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의 말

정귀인 안무, 이해식 작곡 지휘 현대무용 [흙]

노고지리이해식 2009. 4. 5. 17:01

 

정귀인 현대무용발표회 [흙]

 

1986. 12. 13. 호암아트홀/서울.

 

안무/정귀인, 작곡 지휘/이해식.

 

[흙]이 유니크한 춤(unique dance)임은

끝에서 무용수(dancer)들이 리드믹하게 향발(響?)을 치면서 악(樂)과 무(舞)를 함께 함이다. 

 

정귀인 안무, 이해식 작곡 지휘

 

  현대무용 [흙]

  

-Ⅰ-

 

창조주가 흙으로 빚었다는 사람을 비롯하여(창세기) 이 지구상의 모든 만물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흙?이 아니라 단지 ?땅?과 돈의 등식으로서만 아귀다툼을 일삼는 현대인에게 정귀인 교수(부산대 무용과)가 안무한 현대무용 ?흙?은 순수한 인간성에 회귀하는 춤으로써 시사하는 바가 많다.

현대무용가 정귀인 교수가 안무한 ?흙?은 1986년 12월 13일 서울의 호암아트홀에서 초연되었고, 1987년 9월 4일에는 국립극장과 KBS가 주최하는 <무용예술큰잔치>로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지난(1987) 10월 12일에는 부산대학교 무용과 정기공연으로 부산시민회관 대강당에서 공연되었다.

대개의 무용이 거의 테이프 재생으로(play back) 공연되는 우리 나라에서 생생하게 연주하는 음악으로 공연된 ?흙?은 무용과 음악계에 깊은 의미와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첫째 현대무용을 국악기중심으로 연주함이다. 이것은 정귀인 교수가 무용가로서의 음악에 대한 깊은 혜안이 전혀 의외성(意外性)을 불온 것이다.

  둘째 국악기 중심이지만 동서양 20종의 악기가 국악 같은가 하면  때로는 아랍(Arab)풍과 같은 이국적인(exotic) 풍조를 자아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춤도 역시 그렇다. 쌀로써 마치 키질하듯 한국 농경사회의 풍성풍요를 기원하는 굿이 마치 이교도(heresy)들의 예배의식처럼 진행되는가 하면 유랑극단(사당패)의 판놀음 같은 과장(process)도 있음이다. [흙]의 유니크(unique)함은 무엇보다도 끝에서 무용수(dancer)들이 리드믹하게 향발을 치면서 악(樂)과 무(舞)를 함께 함이다.

  

                      <정귀인 현대무용발표회> 무용조곡 ?흙? 연습. 피리/황규상ㆍ젓대/이상원ㆍ

                    타악기/김승근?김용우ㆍ장고/이종길ㆍ가야고/김미숙?천양자ㆍ작곡 지휘/이해식,

                                           1986. 12. 13. 호암아트홀 연습실/서울.

 

 

또 [흙]에는 소리-人聲-, 즉 칸틸레나(cantilena)가 앞뒤로 나누어져 있는데 연주자들이  매기는 소리(call)를 맡고 무용수(dancer)들이 향발을 치면서 뒷소리(response)를 받는다. 아래 악보는 이해식 국악관현악곡집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서울: 圖書出版 수문당, 1990), 137쪽에서 퍼온  칸틸레나  부분이다. 

 

  

 위 악보에서 앞소리는 정귀인 교수가 이 곡을 위촉할 때 제시한 <고향>이라는 tag에 따라서 작곡자가 고향과 사랑하는 임을 그리는 내용으로 지은 소리말이고, 무용수가 받는 “어허넘차”는 민요 상여소리의 뒷소리이다. 아래 사진설명(caption)은  안무자의 안무노트이다.

 

  

 

안무노트/정귀인

                            작곡/이해식

 

     흙의 냄새를 맡자 흙의 냄새를 느끼자

     흙은 삶의 고향, 고향의 냄새를 맡자

     꽁꽁 얼어붙은 흙의 냄새 속에 삶은 움츠린다.

