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임진각-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내력 2017. 6. 19.

노고지리이해식 2017. 6. 20. 13:14

 

이 블러그는 동아일보 2017. 6. 15. A 34면  [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를 근거로 꾸민 것이다. 이 블러그의 끝에 전재하는 문화유산학 박사 이광표 기자의 자세한 기사가 많은 참고가 될것이다. 

 

임진각(031 953 4744) 가는 길 :

용산역에서 문산행 경의선→문산 terminal에서 임진각행 58번 시내버스(이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어서 오래 기다려야 함)

 

▲ 문산역 까페 [좋은 날]

 

 

▲ 문산역 까페 [좋은 날] interior

 

 

                                        ▲ 임진각 입구에 있는 조형물

 

 

▲ 임진각 입구에 있는 새천년상

 

 

▲ 임진각 입구에 있는 조형물

 

▲ 철마는 달리고 싶다(Let the iron horse run again). 파주시. 2017. 6. 19.

 

 

    <철마는 달리고 싶다> 기관차가 장단역에서 임진각으로 옮겨진 내력을 아래 동아일보 기사 <횡설수설>에서 알 수   있다.

[횡설수설/이광표]장단역 기관차와 월정리 鐵馬
이광표 논설위원 입력 2018-05-01 03:00수정 2018-05-01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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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의 잡초 무성한 경의선 옛 장단역 터에서 육중한 쇳덩이를 크레인이 들어올렸다. 길이 15m, 높이 4m, 무게 70t. 1950년 12월 31일 개성을 떠나 장단역으로 들어오다가 포격을 맞아 탈선한 채 그대로 멈춰 선 기관차였다. 표면은 온통 총탄 자국이고 바퀴는 부서지고 뒤틀렸다. 분단의 상징이던 이 기관차는 56년 만에 임진각으로 옮겨졌다.
▷‘장단역 기관차’는 2년간 보존처리에 들어갔다. 녹 제거에만 전문가 10여 명이 6개월 동안 매달렸다. 녹을 제거하되 표면을 훼손하지 말아야 하고, 녹을 너무 뽀얗게 제거해 세월의 흔적을 사라지게 해서도 안 되는 고난도 작업이었다. 보존처리 비용은 철제 문화재를 후원한다는 취지로 포스코가 댔다. 이 기관차는 현재 임진각 자유의 다리 남단으로 옮겨져 전시 중이다.  

▷6·25전쟁 이전, 서울에서 금강산에 가려면 경원선을 타고 연천역∼신탄리역을 지나 철원역에서 금강산행 전철로 갈아탔다. 하지만 지금은 경원선, 금강산선 모두 끊겼다. 민통선 안에 있는 철원역은 6·25 때 파괴돼 일부 철로와 녹슨 신호기만 남았다. 철원역에서 한 정거장 더 올라가면 DMZ 남방한계선 바로 앞 월정리역이 나온다. 여기엔 1950년 6월 폭격을 맞고 멈춰 선 열차의 잔해가 남아 있다. 객차는 종잇장처럼 무참하게 구겨져 뼈대만 앙상하다. 그 옆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쓰인 안내판이 서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임진각을 찾아 장단역 기관차를 둘러보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경원선 복원 등 한반도 통합철도망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러시아를 통과하는 유라시아 횡단열차에 대한 희망도 나온다. 고무적인 일이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북-미 정상회담도 지켜봐야 하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도 보조를 맞춰야 한다. 그래도 경원선을 타고 월정리역을 오가고 러시아에서 대륙횡단 열차로 갈아탈 수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이광표 논설위원 kplee@donga.com

 

 

 

▲ 철도 중단점 : 철마는 달리고 싶다(Let the iron horse run again). 파주시

 

▲ 철도 중단점 : 철마는 달리고 싶다(Let the iron horse run again) 파주시

 

▲ 통일을 기원하는 ribbons

 

▲ 기관차에 박힌 총탄 자국이 무려 1000개가 넘는다. 2017. 6. 19.

 

▲ 기관차의 잔해들. 

 

▲ 폭격으로 파괴된 증기기관차의 화통. 이 화통에서 뿌리를 내린 뽕나무 한 그루를 옮겨 심었다.

 

▲ 폭격으로 파괴된 기관차를 추진하는 대형 바퀴

▲ 기관차를 추진하는 거대한  바퀴가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 임진각에서 부치면 일년 후에나 배달 된다는 느린 우편엽서. 임진각에서 개성까지는 겨우 22Km인 이정표.

 

 

 

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장단역 증기기관차와 뽕나무 한 그루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입력 2017-06-15 03:00수정 2017-06-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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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전쟁 때 폭격으로 멈춰 선 '장단역 증기관차 화통.'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전시 중이다(동아일보).

    1950년 12월 31일 오후 10시경, 경기 파주 장단역. 개성 방향에서 북한의 화물 증기기관차가 천천히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기관차 위로 포탄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당시 기관사는 한준기였다. 국군의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던 한준기는 중국군에 길이 막히자 황해도 평산군 한포역에서 북한 기관차로 갈아타고 장단역으로 들어오던 중이었다. 북한 기관차가 들어서자 우리 국군이 북한군으로 오해해 폭격을 가한 것이다. 한준기가 평양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온 것은 이듬해 닥쳐올 1·4 후퇴의 불길한 전조였다.

    폭격으로 인해 기관차는 탈선한 채 그대로 멈췄다. 표면은 온통 총탄 자국이었고 바퀴와 철로는 부서지고 휘어졌다. 시간도 함께 멈췄다. 파주 장단역은 휴전 후 비무장지대(DMZ)가 되었고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증기기관차 화통은 점점 검붉게 녹슬어 갔다. 길이 15m, 높이 4m, 무게 70t. 이 녹슨 쇳덩이는 이후 분단의 상징물이 되었다. 기관차에 자라던 한 그루 뽕나무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건 강인한 생명력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더러는 처연함으로 비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이 기관차 화통을 DMZ에 방치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보존 처리하기로 결정했고 2006년 11월 임진각으로 옮겨 보존 처리에 들어갔다. 가장 힘든 작업은 녹 제거였다. 녹 제거는 미세한 톱밥가루 등을 물 뿌리듯 분사해 녹을 떼어 내는 식으로 진행됐다. 분사의 힘이 너무 약하면 녹이 떨어지지 않고 지나치게 강하면 기관차 표면이 손상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적절하게 분사 강도를 조절하는 것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녹을 제거하고도 녹이 슨 것처럼 색깔과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다. 세월의 흔적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2009년 보존 처리를 마친 증기기관차 화통은 DMZ로 돌아가지 않고 임진각에 남았다. 역사적 교훈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전시 위치는 자유의 다리 바로 옆. DMZ의 녹슨 기관차 위에서 분단의 아픔을 지켜봤던 뽕나무도 근처에 옮겨 심었다. 장단역에 버려져 있던 침목과 레일을 활용해 철길도 조성했다. 철길의 침목엔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경의선의 여러 역 이름을 적어 놓았다. 그 옆엔 또 이렇게 적혀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DMZ 넘어 저곳으로!’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