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theses)

전통악기로 실험한 교향시 이해식의 <해동신곡>. 이경분

노고지리이해식 2019. 6. 12. 23:30

전통악기로 실험한 교향시 이해식의 <해동신곡>

 

이경분

 

1. 들어가며

 

 

이해식은 “국악처럼 작곡하지 않기 위해 국악을 깊이 연구”[2006년 한국음악학학회 20주년 학술대회 “오늘의 한국 창작음악 어떻게 볼 것인가”, 2600. 11. 9. 서울 충무아트홀 심포지움에서]하는 작곡가이다. 이런 변증법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해식의 작품과 그가 쓴 여러 가지 글들을 읽고 대하면, 그에게서 ‘어린아이’와 같은 음악가의 인상을 받게 된다. ‘어린아이’라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여기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언급한 ‘어린 아이’[니체가 1883년 신들린 듯 저술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인간형을 소개하면, ‘낙타’ ‘사자’ ‘어린아이’이다. 먼저 낙타는 모든 권력과 주어진 조건에 복종하는 인간형이라 한다면, 이런 노예 상황에 대항하는 인간형은 사자에 비유된다. 끝으로 니체에게서 가장 긍정적으로 암시되는 인간형은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이다. 그 이유는 어린아이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만든 것을 계속해서 허물어뜨리는 인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5 참고] 같은 인간형을 연상한다면, 이는 분명 심한 논리적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도그마나 절대적 진리와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만든 것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이행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전혀 상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분야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창조와 자기부정을 동시에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작업의 성향 때문에라도) 예술가들이 아닌가 한다. 물론 우리의 문화풍토에서 이런 예술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만나게 되면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해식의 작품을 통해서 어쩌면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예술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없지 않다.

이해식의 작품에 대한 또 다른 기대는 혹시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 산업화 및 근대화로 이행되기 전의 삶과 풍습, 서구화되기 전의 오래된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땅의 삶에서 나온 소리보다 클래식음악에 더 친숙한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21세기 나는 누구인가?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메일 아이디, 핸드폰 번호가 나의 존재를 보여주는 징거물이고, 내 존재를 설명해주는가?

특히 대대적으로 전통을 타파하던 60, 70년대에 학교에 다녔던 필자에게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새마을노래 가락과 건전동요 가락이 과거의 음향적 이미지로 떠오를 뿐이다. 분명 옆집에서 굿을 하였고, 각설이가 장타령을 불렀을지도 모르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바람처럼 당시의 공기에 충만했고, 호흡과 맥박처럼 당시 틀림없이 존재했을 역사적 삶의 소리는 이제 박물관이나 무형문화재라는 이름에 박제되어 있는 듯하다.

과거의 소리를 박제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들려 줄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재 수용되고 있는 소리의 콘텍스트와 문화적 배경을 도외시해선 안 될 것이다. 이해식의 작업에서 거는 기대는 그가 과거의 소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이를 나름대로 살아있는 소리로 (번역하여) 전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신운리에서 태어난 이해식은 이 곳에서,

 

 

“한 여름밤 동구(洞口)의 모정(茅亭)에서 들려오는 춘향가 소리, 유난히 청승맞게 불러 넘기던 동네 할머니들의 육자배기가락, 명절 전야에 벌어지던 풍장굿, 작곡자의 어린 시절 시름시름 아플 때, 얽었지만 미인이었던 단골이 와서 머리에 바가지를 씌우고 주문을 외우며 콩 튀기던 일, 가을 달밤 오동잎 스치는 바람소리를 타고 넘어 오던 건너 마을의 구슬픈 대오라기 소리(출상 전날 밤의 상여소리), 놀이판에서 어머니가 두둘기시던 흥겨운 장고 장단...[이해식, [해동신곡], 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1983, 머리말 1쪽]

 

 

등을 듣고 자랐다. 필자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풍성한 음악적 배경을 가진 그는 어쩌면 서구화되기 전 삶의 자연스러운 소리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로 그의 작품에 거는 관심은 국악이냐 양악이냐의 경계가 중요하지 않고, 표현 욕구에 따라 재료와 소재, 형식과 장르, 양악기와 국악기를 도구로서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국악과 양악을 가르는 분명한 경계선이 현재 우리 문화풍토에서 넘기 힘든 질곡으로 남아있고, 도구를 목적으로 삼는 풍조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에 동조하지 않는 이해식의 고집스러운 작업이 오히려 돋보이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국악을 모르는 문외한(門外漢)이면서도 감히 그의 작품을 한 번 연구해보고자 하는 만용을 부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2. <해동신곡>,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

 

 

