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위촉(1994. 6. 29)
작품 위촉(1994. 6. 29)
이해식(영남대 음대학장․국악작곡)
베르디의 호화스러운 오페라 「아이다」는 1869년에 완성된 스에즈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집트의 태수가 위촉한 작품이다.(당시 이집트는 터어키의 지배 하에서 세습제의 태수가 있었음). 비용을 아끼지 않고 탈고된 「아이다」는 1871년 카이로에서의 초연이 대성공한 이래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는 레퍼토리의 하나가 되었다.
현재 국내에서 실생활에 관련된 미술활동은 물론 대형 조형물의 공간을 위한 미술작품 위촉이 왕성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적 심미안은 제외하더라도 한 때 미술품이 투기의 대상에까지 오른 현상은 그만큼 대중적인 관심이 있었음의 증거이다.
눈을 돌려서 음악 쪽을 보자. 외국악단이나 수준 높은 국내 교향악단의 연주회장은 유료청중이 성황을 이룬다. 그런데 이들 연주회장의 레퍼토리는 거의 외국작품이고 국내 작곡가의 작품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는 지경이다. 마땅한 작품이 없으니 연말의 송년연주에는 베에토벤의 교향곡 「합창」이 단골메뉴로 연주되고 광복 40주년이 넘는데도 지금까지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에 필적할만한 기념작품을 들어 볼 수가 없다.
작품이 빈곤한 원인은 한국음악의 구조적 배경에 있다. 졍책 입안자들의 보고서에서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이란 문구에 포함된 내용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향수(享受)할 정도로 세밀한 편은 아니다. 인류사에서 국가의 융성과 예술의 발전은 서로 비례함을 알 수 있다. 차제에 외국처럼 자국의 작품이 낀 연주회는 대관료와 세금의 혜택을 주든가 국가행사에 자국의 작품을 꾸준히 위촉하는 것도 좋은 작품을 남기는 한 방편일 것이다.
그동안 내게 청탁된 「문화산책」의 원고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또 다른 위촉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비록 그것은 작을지라도 국가가 융성하는 세부적인 원동력이 된다. 동시에 내겐 즐거운 스트레스이면서도 끊임없이 생동하는 삶의 확인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이 칼럼을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