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학학회
2006년 11월 9일~11월 11일 사이에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한국음악학학회 2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한국음악학학회(회장/김춘미)ㆍ한국국악학회(회장/황준연)ㆍ한국작곡가협회(회장/이만방) 공동 주최로 열렸는데 그 주제는 “오늘의 창작음악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이 학술대회 첫째 날(2006. 11. 9. 목)은 “작곡가와의 만남”으로 국악작곡가 이해식(영남대학교 교수)과 윤신향(계명대학교 초빙교수)의 대담이었다. 대담자 윤신향은 발제문으로 “작곡가 이해식과의 만남”을 이 날의 학술대회지 [오늘의 창작음악 어떻게 볼 것인가?], 1~9쪽에 걸쳐서 게재하였다. 아래의 글은 이 발제문을 윤신향이 [작가와 작품] “‘춤의 음악 되기’-‘음악의 춤 되기’ : 작곡가 이해식”이라는 제목으로 다소 수정하여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6](서울: 도서출판 예종, 2006), 44~54쪽에 재게재한 것이다.
[작가와 작품]
‘춤의 음악 되기’-‘음악의 춤 되기’ : 작곡가 이해식
윤 신 향
1. 대담자의 변(辯)
한 작곡가의 작품보다는 글을 먼저 접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내 발이 게으른 탓도 있겠으나, 접하고 싶어도 손 닿는 곳에 자료가 잘 없다는 현실 탓도 있다. 이해식의 경우도 먼저 글을 통해서였다. 평론에 투영된 자신의 작품양식에 재접근한 논문과, 한국의 상여소리에 대한 논문이 그것이다(이해식, 2001:67~92쪽; 이해식, 2005:55~102쪽). 올해 6월에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대담과 평론들, 작품해설을 함께 엮어서 <이해식의 작곡노트 넘겨보기>(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라는 책을 내어 놓았다. 그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책은 실지 작품에 대한 호기심도 불러일으킨다. 작곡자의 배려로 접하게 된 주요작품들은 작품에 투영되는 한 작곡가의 생존방식이 궁극에는 나를 돌아보고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는 평소의 믿음을 더 확고하게 해 준다.
비평에 대한 이해식의 기대가치는 여타의 작곡가와는 좀 다르다. 그는 작품에 대한 명곡 해설식의 접근보다는, 작품의 내면에 깃든 작가의 정신과 음악사적 의미, 그리고 문화적 위치 파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기대가치는 내가 평소에 작곡가를 바라 볼 때 염두에 두는 부분이기도 하므로 내심 반갑기도 하다.
이해식은 의자에 앉아서 머리로 곡을 쓴다기보다는, 부단히 떠다니며 몸으로 곡을 쓰는 작곡가로 다가 온다. 이러한 성향은 현장의 소리를 채집하여 작품의 재료로 응용한다거나, 음악 속에서 추구하는 춤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모습에서 역력히 보인다. 창작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1968년부터 2006년까지 약 40년 동안 무려 120 곡을 생산해 낸 이력에서 엿볼 수 있다.
2006년 11월 9일부터 11일까지 한국음악학학회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한국국악학회, 한국작곡가협회와 공동으로 개최되었다. 첫날 이루어진 이해식과의 대담은, 그가 꾸준한 창작활동을 벌여 왔으나 학문적으로 거의 조명되지 않았던 중견 작곡가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었다고 본다. 대담에서는 「The Junction(旌善)」(1992), 「해금을 위한 상(像)」(1977), 「춤질내기」(2004)의 음향자료와 영상물을 부분적으로 감상하고 거기에 대한 작곡가의 설명을 들었다. 이해식과의 대담을 준비하면서 만나게 된 그의 작곡 화두와 창작국악의 근원적인 쟁점들, 그리고 대담 후에 추가된 사항을 보완하여 엮어 보았다.
