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매일춘추 1984년)

방송(1984. 8. 8)

노고지리이해식 2006. 8. 23. 00:51
 

               

 

방송(1984. 8. 8)


李海植<嶺南大 국악과 교수ㆍ작곡>

 

라자스펠트(Paul F. Lagarsfeld)는 “라디오의 힘만이 원자탄의 위력에 비길 수 있다.”(The power of radio can be compared only with the power of the atomic bomb)고 라디오 전성시대의 방송을 갈파한 바 있다. 지금은 TV의 힘만이 핵무기에 비길 수 있는 시대로써 우리는 좋든 싫든 생활의 일각이 되어버린 방송 속에서 살고 있다.

AM방송은 TV의 그늘 뒤로 밀려서 지난날의 영화가 덜한 것 같아도 헤아릴 수 없는 리퀘스트(request)를 보면 잠재된 청취율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또한 AM방송은 흘러넘치는 대중가요의 질적 향상이 요구된다.

음악 공해시대에 오디오의 콤포 시스템(component system)으로도 각광받는 FM방송의 다이얼을 돌려보면 주로 외국의 팝송이 단말마(斷末魔)처럼 들린다. 구색 맞추기로 편성된 순수음악 프로는 이제 아주 고답적인 방송 스타일이 된 지루한 해설로 청취를 강요한다. TV 채널로 옮겨보면 매너리즘에 젖은 <드쇼>(드라마와 쇼프로)가 거의 화면을 번거롭게 한다.

사극을 보면 언어와 의상은 전통적이면서 그에 따른 음악은 서양 것이니 비동질(非同質)이 동시적(同時的)으로 정착된 듯한 착각을 가지게 하는. 본보기이다. 한 마디로 세심성 없는 제작 태도이니 사극의 효과음이 어린이 프로에도 자주 나오며 방송사의 피아노들은 하나같이 조율이 되어있지 않다.

T. S.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 1888~1965)는 하나의 토착문화가 외래문화에 의해서 어지럽혀진 후에 남는 악영향은 그리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특히 방송이 저지르는 문화적인 폭력을 별반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매스미디어(mass media)의 본질은 예술보다는 대중문화를 수용하려는 속성이 강하고 또 대중은 민속예술에 공감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새 것이라는 감각은 낡은 것이라는 감각의 탈바꿈에 의해서 생긴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치에서 보다 정성을 들이는 심층적인 제작으로 속성을 극복하는 것도 방송의 재미가 되리라. 이의 가장 좋은 기회가 방송의 지방시대 선언인가 하여 모름지기 방송의 지방자치가 도래하는가 싶더니 정작 기대가 이른 것 같다.

다시 엘리어트는 하나의 국민문화는 무한한 지방문화의 모든 결과이며 이것을 다시 분석해 본다면 그것은 더 작은 여러 가지 지방문화로써 구성되었음을 발견할 것이라고 했다. 귀중한 외화로 저속하고 허름한 외국방송을 들여다가 대중을 오락적 도피에 빠지게 하는 경쟁보다는 무수한 지방적인 특질을 찾아내 생기 넘치는 방송으로 뛰어난 국민문화를 이루는 데 방송사들이 지금보다 더 앞장섰으면 싶다.


참고 문헌

崔埈, [放送論], 서울: 一潮閣, 1969년(3판).

T. S. 엘리어트, [文化란 무엇인가], 서울: 中央日報社, 月刊中央 ’74년 7月號 別冊文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