 작업입니다. 즉 「춤두레」는 창작된 ‘농사놀이’입니다.
창작된 농사놀이 「춤두레」는 우리의 풍물인 사물(四物: 꽹과리ㆍ장고ㆍ북ㆍ징)과 피아노와의 콘첼토 그롯소(concerto grosso), 말하자면 한국 스타일의 합주협주곡입니다. 춤추는 사물이 각각 피아노와 앙상블을 벌입니다. 이 작품을 연주하려면 사물연주자가 선반 춤을 잘 출 수 있도록 전문적인 안무를 권합니다.
감상: KBS국악관현악단 제121회 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piano/서재희, 지휘/임평용. 2000. 9. 21. KBS홀l/서울.
이해식 작곡 dancing piano concerto grosso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두레」 리허설. KBS국악관현악단 제129회 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piano/서재희, 지휘/임평용. 2001. 12. 13. KBS홀/서울. Nikon F3, 촬영/이해식.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춤두레’」(2000), 2005. 7. 14. 16:00.
이해식: 제가 재즈 피아노처럼 ‘국악 피아노’…, 이런 생각을 실천한 작품 중에 협주곡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두레’」가 있습니다. 이 「춤두레」 협주곡에서 타악기와 피아노만 따로 편성한 작품이 실내악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춤두레’」입니다. 곡목이 비슷하게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이고 「피아노와 타악기」여서 조금 혼동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춤두레’」는 동서(東西)의 타악기와 국악 피아노의 합주(ensemble)입니다.
감상: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춤두레’」, 미래악회 제25회 정기발표회. piano/서재희, bongoㆍwoodblock/박보형, 꽹과리/이승훤, 장고/이수정, 춤북/김문섭, 징/박은혜. 2000. 10. 27. 연강홀/서울.
(CD6-3)
「플루트와 18현금을 위한 ‘춤터’」(1994), 2005. 7. 15. 16:00.
이해식: 저의 중주곡으로 「플루트와 18현금을 위한 ‘춤터’」(1994)와 「플루트와 25현금을 위한 ‘바람터’」(1999)가 있습니다. 제목이 비슷한 「춤터」와 「바람터」는 다 같이 플루트와의 중주곡입니다. 「춤터」ㆍ「바람터」에서 ‘터’는 보통 ‘터줏대감’이라 할 때의 ‘터’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싸이트(site), 포털 싸이트(portal site)와 같은 ‘터’의 의미도 있습니다. 또 근원으로써 <장소ㆍ공간> 등의 다의적(多義的)인 제목입니다. 「춤터」는 애초에 그리스 고전 연극의 춤추는 장소(orchestra)에서 가져온 제목입니다. 그러니까 「춤터」는 춤을 추는 터요 장소입니다. 바람이 일어나는 근원이라는 「바람터」는 앞 시간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그럼 「플루트와 18현금을 위한 ‘춤터’」를 한번 기대해 보세요.
감상: 이해식 작곡 「플루트와 18현금을 위한 ‘춤터’」, CD: 이해식 국악작곡집 [바람과 춤터], track 6. flute/김희숙, 18현금/이지영.
이해식 작곡 「플루트와 25현금을 위한 ‘춤터’」를 포함,
플루트와 가야금 위한 ‘춤’ 연주회를 마련한 김희숙 이지영.
1997. 10. 7.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춤 불러내기」(2000), 2005. 7. 18. 16:00.
이해식: 제가 2000년에 작곡한 「춤 불러내기」는 원영실ㆍ최희연의 <異人> 음악회 위촉 작품인데, 21현금ㆍ해금ㆍ봉고 편성입니다. 이 작품의 초연이 제 마음에 든 까닭은 연주자들이 작품의 의미를 잘 파악하여 열성과 역동으로, 특히 라틴음악적인 제2악장을 잘 살려서 그야말로 춤을 불러내는(dance call) 연주였습니다. 특히 지난(至難)하고 야성적인 첫 부분의 가야금 연주 스타일이 저의 성격에 맞아서, 여러분에게 「춤 불러내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CD 원영실ㆍ최희연의 <異人>, 서울: 신나라뮤직, 2001.
감상: 「춤 불러내기」, CD 원영실ㆍ최희연의 <異人>(서울: 신나라뮤직, 2001), track 5.
「국악원 삼바 -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2003), 2005. 7. 19. 16:00.
이해식: 국립국악원 제57회 창작음악발표회 <새가락 삼일야>(2003년)의 실내악 위촉 조건은 “제의식(祭儀式)에 바탕을 둔 전통과 미래를 아우르는 작품”입니다. 나는 이 ‘제의식’을 축제로 파악하여 「국악원 삼바 -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를 작곡했는데 이 작품의 학문적 근거는 아래 인용문과 같이 J. 호이징하의 ?호모루덴스?(인간의 놀이)입니다.
‘음악적인’ 모든 것은 제의적인 것, 제의적인 기능을 가진 축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순수한 제사란 모두가 노래하고 춤추고 놀이하는 것이다. 훗날 문명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옛날 고대인이 느꼈던 신성한 놀이라는 감정으로 흘러 들어오게 하는 것은 음악 밖에 다른 것은 없다(Johan Huizinga(權寧彬 譯), “예술의 여러 가지 놀이 형식,” []호모루덴스?(서울: 弘盛社, 1981), 209~210쪽).
「국악원 삼바 -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 중반에서 소프라노 <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그리움으로부르는 노래 1ㆍ2ㆍ3,” [朴金奎 時調全集](익산: 원광대학교 출판국, 1999), 131~134쪽)는 익산 원광대학교 박금규 교수의 시조시입니다. 이 노래는 플라톤의 말대로 신들이 슬프게 태어난 인간에 대한 동정 때문에, 인간의 고난에 대한 인식의 시간으로써 제사를 지내게 한 데 대한 보답으로 부르는 사랑의 노래입니다(Johan Huizinga(權寧彬 譯), “예술의 여러 가지 놀이 형식,” [호모루덴스], 210쪽 참조).
이해식 작곡 「국악원 삼바 ―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
국립국악원 제57회 창작음악발표회 -새가락 삼일야- 위촉 작품, 지휘/원영석,
samba/김대동ㆍ한현정, 송승연ㆍ유재임(KP dance school ).
2003. 11. 13.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Sony P7 녹화/이해식.
남아메리카에서 거대한 면적을 차지하는 브라질은 축구 강국이면서 삼바의 강국이기도 합니다. 브라질에서 삼바는 국민의 춤, 국무(國舞)이며, 삼바를 가르치는 학교가 300개가 넘습니다.
삼바의 기원은 아프리카이며, 저의 「국악원 삼바 -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에서는 유럽 스타일(continental style)로 세련된 인터내셔날 삼바(international samba)를 춥니다. 제목이 「국악원 삼바」임은 우리 나라의 유구한 전통음악의 맥을 잇는 국립국악원에서 저 멀리 브라질의 삼바춤을 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의 탈춤과 같이 재주를 피우고 거기에 맞추는 음악을 기악(伎樂)이라고 하는데, 현대 젊은이들이 추는 테크노댄스도 일종의 기악입니다. 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춤이 이미 고대 신라시대에 들어와서 최치원의 [향악잡영](鄕樂雜詠)에 5수[五首: 금환(金丸)ㆍ월전(月顚)ㆍ대면(大面)ㆍ속독(束毒)ㆍ산예(狻猊)]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함께 조선조의 당악정재ㆍ향악정재 등이 대륙을 통해서 들어온 기악(伎樂)이라면 현대의 룸바(rumba)나 삼바(samba)와 같은 Latin American Dance는 해양으로 들어온 음악이요 춤입니다. 이러한 삼바를 국립국악원의 창작 작업을 통하여 춤춤은, 세계의 문화와 호흡을 함께하는, 즉 아프리카 또는 브라질의 기악(伎樂)을 한국화(Koreanized)하여 우리의 문화층을 한 층 살찌게 하는 일입니다. 「국악원 삼바 -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는 꼭 삼바가 아닌 다른 춤으로도 얼마든지 안무할 수 있습니다.
감상: 이해식 작곡 「국악원 삼바 ―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 국립국악원 제57회 창작음악발표회 -새가락 삼일야- CD, track 3.
이해식 작곡 「국악원 삼바」에서 「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를
열창하는 soprano 이정희.
2003. 11. 13.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Sony P7 녹화/이해식.
「향발굿」(1985), 2005. 7. 20. 16:00.
향발굿 사진 바람의 말에서 향발 사진
이해식: 제 작품에 ‘굿’이 들어있는 제목이 여럿인데, 굿은 제사(祭祀)ㆍ제의(祭儀), 또는 예배(禮拜)의 한국적 표현이면서, 제사ㆍ제의ㆍ예배와 다른 점은 꼭 뒤풀이로써 ‘굿놀이’가 따름입니다. 굿놀이의 중심은 곧 춤이지요. 이러한 작품으로 저의 「향발굿」(響鈸祭)이 있는데, 향발은 궁중정재 향발무를 출 때, 무용수(舞工 dancer)들이 손가락에 끼고 치는 작은 징입니다. 이렇게 춤출 때 손가락에 끼는 악기는 세계적으로 퍼져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스페인 플라멩고(flamenco)에서 케스타네츠(castanets)라든지, 아랍 여자들이 밸리댄스(belly dance)를 출 때 손가락에 끼는 악기도 우리의 향발과 비슷합니다.
저의 「향발굿」 스코어는 앞굿ㆍ향발굿ㆍ덜구굿의 세 악장인데 향발은 2악장 향발굿에서 연주자들이 아주 리드미컬하게, 역동적으로, 이색적(異色的)으로 치게 되어 있습니다. 「향발굿」 악보는 李海植, 국악관현악곡집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서울: 圖書出版 수문당, 1990), 첫 쪽에 자세한 설명과 함께 들어 있습니다.
감상: 이해식 작곡 Op.46. 국악관현악과 합창 「향발굿」(響鈸祭, 1985),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제27회 국악정기연주회 위촉작품. 지휘/이성천, 1985. 9. 27. 서울대학교 문화관 대극장/서울.
「이씨네 변주곡」(1990), 2005. 7. 21. 16:00.
이해식: 저의 국악 관현악 작품 중에 「이씨네 변주곡」은 저 혼자의 작품이 아니고, 이강덕(1928~2007)ㆍ이성천(1936~2003)ㆍ이상규ㆍ이해식, 이렇게 네 이씨 작곡가가 역시 이씨 임금 세종 시대에 작곡된 <여민락>을 주제로 해서 변주한 작품입니다. 이 곡은 작곡가 이성천 교수가 주도하여서 네 사람이 메들리(medley 接續曲) 스타일로 변주곡을 쓰고, KBS국악관현악단 제38회 정기연주회(지휘/이상규, 1990. 11. 3.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서울)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중에서 제가 변주한 부분만 따로 떼어서 제가 작곡한 관현악 「길춤」(1992) 제2악장으로 넣었습니다. 그럼 「이씨네 변주곡」 중에서 제가 변주한 부분만 여러분께 들려드리겠는데, 연주시간은 한 5분30초 정도입니다.
감상: 이해식 작곡 「이씨네 변주곡」, KBS국악관현악단 제38회 정기연주회, 지휘/이상규, 1990. 11. 3.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서울.
(CD 6-4) 「기도」(祈禱 1999), 2005. 7. 22. 16:00.
이해식: 가스펠 가수(gospel singer) 홍순관 씨가 제게 위촉한 국악가요 가운데에 김관식 시 <해 넘어 가기 전의 기도>가 있습니다. 이 가요의 기악 부분인 단소와 18현금만 따로 떼어서 「기도」라는 제목을 붙인 곡이 단소와 18현금을 위한 「기도」입니다. 말하자면 성악에서 기악을 분리한 작품입니다.
감상: 이해식 작곡 「기도」, CD: 이해식 국악작곡집 [바람과 춤터], track 1.
협주곡 「Piano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질내기’」(2004),
2005. 7. 25. 16:00.
사진
이해식: 저의 작품 중에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두레’」가 있고, 이와 비슷한 제목으로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질내기’」가 있습니다.
제가 살았던 고향에서는 우리가 다니는 길을 ‘질’이라고 합니다. “질이 났어!” 하면 서로 왕래하는 “길이 났어!” 라는 뜻이고, 또는 마루바닥을 닦아서 반질반질 빛이 나게 하는 일도 ‘질내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서양의 대표적인 피아노와 우리의 국악관현악이 춤추면서 서로 통하는 ‘질’(길)을 낸다든가 또는 서로 반질반질하게 합주를 한다는 의미의 제목이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질내기」입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서양악기를 자기들의 악기로 ‘질’ 내었습니다. 이것이 재즈 음악인데 재즈 발레ㆍ재즈 피아노ㆍ재즈 콘서트처럼 모든 연주와 공연 형태에 재즈라는 접두어를 붙입니다. 우리나라의 거리에도 재즈를 붙인 상호(商號)가 종종 눈에 띕니다. 인도 사람들도 서양 악기를 자기네들의 악기로 ‘질’내었는데 저도 그러한 작업의 하나로 피아노를 우리의 국악기로 토착화(질내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재즈 피아노처럼 국악피아노! 이러한 것도 상정해 볼 수도 있어서, 전혀 불가능 하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시도로 쓴 작품이 저의 두 번째 협주곡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질내기’」입니다. 「춤질내기」는 빠른 템포로 춤을 추는 다이나믹하고 유쾌한 곡입니다.
감상: 이해식 작곡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질내기’」, KBS국악관현악단 제143회 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piano/이영이, 지휘/임평용. 2004. 4. 14.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관현악 「춤을 위한 ‘지(支)와 간(干)’」(1988), 2005. 7. 26. 16:00.