2. ‘춤의 음악 되기’ - ‘음악의 춤 되기’
1) 토속민요의 현대화
이해식은 창작 초기부터 토속민요를 작품의 소재로 수용해 왔다. 직접 녹음한 토속민요를 재구성하거나 현장의 소리를 공연현장에서 재현하기도 하고, 토속선율을 단편적으로 활용, 변주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재래식 가옥의 문풍지 바람소리를 표상한 「풍무」(風舞)(1979)에서는 그가 해남군에서 녹음한 <둥당애 타령>과 농요 <절로소리>가 재구성되며, 합창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두레사리」(1980)에서는 경기도 고양군 송포리의 <호미걸이 소리>가 송포리 마을의 주민들에 의해 무대에 실지로 재현된다. 이 농요에서 그에게 특히 감명을 준 <긴소리>는 플루트와 25현 가야금을 위한 「바람터」(1999)에서도 부분적으로 응용된다.
작곡자는 토속민요를 활용함에 있어서 자주 춤을 지향한다. 그 한 예가 현대무용 조곡을 의도한 피아노 독주곡 「The Junction」이다. 「The Junction」이 내포하는, 지명적인 ‘정선[旌善]’과 ‘정션[Junction]’의 의미론적 차이는 토속민요와 그것의 외부의 교차로 인한 문화적 변이작용을 실지로 상징한다. 이 곡에서 정선아리랑의 선율적 단편은 명료한 형식구조 속에서 변용된다. 빠른 제1곡에서 민요의 시김새적 윤곽이 주요 리듬적 음형동기로 변용되는데, 아리랑 선율의 형체는 엮음 아리랑의 흔적을 보이는 제2곡 후, 사설조의 색채를 지닌 제3곡에서 잘 드러난다. 제 4곡에서 더 강화되는 변주 요소는 회상적 서주부를 가지는 제5곡에서 응축, 확대되면서 선율의 원형은 사실상 해체된다. 무엇보다도 민요 선율의 시김새 부분이 작품의 주요 리듬적 음형동기로 변용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2) ‘춤’ㆍ‘바람’ㆍ‘두레’라는 화두(話頭)
이해식은 40년에 가깝도록 춤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고 있다. 이것은 동아콩쿠르 수상작인 「피아노 트리오」(1968)에서부터 탱고를 활용한 「플루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두레맞이」 협주곡(2001)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인 춤을 소재로 삼지 않더라도, 이해식의 음악은 근본적으로 춤을 지향한다. 이 성향은 1985년 당뇨 진단을 받고 1988년 디스코를 추기 시작한 이후부터 보다 더 표면화된다. 현재까지도 그는 춤을 생활화하고 있다.
이해식의 말을 빌어 보자:
“내가 춤을 추구하고 춤판에 뛰어드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직접적 몸짓이고 또 삶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춤은 작품에 분명한 디자인을 요구하는 동시에 작품의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이해식, 1990:3쪽).
“춤은 나의 작품이 착상되는 자리이며 나의 작품에서 춤 관련 이외의 자잘한 것은 별로 없다. 춤을 내 작품의 태반으로 삼는 것은 거기에는 항상 번쩍이는 소재가 싹트고 창작의 충동을 작품 속으로 끌고 가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 나의 모든 작품은 제의(祭儀) 관련의 몸짓이다. 나의 작품에서 제의는 관습적인 비전(秘傳)이 아니라 내 음악의 미래를 내다보는 열림의 의식이다.”(이해식, 2006:368~369쪽).
이해식이 추구하는 춤의 진원지는 전통적 굿판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세계는 ‘춤의 음악 되기’와 ‘음악의 춤 되기’의 순환적 운동성을 지닌다. 1979년작 「해동신곡」(海東新曲)은 상고대의 제례의식을 작품의 ‘전경’(前景)이라고 밝히는데, 이 또한 굿판의 그것과 멀리 있지는 않다. 이해식의 또 하나의 화두는 무속의 엑스터시와도 연계되는 ‘바람’이다. 「풍무」(1979)에서 구체화되는 이 표상은 「바람의 여자」(1992)로 대변되는 1990년대 초반의 작품들을 거쳐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해식은 굿판의 춤과 놀이 요소가 우리 민족의 농사 일에도 깃들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춤의 바탕인 리듬이 노동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당연하다. 그가 놀이를 작품으로 형상화함에 있어서 즐겨 표방하는 것은 한국 고유의 노동기구 두레이다. 농사 일에서 조화를 상징하는 두레가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서양악기와 국악(기)와의 두레질’을 의미한다고 한다. 서양 발성과 토속민요의 소리가 대조를 이루며 어우러지는 합창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두레사리」(1980),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두레」(2000), 탱고를 수용한 플루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두레맞이」(2001)는 모두 문화 사이의 두레질을 표방한다고 볼 수 있다.