본고에서 다룰 <해동신곡>[작곡자는 작품을 완성한 후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필자에게 보낸 이해식의 2007년 12월 24일자 메일에서]은 한자어 ‘海東新曲’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해동은 한국을 의미함) 한국의 새로운 음악, 즉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탄생한 새로운 음악”[이해식의 [작곡노트 넘겨보기], 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 39쪽]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음악의 개념은 어쩌면 서양적이기도 한데, 카치니(Giulio Caccini)가 자신의 모노디 음악을 1602년 [누보 무지케 Le Nuove Musiche]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듯이 이해식은 1979년에 작곡한 자신의 음악을 해동의 新曲이라 하였고, 1983년 12곡을 수록한 첫 악보집을 발간하면서 제목을 ?해동신곡?이라 칭하였다.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 국악기로 창작한 것은 이미 이전에도 있었거니와 그의 작품이 이전과 구분되는 새로운 음악이라고 칭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가? 이해식이라는 개인 작곡가의 신곡이 아니라, 한국에서 새로운 음악적 사조, 또는 양식, 그래서 새로운 음악시대를 열어젖히는 신곡이라면 그전의 음악이 가지지 못하는 뭔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해식은 1983년 악보집 [해동신곡] 출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본격적인 작곡을 시작한 지 올해로써 14년이 된다… 감히 용기를 부려서 출판키로 결심한 것은 이것이 완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작곡자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면서 창작의 전환점을 찾고자 하는 하나의 모듬점으로 삼고자 함에서이다. 이것은 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밝혀서 거듭 발전하는 토양으로 삼고자 함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한국음악의 작곡이 시작된 지도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넘었으므로 누구든 우리의 신국악 작곡사를 정리해 볼 단계에 와 있다. 이런 시점에서 우선 나의 작품만이라도 정리해 두는 것이 신국악사 수립의 일익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또 하나의 생각으로 창작곡집 출판에 감히 나서게 된 것이다[이해식, [해동신곡] 머리말, 1쪽

].(강조는 필자의 것)

 

 

여기서 암시되는 것은 두 가지 차원이다. 하나는 작곡가 개인의 창작사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음악사라는 역사적 차원이다. 즉 이해식 자신의 창작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의미하고, 동시에 신국악사를 수립하는 전환점을 암시한다.

이 글의 행간을 읽으면 작곡가 이해식이 자신의 사적(私的)이라 할 수 있는 작업을 역사적인 차원과 병행해서 생각하고 있는 철저한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의 작업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해식이 말하는 새로운 음악이란 여기서 新국악, 즉 창작국악인 듯하다. 하지만 글을 좀 더 읽어 내려가면, 이해식은 정작 자신의 음악을 신국악이라는 범주에 두고 싶지 않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해식’의 방식대로 작곡되어진 ‘이해식의 작품’이기 때문이다”[이해식, <해동신곡>, 머리글 3쪽. 또 이해식, “음악사적 의미로서의 작곡가의 작품양식연구 - 이성천의 평론에 투영된 나의 작품양식의 재접근-”, <음악과 문화> 5호, 세계음악학회 2001, 72쪽 참고]라고 해명한다.

이 말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렇듯, 어떤 카테고리에 끼워 맞춰지기보다 자신의, 자신만의 예술로 인정받고 싶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런 심정을 토로한 예술가는 수없이 많은데, 한 경우만 예를 들더라도,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가 그러하다. 12음 음악의 중요성과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그 누구보다도 잘 설명하고 강조한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의 업적에 대해서도 쇤베르크는 오히려 거리를 두고 삐딱하게 보았다. 자신의 음악이 아도르노의 이론적 틀 속에 감금되는 것에 대한 반항심리가 작용하였기 때문이다[이경분, “아도르노, 아이슬러 그리고 Composing for the film”, 『서양음악학』제7집, 서양음악학회지, 2004년. 27-47쪽].

예술가적 자아의식이 강한 이해식의 새로운 음악에의 창작의욕 때문에라도 개인적, 역사적 ‘새로운 전환점’에 대한 문제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작곡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연구자로서 할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이해식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이루어진 후에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에서 하나의 답을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과거, 현재, 미래의 창작국악이 어느 정도 실험단계를 거쳐서 한국음악으로 정착하게 된 후에 역사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필자는 국악에 대한 이해가 크지 않고 축적된 연구도 부재한 데다 ‘양악’ 연구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므로, 질문제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앞으로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3. 이해식 음악의 변화와 흐름: 민속무속

 

 

아직 이해식의 음악사적 의미를 생각하기 힘들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그의 작품경향에 대해서는 잠시 언급해 볼 수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해식의 작품을 주로 소재의 변화를 근거로 나누거나, 세 권의 작품집 [해동신곡], [흙담](1986), [바람의 말](1990) 발간을 기준으로, 또는 70년대, 80년대 초반, 그 이후로 나누기도 한다[

김유진, “이해식 25현금 독주곡 <나위사위> 분석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7. 허윤희, “이해식 작곡 <두레사리>의 국악관현악법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 정지영, “이해식류 가야고산조 산조 <흙담>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 참고. 1986년 <흙담>의 발간과 함께 굿음악에 집중되면서 1970년대의 <해동신곡>과 1990년대 <바람의 말>과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이해식의 음악을 칼로 가르듯 연도로 나누어 구분하기 어렵지만, 그의 음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에 중점을 두면 대체로 그 흐름이 어떤지 이해할 수는 있다. 1970년대 사라져가는 민속, 토속음악을 찾아다니며 채집하던 시기의 음악과 1980년대 굿에 중점을 두고 창작하던 시기, 1986년 이후 춤과 바람이라는 화두로 작곡하는 현재 2007년까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이것은 임시적인 구분이다. 이해식의 음악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고, 큰 변화가 온다면 이러한 구분은 다시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고, 이에 따라 새로운 구분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1) 토속음악 자료의 시기: 보존과 응용, [해동신곡]의 시기

1970년대의 작품은 악보집 [해동신곡]에 담겨있는데, <당산> <사위> <위위상> <두레사리> 등 토속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소재를 음악화 하였다. 발로 뛰어 다니며 필드워크(fieldwork)에서 모은 전통음악자료는 이해식 음악의 보물창고와도 같은 것이 되었다. [해동신곡]을 통해 이해식 나름대로 전통음악 현대화 방식을 실험해보고자 한 듯하다.