이해식: 동양학에서는 간지(干支)ㆍ주역(周易) 등의 낱말을 자주 씁니다. 간지는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를 줄인 말입니다. 저의 작품에 「춤을 위한 ‘지와 간’」은 ‘간지’를 거꾸로 붙인 제목입니다.
제 작품의 제목에는 거의 ‘굿’과 ‘춤’이 들어 있습니다. 굿을 한 다음, 즉 한국민속적인 예배를 본 다음에는 ‘굿놀이’가 따릅니다. 굿놀이의 중심은 놀이이고 그 놀이의 중심에 춤이 있습니다. 「춤을 위한 ‘지와 간’」도 이런 맥락에서 작곡하고 붙인 제목입니다. 이 작품에서 간지ㆍ십간ㆍ십이지 등은 단지 작품의 구상소이고 상징성이지 직접적으로 표상되는 건 아닙니다. 의미를 찾자면, ‘간지’ 또는 ‘지간’을 헤아리듯이 타악기를 수학적으로 배치하고 섹션(section)을 교차한 것입니다.
감상: 이해식 작곡 「춤을 위한 ‘지와 간’」, 국립청소년국악관현악단 제5회 정기연주회,지휘/원일. 2005. 6. 21.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이해식 작곡 「춤을 위한 ‘지와 간’」, 국립청소년국악관현악단 제5회 정기연주회 리허설.
지휘/원일, 2005. 6. 21.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Sony DSC-V1 녹화/이해식.
CD 6-(5)
대담(1) 국악방송 <이 땅의 오늘 음악, 윤중강입니다>
2005. 7. 27. 16:00.
윤중강: 이 땅의 오늘을 말하는 윤중강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런 사계절 가운데서 가장 열기와 열정이 넘치는 계절이라면 역시 여름일 겁니다. 저는 이해식 선생님의 작품에서 여름의 활기와 활력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2005년 7월 한 달 동안 저희들에게 좋은 작품, 날마다 소개해주실 영남대학교 이해식 선생님,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해식: 네. 윤중강씨도 안녕하시죠?
윤중강: 네.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선생님 방학이니까 좀 한가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이해식: 네. 저희처럼 학교에 있으면 방학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휴가도 가고 한가하게 보여서 부러움을 사지만, 사실 가르치는 사람들은 방학이 재충전의 기간이어서 저 같은 경우에는 작품도 써야 되고, 답사도 해야 되고, 그래서 쉬는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윤중강: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서 이해식 선생님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어볼까 합니다. 선생님은 몇 년 생이시고 또 어디서 태어나셨어요?
이해식: 저처럼 나이가 든 사람은 대개 두 가지 나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나이, 또 하나는 호적 나이. 저의 한국 나이는 1942년생입니다. 또 생일이 섣달이어서 한 살이 헛나이인데다, 출생신고까지 1년 늦어서 1943년생이예요.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신운리입니다. 부안군이라 하면 핵폐기장 설치문제로 한참 시끄러웠던 위도라는 섬이 포함된 행정구역이고 또 관광지로 유명한 변산(邊山)반도가 있는 곳인데 변산반도나 위도는 제가 생겨난 곳과는 거리가 멀고, 저는 김제평야와 맞닿아 있는 신운리, <구름터>라는 농촌에 생겨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고등학교는 전주로 유학 했었습니다.
윤중강: 실제 태어나신 때가 1942년 12월 전라북도 부안에서…,
이해식: 초등하교 첫 취학이 대개 일곱 살이지만 저는 실제 나이로는 아홉 살에 취학했고, 거기다 또 대학은 3년 늦게 진학했습니다.
윤중강: 어린 시절에 부안 김제 평야 근처라고 하셨는데, 어땠어요? 어린 시절의 기억들 좀 말씀해주세요.
이해식: 제가 자란 곳이 농경사회여서, 농사지을 때는 일꾼들의 막걸리(술) 심부름, 봉초(封草) 심부름을 했어요. 봉초는 말아진 담배(卷煙)가 아니고 큰 봉투에 들어있는 막담배입니다. 품앗이 오라는 심부름도 하고, 밤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정에 모여서 육자배기도 부르고, 판소리도 부르고, 그때는 쑥대머리나 육자배기 가락이 국악이라는 걸 모르고, 국악의 참다움을 전혀 모를 때지만 기억은 있습니다.
윤중강: 그때 들었던 육자배기나 판소리는 전문가가 부르는 게 아니었죠?
이해식: 동네 농부들이 부르던 거죠.
윤중강: 그 시절만 해도 농부들이, 전라북도 부안에 살고 계시던 분들은 육자배기는 다 뽑을 줄 알고, 판소리 한 대목도 얼추 하시고…,
이해식: 그리고 장고 장단은 저의 어머니도 치시는 걸 봤고, 판소리 하면서 북치는 것은 자주 봤습니다. 이처럼 제가 자란 농촌은 훗날 농경민속으로써 제 작곡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윤중강: 선생님은 가족이 어떠세요?
이해식: 제가 태어나서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형님 두 분, 큰형님이 6.25 나던 해에 결혼했고...
윤중강: 큰 형님이 나이 차이가 좀 있으셨나 봐요?
이해식: 제 위로 셋이었는데, 하나가 유아사망이어서 둘째 형님과도 나이 차이가 있습니다.
윤중강: 그러면 홀어머니가 세 아들을 키우셨네요. 선생님은 막내시고…,
이해식: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 있고….
윤중강: 아들 중에는 그래도 막내여서 사랑을 많이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해식: 그렇게들 이야기하지만 대가족일 때는 다 어울려서 살지요.
윤중강: 아주 어렸을 때, 기억나시는 게, 부안에서 처음 기억이라고 할까요?
이해식: 아주 어렸을 때는 아니지만은 고향에서 상부(상여) 나가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상여 위에 선소리꾼이 땡그랑 땡그랑 요령을 치면서, 구슬프게 메기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습니다. 상여가 나가면 그것도 굿이었으니까(상여굿)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구경하고, 저는 그때 노트를 들고 나가서, 되든 안 되든 상여소리를 음표로 옮겨본 기억이 있는데, 그 때 상여소리의 기억은 훗날 제 작품과 방송활동과, 논문의 주요 소재가 되었습니다. 상여소리와 관련하여 두 가지 국제상을 받았는데, 하나는 국제작곡상으로 제5회 아시아음악제전에서(Baghdad/Iraq, 1979. 12. 9) 전통음악에 의한 작품으로 특별상을 받은 「국악관현악과 합창 ‘밧삭’」이고, 또 하나는 국제방송콩쿠르인데 제13차 아시아방송연맹(ABU) 총회 방송콩쿠르에서(Kuala lumpur/Malaysia, 1976. 12. 3) 최우수상을 받은 「저승으로 가는 노래-향두가」입니다. 논문으로는 [낭만음악] 통권66호(서울: 낭만음악사, 2005 봄호), 55~102쪽에 게재한 “한국의 상여소리 연구”입니다. 조금 더 커서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채보를 독학했어요.
윤중강: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 부안에서 나오셨는데,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도 음악하고 관계가 있으셨나요?
이해식: 학예회 연극에서는 고등학교 때까지 빠진 적이 없어요. 그런데 노래하는 것은 별로 꼽히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전주사범학교 다닐 때 합창부 오디션에서는 엑스트라(extra) 여서, 노래를 썩 잘 부른다거나 목청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윤중강: 서양 음악이든 국악이든 상관없이 선생님께서 어린 시절에 음악은 이런 거구나, 이래서 좋구나, 이럴 때 음악이 필요하구나 하는 경험, 음악이라는 존재를 처음 의미 있게 느꼈을 때가 언제 일까요?
이해식: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노래 부르기>을 의식했고, 6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이 과외수업에서 “음악은 니가 가르쳐라” 할 정도로 이론공부를 했고, 중학교 때도 그랬었고, 고등학교 때도 “음악이론은 니가 가르쳐 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했었습니다.
윤중강: 음악이론을 초등학교 때부터 튼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잘 받아들였다는 얘깁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교육을 받으셨나요?
아주 오래되어 빛바랜 1957,8년 쯤 내 중학교 시절의 사진.
나는 당시의 중고등 음악교과서를 한데 모아서 공부했다.
내 여동생이 그 음악책을 들고 있고, 이해식은 오른쪽에서 두 번째.
윤중강: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특별하게 음악을 따로 배운 것도 아니고, 시골에서는 음악적인 환경이 더 열악했을 텐데, 그럼에도 선생님은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을 철저하게 공부 하셨네요. 피아노 건반, 풍금이든지, 처음 눌러 본 것이 언제였어요?
이해식: 풍금은 역시 초등학교 때였고, 저는 풍금을 치기 위해서 교회에 다녔지만 막상 만져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단 한번이라도 건반을 눌러보고 싶어서 교회라면 아주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이런 건반 악기 교육은 풍금이 필수인 사범학교에 가서야 정규적으로 받았는데, 열심히 연습하는 제가 음악선생님의 눈에 띄어서 바흐의 짧은 푸게타(fugetta)를 배우고(lesson),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독주를 했는데, 그때 어느 선배가 “너 그렇게 풍금을 잘 칠 것 같으면 풍금보다 피아노를 배우라”고 해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피아노는 너무 늦었으니까 피아노와 함께 작곡공부를 해라.” 그래서 고 2 때(1960)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와 함께 화성학을 아주 열심히…, 고교 때의 인생은 작곡 공부와 피아노에 다 바쳤다고 하겠습니다.
푸게타 악보 Gottes Sohn ist Kommen. 이 악보는 고교 때 오진동(吳鎭東 1927~1997)
은사님이 내어주신 동경판 악보를 베낀(筆寫) 첫 부분이다(1960).
윤중강: 고등학교 2학년 전까지는 풍금만 접했지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하시지는 않으셨네요.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이해식 선생님의 세대에 같이 대학을 다니신 선배나 후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악과에서 가장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이해식, 이런 이야기를 지금도 하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피아노를 접하신 줄 알았어요.
이해식: 그건 과찬의 말씀이고, 잘 친다기보다 노력이었습니다.
윤중강: 음악을 하겠다는 결심은 언제 하셨어요?
이해식: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는 그저 좋아서 한 거고, 고등학교 때 음악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윤중강: 부안초등학교와 부안중학교에서 전주 사범학교를 가셨는데, 그게 고등학교 과정인가요?
이해식: 당시 사범학교는 고등학교 과정이었는데, 제가 졸업하는 해에 교육대학이 되었습니다. 저의 형님은 저를 졸업 후에 취업이 잘되는 사범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범학교에 가서 맨 날 음악 공부만 했기 때문에 졸업성적은 최하위여서, 초등학교 교사 발령도 한 일 년 반 후에 받았어요.
윤중강: 옛날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호남권에서는 전주 사범학교가 굉장히 좋은 학교라고 들었어요.
이해식: 전주사범학교도 그랬지만 그 시대에 광주ㆍ공주ㆍ서울ㆍ대구ㆍ부산사범학교 등은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명문이었습니다.
이해식: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 사범학교는 바로 들어가셨나요? 전주사범학교는 몇 년 과정이예요?
이해식: 바로 들어간 사범학교는 고등학교니까 3년 과정이었죠.
윤중강: 그럼 전주 사범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선생님이 될 수 있었던 겁니까?
이해식: 그렇죠. 초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으니까요.
윤중강: 앞에서도 말씀해주셨지만, 저희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데, 사범학교 교육은 어떤데, 그 중에서 음악의 비중은 어떻고, 선생님은 어떤 것에 치중해서 그 시절을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이해식: 사범학교는 장차에 초등학교 정교사 자격증을 받기 위한 고등학교 교과과정으로써 미술 음악 체육 등의 예체능 과정이 좋아서 그 시대 사범학교 출신의 예술가가 더러 있었습니다. 저는 물론 피아노와 작곡에만 치중했었습니다.
윤중강: 전주사범학교를 다니면서 피아노와 작곡에 전념하셨다고 하셨는데, 피아노는 어떤 식으로 공부하셨어요?
이해식: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풍금을 열심히 공부한 게 음악선생님의 눈에 띄어서 일반 학과를 제쳐두고 피아노와 작곡에만 몰두했습니다. 3학년 때는 신흥대학교, 지금의 경희대학교 전국고등학생 음악콩쿠르에 나가서 작곡부문에 입상했습니다.
윤중강: 국악과에 입학 하신 게 1965년이시라구요. 그 이전으로 조금 더 돌아가 볼께요. 선생님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데요. 전주 사범학교 시절에 피아노와 작곡공부를 하셨다고했는데, 작곡공부를 하시면서 화성법ㆍ대위법을 다 배우셨겠죠?
이해식: 고 2학년부터 시작한 피아노는 고 3이 되었을 때는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랐고, 화성법은 공부했지만 대위법은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강염(李康濂)ㆍ이성삼(李成三) 등의 서양음악사를 자습한 게 대학에서 큰 도움이 되었어요(李康濂, [世界音樂史](서울: 國民音樂硏究會, 1959)와, 李成三, [世界音樂史](서울: 正音社, 1959)이다. 내가 이 책들을 구입한 때는 전자는 1960년 9월 20일(고2)이고, 후자는 1961년 3월 11일(고3)이다).
윤중강: 작곡을 공부하셨으니까 아무래도 습작이라고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많은 작품을 쓰셨을 텐데 어떤 작품을 주로 쓰셨습니까?
이해식: 사범학교여서 그런 발표할 기회가 많았는데, 주로 가곡을 썼지요.
윤중강: 고등학교 시절에는 가곡을 주로 쓰셨네요. 기억해보면 주로 어떤 작품을 쓰셨는지?.
