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씻김굿 중에서 고풀이와 나의 작품. 2006. 7. 21.
씻김굿 중에서 고풀이는 무명천(길베 또는 질베, 광목)으로 여러 개의 고(固 매듭)를 만들어서 곳대(固臺 명두대)에 매어 놓았다가 무가(巫歌)를 부르면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는 거리(科場)이다. 이것은 죽은 사람이 근심 없이 극락으로 가도록 이승에서 맺힌 한을 모두 풀어주는 상징적인 무속 행위이다.
나의 거문고 작품 중에 「고풀이」(琴解)가 있다. 이것은 씻김굿 고(固)풀이와 함께 변주(variation)와 전개(development)를 뜻하는 거문고를 위한 해탄(解彈)이란 뜻을 포함한다.
한국인은 굿을 기질로 타고 태어난다. ‘굿’이란 적극적인 행복을 비는 말이다. 현실적 삶의 욕구 충족을 위해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굿이다. 이러한 현세적인 굿은 예술은 돌이킬 수 없는 현세의 것이지 내세의 것이 아니라는 시인 T. S. 엘리어트의 말을 연상하게 한다. 왜냐 하면 나는 굿을 예술의 모태로 보기 때문이다.
굿과 예술이 현실의 것이듯 나의 작품이 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 리듬을 강조하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놀이와 관련된다. 놀이는 재미를 동반한다. 내 작품의 심상과 표상은 주지하다시피 굿(놀이)이다. 굿은 무교(巫敎)의 종합적인 표현이라고 하지만, 나는 모든 인간사를 굿 관련으로 본다. 굿에서 놀이의 다른 측면은 풀이(解)이다. 나는 지금까지 서양음악의 변주(variation)를 풀이의 개념으로 보아왔다. 삶풀이(和), 작품풀이(變奏), 연주풀이(琴解), 풀이란 깨달음(悟)의 한 과정이 아닐까. 풀이는 변주를 포함하여 많은 중의성(重意性 ambiguity)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18줄가야고 독주곡 「줄풀이 제1ㆍ2번」과 거문고독주곡 「고풀이」가 ‘풀이’ 관련의 직접적인 작품들이다.
놀이와 풀이의 요체는 곧 춤이다. 춤은 굿놀이의 중심에 있다. 내 작품에서 춤을 추구함은 굿과의 맥락이다. 「들굿」(野祭)ㆍ「산굿」(山祭)ㆍ「종굿」(鍾祭)ㆍ「향발굿」(響鈸祭)ㆍ「어방굿」(漁坊祭)ㆍ「대굿」(竹祭), 그리고 「춤피리」ㆍ「춤을 위한 지와 간」(支干)ㆍ「춤을 위한 협주피리」ㆍ「춤불러내기」ㆍ「춤을 위한 부새바람」ㆍ「춤을 위한 국악연습」ㆍ「춤그림」 등이 굿과 춤에서 활력을 얻어낸 작품들이다.
[이해식의 작곡노트 넘겨보기](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 176ㆍ388~390ㆍ392쪽.
Jacques Barzun(金容權 譯) [藝術의 效用과 濫用](서울: 乙酉文化社 乙酉文庫 198, 1983), 150쪽.
Johan Huiginga(金潤洙 옮김), [호모 루덴스], 서울: 까치, 1981.
柳東植, [韓國巫敎의 歷史와 構造](서울: 延世大學校 出版部, 1981), 29ㆍ296ㆍ330쪽
국립남도 국악원 대극장 진악당(珍樂堂) 금요상설 국악공연, 2006. 7. 21.
▲ 유점자(74세)는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비금도)을 중심으로 굿판을 벌이며 활동하는 씻김굿의 단골이다. 그의 굿은 널리 알려진 진도 씻김굿에 비하여 ‘멋’은 부족하지만 사설 내용이 풍부하며 허튼 목을 안 쓰고 <꼭꼭조시>로 부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라도에서는 닭이나 짐승이 모이를 먹을 때 "좃아 먹는다"고 말하며, 또는 잘게 씹어 먹으라는 뜻으로 "꼭꼭 좃아 먹어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또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씻김굿에서 <꼭꼭조시>로 부른다 함은 장단이나 문서(文書)를 빠짐 없이 자세하게(꼼꼼하게) 진수만 부른다는 뜻이라 하겠다.
위의 동영상은 2006년 7월 21일에 국립남도 국악원 대극장 금요상설 국악공연 유점자 씻김굿 중에서 고풀이 과장이다. 질배(길배)로 미리 묶어둔 고를 탈탈 털면서 고를 풀어 간다. 이 고풀이는 함종엽 무녀가 한다. 고풀이 다음에 길풀이(길닦기)가 이어진다. Sony DCR-IP1 녹화/이해식
▲ 위의 사진은 1980년 8월 17일, 장산도의 무속 집안인 이충윤씨(사진 왼쪽에 앉아서 징을 치고 있는 사람) 집에서 행해진 장산도 씻김굿 중에서 고풀이이다. 긴 무명 길베(질베)로 고(固 매듭)를 만들어서 간짓대에 걸어 놓고 무녀가 무가를 부르면서 고를 하나씩 풀어가는 장면이다. 장산도의 정확한 행정 명칭은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 공수리 1구이다. 마을 명칭은 마초부락.
Nikon FE, 촬영/이해식
▲ 장산도 마초부락 사람들이 씻김굿을 하기 위하여 굿청을 준비하고 있다.
1980. 8. 17. Nikon FE, 촬영/이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