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매일춘추, 1991년

프로듀서(1991. 9. 4)

노고지리이해식 2006. 8. 10. 12:47

           

                         

 

 

프러듀서(1991. 9. 4)


 李海植<嶺南大 교수ㆍ국악>


매스컴 학자 W. 쉬람(Wilbur Schramm)은 인간의 발명 중에서 가장 큰 폭발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원자탄과 TV를 들었다. 인간의 삶 사이에 전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파 속에 삶이 있다고 할 만큼 방송, 특히 TV는 강력한 매체로써 우리의 생활환경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방송은 각기 포맷(format)이 다른 단위 편성의 프로그램의 연속 편성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포맷을 잘 살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방송 프로그램의 척도가 갈라진다. 이러한 프로그램 포맷의 최고이자 최종 책임자를 프러듀서(producer)라고 부른다.

프러듀서는 흔히 피디(PD/producer or planning director)라고 약칭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피디라면 일반적으로 방송사의 프러듀서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의 수습피디를 에이디(AD/associate director)라고 부른다. 피디는 프로그램 제작의 왕이다. 일류 연예인이든 저명인사든 힘센 정치가든 일단 스튜디오에 들어오면 제작 기획에 따르는 피디의 지시대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류 피디는 자유분방한 창조력은 물론 사람을 잘 낚아내는 어부여야 하고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탁월한 흥행사의 기질도 있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방송 메카니즘에 능숙한 재치 있는 오퍼레이터(operator)여야 하며 제작 상의 많은 사람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유능한 행정가여야 하며 치밀한 인솔자여야 한다.

피디는 항상 새로운 포맷을 구상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회학자인 동시에 시청자의 삶에 신선한 복음(gospel)을 뿌리는 교주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 방송사의 여러 프로에 똑같은 효과음(예를 들면 밤의 부엉이 소리 같은)이 쓰이는 것을 모른다든가, 세종시대의 궁중 사극에 산조 가야고가 쓰이는 것을 지나친다든가, 서양의 커플댄스가 엉터리로 추어지는 것에 무감각 한다든가, 가요에 어울리지 않는 연습되지 않은 백 댄스(back dance)를 남발하는 등의 프로는 피디의 책임이자 역량 문제이다. 실력 없는 피디일수록 그의 카리스마는 문화 사업자로서 사회에 해악만 끼치게 된다. 점차 생활이 윤택해질수록 시청자는 보다 다양하고 정제된 프로를 요구하게 될 것이고 피디는 더욱 유망한 직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