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中央國樂管絃樂團의 연주곡집 출반이라는 새 企劃物. 1990. 6. 30.

노고지리이해식 2007. 10. 2. 19:24
 <음반평>


中央國樂管絃樂團의 연주곡집 출반이라는 새 企劃物


이  해  식


중앙대학교 음악대학의 박범훈 교수가 이끄는 중앙국악관현악단의 획기적인 연주곡집이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출판되었다. 30인치ㆍstereoㆍLPㆍ33 1/3 rpm. 낱장 4매의 이 연주곡집은, 상업적인 것이 아니면 국악계의 음반 제작이 지극히 드문 터에 중앙국악관현악단(이하 중앙이라 부름)의 당당한 연주 기록으로써 기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앙이 masscom을 뚫은 technique은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전통예술의 취약성을 가지는 유통분야에서 더구나 모험이랄 수 있는 창작국악으로  문화사업을 성공시킨 또 다른 technique을 받쳐주는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컨대 그것은 중앙의 모든 음악이 철두철미한 대중의 현장 속에 있음이요 허구스런 이상보다는 현실이 직시에 있음이라 할 것이다. 그것이 좋은 본보기가 제1집(LO 3007)에 실린 곡들이다.


            제1집 앞면                                    제1집 뒷면

                 아라랑을 주제로 한 협주곡             어랑어랑을 주제로 한 협주곡

                   「아리 아리」(15:00)                          「어랑 어랑」 (11:46)

                                                                    플룻과 가야금을 위한2중주

                                                                         「사랑의 춤」(5:48)


우리 민족을 아리랑 민족이라고 부를 만큼 한반도 전체에 걸쳐서 수많은 아리랑이 널려있다. 그 중에서도 구아리랑ㆍ긴아라랑ㆍ신아리랑ㆍ밀양아리랑ㆍ정선아리랑ㆍ진도아리랑을 마치 옥구슬을 꿰듯 재구성한 것이 곧 「아리 아리」이다. 국악관현악의 풍성한 음향이 배경을 이루는 김영임ㆍ김성녀의 소리는 청승스러움과 구성짐을 함께 가지면서 이내 흥겨운 춤으로 몰아간다. 아리랑의 다른 일면인 나른 함을 멀리 떨쳐버리는 것이다. 내친 김에 북쪽의 해주아리랑이나 난봉가 류의 아리랑을 포함했더라면 대작이 되었을 것을 아쉬워 해 본다.

 어느 지역이든지 산간의 민요는 애수와 아름다움을 함께 지니고 있다. <어랑타령>(신고산타령)도 그중 하나이다. <아리랑>이나 <어랑타령>과 같이 민요에서 보통 사람들의 질박한 정서를 읽어 내고 그 진수를 뽑아서 화려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박범훈의 특기이다.

「어랑 어랑」은 1988년 KBS-FM의 국악무대에서 첫 선을 보인 곡으로써 자유자재로 노래하고 변주해 가는 아담한 작품이라 하겠다. 다만 탄력 있는 북을 사용했더라면 더 좋은 연주가 되었을 것이다.

문화사업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와 뗄 수 없이 연결되어서 이윤 추구의 현금으로 바꾸려는 강력한 속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 모두를 산업사회의 대중으로 사로잡는다. 이러한 문화상품의 유통과정에서 예술=상품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며 아도르노(Adorno)의 시각으로는 유통의 지배자는 깊숙이 숨어버린 채 교환의 원칙만이 판을 치게 된다. 그러나 오아시스레코드사의 지배자는 교환의 원칙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예술=상품의 현대적 감각에 맞는 물신성(物神性)으로 바꾸어서 우리 앞에 남김없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박범훈의 실용 노선과 잘 맞아 떨어진 조용한 충격이라 할 것이다.

Exotic은 동서 음악에 있어서 활력소의 역할을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이나 악기의 도래도 exotic을 전혀 배제 할 수는 없다. 예술사회에서의 exotic 활용은 마치 신진대사와의 촉진제와 같아서 그것이 활용도에 따라 신선한 건강미와 호기심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작품들의 보기를 중앙의 연주곡집 제2집(OL 3078)에 담겨진 이병욱의 의욕에 찬 작품들이 보여준다.


                    제2집 앞면 대금과 국악관현악 을 위한 「새로움」(13:28) 

                    제2집 뒷면 클라리넷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어울림」(18:50)


그가 독일의 명문 Karlsruhe 음대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늬처럼 애써서 독일풍에 물들지 않음은 그의 똘똘 뭉친 개성 탓이리라. 클라리넷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어울림」에서는 전라도 냄새가 배어있는 그의 충청도 사투리 강세마냥 독특한 시김새를 표현한다. 「어울림」에 어울리게 국악관현악과 클라리넷의 거부감 없는 exotic이 멋지게 풀려나간다. 놀이의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는 것이다. 욕심을 더 부리자면 절름거리는 rhythm과 reed technique을 좀더 다양하게 구사 했더라면 하는 바램이 남는다.

어쨌거나 이병욱 style의 작품은 국악의 활성화 바람이니 국악의 저변확대니 하는 slogan에 맞는 하나의 길을 밝혀준 셈이다. 국악의 생명을 위해서는 모든 가능한 것을 수용해 보고 아울러 모색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국악은 이래야 하느니 저래야 되느니 하는 고정 관념에서 국악인들은 어서 벗어나야 할 때다.