     그러나 이윽고 피어나는 이른 봄

     초록빛 흙냄새에서 삶의 기지개를 편다.

     해질 무렵 굴뚝에서 퍼지는 매콤한 연기냄새에

     삶은 생기를 얻고 땡볕이 따갑게 내려 쪼이는

     들판의 훗훗한 풀냄새에 활개를 친다.

     흙의 냄새를 맡자 삶의 냄새를 느끼자.

                           마침내 우리가 다시 돌아갈 흙의 냄새를….

<국립극장 무용예술큰잔치>.  

      1987. 9. 4. Nikon F3  43~86mm Nikkor zoom 촬영/황준연.

 

 매콤한 연기 냄새! 그것은 고향의 따뜻한 어머니 품 같은 것 아닌가?

훗훗한 풀냄새, 그것은 좀 후더분한 흙냄새이면서 고향의 향기가 아닌가?

정귀인 교수의 ?흙?은 한편의 인간 사랑놀음이면서 삶의 즐거운 확인이다. 

 

춤은 인간의 육체 속의 기쁨, 표정적인 몸짓에

대한 사랑, 그리고 율동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긴장을 완화시키는 특성에서 태어난다. 그것은 삶의 즐거움을 드높이는 동시에 사회생활을 비추는 거울도 된다(Joseph Machlis).

 

 

정귀인 교수의 [흙]은 흙을 뚫고 흙 위에 나타난 농경축제의 오지(orgy: 난장판ㆍ술잔치)와 카타르시스(catharsis: 정화)의 교치성(巧緻性: delicacy)이니, 이것은 곧 우리가 살고 있음의 즐거움이 한 단계 올라간 것같은 그 이상의 느낌이라 하겠다.

 

춤을 안다는 것은 인생을 한 차원 높이는 것이다(Curt Sachs).

 

 

 

정귀인 안무, 이해식 작곡 지휘 ?흙?:  한국 농경사회의 풍성풍요를 기원하는 굿이 마치 이교도(heresy)들의 예배의식처럼 전개된다. 왼쪽: 바닥에 깔아놓은 쌀을 키질함은 농경시대의 지신(地神)신앙을 상징함으로 보인다(video tape capture). 오른쪽: 하늘을 향한 감사로써 천신(天神)신앙을 표현함으로 보인다(Nikon F3 43~86mm Nikkor zoom 촬영/황준연).

                                        1987. 9. 4. <국립극장 무용예술큰잔치/서울>. .

 

 

<현대>라는 접두어는 현대무용 ?흙?과 같이 당대인의 진정한 창작일 때 붙일 수 있는 낱말이다. 모방이나 아류 따위에 현대라는 용어를 붙여서 예술을 호도하거나 수용자의 인식이 그릇되게 해서는 안 된다.

현대무용가 I. 던컨(Isadora Dunkun)은 왜 무용가를 초월해서 위대한 예술가로서 지금껏 우리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가? 그는 그녀 당대의 진실과 참된 인간성을 다한 춤을 추었고 무엇보다도 그리스 정신에 기반을 두고 혼신을 기울인 창작 춤을 추었기 때문이리라. 그가 그녀의 춤에 항상 실제로 연주하는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여기서 던컨 얘기를 다 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고 그녀를 왜 현대무용가라고 입을 모으는지 무용지망생이라면 그의 전기를 필히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자기의 춤에 실제 음악을 쓰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이며 테이프를 쓰더라도 스크래치(scratch, 긁히는 소리)나 히스노이즈(hiss noise, 잡음)가 난다든가 앰프(amplifier)나 녹음기 조정이 서툴거나 가위질하는 편집자국으로 음악의 흐름(texture)이 튀지는 않을 것이다.

편집(complication 또는 edit)이 엄연히 기술의 한 분야이거늘 어찌 이것을 소홀히 해서 춤의 분위기를 반감시킨단 말인가? (이해식, 95.3㎒ 대구 MBC-FM fan, 1987년 1112월호, 현대무용 ?흙?ⅠⅡ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