 

 

2) 굿음악의 시기: 무속에서 한국적 음향의 뿌리를 보다, [흙담]의 시기

<당산>에서도 이미 당산굿이 음악적 동력이 되었지만, 198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굿음악이 쏟아져 나온다. <들굿> <산굿> <어방굿> <향밭굿> <대굿> <종굿> <굿을 위한 피리> 등에서 굿이라는 전통적 삶의 음향을 현대적으로 풀어보고자 하였다.

 

 

3) 춤과 바람의 시기: 감각과 움직임, 춤을 향하여, [바람의 말] 시기

굿음악은 정(靜)적이기보다 몸을 배제할 수 없는 움직임과 감각적 측면을 항상 환기시키는데, 굿음악에 대한 집중적인 실험이 있은 후 본격적으로 춤음악에 몰두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춤을 위한 협주피리>(1987),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제1번>(1990)[이해식, LP음반 <바람과 여자>, 서울음반 SRB-010, 1992. 참고]ㆍ<국악관현악 춤을 위한 부새바람>(1991)<바람의 여자>(1992)<금파람>(1994)<춤터>(1994)<춤바래기>(1997)<고춤>(1998)<춤사리기>(1999)<춤 불러내기>(2000)<현대인을 위한 춤덜구>(2003) 등에서 보듯이 춤과 바람에 몰두한 이해식음악의 경향을 알 수 있다[고수영, “이해식의 해금독주곡 <춤사리기>의 음악분석과 연주기법”,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 변계원, “칭작국악작품에 구현되고 있는 작곡 구성의 내재적 원리 -이성천의 독주곡 33 <바다>와 이해식의 합주곡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을 중심으로”, 2007 한국국악학회와 한국음악학회 공동학술대회. 2007. 11. 17. 발표문 참고]. 거의 20년 동안 춤과 바람에 집중하고 있는 것에서 이 주제는 그에게 무궁무진한 음악적 가능성과 끝없는 표현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식 음악이 춤과 바람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바람처럼 새로운 탐색의 길을 떠나게 될지, 만약 그렇다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아직 알 수 없다.

 

 

4. <해동신곡>에의 음악적 접근

 

 

다시 이해식음악의 1970년대 중요한 작품인 <해동신곡>으로 돌아오자. 이미 언급되었듯이, 여기서 ‘이해식 류’라 부를 수 있는 그만의 독특한 것이 무엇이냐, 전통악기를 도구로 이용하여 이해식은 어떻게 자신만의 독특한 음향을 만들어 내었느냐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연구되어야 하므로 오히려 이 작품에서 음향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해식은 국악 FM방송의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가장 학구적인 굿 관련 작품”[이해식, [작곡노트 넘겨보기], 36쪽]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학구적이라는 말에서 <해동신곡>은 굿의 요소들을 직접적으로 음향화하지 않고, “굿이 가지고 있는 표상적인 의미”를 반영하였음을, 즉 굿을 추상화하였음을 읽어 낼 수 있다. 실제로 <해동신곡>에서 직접적으로 굿을 연상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이해식의 굿에 대한 이해는 그의 어떤 작품에나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포괄적이고 광범위해서 좁은 의미로 굿을 해석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굿이란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거리에서의 자동차 접촉사고도 굿이어서 가던 사람들이 구경하고, 이웃집의 부부싸움도 굿이어서 귀를 기울이는 등,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을 굿이라 할 수 있고, 굿의 차원을 높여서 학문적으로 얘기하면 곧 제사이고 예배입니다. 제사의 순수한 우리말이 굿인데, 고대적 의미로는 신한테 감사의 의식을 올리는 일입니다. 제사가 끝나면 즉 굿이 끝나면 으레 굿놀이가 따라요. 그 굿놀이의 중심에 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겐 굿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작품이 많은데, 구체적으로 씻김굿이다, 도살풀이굿이다, 이러한 명시적인 굿이 깔려있는 건 아니고, 굿의 민속적인 의미를, 제의 정신을 작품에 담은 거죠. 그래서 제 작품은 곧 제의와 굿놀이입니다[이해식, [작곡노트 넘겨보기], 36쪽].

 

 

그의 설명에 따르면, 굿은 곧 한국인의 삶과 다를 바 없으며, 현대라고 다르지 않다. 지금도 여전히 한국인의 일상과 태도의 기저에 면면히 흐르는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청자는 작곡자가 의도한 대로만 작품을 들어야 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물론 작곡가가 왜, 어떤 배경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많은 정보를 안다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적인 개념의 작품과 미학적 관점에서 보면 청자가 작품을 듣고 나름대로 이해할 때 작품은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좀 거칠고 과장되게 말하자면, ‘전지전능한 작가적 관점’은 청자 및 수용자에 대한 비하라는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해동신곡>에서 굿을 꼭 듣고자 하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한 사람의 청취자로서 이해식의 음향이 인도하는 대로 듣고 해석해보고자 한다.

 

 

4.1. 원거리 샷으로 보기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해동신곡>의 외적인 형태, 크기, 구조, 연주악기 등 외적인 정보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악기편성

서양악기는 전혀 없이 국악기로 64명[작품집 [해동신곡](181쪽)에는 58명의 연주자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으나 대금 6명이 빠져있는 이 정보는 오류이다]의 연주자가 필요한 편성이다. 각 악기당 필요한 인원은 다음과 같다.

