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作文 my compositions)

쇼팽의 연인 G. 상드(George Sand)

노고지리이해식 2015. 5. 2. 20:01

 

 

쇼팽의 연인 G. 상드(George Sand)

 

19세기

바르샤바 프레데릭 쇼팽 재단

Mrtine ReidㆍBertrand Tillier/권명희 옮김, [조르주 상드]

(서울: 창해 ABC 북 029, 2000), 6쪽에서 전재.

 

 

쇼팽(Frédéric Chopin, 1810~1849)은 21살 때 그의 폴랜드를 떠나 파리로 가서 39세의 짧은 생을 마친 음악가였다. 대개 그렇듯이 서양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유럽의 작곡가들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는데 쇼팽도 그랬다. 18ㆍ19세기 유럽은 아주 격동기였고 특히 쇼팽이 살았던 파리는 프랑스 혁명의 절정기였다. 여기서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리스트(Friedrich List, 1789~1846)는 쇼팽에게 여류 소설가를 소개했는데 그게 바로 서양음악사에도 이름을 남긴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49)였다. 상드는 필명(筆名)이고 오로르 뒤팽이 본명이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잃은 상드는 그의 할머니로부터 많은 유산을 상속받은 넉넉한 여류 문필가로서, 또 늘 남장(男裝)을 하는 여류예술가로서 더 유명했다. 세상을 자유롭게 보는 눈을 가지게 한 상드의 남장은 그의 어릴 적 가정교사였던 계몽주의 지식인 데살틀이 가르친 것이었다.

당시 유럽의 예술가들 사이에는 성(sex)이 비교적 자유스러운 풍조였는데 상드도 연하의소팽을 만나기 전에 이미 연하의 다른 남성들을 편력한 바가 있어서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는 그녀를 추잡한 여자라고 했다. 쇼팽이 이런 여성과 9년 동안이나 동거한 걸 보면 쇼팽에 관한 우리의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그의 지극히 낭만적인 피아노 작품과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가 그린 우수에 젖은 초상화,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병약했던 생애 탓이 아닌가 한다.

격렬한 파리 혁명은 쇼팽의 주요 수입원인 피아노 레슨비를 줄어들게 해서 그는 영국과 스코틀랜드 등지로 무리한 연주여행 끝에 폐결핵을 얻게 되어 상드와 함께 요양차 지중해의 스페인령 마요르카섬으로 갔는데 이슬람의 유적도 남아있는 마요르카는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적인 휴양지로써 이름이 나 있다. 쇼팽은 그곳의 마을 사람들에게 결핵환자임이 알려져서 수도원으로 쫓겨갔지만 2년 동안의 마요르카 생활에서 여러 작품을 남겼다. 쇼팽에게 쏟은 상드의 모성적인 정성이 쇼팽으로 하여금 역사적인 작품을 남기게 한 것이다. 상드의 회고에 의하면 쇼팽은 앉아있을 틈만 있어도 작곡에 몰두했다고 한다. 마요르카에서의 쇼팽은 상드가 데려온 두 아들과의 잦은 갈등이 결국 상드와 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마요르카에는 우리나라 출신의 음악가 안익태 거리가 있다.

쇼팽은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에 독이 들어있다고 비평할 만큼 천재적인 연주가여서 그가 파리의 고급 사교계에 입성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음악사에는 연주가보다 작곡가로서 더 알려져 있다.

파리에 살 때 상드는 쇼팽을 베리라는 시골로 안내했는데 오늘날 유럽 사람들의 민속악기가 된 백 파이프(bag pipe)는 원래 프랑스 베리가 발상지이다. 쇼팽이 이런 마을의 음악에 대단한 관심을 보인 까닭은 이곳의 음악이 불협화음이 많은 무속적인음악(shamanistic music)이여선가 한다. 쇼팽은 몇 번 더 베리 마을을 답사했다, 불협화음은 쇼팽의 피아노 음악을 아름답게 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이로 보면 미(美)와 추(醜)를 남다르게 구사하는 그의 곡조짓기(作曲) 역량은 폴로네이즈와 마주르카에서 더욱 빛난다. 그의 폴로네이즈는 남성적인 역동성이 강한데 특히 군대 폴로네이즈는 폴랜드적 기질이 넘친다. 폴랜드 민속무용인 마주르카는 쇼팽 시대에는 폴랜드와 파리 무도장에서 인기있는 춤이었는데 쇼팽이 이를 연주회용 작품으로 격상하였다. 쇼팽의 이러한 작업은 이른바 폴랜드 국악작곡가라 하겠다. 이러한 그의 작곡 성향 때문인지 러시아의 5인조(The Russian Five) 작곡가들은 그들의 선배인 글링카(Mikhail Ivanovich Glinka, 1804~1857)와 함께 쇼팽을 선호했다.

 

P.S.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는 음악사에 화성학의 대이론가로 기록된 작곡가이다. 그는 교회 organist였는데 organ으로 불협화음(비화성음)을 너무 사용하여 organist에서 해고되었다. 그가 자주 사용한 불협화음은 기껏해야 오늘날의 7화음 정도였다.

 

 

참고문헌

Alan Walker/김경임 역, [쇼팽 연구 -그의 인간과 음악-], 서울: 태림출판사, 1984.

Donald J. Grout 外/ 민은기 外 옮김,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제7판(하), 서울: 이엔비플러스, 2007.

Mrtine ReidㆍBertrand Tillier/권명희 옮김, [조르주 상드],서울: 창해 ABC 북 029, 2000.

박종호, [내가 사랑한 클래식], 서울: 시공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