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매일춘추 1984년)

국악(國樂)의 광복(1984. 8. 17)

노고지리이해식 2006. 8. 23. 13:30
 

                   

 

국악(國樂)의 광복(1984. 8. 17)


李海植<嶺南大 국악과 교수ㆍ작곡>


경주 박물관에 있는 신라 미추왕 시대의 장경곤(長頸壼)에 붙어있는 많은 토우(土偶)들 중에 가야고를 타는 것이 보인다. 음악 토우가 이외에 다수 있음으로 미루어 신라의 온 장안에 오늘날의 피아노처럼 가야고 소리가 널리 울려 퍼졌으리라 짐작된다. 또 이 가야고는 일본에 전해져서 시라기고도(新羅琴)라 하여 지금도 나라(奈良)의 정창원(正倉院)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니 신라인들의 멋진 음악문화는 국내외에 떨쳤으며 신라 화랑들의 풍류정신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그러나 가야고가 비롯된 이곳 낙동강 유역의 국악이 지금은 한갓 역사 속의 영화로만 그치는가? 불교 발생의 인도가 불교국이 아니듯이, 그리스ㆍ이집트 문명의 현장이 오늘날 세계문명의 중심이 아니듯이 이곳에서 샘솟아 피어난 음악의 커다란 흐름은 어디에 있는가? 국어와 국악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역사를 헤치고서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문화의 구조적 방향과 외부적 환경이 주는 절충점에서 문화적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것이 국악이었다.

만일 이러한 현상의 하나로써 국악이 꽃피웠던 지역에서 조직적 국악 행위에 정당한 처우를 유보한다든가 외면한다든가 차별하는 일이 있다면 이는 역력한 역사 앞에 한 점 부끄럼이 되지나 않을지? 

어느 경우이든 무리들이 지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이상의 것이 문화에 속하고 있으므로 어떤 획일적인 발상으로 국악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면 이것은 아직 국악이 광복되지 않은 후진적 상태이며 마땅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고금의 어느 국가에서나 음악은 윤리적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서양음악의 번성이 매니저들의 번쩍거리는 혜안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문화를 계획할 수 있는 사람들이 외래문화와의 균형을 유지하고 긴장하는 안목을 가질 때 역사의 현장에서 국악이 광복되는 의미는 보다 극대화 될 것이 극명하다.

흔히 국악의 현대화라는 맡이 있는데 이것은 국악의 획일적 통일이나 서구화가 아닌 국악의 전승보존에서 얻어지는 총체적 창작의 개념으로 이어져야 한다. 국악인들은 자칫 쇼비니즘(chauvinism)에 젖지 말고 새로운 세대에 현대감각에 맞는 새로운 국악을 내놓도록 교육적인 대안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현대감각이라는 것이 서양적 감각으로 치닫는 일변도이니 국악인들의 땀이 가일층 요구되는 소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찬란했던 역사의 현장에서 옛 영화를 돌이키는 국악의 르네상스(renaissance)야 말로 국악의 진정한 광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