3. 창작국악의 신분에 대한 초(草)
1) 작품의 영역과 관련하여
이해식의 창작정신을 읽어내자면, ‘신국악’, ‘창작국악’, 또는 ‘창작음악’에 대한 명명방식의 문제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이해식뿐만 아니라 김기수에서부터 황병기에 이르기까지 국악기로 창작해 온 작곡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이 전통과 대결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른데, 이해식은 그 가운데서도 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악기의 선택에 따르는 작품의 영역구분은 무의미하다고 하며, 작품 자체의 ‘색깔’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필자도 이제 연주 매체뿐만 아니라 전통선율이나 장단의 적용 유무가 창작국악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전통선율과 장단을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양악 출신의 작곡가가 얼마나 많은가. 뿐만 아니라 국악기를 디지털 음향도구로 사용하는 추세도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대개 국악기를 사용하고 전통음악의 요소를 재료로 활용하는 작품의 영역을 창작국악이라고 하고, 이런 류의 작품을 쓰는 작곡가를 국악작곡가라고 불러 왔다. 그리고 국악기 위주로 편성된 관현악을 국악관현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국악기와 양악기가 교합해 가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러한 명명 방식이 과연 유효한지 의문이 든다. 이해식은 한국 민속음악의 특징들을 재료화함에 있어서, 서양 전통의 교회선법, 조성어법, 12음을 고유의 감각으로 변용하며, 전위적인 음향어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국악의 ‘국’(國)을 타파하자고 주장하는 이해식에게, 국악작곡가라는 명칭은 왠지 어색하다. 그에게는 개방적 성향을 지닌 ‘토종’ 작곡가라는 역설적 이름도 적합할 듯하다. 왜냐하면 이 땅의 흙과 더불어 성장한 그가 ‘국’(國)이라는 관념 바깥의 ‘바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토종’이란 사실 이해식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유학하지 않고 이 땅에서 민속음악의 요소를 서양의 기법적 그릇에 잘 담아내는 강준일과 같은 작곡가에게도 해당된다. 작품의 영역을 구태여 구분하자면, 성장배경과 교육환경, 작품의 내용이 연주매체나 재료보다 더 적합한 기준이 될 것이다.
이해식의 주요 창작매체는 단연 국악관현악이다. 국악관현악곡은 합창과 협주가 들어가는 악곡을 포함해서 전 작품의 4분의 1이 훨씬 넘는다. 관현악 창작이 독주나 실내악곡에 비해 기법적으로 더 어렵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적은 수가 아니다. 즉, 국악관현악은 이해식에게 창작의 매체일 뿐 아니라 창작의 중요한 ‘일터’요 ‘춤터’가 되어 온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국악관현악은 창작국악의 명맥 유지를 위해 근간(根幹)이 되는 장르이다. 그런데 이해식은 근자에 서양 전통악기를 국악관현악에 삽입하는가 하면, 피아노를 국악관현악의 협주상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라틴 아메리카 춤도 여기에 혼용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이 국악관현악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의 입지를 모호하게 하는 것인지는 아직 더 기다려 볼 일이다.