오래된 가곡: 김소월 시, 이해식 작곡 「진달래꽃」의 첫 부분.
1969년 1월 600㎑ KBS-제2라디오 <청소년 음악회>를 녹음하면서 임시표를 많이 붙였다(1965).
이후로 「진달래꽃」은 재발표하지 않았다.
이해식: 대개 사춘기 때여서 그랬겠지만 김소월 시에 심취해서 「진달래꽃」을 작곡했는데, 졸업 후에 전주교육대학 교수였던 성악가 천길량 선생님으로부터 “그 반주 참 멋있다. 마치 실연한 사람이 꽃을 밟고 걸어가는 거 같다. 진달래꽃의 내용을 잘 나타냈다”는 칭찬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 작품을 대학교 졸업 직전에 정리하여, 남산 KBS로 권오성 선배를 찾아가서 녹음하여 KBS-제2라디오 프로그램 <청소년 음악회>에서 방송 한 적이 있습니다.
윤중강: 「진달래꽃」! 피아노 반주가 진달래꽃을 즈려밟고 가는 느낌을 표현하신 거군요. 녹음도 했다고 하셨는데 그때 악보를 다 가지고 계신가요?
이해식: 예. 악보와 음원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윤중강: 많은 작품 쓰셨을 텐데 보통 데뷔작이라고 할 까요? 어떤 작품을 나의 첫 작품이라고 말씀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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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곡: 박목월 시, 이해식 작곡 「나그네」의 첫 부분(1961). 「나그네」는 짧은 시여서
KBS-FM 신작 가곡의 향연에서는 동일한 시를 두 가지 version으로 작곡했다
(1992. 11. 20. 8:00. ㏘. KBS 홀/서울). 김소월의 「맘켱기는 날」ㆍ「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해식: 박목월의 「나그네」, “구름에 달 가듯이” 부르는 멜로디를 고등학교 친구들이 지금도 기억해요. 대학교 4학년 때 국립국악원 신국악작곡콩쿠르에서 입상한 「젓대독주곡 ‘산조’」는 저의 작품번호 1번이고, 그리고는 군 복무 중에 작곡한 「당산」이 국악합주곡으로는 첫 작품이고 작품번호는 12번입니다.
윤중강: 박목월의 「나그네」를 고등학교 때 쓰셨고, 그것이 가곡으로는 공식적인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데뷔를 신국악작곡콩쿠르를 통해서 「젓대독주곡 ‘산조’」로 하셨고, 합주곡 오케스트라라고 볼 수 있겠죠? 서양음악과 비교한다면…, 그런 작품은 「당산」이 되겠네요. 전주사범시절에 공부 하시고, 초등학교 선생님 생활을 하신 거죠? 그때 기억나는 이야기들이 있나요?
이해식: 첫 부임지가 고창초등학교였는데, 거기 강당에 친구들을 불러서 음악회를 연 적이 있고, 겨울밤에 제 교실에 난로를 피우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LP 감상회를 열었는데, 그때 마침 눈 내린 운동장에 남긴 감상회 사람들의 발자국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별로 좋지도 않은 LP와 오디오 시스템으로 감상하면서 차를 마셨던 기억을 지금 돌이켜보니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1991년 7월 30일 KBS-FM(93.1㎒) 특집 <창작가곡의 향연>에서 발표한 김소월의 「맘 켱기는 날」은 바로 1964년 3월 20일에 고창초등학교에서 쓴 작품입니다.
1964. 3. 20. 고창초등학교에서 작곡한
김소월 시 이해식 작곡 「맘 켱기는 날」의 일부.
윤중강: 초등학교 학생들이 아닌 그 지역에 있는 성인들을 선생님의 교실로 초청하여 음악을 감상하면서 음악적인 교류를 하셨네요. 아무래도 고창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이해식 선생님을 만났음이 음악적으로는 행운이었을 것 같아요. 전라북도 고창이라면 국악과 연관된 지역이지만, 선생님이 관심을 둔 것은 정작 서양음악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이해식: 제가 본격적으로 국악을 시작하는 대학입학 전까지는 다 서양 음악이었죠.
윤중강: 그 시절에는 판소리라든가, 고창은 동리 신재효(桐里 申在孝 1812~1884) 선생의 고향이기도 해서 판소리와 아주 관계가 깊은 고장이잖아요. 판소리 명창도 많이 나왔는데…, 판소리라는 음악에 대해서는 국악하기 전에는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이해식: 그때는 별로 생각한 적이 없었고, 제가 고창에서 1년 4개월쯤 근무하는 동안에 동리 신재효의 출생지임은 알고 있었지만은 지금처럼 기념관이라든가, 그런 건 없었습니다.
윤중강: 서양음악을 공부하시다가 서울대 국악과를 입학하시면서 국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셨네요. 오늘은 부안에서 태어 나셔서 부안초등학교 부안중학교를 거쳐서 전주사범학교를 다니고, 고창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셨던 이야기까지 알아봤습니다. 이렇게 쭉 정리하면서 오랜만에 기억을 반추하시는 거잖아요. 혹시 저희들에게 더 해 주실 말씀 있습니까?
이해식: 친구든, 뭐든, 처음 보다는 두고 볼수록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고, 미인도 첫눈보다 두고 볼수록 미인인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을 제가 살던 시골에서는 “귄(貴)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와 같이 작품도 처음 들을 때만 좋은 작품이 있고, 처음보다는 들을수록 친근감이 가는 작품이 있습니다. 국악으로 보면 정악이 그러하고 고전음악일수록 그러함은 격조(格調 classic)가 있음에서이고, 현대의 우리 음악일수록 듣기 좋은 것은 빨리 싫증이 난다는 것, 작품은 작가의 정체성이 있음이니까 좋은 작품을 이해함은 그런 정체성을 구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윤중강: 오늘 이해식 선생님과 함께한 첫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선생님께서 1965년에 서울대학교 국악과에 입학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어떻게 국악을 공부하시고 어떤 작품을 썼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끝자리에서 선생님의 작품으로 「바람의 춤」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는데, 어떤 작품이예요?
이해식: 윤중강 선생이 처음에 여름을 말했는데, 「바람의 춤」 풍무(風舞)는 전라남도 해남군 우수영리 사람들이 여름에 논매면서 부르는 <절로소리>와, 부녀자들이 솜 타면서 부르는 <둥당애타령>을 원형(archy type)을 살리면서 변주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구조는 <첫거리>(prologue), 트레몰로 시작하는 <징굿>, 민요를 성악적인 캐릭터로 부르는 <둥당애타령>, 파리와 단소 가락이 애잔한 <뒷거리>, 무속적 분위기로 끝나는 <막장>(epilogue), 이렇게 다섯 부문(section)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악보는 저의 관현악곡집 ?海東新曲?(慶山: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3), 230쪽, CD는 저의 국악작곡집 CD ?바람과 춤터?(서울: 예성음향 YSCD-0083, 1999), track 8입니다. 제가 이 곡을 추천하는 까닭은 제 자신이 좋아함에도 저의 다른 작품처럼 청취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입니다.
윤중강: 연주자를 보니까 김용만(1947~2003) 선생님께서 지휘를 맡으셨네요.
이해식: 예. 재작년(2003)에 세상을 떠난 김용만 씨가 열성적으로 지휘한 작품입니다.
윤중강: 목소리는 작곡가이기도한 김영동씨가 해 주셨네요.
이해식: 이 작품의 무게라고 할까 깊이를 김영동 씨가 제대로 이해하고, 성악적인 캐릭터(character)를 탁월하게 표현했습니다.
윤중강: 단소는 현재 국립국악원원장인 김철호 선생님이시고, 피리/사재성, 해금/송권준ㆍ양경숙, 타악기/김재운ㆍ백효숙 선생님, 이런 분들이 연주하시네요.
이해식: 여기 「바람의 춤」에서 남국(南國/해남)의 농사민요를 변주하는 단소와 피리의 정취가 아주 애절한데, 청취자 여러분들의 느낌은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윤중강: 오래전부터 국악을 접하셨던 분들은 연주자들의 이름도 귀에 익숙하실 텐데요. 오래된 광(庫房)같은 데서 귀한 보물을 꺼내는 느낌이네요. 그러면 이해식 선생님의 작품 「바람의 춤」, 함께 하기로 하겠구요. 연주 시간은 약12분 정도고. 이해식 선생님과 함께한 첫 번째 시간은 여기서 여며야겠네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music up: 「바람의 춤」
CD6-(6)
대담(2) 국악방송 <이 땅의 오늘 음악, 윤중강입니다>
2005. 7. 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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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이땅의 오늘 음악 윤중강입니다. 어제 많은 분들이 이해식 선생님의 여러 가지 음악적 경험들을 구수한 이야기로 들으셨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선생님 스츄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이해식: 오늘 두 번째 만나니깐 더 반갑습니다.
윤중강: 자! 어제는 이 선생님이 부안에서 태어나셔서 어린 시절을 보냈구요, 전주 사범학교를 거쳐서 고창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을 했던 이야기까지 해주셨어요. 오늘은 서울대학교 국악과에 입학했던 1965년부터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될 텐데, 어떠셨어요? 국악과 처음 입학했을 때요?
이해식: 그때 제 전공은 <국악이론>이었는데, 국악이론은 국악과 교수에게, 작곡은 서양음악 작곡과 교수에게 배우는 복수 전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일한 등록금으로 곱절의 공부를 해야 한 거지요. 대학 1학년 때는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만큼 국악이론을 아주 열심히 했는데 2학년 때부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윤중강: 이론은 어느 선생님에게 배웠습니까?
이해식: 국악이론은 장사훈 선생님이셨고, 서양음악작곡은 정회갑 선생님이셨습니다
윤중강: 정회갑 선생님은 서양음악작곡이셨는데, 다른 국악작곡하시는 이성천 선생님, 이런 분들이 다 정회갑 선생님의 제자였어요?
이해식: 김용진ㆍ백대웅 교수라던지, 다 정회갑 선생님의 문하인데, 정회갑 선생님께서는 서양음악뿐만 아니라 국악을 작곡하는 제자도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나의 대학생활은 거의 피아노 공부였으며,
피아노 공부는 내 작곡의 튼튼한 기초가 되었다.
서울 을지로 6가 서울대 음대 교정에서 피아노책을 들고서.
1968. 3. 11.
윤중강: 정회갑 선생님도 제가 기억하기로는 전라북도분이시고, 혹시 사범은 아니신가요?
이해식: 정회갑 선생님이야 말로 전주사범학교 제2회 졸업생이십니다.
윤중강: 스승이면서 선배님이시군요. 그분도 오랜 시절에 들었던 농악이라든가 그런 경험과 서양음악이 합쳐져서 자신의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하셨는데, 이해식 선생님 경우도 그렇겠죠?
이해식: 저도 농경사회에서 자란 사람이어서 농촌의 정서가 몸에 배어있고, 제 작품에 저의 성장배경인 농경민속을 의식하지는 않지만 혹시 제 작품을 들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길 하던가요?
이해식: 바쁨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 그때는 누구나 다 그랬겠지만 어떻게 등록금을 마련해서 학교를 다녀야할까? 이런 고심(苦心) 속에서도 줄곧 피아노에 매달렸습니다.
윤중강: 확인된 이야긴 줄은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이 대학시절에 드뷔시(Claude Dubessy (1862~1918)를 공부했고, 또 드뷔시라고 적혀있는 악보집을 들고 자랑스럽게 버스를 타고 다니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해식: -아마 드뷔시의 판화(版畵 Estampes) 중에서 <비 내리는 정원 Jardins sous la pluie>을 공부하던 때인 듯하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대학 다닐 때 드뷔시는 물론이고, 바르토크(Bela Bartok 1881~1945)도 잘은 못했지만 작곡을 하기 위해서, 작곡의 반절 정도는 피아노로 공부하거나 설명하는 게 가능하니까요.
윤중강: 피아노 작품 속에 선율ㆍ화성ㆍ리듬이라든가 음악의 구조가 다 있으니까 그렇게 피아노를 열심히 치셨군요. 특별히 피아노 스승이 있으셨나요?
이해식: 고등학교 때는 오진동(吳鎭東 1927~1997) 선생님이셨고, 대학시절에는 피아노가 부전공이어서 김하경 선생님에게 배웠습니다.
윤중강: 그때나 이제나 대학에서 작곡전공 하시는 분들은 작곡콩쿠르를 준비하잖아요. 선생님도 그러셨겠죠?
이해식: 예, 저도 4학년 때(1968) 국립국악원 신국악 작곡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또 동아콩쿠르에 국악작곡이 신설되어서 동아음악콩쿠르 최초로 서양음악작곡은 1등이 없는 2등으로, 국악작곡은 1등으로 동시 당선된 기록을 남겼습니다.
동아음악콩쿠르 최초로 서양음악작곡ㆍ국악작곡 동시당선 시상.
1968. 11. 5. 동아일보사/서울.
윤중강: 그 이야기가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드라구요.
이해식: 그런가요.
윤중강: 국악작곡이랑 서양음악 작곡을 동시에, 그렇게 최고에 이르게 된 경우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고 그것을 자기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애 썼음을, 상을 탔음을 저희가 알게 됩니다. 그 시절에 작품 경향이라고 할까요? 저희가 이해식! 그러면 연상되는 몇 가지 그림 같은 게 있는데, 그 당시에도 선생님의 개인적인 스타일이 확립되었던가요?
이해식: 제 스타일을 세워 보려고 줄기차게 모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동아콩쿠르 서양음악작곡 예선에서는 노천명 시인의 ‘님 오신던 날’을 조금 현대적 색채의 가곡으로, 직접 현장에서 썼습니다. 본선은 피아노 트리오를 제출했는데 특히 3악장에서 농촌 분위기로 제 스타일의 ‘농무’(農舞)를 생각했어요.
