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백일장은 인생백일장 1979년 3월 31일
민요백일장은 인생백일장
李海植(라디오局)
사람이 살면은 몇 백년이나 사더란 말이냐
나는 그대를 생각하기를 하루도 열백 번이나 생각는디
그대는 나를 생각는지를 알 수가 없구나 헤…
이것은 칠순을 넘긴 남도(南道) 노인이 여유만만하고 구성지게 불러 넘기는 <육자백이>의 한 가락이다. 육자백이야 말로 남도 바닥에 모래알처럼 깔려있는 한(恨) 맺힘의 끝없음과 버들가지마냥 휘휘 늘어진 사랑가이다.
<민요백일장>(民謠白日場)에서 청승스럽게 육자백이를 부르는 노인의 진지한 표정에서 인생 백일장(人生白日場)을 배워본다. 육자백이 가락만 터득하면 다른 남도가락은 쉽게 배울 수 있으니까.
공개방송 일정을 열심히 내보낸다. 연 3주의 예비심사에서 떨어진 어느 노인이
야 이놈아, 너는 나 같은 애비도 없냐? 젊은 놈만 사람이고 늙은이는 사람으로 안 보이냐?
어느 정도 소리바닥의 구색을 갖추어야만 출연 조건이 되는데 그렇지 못한 노인이 욕설을 퍼부은 후로는 방청석에 한 번도 보이질 않는다. 한 사람의 고정 방청객을 잃은 것 같아서 섭섭하다. 민요백일장 출연을 위해서 일부러 상경한 사람이 예비심사에서 떨어질 때는 담당자가 오히려 민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한편 <수심가>(愁心歌)를 부르는 실향민의 시름겨운 콧소리 속에서 조국통일의 깊은 염원을 피부로 느껴보는 때가 자주 있다.
여보시요 고향에서 이 방송을 들으시는 친구들, 이번이 아마 마지막이 될는지, 날마다 여기 와서 소리를 하고 싶은데 여기서 받아주질 않아요. 그러니 이번 내 노래를 열심히 들어보시오.
경기도 양주골 박순백 할아버지가 노래에 앞서 한 말인데 유언 같기도 해서 일말의 서글픔에 사로잡힌 때도 있었다.
민요는 거의 한과 사랑의 노래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일각(一刻)이 삼추(三秋)라더니 열흘이면 몇 삼추요
제 마음 즐겁거니 남의 시름 어이 알리
얼마 아니 많은 간장 봄눈같이 다 녹는다
이렇게 프로의 휘날레를 장식하는 <창부타령>이 시작되면 방청석 여기저기서 춤판이 벌어진다. 춤은 인간 본능의 투사(投射)가 미화된 형태로써 가(歌)에 무(舞)가 따르는 것은 불가금(不可今)이라, 남산(南山) 시절 엷은 미소에 실눈을 뜨고 그토록 구성진 어깨춤을 추던 미아리 할아버지가 여의도로 옮겨온 후로는 보이지 않는다. 순수한 한국인의 체취를 풍기는, 어찌나 독특한 춤사위였던지 기록을 못해둔 것이 지금도 무척 아쉬웁다.
근래 젊은이들이 국악에 크게 눈 뜨는 것이 나타나는데 방송 프로그램에도 젊은이들의 국악 진출이 많아서 다행한 일이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이르기를 좋은 음악의 융성은 임금의 지도여하에 따른다고 했는데 오늘날 좋은 음악의 길은 방송 프로그램의 여하에 달렸다고 할 것이다.
프로그램이 항상 생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항상 젊고 싶은 욕심을 부려본다.
[KBS社報](서울: 한국방송공사, 1979년 3월 31일), 7면.
▲ [KBS 社報]: 용지가 삭은 부스러기가 사진 위에 붙은 채로 scanning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