 

 

당적 2, 단소 10, 피리(세피리, 향피리) 5, 생황 2, 훈 3, 해금 5, 아쟁 5, 가야고 10, 양금 2, 운라 1, 장고 1, 대고 1, 징 10, 놋주발 1, 대금 6.

 

이 15~16개의 악기는 다양하게 조합되어 만화경 같은 음색을 선보인다.

 

 

2) 크기 및 구조

<해동신곡>은 모두 387마디로 연주시간은 대체로 26분[<해동신곡>의 해설에는 22분이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2006년 6월 2일~3일에 있었던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의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이상규 지휘)은 26분간 소요되었다]이 걸리며, 한 악장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악보상으로는 A, B, C, D, E의 다섯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김미림의 연구[김미림, "이해식의 해동신곡 분석 연구 -제의 절차 과정에서 비춰본 해동신곡의 구조 및 관현악법(A부분)”, [현대음악연구]Ⅰ, 서울: 오양연구소, 1993. 23~60쪽 참고. 신수미, “신국악 창작곡에 관한 연구: 이해식의 관현악곡 <해동신곡>을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1 참고]에 따르면, 이 다섯 섹션은 12거리 굿의 다섯 단계(부정, 영신, 오신가무, 공수신탁, 뒷전)에 상응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김용진은 “자유형식”으로 되어 있는 <해동신곡>을 작곡가의 작품 구상에 원동력이 되었던 “태동ㆍ예악ㆍ전개”라는 프로그램(아래의 4.2.를 참고하라)에 따라 서주부(A), 태동(B), 예악(C), 전개(D), 종결부(E)로 나눈다[김용진, “국악창작곡의 형식고 -합주곡을 중심으로-”, [예술원 논문집] 제28호, 서울: 대한민국 예술원 1989, 133-139쪽 참고]. 김미림은 작품의 후경층에 집중하여 분석하였고, 김용진은 음악적 프로그램(김미림의 용어로는 전경층에 가깝다)[후경층은 “역동적 전체의 상을 규정지어주는 근본 요소”로서 심영구조에 해당하고, 전경층은 후경층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로, 청중의 귀에 들리는 감성적 차원이라 할 수 있다. 김미림, "이해식의 해동신곡 분석 연구 -제의 절차 과정에서 비춰본 해동신곡의 구조 및 관현악법(A부분) -" 참고]에 근거하여 분석하였지만, 둘 다 작곡가의 말에 근거하여 작품을 이해하였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굿의 5단계나 “태동ㆍ예악ㆍ전개”의 프로그램이 <해동신곡>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더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고, 더욱이 음악적 프로그램을 “태동ㆍ예악ㆍ전개”라 해서 각 부분 B, C, D를 기계적으로 나누어 이 프로그램에 따라 칭하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그 이유는 아래에서 밝혀질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우선 전체를 음악적 제스처의 변화에 따라 “프롤로그, 제 1, 2, 3부(“태동ㆍ예악ㆍ전개”라는 명칭 대신), 에필로그로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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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1-103마디(A) - 약 8분

                                                     제 1부 104-193마디(B) - 약 6분 30초

                                                     제 2부: 194-277마디(C) - 약 4분 30초

                                                     제 3부: 278-354 마디(D) - 약 4분

                                                     에필로그: 355-387마디(E) - 약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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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시작과 끝맺음의 음악적 제스처가 두드러지고 이 둘의 시작 부분이 매우 유사해서 전체 음악에 일종의 틀을 만들어 주는 듯하다. “서주부, 종결부”라는 용어 대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라 칭한 것은 <해동신곡>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음향언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작할 때의 말이 끝날 무렵에 은근히 다시 상기되면서(레프리제 Reprise처럼), 더욱 진전된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금으로 조용하게 시작하다 놋주발의 트레몰로로 주의를 끄는 프롤로그의 첫 부분과 달리, 에필로그의 시작은 대금 대신에 세피리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곡을 전체적으로 끝맺는 음향은 프롤로그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인상적인 음색의 당적 솔로이며, 프롤로그와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차이가 있다. 제 1, 2, 3부의 구분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내용적으로 자세하게 다루게 되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4.2. 클로즈업하기: 교향시적 음악의 흐름

 

 

특정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흐름의 <해동신곡>은 태동ㆍ예악ㆍ전개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구상된 ‘교향시’같은 작품이다. 이해식이 생각하는 곡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태동은…커다란 움직임…고대적인 우리 민족의 태동(太動)을 상상한 것이고…예악이라 함은 중용과 같은 동양철학이라든지 우리 민족이 가진 독특한 생활양상을 상상한 것이고, 전개라 함은 우리 민족이 대대손손으로 영원히 뻗어나갈, 발전해 나갈 모습을 상상해 본 것입니다[이해식, [작곡노트 넘겨보기], 37쪽].”

 

 

앞서 언급되었듯이 한 음악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우선 이 작품에 깔린 프로그램을 참고로 하되 (‘전지전능한 작가적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이를 기계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음악 자체의 흐름에 귀 기울이며 접근해보고자 한다.

