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대구 영남일보)

자동차(1994. 5. 11)

노고지리이해식 2006. 8. 21. 09:31

   

 

자동차(1994. 5. 11)

 

 

 이해식(영남대 음대학장․국악작곡)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7~1927)은 세계무용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미국 출신의 현대무용가이다. 그는 베토벤이나 바그너의 음악에 맞추어 혼자서 50인 역의 춤을 추는 등, 고대 그리스에 정신적 바탕을 둔 불세출의 무용가이다. 그러나 몇 번의 결혼생활이 실패로 끝나고 사랑하는 아들마저 익사하는 등, 그의 춤과 생애는 기복이 많았다.

그는 어느 날 하늘거리는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멋진 스포츠카에 올라 출발하는 순간 기다란 스카프가 뒷바퀴에 감겨서 그만 비극적으로 삶을 마치고 말았다.

 

영국의 동물학자 D. 모리스(Desmond Morris)에 의하면 많은 동물들은 자기방어의 기선을 잡기 위하여 눈(眼)을 진화시켜 왔다. 나비들은 아름다워 보이는 날개에 한 쌍의 눈 모양의 반점을 가지고 있다가 위협자가 나타나면 날개를 펴고 그 반점을 반짝거려서 적을 쫓는다. 인간의 행동이나 상품에도 알게 모르게 이러한 방법이 이용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곧 자동차이다.

번쩍거리는 전조등, 사납게 드러난 이빨처럼 보이는 라디에이터 그릴(radiator grill), 거기에다 주로 지프( Jeep)형 자동차의 위협적인 보조 범퍼, 금지된 전광 장치, 젊은이들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에 맹견(猛犬)의 입처럼 씌워진 새카만 에어 가드(air guard), 전화기도 없으면서 하늘을 찌르는 듯한 무선 안테나, 이런 상품들은 더욱 발전적으로 개량되어서 운전자들의 관심을 끄는 반면 타인에게는 무서움을 주는 공격자로 나선다.

위와 같은 공격적 전시행동은 순간적으로 분화된다고 모리스는 계속한다. 그 한 가지가 심하게 얼굴을 찌푸리는 행동으로써 자동차에서는 무작정 하이 빔(high beam)을 켜는 것이라 하겠다. 또 한 가지는 음성적 시위의 공격감정인데 그것은 무턱대고 경적을 울려대는 행동이라 하겠다. 공격충동이 다소곳한 도피충동보다 더 지배적일수록 그 얼굴은 보다 앞쪽으로 내밀어지는 행동을 취하게 되는데 이런 보기는 접촉사고를 내고도 오히려 목청을 높이는 행위라 하겠다.

자동차는 인간이 편하고자 하는 도구일 뿐인데도 한 없는 욕망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앞서 던컨의 비극적 최후가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자동차에 관한 또 하나의 욕망은 특히 멋 없는 서양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인데 그것은 뒷 선반에 티슈(tissue) 상자를 놓음으로써 카섹스(car sex)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참고 문헌

Desmond Morris(趙曄 譯), [털 빠진 원숭이], 서울: 載東文化社, 1980.

Isadora Duncan(柳子孝 譯), [이사도라 이사도라], 서울: 母音社, 1978년(10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