윤중강: 농무요?
이해식: 예, 농부의 춤, 한국적인 정서를…, 대단히 민속적인 3악장은, 아마 그때까지 제가 인식한 국악이 저의 작곡 스타일로 바꿔지는 기회였던 거 같아요.
윤중강: 네 대학시절에 동아콩쿠르에서 국악작곡 서양음악작곡 동시에 입상하셨구요, 언뜻 말씀 해주신 것 같은데 신국악 작곡콩쿠르에서도 입상하셨다구요?
이해식: 네, 국립국악원 신국악 작곡콩쿠르였는데(1968. 8. 17), 「젓대 독주곡 ‘산조’」였습니다. 산조는 일반적인 명칭이지만 저는 이것을 제 작품의 고유명사로 썼습니다.
국립국악원 신국악작곡콩쿠르 입상기념.
968. 8. 17. 장충동 국립국악원/서울. 이해식은 맨 오른쪽.
윤중강: 음악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일반적으로 ‘가야금ㆍ대금’이라고 부르는 악기 명칭을 선생님께서는 ‘가야고ㆍ저대’로, 순수한 우리말이 되는 샘이죠?
이해식: 조선시대 사람들의 옛시조에서 가야금을 ‘가얏고’라 불렀고, 또 ‘거문금’이 아니고 ‘거문고’죠. 젓대는 ‘笛’이 <뎍→적→저>로 전화(轉化)되었는데, 악기가 대나무라는 데서 <저대>이고 이것을 세게 발음하여 <젓대>가 되었습니다(崔昌烈, [우리말 語源硏究](서울: 一志社, 1986), 271쪽 참고). 장구도 거슬러 올라가면 <장고>입니다.
윤중강: 네 그렇군요 젓대와 같은 경우는 북한에서 그렇게 사용하잖아요.
이해식: 아! 그렇습니까?
윤중강: 저대라고 쓰고 젓대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도 선생님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하나의 좋은 단서가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해식: 근데 그런 것은 민속적인 의미입니다. 민속이란 항상 살아서 움직이는 잔존(殘存) 문화니깐,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데는 고정된 곳이 없어요. 그래서 장구니, 장고니, 중머리니, 중모리니, 이러한 용어들이 통일이 되지 않아서 국악하는 사람들이 가르치는 데 혼동이 생긴다고 하는데, 가르칠 때 변별력을 가르치는 것도 일종의 교육이고 그때 민속적인 의미를 얘기해야지 학생들이 변별하기 어렵다고 해서 통일하면 민속적인 의미를 죽이는 것이나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얏고ㆍ젓대ㆍ장고라고 씁니다.
윤중강: 네 1965년에 대학입학 하셨어요. 1960년대 쓰셨던 작품들, 대학시절 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쓰셨던 작품 중에서 기억나는 작품을 말씀해 주세요.
이해식: 대학시절에는 아까 「젓대독주곡 ‘산조’」가 있고, 군대에 가서 관현악 작품「당산」을 썼고, 제가 제 작품 제목도 수효도 잘 모르고 그러네요.
윤중강: 그러면 제가 말씀 드릴까요? 「흙담」이라는 가야금 작품이 있죠?
이해식: 아! 네네네…, 「흙담」은 졸업을 앞둔 1969년 2월에 썼는데 제목보다 작품을 먼저 썼습니다. 그때 문화공보부에서 문예창작 공모를 할 때 제목으로 언뜻 생각한 게 「흙담」이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시골집은 황토 흙담을 둘렀는데, 실제로 저의 형님하고 저하고 흙담을 쌓았어요. 양쪽에 말뚝을 박아놓고 널빤지로 가로 막은 사이에 황토와 작두로 잘게 썬 지푸라기를 섞어 넣고 차곡차곡 다지면 흙담이 됩니다. 그러고서 비가 새지 않도록 흙담 위에 볏짚으로 엮은 용마름 이엉을 얹습니다. 저의 형님은 늦가을이면 볏짚으로 마치 세공하듯 아주 촘촘하고 튼튼하게 용마름을 엮어서 지붕과 흙담에 얹었습니다. 이 용마름의 정교한 매듭이 저의 가야고 독주곡 「흙담」에서 음표로 바뀐 것입니다.
윤중강: 네 196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 가운데서 지금 연주되는 작품이 그리 많지 않거든요? 「흙담」과 같은 경우는 1969년에 작곡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도 굉장히 어려운 작품으로 알려져 왔던 거 같아요.
이해식: 네- 제 작품이라면 「흙담」 뿐만 아니라 다 어렵다고 소문났는데 어려워서 좋은 건 아니지만, 그런 「흙담」도 이제는 고전이 되었고, 제가 알기로는 어느 대학에서는 시험곡이 되고, 또 지난 4월 14일에는 <장지현 독주회>에서 연주되었는데, 이 곡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보다는 많이 알려진 것 같아요.
윤중강: 지금 국악계에서 예전의 창작곡을 돌아다 볼 때, 황병기의 「숲」ㆍ이성천의 「놀이터」ㆍ이해식의 「흙담」, 이 세 곡을 1960년대 대표곡으로 뽑고 있고 살아있는 작품으로 계속 연주되는 거... 「놀이터」같은 경우는 예전에 연주하셨던 분들에게는 제가 죄스러운 이야기인줄 모르지만은 표현을 대충 했던... 그런 게 자료를 들으면 많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연주가들이 「흙담」을 제대로, 작곡가의 의도대로 연주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해식: 예 지금 윤중강 선생 얘기에 저도 동감인데, 왜냐면 옛날에 연주했던 녹음하고 최근 연주를 들어보면 우선 정확한 음정에서 차이가 나고, 요즘 연주자들은 그러한 경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윤중강: 네~ 「해동신곡」이라는 작품도 있죠?
이해식: 네~ 「해동신곡」은 1979년 국립국악원 창작음악발표회 위촉 작품이고 제3회 대한민국작곡상 수상작품입니다(1979. 12. 20). 「해동신곡」은 작품의 배경, 대규모의 춤, 악기편성, 연주시간 등으로 보아서 대곡입니다. 태동(太動 formation)ㆍ예약(禮樂 civility and music)ㆍ전개(展開 development), 이렇게 세 가지 아이템(item)으로 구상했습니다. 태동은 잉태한다는 태(胎)가 아니고 클 태(太)자여서 큰 움직임, 그러니까 고대에 우리 민족이 해동(海東)으로 크게 이동하는 모습을 상상한 거고, 이렇게 이동하고 정착해서 하나의 민족이랄까, 국가랄까, 이런 테두리를 지어가는 움직임을 상상한 게 예악이고, 예악을 숭상하는 우리 민족의 발전적인 밝은 미래를 상상한 게 전개입니다. 이러한 섹션(section)들은 작품에 직접 표상되기 보다는 상징성을 띕니다. 「해동신곡」은 춤을 생각하면서 쓴, 인상에 남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윤중강: 지금 「흙담」과 「해동신곡」 말씀해 주셨는데요? 선생님의 악보집 제목이기도 하죠?
이해식: 예. 「흙담」과 「해동신곡」을 동명(同名)의 작품집으로 삼아서 李海植流 國樂器 獨奏를 위한 創作曲集 [흙담](慶山: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이 있고, 국악관현악곡집 [海東新曲](慶山: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3)이 있습니다. 또 국악관현악곡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도 동명의 서명으로 썼습니다(서울: 圖書出版 수문당, 1990).
윤중강: 그와 같이 곡목을 작품집의 서명(書名)으로 뽑은 것은 아무래도 그 작품이 가장 많이 알려졌고 좀 더 비중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이해식: 그렇습니다. 규모면에서 대편성이다, 대곡이다, 하는 의미로 선택한 서명입니다.
윤중강: 네, 선생님의 작품과 작품집 이야기 들었구요, 다시 돌아가서 연대기적(年代記的)으로 정리해 볼까 하는데, 1965년에 서울대학교 국악과에 입학하셔서 1969년 2월 26일에 졸업하셨겠죠? 그리고나서는 어떻게 하셨어요? 군대 가셨어요? 선생님!
이해식: 예~ 어제도 얘기했지만, 졸업 직전에 KBS 라디오로 권오성 선배를 찾아가서 인턴(intern)으로 발탁 되었어요. 그러면서 그해 5월에 특별채용 시험을 치러서 문화공보부 중앙방송국(KBS) 라디오 편성국 제작부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KBS 라디오 국악프로듀서로 1981년 대학으로 갈 때까지(移職) 줄곧 10년간을 재직하면서 그 사이에 군대에 같다왔죠.
윤중강: 군대생활은 어디서 하셨어요?
이해식: 예~ 군대생활은 양평에서 하다가 서울에 있는 육군본부군악대에 차출되어서 군생활의 후반을 보냈습니다.
윤중강: 다양한 경험을 하셨네요. 군대생활을 하시면서도 작품을 아주 열심히 쓰셨죠? 그 기간 동안에도 발표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해식: 이등병시절에 저의 첫 관현악 작품 「당산」을 쓰고 발표했음은 첫째 서울대학교 국악과 정기연주회를 지휘를 하신 한만영(1935~2007) 선생님의 배려(patron)가 있어서고, 전우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주어서였는데, 그러한 일들이 모두 저를 사랑함이어서 가능했다고 봅니다.
윤중강: 지금 한만영 선생님을 말씀해 주셨는데 요즘 젊은 국악하시는 분들은 한만영 선생님을 거의 모르더라구요.
이해식: 예, 한만영 선생님은 요즘 젊은이들이야 그렇겠지만 우리 국악사에서 국악학과 관현악 지휘라든지, 전통음악 편곡이라든지, 이러한 측면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시고 특히 저의 개인 작품사(作品史)에서는 그 첫째가 한만영 선생님이십니다. 그다음 돌아가신 이성천 선생님. 그리고 이상규ㆍ임평용 교수…, 이런 분들은 저의 관현악 작품 지휘에서 아주 중요한 분들입니다.
한만영 선생님이 적극 관여한 서울 신촌 봉원사 영산재에서 점심공양.
왼쪽 한만영 선생님, 가운데 이해식(1968)
윤중강: 한만영ㆍ이성천ㆍ이상규ㆍ임평용…, 이 네 선생님들이 선생님의 작품 지휘로 빛을 내주신 분들이군요. 한만영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교수로 지내셨고 국립국악원 원장을 하셨는데 80년대 중반이신가요? 그때 국악계를 그만두시고 목회를 하고 계셨죠? 우리 국악계에 큰 역할을 하셨고, 또 선생님의 작품하고도 밀접한 관계가 있네요. 자! 이해식 선생님과 함께 1970년대 80년대의 작품을 알아보고 있는데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겠어요. 방송국 시절에 선생님이 작품도 많이 썼지만 방송작품을 만들어서 그게 국내에서 반응이 컸고 해외에서도 입상했어요.
이해식: 예, 제가 국악의 현장에서 공부한 건 KBS 라디오에서 국악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국악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연주를 보는 것 자체가 배움이었습니다. 또 지방 출장으로 토속민요를 채록하여 제작 방송한 후의 자료들은 모두 제 작품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토속민요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 또는 작곡하여
대한민국 방송상 음악상(1974. 10. 30),
대한민국 작곡상(문화공보부 장관상, 1979. 12. 20)
을 받았고, 또 국제 방송상으로는
ABU(Asian Broadcasting Union 아시아방송연맹)-일본방송문화재단상 장려상1975. 6. 1),
제13차 ABU 총회 방송콩쿠르 최우수상(Kuala Lumpur 1976. 12. 3),
제5회 아세아음악제전, 최우수상(시나위합주) 및 전통음악에 의한 작곡 특별상(밧삭, Baghdad, 1979. 12, 9. 한국대표/권오성)
을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다른 여러 상을 받으니 제 와이프가 저를 “상 받는 선수”라고 불렀는데, 단지 어디서나 열심히 노력했을 따름입니다.
KBS 사내(社內) 우수 프로그램 시상식에서 상받는 선수 이해식.
1974년 KBS-TV 영화부 제공.
윤중강: 그렇군요 자~ 이왕 내친김에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이해식: 결혼은 1972년이었습니다.
윤중강: 두 분이 춤도 배우고, 늘 신혼처럼 산다고 들었습니다.
이해식: 예, 신혼처럼 산다 함은 제가 일상의 운동으로 춤을 추니까, 부부가 춤추는 게 가장 원활해서, 남이 보기에 그렇게 보이겠지만 사실은 partnership에서 갈등의 순간도 종종 있답니다.
윤중강: 하하하, 그러시군요. 동ㆍ서양의 민속춤을 두루 배우셨다고 알고 있습니다.?댄스스포츠’(dance sports)라고 하나요?