 

 

1) 음향적 병풍 또는 큰 움직임: 프롤로그

 

 

‘더하기’‘눈덩이’ 음향의 원칙

대금의 낮은 b매우 미미한 떨림(ppp)이 점차 커다란 움직임으로 자라나기 위해 여러 악기가 하나씩 첨가된다. 대금 독주에서 놋주발이 첨가되고, 다음 단계에서는 단소가 함께 하고, 다음에는 양금이 어우러지다가 징이 들어와 하나의 맺음(페르마타?의 사용)을 암시한다.

 

 

1-41마디의 음색적 흐름

 

                           대금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놋주발____ 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

 

                                      단소__________________________

 

 

                                          양금______ ___ ___________________

 

                                                                           징____

 

 

 

커다란 움직임일수록 그 움직임이 더디고 파악이 쉽지 않다. 바닷물의 표면은 늘 출렁이므로 움직임이 작고 잘 파악되는 반면, 수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마치 정지한 듯 거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은 법인데, 이런 원칙이 작품의 첫 부분에 잘 나타난다.

나지막하고 은근하게 시작하였지만, (42마디부터) 10개(a'ㆍc"ㆍe"ㆍb'ㆍf"음과 옥타브 반복)의 단소가 한층 노골적으로 지속음을 전면에 내세우면 훈이 더해지고, 징이 여리게(ppppp) 얇은 벽과 같은 배경음향을 만들어내면 56마디 6음의 대금이 합세하고 곧 이어 66마디 아쟁이 음향볼륨을 올려준다. 67마디 장고는 징의 배경음향에 강한 무늬(ff)를 놓아주고, 70마디 해금과 74마디 생황이 합세하더니 마침내 당적ㆍ양금까지 가세한다. 양금의 강한 트레몰로(ff)는 점차 강한 음향으로 정점(ffff)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아준다. 국악기로 어떻게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다 결국 103마디 총휴지(G.P.)에서 큰 파도 같은 음향의 위협적인 움직임이 갑자기 정지해버린다(101마디에서 대고가 하나의 맺음을 내린다). 이것은 조이고, 풀고 또 조이기를 반복하여 얻게 되는 완만한 긴장을 원칙으로 하는 국악적 음악전개와 좀 다른 것이 아닌가 한다. 한껏 긴장을 몰아가다 한꺼번에 갑자기(한 번 만에) 해소하는 방식은 서양적 드라마기법에 오히려 더 가깝다.

어쨌든 지속음은 소리를 ‘공간화’시키는 마력을 가진 듯하다. 마치 음향으로 만든 병풍을 멀리에서 점점 가까이로 가져와 보여주듯이 지속음은 끝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넓게 펼쳐진다. 그러나 이 공간적 효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지속음이 사라지는 순간에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이는 휴지부에서 지속음향이 끊어지자, 눈앞에서 점점 밀려오던 음향 덩어리tone cluster는 일순간에 허상처럼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해식이

 

“나는 색과 소리를 공감각적 공간으로 본다. 즉 색은 보이는 공간이고, 소리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이해식의 [작곡노트 넘겨보기], 146쪽. 윤신향, “창작국악의 신분연구 Ⅰ: 이해식의 해금을 위한 <像>(1977)을 중심으로”, 한국음악학학회 세미나, 2007. 2. 24. 발표문도 참고]

 

라고 언급한 것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전통악기로만 가지고 음색을 만들어낸 병풍 같은 지속음은 표면이 매끄러운 ‘산업화된’ 서구적 음향과 달리 뭔가 투박하고 올이 굵은 삼베 같은 정서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독특한 음색의 끊임없는 변신으로 그 속을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악보 1) 46마디부터 55마디까지(186쪽)[악보 예의 출처는 모두 이해식, [해동신곡](1983)이다] 

 

 

 

더욱이 단소의 음들이 6/4박자의 마디 간격으로 모두 플렛(♭)에서 제자리표(♮)로 반음적 진행을 반복하여(훈의 경우 순서가 단소와 반대임) 연주되므로, 음향적으로 숨 쉬는 호흡과 같은 효과를 준다.

따라서 프롤로그를 전체적으로 보면, 거창하지만, 동시에 (어떤 측면에서는)[프롤로그에서는 약함(弱)에서 강함(强)으로, 적음(少)에서 많음(多)으로, 작음(小)에서 큰 것(大)으로 가는 일관된 원칙으로 되어 있다] 단순한 어법으로 앞으로 무슨 얘기(또는 어떤 음악적 사건)가 전개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2) 놀이의 변주, 선율과의 유희

 

 

제1부(B)

음악적 분위기가 바뀐 제1부, ?의 시작을 놋주발이 다시 신호음처럼 알리면, 운라와 양금이 글리산도로 앞부분과 다른 음향적 색채를 선보인다. 더욱이 제1부에서는 프롤로그에서는 거의 부재하다시피 했던 (민요적이지만, 이해식이 작곡한) 선율(악보 2)이 등장인물처럼 나타난다. “이해식의 굿판(작품)에서 가장 출중한 역할을 하는 것은 예나 이제나 피리”[윤중강, “KBS국악관현악단 제 109회 정기 연주회 <등장춤> 해설”, KBS오케스트라(1998. 12월호), 29쪽]라는 윤중강의 주장처럼 여기서도 피리 솔로가 두드러진다. 이 선율은 앞으로 나오게 될 다양한 선율들의 모태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악보 2) 122-142마디의 세피리 선율 (192~3쪽)

 

 

 

 

 

프롤로그가 공같이 작은 눈이 굴러 엄청난 눈덩이로 커져가는 음향의 공간화를 실험했다면, 제1부는 선율과의 유희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롤로그의 정적인 느린 움직임과 달리 제1부는 변화가 다양하다. 선율의 역할도 각 부분에 따라 달라진다. 더욱이 악기의 조합은 반복이 거의 없이, 매번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므로(예를 들면, 양금+운라+놋주발/가야금+양금+운라+대고+징+놋주발/대고+징/세피리+장고+대고/당적+단소+대금+세피리+해금+아쟁+가야금+양금+운라+장고+대고+징 등등) 음색은 끊임없이 변하는 총천연색 컬러를 가진다.