2) 음악창작의 이름
1943년 전라북도 부안에서 출생한 이해식은 전후(戰後) 한국 농촌의 사회환경을 접하며 성장했다. 전주 사범학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1965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입학했다. 국악과 소속이었으나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했던 서양음악 학습을 주로 했고(정회갑 사사), 대학원에서도 양악 작곡공부를 했다. 그는 대학 시절 바르토크의 「미크로코스모스」(Microcosmos) 전곡을 스스로 섭렵하기도 했다. 즉 한국의 토속정서를 체험했던 그는 국악과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서양의 작곡기법을 두루 섭렵했던 것이다. 그 결과 대학 4학년이던 1968년 동아콩쿠르에서 한국 음악콩쿠르 최초로 서양작곡 부문(1등 없는 2등)과 그 해 신설된 국악작곡 부문에서 동시에 입상을 했다(같은 해에 국립국악원 제8회 신국악 작곡콩쿠르에도 입상했다).
1970년대 KBS-FM 국악방송 프로듀서 시절, 그는 방송 제작을 위해 향토음악을 직접 채집하기도 했고, 밤에는 창작에 전념하며 작곡가로서의 길을 꾸준히 걸었다. 「해금을 위한 상」(像)(1977), 「해동신곡」(海東新曲)(1979)과 같은 수작(秀作)들이 이 시절에 탄생했다.
1981년 영남대학교 작곡과 교수로 부임한 후(1982년 국악과 개설에 따라 국악과 교수가 됨) ‘굿’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탄생했고, 무용조곡 「흙」(1986)을 기점으로 무용음악에 대한 창작활동은 더 활발해진다. 현재 그는 댄스스포츠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위의 이력과 창작활동으로 미루어 볼 때, 양악(기)와 국악(기)의 이분구도는 이해식에게 창작초기부터 큰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1968년 입상곡 「가야고를 위한 3장」의 2악장은 론도형식을 사용했으며, 「해금을 위한 상」이나 「해동신곡」에 나타나는 음향어법은 서양 현대음악의 그것과도 교차하는 측면이 있다. 이해식의 이력은 음악이 개별 창작의 관점에서는 ‘하나’라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이는 바르토크가 헝가리의 민요를 현대기법으로 조리했다고 해서, 그의 이름이 둘이 될 수 없는 원리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4. 통합을 향한 전이(轉移)의 몸짓?
이해식의 사유는 ‘토종’작곡가답지 않게 열려 있다. 그의 음악에서 감지되는 독특한 신명의 기운은 국악기의 표현 가능성을 확대하고 새로운 음향도구를 실험하면서 발화(發話)된다. 이해식은 소재의 근원이 한국 전통이든지, 서양 전통이든지, 남미의 춤이든지 간에, 작품의 개성을 위해서라면 주저하지 않고 수용한다. 또, 전통이 현재 불필요하거나 불편하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버리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다만 1990년대 이후 증대되는 소재선택의 개방성과 작품의 질, 그리고 그것이 창작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국악의 소재를 현대적으로 조리하는 이른바 ‘창작국악’은 온돌을 보일러로 개조하여 침대를 놓고 생활하는 “앉는 문화의 현대화”를 반영해 준다(이해식, 2006:179쪽). 이것은 창작국악의 문화적 신분에 해당된다. 창작국악 공통의 문화적 신분이 이해식 개인의 작품에서 어떻게 매개되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리듬의 운용방식과 대등하게 중요한 관현악법을 꼼꼼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굿판의 제의에 바탕을 둔다고 하는 이해식의 작품들은 대개 그것의 특성인 즉흥요소를 표면화하지는 않는다(가곡 「광무월」(狂舞月)과 같이 북 반주를 즉흥에 맡기는 경우는 있다). 굿판의 즉흥적 요소에 대한 21세기적 변용은 그가 추구하고 있는 작품의 무용적 색깔을 위해 더 다각적으로 시도해 볼만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국악(國樂)의 ‘국’(國)을 타파하고 나면 ‘악’(樂)이 남는다. 이미 「밧삭」(1976)에서 국악에 대한 반란을 표명한 이해식은 ‘악’(樂)마저도 춤을 위해 열어 놓고 있다. 그가 지향하는 ‘춤의 음악 되기,’ ‘음악의 춤되기’는 한국의 음악사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동서양의 악기와 라틴아메리카 춤을 결합하는 근자의 시도는 굿판의 현대화를 넘어, 그것의 세계적 변용이라는 견지에서 해석될 수 있을까? 최근에 선보인 「국악관현악을 위한 전이」(轉移)(2006)는 국악기와 양악기의 통합을 향한 또 하나의 몸짓인가? 한 작곡가의 이름을 묻는 작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이 결국 이 사회의 문화적 신분 내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라벨도 바르토크도 아닌 이해식의 이름 연구는 창작음악 담론의 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이해식, 1990. 국악관현악곡집 [젊은 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서울: 수문당.