이해식: 예, 저는 춤을 감각보다는 노력으로 추는 거고, 지금은 나이가 들었으니까 생존수단으로써 필수적인 운동이 되었는데, 그렇게 열심히 십년을 넘기다 보니까 춤의 길(舞道)이라고 할까? 춤이 운동으로써도 중요하지만 춤의 정신(舞蹈精神)이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이러한 점을 학문적으로 알게 된 게 보람입니다. 그래서 쓴 논문 “외래의 춤음악과 한국음악의 접근론"이 [韓國音樂硏究] 第34輯(서울: 韓國國樂學會, 2003)과, 이해식 논문집 [산조의 미학적 구조론](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윤중강: 그렇군요. 「두레사리」라는 작품을 언급해 주셨어요. 「두레사리」…
이해식: 「두레사리」는 ‘두레’부터 설명을 드려야겠는데, 우리는 농경국가니까 농사지을 때 물이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지금은 관개(灌漑) 시설이 잘 되어서 비가 안 오고 가물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비가 내리지 않고 가물면 농사짓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희 시골말로 ‘물자세’(무자위)라고 부르는 물레방아와 같은 수차(水車) 위에 올라가서 발로 밞아 돌려서 아래의 물을 위로 퍼 올립니다. 이런 물자세를 염전에 가면 지금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 다음에 ‘두레’는 각추형으로 된 함지박 같은 거예요. 거기 네 귀에 줄을 달아서 양쪽에서 두 줄씩 잡은 맞두레질(a water scoop of lift together)로 아래 물을 위로 퍼 올리는데, 깊은 우물물을 퍼 올리는 두레+박=두레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두레가 좀 크면 네 사람이 두레질을 하는데, 이때 동작을 일치하고 서로 줄을 당기는 힘이 균형을 이루어야 두레 속의 물이 출렁거려서 엎질러지지 않고 일의 능률이 오릅니다. 그래서 두레질은 마음을 합치고 동작을 일치시켜야 하는데 이런 ‘두레정신’이 농경사회의 공동체인 ‘두레’로 결사(結社)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두레질 할 때의 굿이나 소리가 ‘두레굿’ 또는 ‘두레소리’입니다.
‘두레’는 네 귀에 줄을 달아서 양쪽에서 두 줄씩 잡고 아래 물을 위로 퍼 올리는 각추형의 함지박이다. ‘두레정신’은 두레질 할 때 마음과 동작을 일치시키는 중용(中庸)이다. [水利民俗圖錄], 金提: 東津農地改良組合, 1984.
마침 조금 전에 윤 선생이 ‘댄스스포츠’를 말했는데, 마음을 합치고 동작을 일치시켜야 하는 두레정신과 댄스스포츠가 공통점이 있습니다. 댄스스포츠는 두 사람이 추는 커플댄스(couple dance)니까, 두레질처럼 힘이 이동하는 춤사위가 일치해야 하고 마음을 합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댄스와 합쳐진 스포츠 컨셉입니다(댄스+스포츠). 이러한 댄스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together’의 의미를 가진 에치켓(etiquette), 즉 예절(禮節)입니다. 예절은 동양음악과 춤에서 말하는 예악(禮樂)의 ‘예’(禮)와 같습니다. ‘예’는 질서이고 ‘악’(樂)은 중용(中庸)의 중심이 되는 ‘화’(和)이죠. ‘화’(和)의 본래의 뜻은 곡식(禾)을 함께(together) 먹는다는(口) 뜻이고 보면(和=禾+口), 동서양이 춤을 통해서 ‘예’와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는 건 공통이라고 하겠습니다.
이해식 작곡 「합창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두레사리’」.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창단 40주년 기념
제272회 정기연주회 -樂經不惑- 지휘/김성진. 2005. 4. 1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서울.
Sony DSC-V1 녹화/이해식.
윤중강: 선생님의 「두레사리」는 향토민요(토속민요)를 부르는 집단과, 서양음악 혼성합창단과 국악관현악이 어우러지는, 사실 요즘도 큰 편성의 작품이 없는데 이게 1980년에 초연 되었죠? KBS 공사창립 7주년 기념으로…,
이해식: 그렇습니다. 서울시립국악단이 방송으로 초연한(지휘/김용진, 1980. 3. 3. 9:00. ㏂. 711㎑ KBS-Radio 제1방송) 이래, 서울대학교 국악과 제40회 정기연주회(지휘/오용록. 1998. 11. 3.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KBS 국악관현악단 제118회 정기연주회(지휘/임평용, 2000. 2. 24. KBS 홀/서울), 그리고 또 다시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창단 40주년 기념 제272회 정기연주회 -樂經不惑-에서 연주되었습니다(지휘/김성진. 2005. 4. 1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서울).
윤중강: 당시로서는 굉장이 큰 편성이고, 이질적으로 보였던 향토민요 발성과 서양 혼성합창 발성, 그리고 국악관현악이 어우러져서 좋은 하모니를 이루는 작품인데, 사실 많은 분들이 선생님의 「두레사리」를 통해서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대화리 사람들이 부르는 <호미걸이소리>(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2호)를 듣고, “아! 이런 노래가 있었구나” 그렇게 알았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해식: 저의 「두레사리」는 처음 서주(序奏 introduction)를 전라남도 나주…, 지금 금성시죠? <나주 들노래>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에 들어있는데, <나주 들노래> 중에서 논 맬 때 부르는 <절로소리>를 서양의 혼성합창으로 부르고 이어서 본격적으로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대화리 사람들이 직접 <호미걸이소리>를 부르는데 초연 때의 모가비(母甲 leader. 민요에서는 소리를 메기는 사람)는 김현규(1942~2004) 씨였습니다. 「두레사리」는 토속적인 <호미걸이소리>와 서양의 혼성합창을 융합한 작품입니다. 융합의 방법은 대화리 사람들이 직접 원형(arch type)대로 부르는 <호미거리소리>에, 혼성합창이 리듬에 기본을 둔…, 억양을 강조하는 라임(rhyme)으로, 두 음악 사이의 이질감을 융화합니다.
경기도 고양군 <호미걸이소리>에서 Ribbon dance. ’85 전국대동놀이.
1985. 10. 26. 중앙국립극장 놀이마당/서울, Nikon FE 촬영/이해식.
이해식: 피아노라면 서양음악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악기인데 그것을 국악기하고 합주를 하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거 이전에 이미 우리 국악은 서양 재즈와의 퓨전(fusion)이라든지 접목이라든지, 이러한 시도들이 많고 실제로 거기서 우수한 연주들을 저도, 여러분도 접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한 것의 일환으로 피아노를 택해서 국악관현악과 퓨전, 또는 동ㆍ서의 융합교류, 이런 측면에서 쓴 작품이니까, 제가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들어보시고 여러분이 느낌을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윤중강: 네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질내기」, 함께 하면서 이해식 선생님과는 여기서 인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KBS 국악관현악단 제143회 정기연주회, piano/이영이, 지휘/임평용. 2004. 4. 14.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이해식: 대단히 감사합니다.
music up: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질내기」
이해식 작곡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질내기’」 리허설,
KBS 국악관현악단 제143회 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piano/이영이, 지휘/임평용.
2004. 4. 14.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Sony DSC-V1 녹화/이해식.
대담(3) 국악방송 <이 땅의 오늘 음악, 윤중강입니다>
2005. 7. 29. 16:00.
윤중강: <이 땅의 오늘 음악 윤중강입니다> 함께하고 계십니다. 이틀간에 걸쳐서 작곡가 이해식 선생님의 좋은 말씀 들었구요, 오늘이 그 끝 시간이 됩니다. 선생님, 오늘 이렇게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해식: 네. 또 만나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윤중강: 네. 오늘은 선생님의 작품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들어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하게 되는데요. 먼저 1980년대 선생님의 작품을 쭉 보니까 ‘굿’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작품이 꽤 많더라구요.
이해식: 아, 그런가요. 「들굿」(野祭)은 1983년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관현악을 지휘하시던 이성천 선생님이 저한테 위촉한 작품입니다. 이것은 농부들이 들에서 추수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농사와 관련된 민속을 생각한 작품인데, ‘들(野)에서 하는 굿’, 또는 ‘굿을 들어서(擧) 신께 올린다’ 이런 의미의 제목인데, 제 작품에 「들굿」을 발단으로 해서 산의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산굿」(山祭), 여러 가지 종을 모아놓은 「종굿」(鐘祭), 그 다음엔 부산 수영사람들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일과 관련된 「어방굿」(漁防祭), 우리 나라 궁중 정재에 향발무가 있는데, 향발은 춤추는 무용수(舞工 dancer)들이 손가락에 끼고 치는 작은 징이거든요. 이 향발로 장단을 맞추는 「향발굿」(響鈸祭), 그 다음에 대나무 토막으로 장단을 치는 「대굿」(竹祭), 이렇게 꼽아보니까 여섯 곡이 되네요.
윤중강: 「들굿」ㆍ「산굿」ㆍ「어방굿」ㆍ「종굿」ㆍ「대굿」ㆍ「향발굿」, 이런 작품들이 있네요. 저도 이런 작품을 다 지켜봤습니다만, 보통 국악관현악단의 무대가 정적이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있는데, 1980년대 젊은 대학생들의 정기연주회에서 이런 작품을 연주하면서 학생들도 아주 활기가 있었고, 뭔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향발굿」을 보면 저 소리가 어디서 나나 그랬는데, 가야금연주자들이 향발을 끼고 리듬을 맞춰서 연주하잖아요? 관객들도 좋아했던 그런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해식: 그와 비슷한 성격의 작품이 「대굿」, 그리고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굿연습」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윤중강: 「굿연습」?
이해식: 네. 국악고등학교 목멱예술제에서 초연하고 이화여자대학교 국악과에서 재연했는데, 이 곡은 굿을 연습하는 작품이니까 꼭 향발로 지정된 건 아니고, 꽹과리 하나로 마치 꽹과리 협주곡처럼 연주하거나 다른 타악기를 선택해도 됩니다.
이해식 작곡 「국악관현악을 위한 굿연습」. 1989. 9. 29.
이화여자대학교 제17회 국악연주회, 지휘/홍종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관 김영의홀/서울.
윤중강: 이처럼 작품의 제목에 ‘굿’이 들어간 작품도 많지만 또 선생님의 작품 가운데에서는 ‘춤’이 제목으로 들어가는 작품도 많은데요. 「디스코」라는 제목의 곡도 있었지요?
이해식: 네. 춤은 굿의 연장(延長)이라 할 수 있는데, 저는 굿을 서양적인 개념의 예배와는 다른 ‘한국민속적 예배’로 봅니다. 왜냐하면 ‘굿’ 다음에는 ‘굿놀이’라는 과장(科場)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그 굿놀이의 중심에 춤이 있습니다. 그래서 「춤터」ㆍ「춤을 위한 ‘지와 간’」ㆍ「춤을 위한 ‘국악연습’」ㆍ「바람의 춤」ㆍ「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ㆍ「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제2번’」ㆍ「젊은이를 위한 춤의 말」, 이처럼 춤이 굿보다 더 많은 제목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디스코」는 두 곡이 있습니다. 하나는 1987년 영남대학교 개교 40주년기념작이고, 또 하나는 1999년 KBS국악관현악단 제114회 정기연주회 초연작품입니다.
동양의 계산기 주판으로 국악관현악 「디스코」를 연주하는 영남대학교 개교 40주년
기념 연주회. 지휘/이해식, 1987. 5. 20. 어린이회관 꾀꼬리극장/대구.
신라 시대 최치원이 남긴 [향악잡영]鄕樂雜詠) 다섯 수(五首)에 기록된 기악(伎樂)을 보면 결코 오늘 날의 디스코에 버금가지 않은 디스코춤이고, 조선시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여진족의 춤도 그 시대에 사회적인 문제가 될 정도로 대단히 격동적인 디스코춤이었습니다.
앞에서 두 곡의 「디스코」에는 수를 계산하는 주판(珠板)이 편성됩니다. 주판을 흔들 때 주판알이 부딪치는 소리를 악기로 본 거죠. 1999년의 「디스코」는 케스타네츠가 편성된 보다 본격적인 관현악 디스코(orchestral Disco)입니다. 저의 「디스코」 작품은 막춤으로 추는 디스코라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공연할 수 있는 안무된 디스코를 요구합니다.
윤중강: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도 시리즈로 계속해서 1번ㆍ2번이 있고, 아주 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이해식: 1번ㆍ2번을 얘기하니까 생각나는데,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초연 직후에 바로 윤중강 선생이 “너무 아쉽고 짧다. 더 쓸 수 없느냐?” 해서 나온 작품이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제2번’」입니다.
윤중강: 네. 그 시절에 정말 1980년대, 1990년대 초반까지 선생님 춤 시리즈의 춤이 들어간 제목의 곡을 들으면서 굉장히, 그 때는 저도 젊었으니까, 아주 그냥, 그 때는 우리 국악관현악단이…,
이해식: 그 때 뿐인가요? 지금도 젊은데요.
윤중강: 하하하. 네. 활기를 느꼈던 게 새로운데…, 사실 그렇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었음은 선생님이 춤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알고, 선생님의 어떤 리듬이라든지 선율이 무한적으로 분수처럼 솟아 나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요.
이해식: 네. 지금 윤중강 선생의 말처럼, 제가 그렇게 춤에 연연했던 이유는 대개 국악하면 고전적이고 좀 따분하고 리듬도 없는 거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건 아니다. 우리 국악뿐만 아니라 국악기로도 이러한 현대적인 국악을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보여주기 위해서, 들려주기 위해서 춤에 집착했던 거고, 실제로 개량 국악기가 아닌 전통적인 악기로도 얼마든지 현대적인 국악연주가 가능하고 그러한 관현악법을 구사할 수 있음을 공부 겸해서 썼던 것입니다.
윤중강: 네. ‘굿’과 ‘춤’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작품이 많은데, 조금 전 선생님 말씀에도 등장하지만 ‘바람’이라는 제목도 많잖아요?
이해식: 네. 바람하면 ‘춤바람’을 쉽게 연상할 수 있는데, 옛날에는 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춤바람이라면 정말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바람’이라는 말도 있고, “왠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왔어?” 라고도 하는데, ‘바람’은 저에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철학은 잘 모르지만 사람은 바람처럼 한 번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거고, 바람을 다르게 말하면 ‘기’(氣)이고, 사람의 성정과 관련해서 ‘끼’라고도 말하는데, ‘기’는 인간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 바람 앞에는 누구든지 다 겸손해야 된다는 거죠. 저도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도 수양이 덜 되고 겸손하지 못한데, 춤과 관련하여 ‘바람’을 알고자 하여 ‘바람’이란 말을 제 곡목에 많이 넣었고, 또 <굿ㆍ춤ㆍ 바람>을 하나로 묶어서 작품의 단초를 잡은 것이지요.