제1부 ?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보면 선율과 선율의 존재를 약화시키거나 방해하는 요소들 간의 변주법, 즉 놀이가 아닐까 한다. 즉 (104부터 161마디까지) 세피리향피리대금이 선율의 두드러짐을 과시하지만, 리듬과 음정이 정해지지 않은 가야금이 등장하는 162마디부터 대금솔로의 독자성은 위협을 당하더니 당적과 단소마저 서로 맞지 않는 리듬패턴으로 합세하여(각기 임의대로 연주함) 대금 소리를 교란시킨다. 이 음향은 마치 무질서하고 뭔가 잘 못된, 연습이 안 되어 맞지 않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하지만 다시 향피리가 등장(악보 3)하여 무질서 상태를 평정하고 선율의 건재함을 과시한다. 또한 아쟁/가야금과 일종의 대화를 시도하며 공존을 모색하기도 한다(193마디까지).

 

 

 

악보 3) 마디 179부터 향피리 선율(196쪽)

 

 

 

 

 

이 향피리 선율은 앞의 세피리(악보 2) 보다 한 음 낮아진 e"으로 시작하지만 그 제스처는 비슷하다. 그러나 향피리의 선율은 첫 인상만 비슷할 뿐 곧 세피리와 다르게 진행되며 앞서 나온 여러 선율(특히 대금 선율 156-173마디)을 다양하게 수용한다.

 

제2부(C)

서양음악의 튜티와 같은 유니슨(194-195마디)으로 시작하는 제2부(C)도 제1부와 유사하게 선율과의 놀이이지만, 조금 다른 차원이다. 즉 여기서는 국악에서 낯선 요소들을 훨씬 전면에 드러내며 선율놀이를 전개하고 있다. 먼저 제2부의 시작부분을 보자.

 

 

 

악보 4) 194-197마디 (197쪽)

 

 

 

이 부분은 악기군의 대조, 튜티와 솔로의 대조, 리듬의 대조, 강력한 선율과 섬세한 선율의 대조 등 (이 부분만 보면) 형식적으로 서양의 17/18세기 바로크 콘체르토와 유사한 느낌마저 든다. 4분음표 모두에 악센트가 있는 식의 리듬은 국악에서는 드문 음악적 형태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다 달세뇨의 도돌이표가 있어 반복을 통해 강조된다. 그러나 이러한 선율적 과시는 대고의 “쿵덕쿵” 리듬에 의해 중단되어, 잠시 잊었던 국악적 분위기를 다시 일깨워준다. 물론 독특한 국악기 합주의 음색과 (196마디부터) ‘받는’ 제스처로 응답하는 대금 선율은 국악적 근원을 한 번도 완전하게 부인한 적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의 국악적으로 낯선 선율 놀이는 237마디의 강한 (fff) 다이내믹의 유니슨에서도 두드러진다. 이 부분은 194-197마디(악보 4)의 그림자처럼 비슷하게 시작하다가 252마디부터는 당적, 단고, 대금, 해금, 훈의 지속음과 양금의 트레몰로 음향 및 향피리 선율의 조합으로 진행되는데, 이때 향피리 선율은 불협화적 지속음(252-263마디)에 덮여 거의 실체를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불분명하게 들린다. 수평적 진행의 선율과 수직적인 화성의 대비는 국악에서 낯선 것이지만, 여기서는 지속음을 통해 불협화음을 만들어내어 수평과 수직의 대비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선율적 유희는 단소와 양금만으로 된 선율(264부터)이 진행되다가 강한 글리산도와 함께 끝을 맺는다.

긴장과 이완, 메기고 받는 전통적 형식을 통해 한국인의 놀이가 지속되어왔듯이, 제1부, 제2부는 선율의 명징함과 애매함이라는 대조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다양한 놀이를 형상화하고자 한 듯하다. 무엇보다도 16가지 악기의 다양한 조합을 통한 음색의 끊임없는 변화는 놀이의 차원에 독특한 전통적 색채를 입혀주는 역할을 한다.

 

 

3) 새 선율의 창조를 위한 준비

 

 

제3부(D)

이제 다시 맑은 운라음향으로 시작하는 제3부의 음색은 아쟁ㆍ양금ㆍ운라 그리고 놋주발의 앙상블로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런데 이 악기 조합은 제1부가 시작할 때 사용한 적이 있는 것이다[<해동신곡>에서 유일하게 악기 편성이 반복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제1부와 달리 여기서는 부는 악기 선율의 출현은 지연되고, 기대했던 민요적 선율대신 해금ㆍ생황ㆍ단소ㆍ대금, 훈의 트레몰로(317-326마디) 음향 덩어리가 나타난다. 선율을 삼켜버릴 듯한 이 음향덩어리는 뚫어보기 힘든 그로테스크함(뭔지 알 수 없지만 기괴함)의 느낌을 주는데, 더욱이 도돌이표로 두 번 반복되어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킨다.