이병욱의 「어울림」은 중앙의 제2회 정기연주회의 초연 상황을(1988. 4. 25. 호암 Art hall) 음반에 실은 것으로써 녹음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이곡의 클라(clarinet) 잽이 임현식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virtuoso이니 여기서 더 말하면 두 말이 되겠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기록이라는 것은 삵의 보편적인 흔적을 남기는 인간의 행위이다. 기록문화ㆍ기록영화 하듯이, 음반(recordㆍdisk)은 기록음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유달리 중앙의 기록음악이 의미가 깊은 것은 이 익단이 홀로 서기의 자생력으로 자라온 악단이라는 점이다. 스스로 자라온 악단이기에 한 악단이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그만큼의 자신감과 긍지가 넘친 나머지이라.

기록은 문서이다. 채보가 유형의 문서라면,  record는 무형의 문서라 하겠다. 이 문서 정리에 특성을 지닌 사람이 곧 백대웅이다. 그의 뛰어난 작품들은 세밀한 문서 추적의 정리요, 결과로써 중앙의 연주곡 집 제3집(OL 3079) 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제3집 앞면                                     제3집 뒷면

          「가야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국악관현악곡    

             2개의 악장」(17:08)                          「회혼례를위한 시나위」(8:01)

                                                                2개의 가야금을 위한3개의 변주곡

                                                                    「상주모심기노래」(12:30)


「가야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2개의 악장」중 제1악장은 농악의 장단 구조를 재구성한 <길군악/이고, 제2악장은 <쾌지나칭칭>의 변주곡이다.

협주곡은 star player를 위한 전형적인 서양음악의 한 양식이다. 이것은 이 시대의 우리 음악양식에 수용하려면 작곡자의 말대로 국악기의 연주 조건이나 기존 음악의 어법을 뛰어 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래서 어언 일인지 이 땅의 국악계에 협주곡의 열풍이 불어온지 오래건만 서양의 아류를 완전히 벗어난 협주곡다운 협주곡이 있다고 강변할 수 없다.

「회혼례를 위한 시나위」는 원래 피리ㆍ젓대ㆍ가야금과 percussion의 오붓한 실내악이다. 이작품은 악보 뒤에 숨어 버린 소리들을 찾아서 전라도의 토리를 붙여야 비로소 제 맛이 나는 백대웅의 역량이 결집된 한 폭의 동양화이다. 그런데 여기서 울긋불긋 색칠한 평면적 관현악 편곡은 original의 음악성에 미치지 못한다.

 「상주모심기노래」에서는 작곡자의 다른 역량이 의외성으로 표상된다. 그가 민속음악을 천착하고 문서 정리하는 데 남다른 심혈을 기울인 결과의 「상주모심기노래」는 그 감흥이 생생하고 리듬은 빛난다. 은은한 묵화 아니면 멋지고 절묘한 춤을 보는 감회에 젖는 작품이다.

 백대웅이 전통음악의 texture의 길을 추구하는 만큼 길을 벗어나지 않는 그의 작품들은 항상 매끄럽고 우리 귀에 익은 tonic의 가락들이 많아서 듣기에 좋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다른 길로도 빨리 탈선해 보라는 이정표가 될 것 이다. 백대웅의 협주곡이나 「상주모심기 노래」에서 김해숙의 활약을 결코 지나칠 수 없다. 일단 그녀의 무릎에 가야금이 놓이면 꾼의 기질을 유감없이 또 열심히 발휘하는 것이 그녀의 천성이니까.

중앙의 네 번째 음반(OL 3080)은 박범훈의 불교음악이다. 이 땅에 불교가 토착된지 겁파가 지났건만, 본격적인 창작불교음악이 이제야 우리의 손에 잡힘은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저간에 찬불가류의 음악들이 양산되었으나, 어느 것이 불자들의 심금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가의 관건은 불자들의 판별에 매어있다 할 것이다. 「아제아제」는 사방사우 김성녀의 전라도 흥타령조 소리가 불교의 chorus속에 고뇌로 파고드는 30분을 넘기는 대작이다.


                           제4집 앞면                        제4집 뒷면

                              「아제 아제」 [A] (21:49)           「아제 아제」 [B](11:36)

                                                [B] (11:36)           「예불」(12:23)


중앙이 출반한 자신들의 연주기록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쉽사리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갈고 닦은, 알고 보면 우리가 진작 챙겼어야 할 귀한 재산목록들이다. 이제 이 재산들을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증식할 것인가를 모색해야 하겠다. 지금까지의 증식방법은 거의 일차적이다. 즉 창작성의 전경(前景)과 후경(后景)층이 너무 가까워서 듣는 사람이 쉽게 친근해질 수는 있으나, 우리의 삶에는 때때로 승화된 저항도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이라 이름 한다면 층층의 고뇌가 필요하고 또 그것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명제가 중앙에 주어진다면, 고충스럽겠지만 그들은 슬기롭게 Oasis를 찾으리라 믿어진다.

[韓國音樂史學報] 제4집(경산: 韓國音樂史學會, 1990),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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