윤중강: 네. <굿ㆍ춤ㆍ바람>만큼 많지는 않지만 또 ‘여자’라는 제목도 있잖아요?
이해식: 네. ‘여자’는 뭐랄까요. 모든 창조와 창의의 근원이고 고향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자를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윤중강: ㅎㅎㅎ…
이해식: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음악은 예술의 아버지이고, 춤은 예술의 어머니라고 그랬어요(Curt Sachs). 이때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근원적이라는 의미에서 제 작곡의 근원을 여자에 둔 것이고, 영웅의 뒤에는 여자가, 훌륭한 어머니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자라고 하는 것”에서 지금 제가 “여자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안 되는 거고, 그렇다고 “여자님”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그러니까 여자라는 존재는 이 세상 모두, 특히 제 작품에 있어서는 창조의 근원입니다.
윤중강: 네. 「바람과 여자」라는 작품이던가요?
이해식: 네. 작품 LP의 타이틀이 「바람과 여자」이고, 또 피리독주와 현악앙상블로 된 「바람의 여자」(風女 1992)라는 작품이 있어요.
윤중강: 「바람의 여자」…,
이해식: 네. 「바람의 여자」는 무당(shaman)의 정신세계를 상상해 본 작품니다. 근데 어떤 분이 이 곡을 듣고서 ‘바람난 여자’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도 맞습니다. 왜냐하면 무당은 어떤 면에서 바람난 여자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윤중강: 네.
이해식: 왜냐하면 정상적인 여자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살던 시골에서는 정상이 아닌 사람을 “바람났어?” 또는 “난봉(難逢)났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자전거 타이어가 터져서 정상이 아닌 상태도 “난봉(難逢)났다”고 말했는데, 이런 어휘는 연정(戀情)과 관련하여 만나기 어렵다는 뜻을 바람남으로 동일시한 겁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의미 관련이 곧 「바람의 여자」이고, “바람난 여자”도 제게는 모두 작품의 근원으로써 아주 소중한 요소들이죠.
윤중강: 2005년 7월 이달의 작곡가 이해식 선생님과 함께 하는 세 번째, 마지막 시간인데요. 이쯤에서 이해식 선생님, 선생님조차도 작품의 수효를 모르실 정도로 많은 작품을 쓰셨는데, 좀 어려운 질문 또 드려봤습니다. 그 많은 작품 가운데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작곡가가 자천(自薦), 스스로 추천하는 다섯 작품이라고 하면 어떤 작품을 꼽아 주시겠어요?
이해식: 제가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거나, 자주 연주되지 않거나, 청취자 여러분이 잘 안 들어 본 인지도가 낮은 작품…,
윤중강: 네.
이해식: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첫 시간에 들어봤던 전라남도 해남의 농사민요가 소재가 된 「바람의 춤」(風舞, 1979)…
윤중강: 「바람의 춤」…
이해식: 그 다음에 동서악기와 음악의 교류란 의미에서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질내기’」(2004), 그 다음에 역시 바람과 관련인데, 「풀륫과 18현금을 위한 ‘바람터’」(1999)입니다.
윤중강: 「바람터」…
이해식: 네. 「바람터」는 첫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가 생겨난 동네가 <구름터>여서 구름과 달 사이라는 「바람터」의 의미가 있습니다. 끝으로 오늘 마지막으로 들어볼 해금합주곡 「해궁」(奚宮, 1998)입니다.
윤중강: 「해궁」?
이해식: 네. 국립국악원 해금축제 위촉 작품인데, 제가 이 곡을 꼽는 까닭은 작품의 모티브를 남아프리카가 무대인 Power of one이라는 영화에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 가운데 감옥에 갇힌 원주민들의 합창이 아주 감동적입니다. 해궁의 모티브는 바로 이 합창에서 얻었습니다.
윤중강: 네 작품을 소개해 주셨어요. 「바람의 춤」ㆍ「춤질내기」ㆍ「바람터」ㆍ「해궁」….
이해식: 네. 그리고 「춤바래기」(1997)라는 작품이 있는데, 해바라기 꽃이 있죠? 보통 사투리로 해바래기인데, 해를 바라보듯이 춤을 바라본다는 의미에서 춤바라기(춤+바라기), 또는 춤바래기입니다. 「춤바래기」는 1997년 <한모음> 3중주단 제2회 발표회 위촉 작품으로 해금ㆍ거문고ㆍ25현금의 삼중주입니다. 이 곡은 가야고가 연주 중에 자주 안족을 옮기도록 작곡했는데 그 효과가 별로여서 가야금을 대폭으로 수정하여, <한모음> 제3회 발표회에서 다시 연주합니다(이해식 작곡 3중주 「춤바래기」, 한모음 제3회 삼중주의 밤, 1998. 10. 16. 해금/윤문숙, 가야고/송안나, 거문고/장은선. 국립국악원 우면당/서울).
윤중강: 네. 해금ㆍ25현금ㆍ거문고, 이렇게 세 악기가 어우러지는 「춤바래기」라는 작품이네요. 「바람의 춤」ㆍ「춤질내기」ㆍ「바람터」ㆍ「해궁」ㆍ「춤바래기」, 이렇게 다섯 작품을 꼽아주셨는데요. 제가 이 코너를 진행하면서 매달 작곡가 한 분을 모시고 늘 이런 질문을 드리는데, 제가 내심 선생님께서 “이런 작품 꼽아 주실 거다”와 거의 맞거든요.
이해식: 아. 그런가요.
윤중강: 근데요, 이해식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한 작품도 겹치는 게 없었어요.
이해식: 아. 그러세요?
윤중강: 저는 오히려 선생님의 작품 가운데서 많이 알려진 「해동신곡」ㆍ「두레사리」ㆍ「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ㆍ「흙담」, 이런 작품을 꼽아주실 줄 알았는데, 전혀 뜻밖이예요.
이해식; 네. ㅎㅎㅎ.
윤중강: 그리구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작품을 듣고 좋아하는데 선생님의 음악을 들으면 “리듬에 생명력이 있다.” 또는 “피리의 선율이 살아있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지금 여기서 꼽아주신 작품에서는 오히려 해금이나 가야금곡이 더 많이 선곡된 느낌도 들구요.
이해식: 아. 피리 말씀이 나왔는데요. 「바람의 춤」에서 피리가 해남의 농사민요를 아주, 애잔하게 연주합니다.
윤중강: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피리선율을 잘 쓰세요? 우문(愚問) 같기는 합니다만…
이해식: 제가 피리 선율을 잘 쓴다기보다는 열심히 하는 거고, 인간은 피리를 불면서부터 슬픔을 알게 되었다는 그리스 사람들의 말이 있고 보면(aulos는 고대 그리스의 피리), 피리, 그 악기라는 것이 잘 불면 심금을 울리는 거고. 못하면 바이올린처럼 해금처럼 깽깽이, 이런 소리를 듣고, 피리도 못 불면 아주 거친 소리가 나는데, 제가 옛날 라디오 프로듀서일 때 이충선(李忠善, 1901∼1989) 선생님이 와서 피리를 불면…
윤중강: 이충선 선생님이요?
이해식: 네. 그 분은 피리라고 하면 정말 명인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저의 「바람의 춤」에서 해남민요를 메랑콜릭(merankoric)하게 연주한 사재성씨의 피리소리는 정말 좋아요. 그리고 우리 조선음악에서는 피리가 선율을 차고 나가니까 그런 리더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피리를 많이 썼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윤중강: 선생님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많은 분들이 얘기를 해요. “굉장히 재미있고 즐거운 작품인데, 또 그만큼 어렵다”고 합니다. 다른 작품은 혹시라도 지휘자나 연주자가 어느 부분을 놓치면 차고 들어가는 게 가능한데, 선생님의 작품은 계속 선율이 비슷한듯하면서 달라지고, 리듬도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한 번 놓치면, 그야말로 헤매기 시작하면 작품 끝날 때 까지 헤맨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이해식: 네. 그 말은 저도 듣고, 실제로 이 시간에 들어본 「춤 불러오기」를 초연할 때, 해금 최희연 씨, 21현금 원영실 씨가 소감을 얘기했는데, 악보를 외우지 않으면 연주 못한다면서, 완벽하게 외워서 연주 하더군요.
윤중강: 네.
이해식: 그렇게 하니깐 정말 느낌(feel)이 오는 연주였는데, 왜냐하면 제 작품이 약간 야성적이고 그런 리듬을 원하는데, 원영실 씨가 21현금을 그렇게 연주해요. 악보를 놓고는 있지만 다 외워서 리드믹컬하게 역동적인 연주를 해요.
윤중강: 정말 그 선율과 리듬에 취하지 않으면 그런 표현이 가능하지 않고, 그 선율과 리듬을 저는 공식적으로 무대에서 연주한 적은 없지만 선생님의 스코아를 보고 나름대로 흉내 내면서, 연주하면서, 제가 연주하는 순간에 제가 샤만(shaman)이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굿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신들려가지고 연주하지 않으면 굿이 재미없고 또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 작품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다른 분도 그렇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해식: 그렇다면 저의 무의식적(巫意識的 shamanism)인 의도가 작품으로 이입(移入)되었음에 성공한 거고, 아까 리듬얘기가 나왔는데, 제 작품에서 구사하는 리듬은 모두 우리의 민속음악에서 가져옵니다. 서양용어로는 헤미올라(hemiola)라고 하지만 판소리에서 완자거리ㆍ잉어거리라든지. 민속음악에서 리듬붙임이나 엇붙임(장단붙임 rhythm group)입니다. 어느 연주자에게서 “왜 선생님 곡에는 그렇게 싱코페이션(syncopation 당김음)이 많아요?”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것은 제가 인위적으로 -여과해서- 쓰기도 하지만, 그러한 장단(리듬)은 모두 민속음악 연주자들이 구전심수(口傳心授)로 배우는 거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리듬(장단)을 작품으로 써 놓으면 어렵고 생소하게 보임은 교육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의 리듬 재료는 모두 우리의 민속음악입니다.
윤중강: 그래요. 완자걸이ㆍ잉어걸이ㆍ교대죽, 이런 리듬들은 굉장히 활기 있는 리듬인데, 선생님의 독주곡 같은 경우도 연주할수록 빛을 더 발하는 것처럼, 선생님의 관현악곡도 젊은 사람들이 연주하고 시대가 걸러지면서 연주가 빛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가 민속음악을 경험해서 이해식 선생님의 스타일로 여과시킨 작품도 많이 썼지만, 서양음악을 편곡을 해서 <가야금 앙상블 사계>(四界)가 연주한 작품도 있어요.
이해식: 가야금 앙상블 사계에는 지금 대담하는 윤중강 선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제가 알기로는 1990년도에 KBS 텔레비전에서 <국악춘추>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할 때에 윤중강 선생이 관여했고, 거기 연주를 위해서 저에게 비발디 「사계」(四季) 중에서 <가을> 편곡을 위촉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25현금이 없었고, 고음가야고ㆍ중음가야고ㆍ저음가야고, 이 세 가지 가야고를 위한 편곡 조건이었는데, 제가 공부해보니깐 그 세 가지 가야고로는 <가을>을 제대로 편곡하기가 어려웠어요.
윤중강: 네.
이해식: 그래서 <가을>을, 원곡을 그야말로 제 멋대로 편곡한 거죠. 그렇게 해서 악보를 마감했는데, 무슨 사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편곡 작품이 연주되지 않았어요.
윤중강: 네. 연주를 못했었어요.
이해식: 그 무렵에 서울대 음대 국악과 이재숙 교수님으로부터 <아시아 금(琴) 교류회> 창단연주회에서 <가을> 편곡을 초연할 준비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가보았더니, 서울대 대학원생 연주자들(고지연ㆍ정효성ㆍ김진경ㆍ조수현)이 악보도 다 익히고 연습이 아주 잘 되어 있어요. 그 후로 저와 연주자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여, 1998년 11월 11일 「아시아 琴 교류회」 창단연주회에서의 <가을> 초연이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가을> 초연에서 가장 값진 가을 추수는 연주자들이 다시 결집하여 한국 최초로 가야금 4중주단 <가야금앙상블 사계>(四界)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들이 한국의 국악연주계에 미친 영향은 물론 빈번했던 해외활동도 여기 평론가이자 한국음악사학자인 윤중강 선생이 더 잘 알거예요([四界史]를 쓸만도 합니다).
A. Vivaldi/이해식 편곡, 「사계」 중에서 <가을>이 초연된 아시아 琴 교류회
창단연주회 프로그램. 1998. 11. 11.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윤중강: 네.
이해식: 지금 돌이켜 보면 비발디 「사계」 중에서 진정한 편곡은 <가을>이고, 나머지 <봄> <여름> <겨울> 세 계절은 아직 초연되지 않았지만, 25현금이 나와서 편곡하기는 아주 쉬웠습니다.
윤중강: 작품(편곡)은 다 쓰신 거지요? 「사계」(四季)를 <사계>(四界) 가야금으로 다 옮기셨죠?
이해식: 네. 편곡은 다 끝냈는데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마 가야고앙상블 「사계」(四季)를 CD로 제작하는 일이 아직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윤중강: 네. 사실 선생님께서 좀 섭섭하셨을지도 모르지만, 처음에는 선생님의 작품을 듣고 좋았는데, 나중에 비발디의 사계에 선생님의 스타일이 적은 게 조금 아쉬웠어요. 근데 그것은 원 작품에 대한 존경이라고 할까요? 어쩔 수가 없는 일인가요?