 

 

 

악보 5) 317-326마디(208/9쪽)

 

 

 

 

 

그런데 이 불확실한 음향덩어리는 뭔가 나중에 나올 아름다운 것을 위해 꼭 통과해야 할 산고(産苦)의 터널과 같아 보인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여기에 나중에 나올 ‘미래적’ 선율의 한 부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자의 용어 ‘미래적’ 선율이라 함은 <해동신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부각되는 당적 선율을 의미하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서 미리 ‘미래적’ 선율을 소개하고자 한다.

 

 

 

악보 6) 374-379 마디의 당적 선율(213/4쪽)

후반부 두 마디: e" - f" - a" - a"♮- b" - a" -f" - a"(마지막 네 음이 반복구임)

 

 

 

 

 

구체적으로 말하면 위의 악보 5)에서 319~321마디의 단소 선율 a'-a'-b'-a'이 곡의 끝부분에 나오는 이 ‘미래적’ 당적 선율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음향덩어리 외에도 이 ‘미래적’ 당적 선율은 향피리 선율과 대금 선율에서도 그 자태를 내비췬다. 다시 말해, 향피리ㆍ대금 선율에서 374마디의 ‘미래적’ 당적 선율 시작부분(f"-e"-a"-b"-d"'-b")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악보 7) 336마디의 향피리 선율과 342-343마디의 대금 선율 (211/2쪽)

 

 

 

 

더욱이 (‘미래적’ 선율이 나오기 전) 353마디의 (평범한) 당적 선a"-b"-d"'-b"-a" b"-a"-f"도 약간 변형되어서 나중에 ‘미래적’ 당적 선율의 한 부분(376마디)으로 사용된다. 이제 이 부분들을 모으고, 조금 다듬어 다르게 배열한다면 새로운 창조물이 탄생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3부는 전체가 뒤에 나올 것에 대한 준비로 충만한 셈이다.

 

 

4) 미래적 선율 - 열린 美의 세계(에필로그)

 

 

제3부에 이어지는 에필로그(345마디)는 조용한 지속음으로 음악적 제스처가 바뀐다. 이것은 작품의 시작 부분에 나왔던 음향적 공간을 회상하게 만든다. 세피리와 대고의 배경음향을 벽처럼 세워놓고, 앞에서 여러 단계로 준비되어진 당적의 ‘미래적’ 선율(ff)이 이제 앞에서는 전체로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예기하지 못했던 하나의 연속적인 선율로서 선보인다.

한편으로, (피상적으로 들으면) 이 ‘미래적’ 선율이 자아내는 정서를 호젓한 야산에서, 또는 보름달이 뜬 달밤에 외로움을 달래는 나그네의 피리소리로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음악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들으면, 이 에필로그의 ‘미래적’ 선율은 모든 음향의 다양한 벽들을 뚫고 다양한 과정을 통해 조탁(彫琢 carving)되어진 특별한 미적 창조물로 여겨진다.

특히 후반부 선율(e"- f"- a"- a"- b"- a"- f"- a" 악보 6 참고)은 전통적인 색채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분위기가 혼합되어 있는 정서를 느끼게 한다. 현대적 정서는 아마도 매우 계산된 선율진행에 기인하는 것이리라.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 후반부의 3도와 반음으로 이루어진 음정 진행은 f"-a"-a 3음과 b"-a"-f" 3음이 일종의 대칭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잦은 반음의 사용으로 인해 전통에서, 또는 즉흥적으로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4음(b"- a"- f"- a")은 8회나 연속적으로 반복되다가 사라지는 듯 겹 페르마타(doube fermata)로 끝나지만, 8회라는 숫자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얼마든지 반복이 가능함을 보여줌으로써 열린 상태를 암시한다. 그러나 반음 진행의 굴곡이 심한 아름답고도 슬픈 이 선율은 (밝은 미래를 연상시키기보다) 희망과 절망을 넘어서는 어떤 신비함을 내뿜는다. 전통악기로 표현된 한국의 음향은 근거없는 낙관주의나 미래로의 희망을 말하기보다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미의 세계를 열어 보여주고, 서양음향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만 여기던 전통음향의 아름다움이 현대에 어떤 것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상상해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이해식의 교향시적 음향실험

 

 

