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1984. 7. 11)
레슨(1984. 7. 11)
李海植<嶺大 국악과 교수ㆍ작곡>
“자신이 한때 겪었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켜 동작, 선, 색, 음, 또는 언어 등의 수단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그와 똑같은 감정을 체험토록 전달하는 것이 예술 활동이다.” 톨스토이의 말인데 이것을 예술가의 레슨(개인지도) 활동이라고 바꾸어 말 할 수 있겠다. 또 칸트는 예술은 곧 천재가 가지는 기술이라고 했는데, 음악의 천재는 어릴 적부터 발굴하여 레슨에 의하여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스트라빈스키(Igor Feodorovich Stravinsky, 1882~1971)는 림스키 콜사코프(Nikolai Andreevich Rimskii Korsakov, 1844~1908 )에게 작곡 레슨을 받음으로써 음악사에 그 이름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신라 시대의 어느 임금*은 지리산 깊숙이 은거하는 귀금선생에게 총명한 두 소년을 보내게 하여 거문고 레슨을 받게 함으로써 거문고 음악의 전통을 잇게 했으니 이 어찌 훌륭한 예술 실천이 아니겠는가?
불세출의 대 피아니스트요 작곡가, 지휘자였던 리스트(Georg Friedrich List, 1789~1846)는 바이마르에 머물면서 유능한 청년들에게는 교습비도 받지 않고 피아노 레슨을 했던 것이니 이러한 본보기의 하나가 오늘날 거대한 서양음악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리라.
동양적인 사고로써 예술의 <예>(藝)는 본래 심는다(種樹)는 뜻이 있으며 <술>(術)은 길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 일각에선 과학진흥을 위한 영재교육이 활발하게 거론되면서도 천재를 찾아내 가꾸는(藝) 음악 레슨의 길목(術)은 막혀있는 실정이다.
레슨이 지난 80년부터 주로 대학입시를 위한 사치성 과외에 포함되어 금지 되었다가 81년부터 몇몇 대학에 예능교실이 개설되어 떳떳한 레슨이란 겨우 명색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얘기코자 하는 것은 음악대학을 신부 후보생의 예비과정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나 레슨으로 치부하려는 사람들이 하기 쉬운 각양각색의 진기한 비밀 레슨이 아니라 모두(冒頭)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진정한 레슨으로써 바랄 수 있는 음악의 전달 활동을 말한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고등학교나 음악대학에서는 교육과정에 의한 레슨이 행해지고 있지만 이와 병행해서 능력 있는 사람들의 레슨 활동을 개방하여 음악의 자유로운 조기교육에 박차를 가하는 활력소를 살려야겠다는 것이다.
명교수란 명의(名醫)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of Chios, ?~? BC 460)의 선서를 염두에 두고 인간의 체력을 살피는 의사처럼 명교수가 음악의 천재를 찾아서 맥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흔히들 체력은 국력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재외(在外)의 젊은 한국 음악가들에게서 생명의 율동이 넘치는 음악이 국력인 것을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각고의 레슨 끝에 단지 예술을 실천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 속 깊이 뚫고 들어가서 그것에 가치(價値)하고 있는 것이다(1984. 7. 11. ?每日新聞? 칼럼 “每日春秋”/대구).
*참고
여기서 어느 임금이란 신라 제24대 진흥왕이다. 진흥왕 때의 악사(樂師) 옥보고(玉寶高)의 거문고 음악이→속명득(續命得)→귀금(貴金)에게 전해졌으나 귀금이 지리산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임금이 거문고 음악(琴道)이 전해지도록 이찬(伊飡) 윤흥(允興)을 남원(南原)공사로 임명하였는데 윤흥은 두 소년 안장(安長)과 청장(淸長)을 귀금에게 보내어서 거문고 레슨을 받게 했다. 金富軾, ??三國史記?? 卷 第三十二 第一 樂 원문은 아래와 같다.
羅人沙湌 永子玉寶高 入地理山雲上院 學琴五十年 自製新調三十曲 傳之續命得 得傳之貴金先生 先生亦入地理山不出 羅王恐琴道斷絶 謂伊湌允興方便傳得其音 遂委南原公事 允興到官 簡聰明少年二人 曰安長淸長 使詣山中傳學 先生敎之 而其隱微不以傳 允興與婦偕進曰 吾王遣我南原者無也 欲傳先生之技 于今三年矣 先生有所柲[秘]而不傳 吾無以復命 允興捧酒 其婦執盞膝行 致禮盡誠 然後傳其所秘飄風等三曲 安長傳其子克相克宗 克宗制七曲 克宗之後 以琴自業者非一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