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교수, 열정과 대바람 소리. 2004년
열정과 대바람 소리
李海植(영남대 교수)
내가 젊은 시절의 이상규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오선지 다발을 들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작곡을 하려는 태세로 열정적이었다. 그런 열정은 그의 「16개의 타악기를 위한 시나위」에서 하도 강렬하게 표출되어서 그 인상이 지금까지 깊게 남아있음은 이 작품이 전통성의 바탕 위에 지극히 민감한 현대 감각과 함께 춤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젓대 연주와, 작곡과, 지휘로 점철되는 이상규교수의 열정은 태생적이라고 단정해도 누구 부정하는 이는 없으리라 믿는다. 한번은 내가 영산재를 기록하고 있는 신촌 봉원사로까지 나의 작품을 받으러 온 그에게서 또 다른 열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가 초연한 나의 「춤을 위한 협주피리」이다. 또 나의 첫 관현악곡인 「당산」도 원래의 악보대로 그가 초연이나 다름없는 지휘를 하였으니 이 일들이 벌써 1988년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미 제5회 대한민국 음악제 전야제에서(1980. 9. 6) 나의 「해동신곡」을 초연이나 다름없는 공개 연주를 하였는데 당시 평론가 이상만씨는
특히 이번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한 바도 있는 동료작곡가인 이상규의 작품해석에 있어서의 정성어린 자세는 재현의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기교와 표현양식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작품에 임하는 정성어린 태도가 결여되었을 때 그 결과를 어떻게 보상하겠는가?(李相萬, “第5回 대한민국음악제가 남긴 것,” [문예진흥], 서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80년 11월호, p. 46)
라고 했는데 여기서 평론가가 강조한 “정성어린 자세,” 또는 “정성어린 태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타고난 세세함과 열정의 다른 말이라고 하겠다.
내가 이상규교수에게 가진 많은 부러움 중의 하나는 그가 널리 알려진 젓대의 명인(maestro)이라는 점이다. 그런 명인에게서 「대 바람 소리」라는 명작이 나왔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처음 들었던 「대 바람 소리」는 그가 전통음악의 명인임에도 그가 추구한 작품의 전개와 연주 수법의 구사가 지극히 현대적이어서 그 때나 지금이나 아류(亞流)의 협주곡이 넘치는 국악계에 참으로 신선하고도 개성적인 작품으로 다가온 느낌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서양음악사로 건너가 보면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작곡가이기 전에 출중한 연주가들이었다는 점과 상통한다.
「대 바람 소리」는 악지론(樂志論)을 읽어보고 대 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는 신석정(辛夕汀 1907∼1974)의 시상(詩想)에서 악상(樂想)을 얻기는 하였지만은 시와 그의 작품은 전혀 별개이다. 나는 오히려 그의 「대 바람 소리」에서 그만이 품고 있는 작품의 넋살(精神)을 해독(解讀)하는데 그것은 냇바람(자연의 바람)으로 불어오는 작품에 내재된 향기와 색깔과 아름다움이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어휘로 <이상규교수의 격조(格調)있는 클래식(classic)>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 바람 소리! 그것은 바람의 그늘이다. 우리는 바람의 그늘을 보았는가? 이제 나는 이상규교수에게 들어서 삶의 번뇌를 실어가고 혈맥이 뛰게 하는, 싱그러운 바람의 섭리가 가득한 제2의 대 바람 소리―, 중생이 편히 쉴 수 있는 바람의 그늘을 기대한다.
[腔海 李相圭 작곡집] ⅠㆍⅡ, 서울: 강해 이상규 교수 회갑기념 간행위원회, 2004.
참고
●대바람 소리/신석정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蕭蕭)한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새벽을 알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 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거릴지언정
--- "어찌 제왕(帝王)의 문(門)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