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의 말

주례사-1-. 1991년 6월 8일

노고지리이해식 2006. 8. 6. 08:32
 

主 禮 辭

 

우리는 춘양가절(春陽佳節)이니 중추절(仲秋節)이니 하여 인간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좋은 계절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신랑 강남근君과 신부 조은경孃이 결혼하는 오늘은 바야흐로 천중가절(天中佳節)에 접어들고 있는 가장 좋은 때 입니다. 즉 태양이 우주의 한 가운데에 놓여서 일년 중  그 기운이 가장 강한 계절이요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이렇게 가장 찬란한 시절에 젊고 아름다운 한 쌍이 축복의 열기 속에서 인생의 농사를 시작하려고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행복의 모습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오늘 이처럼 많은 사람의 정성어린 축복 속에서 서로의 인생을 결합하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 이 한 쌍의 앞날의 행복이 기리기리 계속되도록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강남근君은 명문 홍익대학을 졸업한 예비역 학사장교로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인 금성사에 입사하여 지금은 금성중앙연구소의 중견 엘리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일반 가정의 일상생활 치고 금성 제품 없는 가정이 없을 정도로 금성은 우리와 가까이 있는 기업인데 그런 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부서가 곧 금성중앙연구소요 거기서도 가장 촉망 받는 연구원 강남근君입니다. 바꿔 말하면 신랑 강남근君은 직접이든 간접이든 우리의 일상생활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부 조은경孃은 앳된 여고생의 티를 지닌 채 영남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한 때가 바로 엇 그제 같은데 어느덧 대학원 졸업을 눈앞에 두고 또 오늘 여러분의 축복 속에 화촉을 밝히게 되니 은경孃을 가르친 선생으로서 또 주례까지 맡게 되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이 자리의 신부 조은경孃을 6년이 되도록 가르치면서 보고 느낀 소감은 정답고 예절바른 인품과 조용한 操身의 몸가짐이 분명 한양 조氏  양가(良家)의 재원임을 거듭거듭 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하객 중에 섞여있는 신부의 많은 학우와 동료들이 한편 섭섭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솔한 축복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신부 조은경孃의 주례 청탁을 처음엔 완곡(婉曲)하게 사양했습니다. 왜냐하면 은사로서 제자의 결혼을 주례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겠으나 어쩐지 제가 벌써 인생의 후반기를 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들  fiancee(fiance)들이 제게 찾아와서 부탁하는 데는 사양의 마음이 싹 가셔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신랑 강남근君이 한 눈에 구성 있는 남자, 든든한 남자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강남근君은 진주 강氏 명가의 특급 명사수였기 때문입니다.

결혼이란 두 사람은 물론 직접으로는 양쪽 가문이 연결되는 새로운 사회를 이루는 것이고 여기 모이신 여러분과도 새로운 사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 새로움 중에 가장 강한 싱그러움이 곧 신랑과 신부라 하겠습니다. 지금 강조한 새로움도 단순한 새로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새로움을 가능케 하고 잉태하고 재창조하는 가능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태어난 가문이 명문양가이지만 그 성장 배경이 다르고 가풍이 다르기 때문에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는 누구보다도 서로의 이해가 있어야 함으로써 원만한 가정을 꾸려 가리라 믿습니다. 이해를 영어로 바꾸어 보면 understand입니다. 아래에 선다는 뜻입니다.

서로 상대방의 아래에 설 때 진정한 이해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신뢰가 싹트는 것입니다. 신뢰는 곧 사랑입니다. 사랑을 얘기할 때 흔히 성경 구절의 사랑은 오래 참는다는 것을 인용합니다만 이해 없는 인내심은 스트레스만 쌓이게 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이해는 마음의 넓은 도량이요 그 도량 속에 사랑을 담는 것입니다.

방금 신뢰와 사랑을 얘기했습니다만  신뢰는 곧 진실함입니다. 진실은 인격 존중으로 통합니다. 인격 존중의 구구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만 신랑 강남근君, 신부 조은경孃,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의 인격 존중을 잊지 마십시오. 인격 존중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이끌어 가는 가장 최소의 기본 조건이요 공배수 입니다.

이제 주례를 맡은 사람의 마지막 당부요 인생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진리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실천하기가 귀찮을 따름입니다. 부부의 진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실로 맺어진 두 사람의 힘을 합치면 이 세상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부부의 힘은 어느 것 보다도 강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두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인생 성취의 행복을 누리시고 하객 여러분들도 여기 빛나는 한 쌍의 앞날에 다시 한 번 축복의 성원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대구 귀빈 예식장) .


                                             1991. 6. 8.

               

                                                            주례 이 해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