이해식: 네. 제 스타일은 오히려 맨 처음 고음ㆍ중음ㆍ저음 가야고로 편곡한 <가을>에서는 가능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 악기들의 핸디캡을 제 멋대로 구사해야 함에서 곡의 프레이징이나 다이내믹을 국악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는데, 이런 주법(奏法)이나 해석은 원곡에는 없는 편곡자의 스타일이 되는 거죠. 나머지 세 계절은 25현금 4중주로 거의 성부 이전(trans part)할 수 있어서 <가을>과는 달리, 저의 편곡 스타일이나 한국적인 연주와 해석이 약간 덜 했었습니다.
윤중강: 네. 선생님께서는 경향(京鄕) 각지에서 선생님의 작품이 많이 연주되는데, 다른 작곡가들도 자신의 작품이 연주될 때는 오시려고 노력 하지만, 선생님의 작품이 연주될 때는 꼭, 그게 초연이 아니라도 꼭 오시더라구요.
이해식: 가능하면 재현될 때도 참석 하지만 초연일 때는 꼭 참석 합니다.
윤중강: 반드시 오시죠. 네. 초연작품이 아니더라도 선생님 작품이 연주될 때는 꼭 오셔서 연주자들이 많이 긴장 합니다.
이해식: 하하하.
윤중강: 하하하(함께 웃음). 선생님의 작품이 연주될 적에는 마음에 드는 경우도 있고, 정말 이런 연주는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이해식: 지난 6월 21일에 국립청소년국악관현악단이 제5회 정기연주로 제 작품 두 곡을 연주 했어요. 하나는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을 지휘자 없이 연주했고(concert of the air)…,
이해식 작곡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을
제5회 국립청소년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에서 지휘자 없는 리허설(concert of the air).
2005. 6. 21. 국립극장 대극장/서울.
윤중강: 그래요.
이해식: 또 하나는 「춤을 위한 ‘지와 간’」인데, 아! 이 악단은 말이 청소년이지 이 사람들의 연주는 청소년 수준이 아니에요.
윤중강: 네.
이해식: 그래서 제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로 감동했던 리허설이었는데, 학생들이 작품의 성격이나 테크닉은 물론, 연주기량은 전부 정복된 거고, 청소년이 「바람의 말」을 -마치 바람같이- 그 정도로 연주하는 데는 정말 놀랬어요.
윤중강: 네.
이해식: 아주 놀랬어요. 연주자들이 음악을 완전히 알고 있는 거예요.
윤중강: 네.
이해식: 그 다음에는 「춤을 위한 ‘지와 간’」은 지휘를 했는데, 여기서 제가 느낀 것은 타악기를 아주 절제한다 이거죠. 제가 흉 봐서는 안 되지만, 국악작품이나 전통음악을 보면 무슨 스트레스를 그렇게 풀어야 하는 건지, 아예 타악기가 온 연주장을 다 울려서, 가야금이나 거문고 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고….
윤중강: 가야금이나 현악기와의 밸런스를 맞추지도 않고….
이해식: 네. 근데 청중들은 대리 만족인지 그렇게 시끄러운 타악기 소리를 환호한다 이거죠.
윤중강: 하하하.
이해식: 근데 제 작품은 그렇게 환호할 수 있는, 그런 환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고, 아마도 아주 절제를, 지휘자가 타악기를 절제하는 연주에 있어서는 정말 제 마음에 드는, ‘지’(支)와 ‘간’(干)이었는데 ‘지’가 무슨 의밉니까? ‘가를 지’거든요. 간은 ‘방패 간’이니깐 간지를 거꾸로 해서 ‘지와 간’이라고 했는데, 그 ‘지와 간’을 정말 제대로 가르고 해석하고 표현한 연주였다 이거죠.
윤중강: 네. 국립청소년 국악관현악단의 연주였구요, 원일 선생님께서 지도를 잘 했지만, 선생님의 작품은 30대, 40대 이런 분들도 좋은 연주 스타일이 있고, 정말 살아있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음악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오히려 연주기량이 어느 정도 있다면 20대들이 연주했을 때,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더욱 더 증폭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식: 아! 그래서 저는 서울시립청소년이나 국립청소년 국악관현악단은 정말 말이 청소년이지, 기성 국악관현악단 못지않은 기량과, 연주 테크닉이나 해석 능력이 아주 뛰어나서, “아! 내 작품은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식 작곡 「젊은이를 위한 춤의 말」이 연주된
서울시청소년국악관현악단 창단연주회프로그램.
지휘/김성진. 200 5. 3. 11.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서울.
윤중강: 네. 선생님은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갖고 태어나신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요.
이해식: 하하하. 저는 그렇게 선천적으로 강한 체질이나 건강한 건 아니고, 제가 여러 번 반복했지만, 단지 열심히 노력하는 겁니다. 열심히…,
윤중강: 요즘은 선생님 어떻게 지내시고, 또 어떤 계획 갖고 계세요?
이해식: 요즘은 우리 대학 출판부에서 저의 논문집 [산조의 미학적 구조론]과 [이해식의 작곡노트 넘겨보기](
두 권의 저서는 2006년에 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 이중에 [산조의 미학적 구조론]은 2007년도 문화공보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됨)라는 두 권의 저서가 출판 진행 중이어서, 지금 그 원고를 교정 중이고, 지난 3월 11일 서울시청소년국악관현악단 창단연주회 -청춘가악-(靑春歌樂)에서 저의 「젊은이를 위한 춤의 말」을 연주했고, 4월 14일에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창단 40주년 기념 -악경불혹-(樂經不惑)에서 저의 대편성 「두레사리」를 연주했고, 또 오는 10월 22일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제279회 정기연주회와, 12월 5일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월요상설국악공연 <국악. 꽃. 향기>에서 연주할 선곡(選曲)과 새로운 두 작품을 써 달라는 위촉장이 왔습니다(이후 작곡자 형편으로 <국악. 꽃. 향기>를 취소했음).
윤중강: 하하하.
이해식: 또 그런가하면 朴金圭의 時調二首 「쇠주와 갈망」이라는 가곡 작품을 10월 7일 <미래악회> 창설 30주년기념발표회에서는 soprano와 piano로(이해식 작곡 朴金圭의 時調二首 「쇠주와 갈망」, soprano/김원진, piano/김은찬, 2005. 10. 7.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서울. CD/미래악회 30주년 기념 작품집 Ⅳ(2006), YBM 서울음반), 11월 21일 신악회 창단 40주년기념발표회에서는 soprano와 flute(이해식 작곡 朴金圭의 時調二首 「쇠주와 갈망」, soprano/김원진, flute/왕주연, 25현금/박세연. 2005. 11. 21. 서울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서울; CD/신악회 창단 40주년 기념 작품집(2005), torimusic, 신나라.), 25현금으로 연주합니다.
윤중강: 네. 여기저기서 위촉한 작품이 꽤 있는데, 그래도 이렇게 저희 국악방송에 오셔서 좋은 작품 소개해 주시고 사흘 동안 오셔서 정말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자, 이제 이해식 선생님 보내드리면서 해금합주 「해궁」을, 이번 달 마지막 작품으로 선곡했습니다. 어떤 작품인지 설명해 주시지요.
이해식: Power of one이라는 영화는 권투를 좋아하는 독일 소년을 통하여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의 삶과 고통을 얘기하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에서 감옥에 갇힌 남아프리카 사람들의 합창이 아주 감동적이고, 소리만 들어도 마음에 와 닿은 느낌이 아주 깊은 나머지, 여기서 얻은 모티브로 「해궁」을 작곡했습니다. 「해궁」은 우리 국악기로 연주하는데 “서양도 아니고, 웬 남아프리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세상의 모든 음악과 춤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작가(作家)입니다. 들어보면 「해궁」은 경기도립국악단 사람들이 열심히 연주한 작품입니다. 그럼 먼저 「해궁」의 작품노트부터 소개하겠습니다.
해낭(奚囊)이란 중국의 고사가 있다. 즉 당나라의 이하라는 사람이 명승지를 구경하면서 얻은 시상(詩想)을 해노(奚奴)가 가지고 다니는 주머니에 넣은 고사를 말하는데, 나중에는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면서 시초(詩草)를 넣어두는 주머니의 뜻이 되었다.
해낭고사에 기하여 「해궁」은 해금음악을 모아 놓은 집(해금음악의 궁전)이란 뜻으로 지은 제목이다. 악기편성은 독주(首 obbligato) 해금과 합주 해금, 아쟁․징(쟁)․훈․장고․tambourine․triangle 등이다.
「해궁」은 여덟 부분으로 연결된 춤곡이다. 각 부분에는 도입부의 segment가 삽입, 또는 변주되어 있다. 아래에 각 부분의 구조를 설명한다.
A: Largo, 6/8박자. 모호한 황종평조.
B: ♪=ca. 116, 모호한 황종평조.
C: 독주해금에서는 황종평조로, 합주해금에서는 중려평조가 동시에 다조적(多調的 poly tonal)으로 쓰인다.
D: 황종ㆍ남려ㆍ임종 다시 황종 등의 계면조로만 전조가 잦은 부분이다.
E: 5/8박자. 모호한 임종선법.
G: ♩=ca. 116, 2/4박자. 황종계면조.
G: ♪=ca. 116, 6/8박자. 모호한 황종평조
H: Largo(이해식 작곡 금합주 「해궁」(奚宮)(1998), 국립국악원 ’98 해금역사축제 -현대 해금작품세계- 위촉 작품, 경기도립국악단(해금 obbligato/정길순, 합주해금/김미라ㆍ황수진ㆍ백지연ㆍ한서영, 아쟁/이시온, 타악/안혜령ㆍ박정신, tambourine/김은영, triangle/최윤정, 훈/전규학ㆍ박경호). 1998. 9. 23.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이해식의 ?작곡노트 넘겨보기?(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 384~385쪽).
해금은 비록 두 줄뿐이지만 완전한 악기이다. 또한 그 소리가 너무 독특하다 못하여 깡깡이라는 속칭도 있지만 좋은 연주는 오히려 심금을 울리는 특수악기다. 「해궁(奚宮)」은 이러한 해금의 매력을 모아 놓은 작품이란 뜻이다.
「해궁」은 여덟 부분으로 연결된 춤추는 곳이다. 편성은 독주해금(obbligato)과 합주해금, 아쟁, 그리고 percussion이다.
「해궁」도 나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Lydian mode처럼 반음 올려진 제4음을 5음음계 밖의 소리(非五音)로 사용하여서 선법을 모호하게 한 부분이 있다. 또 서로 다른 조(調) 중심의 선법이 병행되는 부분도 있다(polytonal). 전체적으로 전조가 잦다.
박자는 6/8ㆍ5/8ㆍ2/4ㆍ6/8로 바뀐다. 특히 5/8는 도당굿의 진세춤인 3+2가 기저(基底)이지만 이것은 겹리듬(polyrhythm)에 의하여 때때로 혼돈(chaos)에 빠지기도 한다. 혼돈의 의미는 이미 질서를 내포하는 힘을 가진 것이다. 「해궁」은 이 힘이 심층적으로 이동하는 춤의 언어이다. 1998년도 작품(이해식. 해금연구회 세 번째 연주 <’98 해금연주회>, 경기도립국악단(해금 obbligato/정길순, 해금합주/김미라ㆍ황수진ㆍ백지연ㆍ한서영, 아쟁/이시온, 타악/안혜령ㆍ박정신, tambourine/김은영, triangle/최윤정, 훈/전규학ㆍ박경호), 1998. 11. 13. 국립국악원 우면당/서울. 이해식의 [작곡노트 넘겨보기], 385~386쪽).
윤중강: 아! 선생님. 좋은 작품 이렇게 오랫동안 저희들에게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 드리구요, 건강 더욱 더 잘 챙기시면서 더 좋은 작품들 저희들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사흘 동안 자리 함께 해 주셔서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해식: 대단히 감사하고, 여러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며, 특히 국악방송 중에서도 「이 땅의 오늘 음악 윤중강입니다」에 항상 채널을 맞춰주세요. 감사합니다.
윤중강: ㅎㅎ(웃음).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FM 99.1㎒ 국악방송 <이땅의 오늘음악, 윤중강입니다> 서울 서초동 제1스튜디오. 윤중강 vs 이해식.
Casio Digital Camera EX-Z57 녹화/이주연 2005. 7. 13.
참고 자료
저서
Johan Huizinga(權寧彬 譯), [호모루덴스], 서울: 弘盛社, 1981.
朴金圭, [朴金奎 時調全集], 익산: 원광대학교 출판국, 1999.
[水利民俗圖錄], 金提: 東津農地改良組合, 1984.
신약성경
李康濂, [世界音樂史], 서울: 國民音樂硏究會, 1959.
李成三, [世界音樂史], 서울: 正音社, 1959.
이해식, [산조의 미학적 구조론], 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
이해식, [작곡노트 넘겨보기], 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
崔昌烈, [우리말 語源硏究], 서울: 一志社, 1986.
논문
이해식, “외래의 춤음악과 한국음악의 접근론," [韓國音樂硏究] 第34輯(서울: 韓國國樂學會, 2003.12.30), 37~69쪽, 또는 이해식 논문집 [산조의 미학적 구조론](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 436~479쪽.
이해식, “한국의 상여소리 연구,” [낭만음악] 통권66호(서울: 낭만음악사, 2005 봄호), 55~102쪽, 또는 이해식 논문집, [산조의 미학적 구조론](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 480~544쪽.