지금까지 서술을 종합하여 생각을 한 걸음 더 발전시켜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작곡가가 말한 “태동ㆍ예악ㆍ전개”라는 프로그램이 음악의 구조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직접적인(뚜렷한) 형식적 근거가 된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사실이다. A가 오히려 음악적 내용으로 보면 태동(太動)으로 연상될 수 있고, B, C가 예악, D, E전개로도 볼 수 있지만, 반드시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악보상의 B, C, D 구분을 “태동ㆍ예악ㆍ전개”의 프로그램과 동일시하여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오히려 작곡가가 명시한 이 프로그램은 작품이 흘러가는 (추상적인) 큰 줄기로 보는 것이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둘째 표현하고자 하는 음향적 상상력에 따라 국악기든, 서양 장르든 모두 도구로서 사용하는 이해식의 원칙을 <해동신곡>에서도 잘 볼 수 있었다. 운라, 놋주발과 같은 독특한 음색이 두드러지지만, 전체적으로 국악기 음색을 가진 <해동신곡>은 장르상으로 보자면 서양음악의 교향시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악적 음색으로 국악에 낯선 자유로운 교향시를 마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음악적 내용은 천천히 움직이는 음향적 병풍이 앞으로 올 음악적 사건에 대해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놓고, 선율의 다양한 윤희가 실험하듯, 과시하듯 전개되다가 다시 처음의 조용한 톤으로 이 모든 것을 통해 도달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것은 국악기 당적으로 연주되는 ‘미래적’ 선율인데, 전통과 현대가 만나서 이루어낸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즉 악기는 전통적 국악기이지만 이 선율이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전통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정서로도 얼마든지 공감하고 현대적 美감각으로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셋째, ?해동신곡?의 독특한 음향적 실험이 가지는 의미는 끝이 없을 듯한 반복으로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는 전통음악의 생리와 다르게. 국악기로도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해동신곡> 악보에 작품의 기본원칙이라 할 정도로 자주 있는 반복기호는 주로 타악기에 해당하거나 음향 덩어리의 조성을 위한 경우에 사용되었다. 선율악기의 경우에 반복은 단순히 같은 것을 반복하는 차원이 아니라, 강조를 위한 것이거나 변주된 것이라서 국악에서 흔한 단순 반복과 차이를 가진다]. TV 역사극의 긴장된 부분에서는 거의 항상 서양 오케스트라 음향을 사용해온 것은 국악기로는 터질 듯한 극적 긴장감을 형상화 할 수 없다는 일반적 고정관념을 정당화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해동신곡>의 실험을 통해 이런 통념은 얼마든지 깨어질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해동신곡>은 국악기 음향을 현대적 그릇 속에 용해하고자 한 것이며, 이해식이 경험하였던 전통적 음향을 현대식으로 번역한 작품이자, 새로운 미래적 선율을 탐구한 작곡가의 실험이라 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해, 전통적 음색과 전통악기를 가지고 교향시가 가능한가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며[한국인의 삶을 전통적 음색으로 그려내었다 할 수 있는 <해동신곡>의 음향적 실험은 안익태의 교향시 <코리아 판타지>을 연상시킨다. <해동신곡>과 달리 1930-40년대에 창작된 <코리아 판타지>는 한국인의 삶을 서양악기의 음색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아름다운 한국의 음향을 현대적으로 그려내고자 한 탁월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어쩌면 <해동신곡>의 새로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1. 악보 및 음반자료

 

 

이해식, 국악관현악곡집 『해동신곡』, 영남대학교출판부 1983.

이해식, CD음반 [바람과 춤터] 예성음향 YSCD-008, 1999.

이해식, 동영상 자료 [해동신곡], 국립국악관현악단 명곡선 1 “두레에서 매굿까지”, 2006. 6. 2~3.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지휘 이상규).

 

 

2. 논문 및 단행본

 

 

고수영, “이해식 해금독주곡 <춤사리기>의 음악분석과 연주기법”,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

김미림, “이해식의 해동신곡 분석 연구 -제의 절차 과정에서 비춰본 해동신곡의 구조 및 관현악법(A부분)”, [현대음악연구]Ⅰ, 서울: 오양연구소, 1993. 23~60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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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미, “신국악 창작곡에 관한 연구: 이해식의 관현악곡 <해동신곡>을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석사논문 1991.

정지영, “이해식류 가야고 산조 <흙담>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

윤신향, “창작국악의 신분연구 1: 이해식의 해금을 위한 <상(像)>(1977)을 중심으로”, 한국음악학학회 세미나, 2007. 2. 24.

이경분, “아도르노, 아이슬러 그리고 Composing for the film”, 『서양음악학』제7집, 서양음악학회지, 2004년. 27-47쪽.

이해식, 『작곡노트 넘겨보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

이해식, “음악사적 의미로서의 작곡가의 작품양식연구 -이성천의 평론에 투영된 나의 작품양식의 재접근-”, 『음악과 문화] 5호, 세계음악학회 2001.

허윤희, “이해식 작곡 <두레사리>의 국악관현악법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

2006년 한국음악학학회 20주년 학술대회 “오늘의 한국 창작음악 어떻게 볼 것인가”, 2006. 11. 9. 서울 충무아트홀 심포지움에서.

 

 

 

검색어: 이해식ㆍ<해동신곡>ㆍ한국작곡가ㆍ현대 국악ㆍ창작 국악ㆍ전통악기의 교향시

 

 

Abstract

 

 

A Symphonic Poem of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s,

Haesik Lee's <Hαedongsingok>

 

 

Lee, Kyung-Boon

 

 

The Korean Composer Lee Haeshik studies Korean traditional music, because he wants to write his music unlike the traditional music. His work <Hαedongsingok 海東新曲>(1979) is a symphonic poem in which musicians play 16 different traditional Korean instruments. This essay is concerned with the content of this work in which the program music is divided in the movements “Taedong(太動 huge movement), Yeak(禮樂 ceremony and joy), Jeongae(展開 development)". Lee Haeshik uses various tone colors and variation of melodies for preparing the final melody, a Danagiok(a flute) solo. Showing how beautiful a modem piece of Korean music with traditional instruments can be, <Hαedongsingok> appears as a successful experiment for a new music with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s.

 

 

   

Keywords: Korean Composer, Lee Haesik · Haedongsingok, Symphonic

poem of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s, new music of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