악보
김소월 시 이해식 작곡, 「맘 켱기는 날」.
李海植 관현악곡집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서울: 圖書出版 수문당, 1990.
李海植 관현악곡집 [海東新曲], 慶山: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3.
李海植流 國樂器 獨奏를 위한 創作曲集 [흙담], 慶山: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이해식 작품 연주회
Op.1. 「젓대 독주곡 ‘산조’」(散調 1968), 국립국악원 신국악작곡콩쿠르 입상작품(1968. 8. 17)/서울. 젓대/金晶洙, 장고/金正秀. 악보는 李海植流 國樂器 獨奏를 爲한 創作曲集 [흙담](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1986). 7~18쪽.
Op.6. 가곡 김소월 맘 켱기는 날(1969), 1991. 12. 20. 8:00. ㏘ KBS-FM 신작 가곡의 향연. 편곡/이해식, baritone/이재환, 반주/KBS교향악단, 지휘/김덕기. KBS홀/서울.
Op.10. 가야고독주곡 「흙담」(1969), 문화공보부 문예창작공모 국악작곡 당선작(1969. 7. 21).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제10회 국악정기연주회 초연, 가야고/심영인, 장고/金正秀, 1969. 11. 4. 명동국립극장/서울; 李海植 創作曲集 LP 「바람과 여자」(서울음반 SRB-019, 1992), side B track 12(12;09), 가야고/이지영, 장고/김선옥; 장지현의 두 번째 이야기 봄으로의 초대… 이해식 작곡 가야고 독주곡 「흙담」, 장고/김웅식. 2005. 4. 14. 국립국악원 우면당/서울. 악보는 李海植流 國樂器 獨奏를 爲한 創作曲集 [흙담]. 36~54쪽.
Op.29. 「바람의 춤」(風舞 1979), 未來樂會4作曲發表 위촉 작품, 단소/김철호, vocal/김영동, 해금/송권준ㆍ양경숙, 피리/사재성, 타악기/백효숙ㆍ김재운, 지휘/김용만. 1979. 11. 13. 국립극장 소극장/서울. 「바람의 춤」(風舞)은 李海植 국악관현악곡집 [海東新曲](慶山: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3), 230~247쪽에 해남 우수영리에서 녹음하는 사진ㆍ채보ㆍ작품메모 등, 자세한 정보가 있음.
Op.31. 「합창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두레사리’」(1980), 한국방송공사(KBS) 창립7주년기념 위촉 작품, 1980. 3. 3. 9:00. ㏂ KBS-Radio제1방송(711㎑)으로 초연 방송. 출연/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대화리 주민들, 모갑이/김현규, KBS합창단 지휘/김규환. 서울시립국악관악단, 총지휘/김용진/서울. 악보는 李海植 국악관현악곡집 [海東新曲], 262~306쪽.
Op.31. 「합창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두레사리’」, 서울대학교 국악과 제40회 정기연주회, 지휘/오용록. 1998. 11. 3.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Op.31. 「합창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두레사리’」, KBS 국악관현악단 제118회 정기연주회, 출연/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대화리 주민들, 모갑이/김현규, KBS합창단, 지휘/임평용. 2000. 2. 24. KBS 홀/서울,
Op.31. 「합창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두레사리’」,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창단 40주년 기념 제272회 정기연주회 -樂經不惑- 지휘/김성진. 2005. 4. 1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서울.
Op.38. 국악관현악 「들굿」(野祭, 1983),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제15회 국악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지휘/이성천. 1983. 11. 5. 국립극장 소극장/서울.
Op.40. 국악관현악 「산굿」(山祭, 1984),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제26회 국악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지휘/이성천. 1984. 10. 26. 국립극장 소극장/서울.
Op.45. 국악관현악과 합창 「어방굿」(漁坊祭, 1985),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제4회 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지휘/이의경. 1985. 9. 16. 시민회관 대강당/부산.
Op.46. 「국악관현악과 합창 ‘향발굿’」(響鈸祭, 1985),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제27회 국악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지휘/이성천. 1985. 9. 27. 서울대학교 문화관 대극장/서울. 악보는 이해식, 국악관현악곡집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서울: 圖書出版 수문당, 1990), 1~40쪽.
Op.49. 국악관현악 대굿(竹祭, 1985), 국립국악원 제23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 위촉 작품, 지휘/김정길. 1985. 12. 13. 국립극장 대극장/서울. 악보는 이해식, 국악관현악곡집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74~104쪽.
Op.51. 「국악관현악을 위한 ‘굿연습’」(1986), 국악고등학교 개교31주년기념 목멱(木覓)예술제, 지휘/신용문. 1986. 10. 15. 국립극장 소극장/서울.
Op.51. 「국악관현악을 위한 ‘굿연습’」, 이화여자대학교 제17회 국악연주회, 지휘/홍종진. 1989. 9. 29. 이화여자대학교 김영의홀/서울.
Op.52. 국악관현악과 합창 「종굿」(鍾祭, 1986),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제28회 국악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지휘/이성천. 1986. 9. 11. 서울대학교 문화관 대극장/서울. 악보는 이해식, 국악관현악곡집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41~73쪽.
Op.56. 국악관현악 「디스코」(DISCO 1987), 영남대학교 개교 40주년기념 국악정기연주회 초연, 지휘/이해식. 1987. 5. 20. 어린이회관 꾀꼬리극장/대구.
Op.60. 국악관현악 「춤을 위한 ‘지(支)와 간(干)’」(1988), KBS국악관현악단 제22회 정기연주회 초연, 지휘/이상규. 1988. 11. 30.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서울. KBS국악대상 작곡상 수상작품(1988. 12. 17). 악보는 이해식, 국악관현악곡집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143~175쪽.
Op.62. 국악관현악 「춤을 위한 ‘국악연습’」(1989), 대구시립국악단 제21회 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객원지휘/이해식. 1989. 10. 30. 시민회관 대강당/대구.
Op.66. 국악관현악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1990), 중앙국악관현악단 제7회 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지휘/박범훈. 1990. 4. 30. 호암아트홀/서울; 李海植 創作曲集 LP 「바람과 여자」(서울: 서울음반 SRB-019, 1992), side A track 2(중앙국악관현악단 제7회 정기연주회의 실황녹음임); 춤 「바람의 말」, 안무/정귀인, 부산현대무영단, 제1회 대구무용제 대상수상. 1991. 6. 24. 문화예술회관 대극장/대구. 악보는 이해식, 국악관현악곡집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209~238쪽.
Op.67. 국악관현악 「젊은이를위한 춤 ‘바람의 말 제2번’」(1990), 제10회 대한민국 국악제 위촉 작품, 지휘/장명화. 1990. 9. 11. 문화예술회관 대극장/대구.
Op.69. 국악관현악 「춤을 위한 ‘부새바람’」(1991), 제11회 대한민국국악제 위촉 작품,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지휘/김영동. 1991. 9. 17. 8:00. ㏘ KBS-FM((93.1㎒) KBS홀/서울.
이강덕ㆍ이성천ㆍ이해식ㆍ이상규 변주, 「이씨네 변주곡」(1990), KBS국악관현악단 제38회 정기연주회, 지휘/이상규. 1990. 11. 3.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서울.
Op.70. 국악관현악 「젊은이를 위한 춤의 말」(1991),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제33회 국악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지휘/강사준. 1991. 11. 4. 서울대학교 문화관 대극장/서울.
Op.70. 「젊은이를 위한 춤의 말」, 서울시청소년국악관현악단 창단연주회 -靑春歌樂- 지휘/김성진. 2005. 3. 11.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서울.
Op.71. 피리와 실내악 「바람의 여자」(風女 1992), KBS국악관현악단 제49회 정기연주회, 피리/문정일, 지휘/이상규. 1992. 4. 23. KBS홀/서울.
Op.72. 국악관현악 「길춤」(1992),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창립 10주년 기념연주회 위촉 작품, 지휘/곽태천. 1992. 6. 3. 시민회관 대강당/대구.
Op.84. 「기도」(祈禱 1999), 이해식 국악작곡집 CD 「바람과 춤터」(서울: 예성음향 YSCD -0083, 1999), track 1, 단소/이준호, 18현금/이지영.
Op.85. 18현금 독주곡 「금파람」(琴風 1994), 이지영 가야고 독주회 위촉 작품, 장고/박환영. 1994. 10. 28. 국립국악원 소극장/서울; 이해식 국악작곡 CD 「바람과 춤터」, track 7(16:43). 18현금/이지영, 장고/원일.
Op.86. 「플루트와 18현금을 위한 ‘춤터’」(1994), 제36회 FM 국악무대 위촉 작품, flute/김희숙, 18현금/이지영. 1994. 11. 16. 7:00. ㏘ KBS-FM((93.1㎒), KBS홀/서울; 이해식 국악작곡집 CD 「바람과 춤터」(서울: 예성음향, 1999. 3. 5), track 6(16:10). flute/김희숙, 18현금/이지영.
Op.89. 「춤바래기」(1997), 한모음 3중주단 제2회 발표회 위촉 작품, 해금/윤문숙, 가야고/송안나, 거문고/장은선. 1997. 6. 13. 국립국악원 우면당/서울.
Op.93. 해금합주 「해궁」(奚宮)(1998), 국립국악원 ’98 해금역사축제 -현대 해금작품세계- 위촉 작품, 경기도립국악단[독주해금(obbligato)/정길순, 해금합주/김미라ㆍ황수진ㆍ백지연ㆍ한서영, 아쟁/이시온, 타악/안혜령ㆍ박정신, tambourine/김은영, triangle/최윤정, 훈/전규학ㆍ박경호]. 1998. 9. 23.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이해식의 [작곡노트 넘겨보기](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 384~385쪽.
Op.93. 해금합주 「해궁」(奚宮)(1998), 해금연구회 세 번째 연주 <’98 해금연주회>, 경기도립국악단[독주해금(obbligato)/정길순, 해금합주/김미라ㆍ황수진ㆍ백지연ㆍ한서영, 아쟁/이시온, 타악/안혜령ㆍ박정신, tambourine/김은영, triangle/최윤정, 훈/전규학ㆍ박경호], 1998. 11. 13. 국립국악원 우면당/서울.
Op.97. 2중주 「바람터」(1999), KBS-FM 제45회 FM 국악무대 -25현 가야금 대축제- 위촉 작품, flute/김희숙, 가야고/지애리. 1999. 6. 12. KBS홀/서울; CD/미래악회 작품집 Ⅲ(2005), flute/김희숙, 25현금/송정민, 서울음반 track 7~9.
Op.98. 「국악관현악을 위한 디스코」(1999), KBS국악관현악단 제114회 정기연주회 초연작품, 지휘/임평용. 1999. 7. 15. KBS홀/서울.
Op.102.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두레’」(2000), KBS국악관현악단 제121회 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piano/서재희, 지휘/임평용. 2000. 9. 21. KBS 홀/서울.
Op.103.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춤두레’」(2000), 미래악회 제25회 정기발표회, piano/서재희, bongoㆍwoodblock/박보형, 꽹과리/이승훤, 장고/이수정, 춤북/김문섭, 징/박은혜. 2000. 10. 27. 연강홀/서울.
Op.104. 「춤 불러내기」(2000), 원영실ㆍ최희연 異人음악 위촉 작품, 21현금/원영실, 해금/최희연, bongo/김웅식. 2000. 9. 22. 국립국악원 우면당/서울.
Op.114. 「국악원 삼바―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2003), 국립국악원 제57회 창작음악발표회 “새가락 삼일야” 위촉 작품, 지휘/원용석. samba/김대동ㆍ한현정, 송승연ㆍ유재임(KP dance school). 2003. 11. 13.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Op.115. 「Piano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질내기’」(2004), KBS국악관현악단 제143회 정기연주회 위촉 작품, piano/이영이, 지휘/임평용. 2004. 4. 14.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Op.116. 朴金圭의 時調二首 「쇠주와 갈망」(2005), 미래악회 제30회 기념 작품발표회, soprano/김원진, piano/김은찬. 2005. 10. 7.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서울. CD/미래악회(Association for perspective music) 30주년 기념 작품집 Ⅳ(2006), YBM 서울음반.
이해식 편곡 작품
Antonio Vivaldi/이해식 편곡, 「사계」 중에서 <가을>(1998), 제1회 아시아 琴 교류회 초연, 21현금/고지연, 1st 가야고/정효성, 2nd 가야고/김진경, 3rd 가야고/조수현. 1998. 11. 11. 국립국악원 예악당/서울; CD/숙명 가야금연주단 제1집 서울음반, 2000.
Antonio Vivaldi/이해식 편곡, 「사계」 중에서 <겨울>(1999), 가야금 앙상블 사계(四界) 창단 연주회 위촉 편곡, 25현금/고지연ㆍ조수현ㆍ송정민ㆍ강효진(22현 저음 가야고). 1999. 12. 2. 영산 아트홀/서울:
Antonio Vivaldi/이해식 편곡, 「사계」 중에서 <봄>(2000), 가야금 앙상블 사계 위촉 편곡. 민족음악연구회 주최 2000’ 음악이 있는 열린 공간. 25현금/고지연ㆍ조수현ㆍ송정민ㆍ강효진(22현 저음 가야고). 2000. 4. 1.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야외공연장/서울.
음반
李海植 創作曲集 LP 「바람과 여자」, 서울음반 SRB-019, 1992.
이해식 국악작곡집 CD 「바람과 춤터」, 서울: 예성음향 YSCD-0083, 1999.
기타
제5회 아시아음악제전, Baghdad/Iraq, 1979. 12. 9.
제13차 아시아방송연맹(ABU) 총회, Kuala Lumpur/Malaysia, 1976.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