이해식, 2001. “음악사적 의미로서의 작곡가의
작품양식 연구 -이성천의 평론에 투영된 나의 작품양식의 재접근-,” [음악과 문화] 제5호, 대구: 세계음악학회.
이해식, 2005. “한국의 상여소리,” [낭만음악], 서울: 낭만음악사.
이해식, 2006. [이해식의 작곡노트 넘겨보기], 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장르별 작품목록
(작품 제목의 앞에 붙은 번호는 연도순으로 정리된 목록의 번호이다. 연도순 작품목록은 [이해식의 작곡노트 넘겨보기](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 468~472쪽 참조)
[가곡, 가요, 동요]
No.5.「진달래 꽃」(김소월) 가곡(1969)
No.6.「맘 켕기는 날」(김소월) 가곡(1969)
No.7.「두 사람」(김소월) 가곡(1969)
No.8.「나그네」(박목월) 가곡(1969)
No.9.「임 오시던 날」(노천명) 가곡(1969)
No.19.「광무월」(狂舞月)(허 민) 가곡(1976)
No.35.「이별가」(박목월) 가곡(1982)
No.42.「그 여자Ⅰ」(강은교) 가곡(1984)
No.47.「시련」(심인택) 가곡(1985)
No.57.「가슴소리」(심인택) 가곡(1987)
No.73.「꽃을 바치는 노래」 가곡(1992)
No.74.「애원성」(哀怨聲) 가곡(1992)
No.78.「민들레」(홍순관) 국악가요(1994)
No.79.「꿈」(피천득) 국악가요(1994)
No.80.「고향」(김준태) 국악가요(1994)
No.81.「묵은 옷」(홍순관) 국악가요(1994)
No.82.「풍경」(홍순관) 국악가요(1994)
No.83.「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김관식) 국악가요(1994)
No.87.「시내」(피천득) 가곡(1995)
No.88.「그림자」(임병호) 성인이 부르는 국악동요(1996)
No.91.「그 남자」(이해식) 가곡(1997)
No.110.「사랑 散歌」(박금규) 가곡(2002)
No.116.「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서정주) 가곡(2006)
[합창]
No.39.「아부레이수나」 혼성합창(1983)
No.44.「왕의 왕」 혼성합창(1985)
[기악 독주]
No.1.「젓대 독주곡 산조」(1968)
No.3.「가야고를 위한 3장」(1968)
No.10.「흙담」 가야고 독주곡(1969)
No.11.「구름터」 가야고 독주곡(1970)
No.23.「별풍류」(別風流) 가야고 독주곡(1977)
No.25.「해금을 위한 상」 (像)해금 독주곡(1977)
No.34.「달구벌소리 가야고 독주곡(1981)
No.48.「사마다」(Samada) 해금 독주곡(1985)
No.50.「술대굿」 거문고 독주곡(1986)
No.53.「굿을 위한 피리」(1986)
No.59.「줄풀이 제1번」 18줄 가야고 독주곡(1988)
No.64.「줄풀이 제2번」 18줄 가야고 독주곡(1989)
No.65.「춤피리」 피리 독주곡(1989)
No.76. 「The Junction」(旌善) Piano 독주곡(1992)
No.85.「금파람」(琴風) 18줄 가야고 독주곡(1994)
No.94.「고춤」(琴舞) 거문고 독주곡(1998)
No.95.「고풀이」(琴解) 화현(和絃) 거문고 독주곡(1998)
No.99.「춤사리기」 해금 독주곡(1999)
No.105.「명상하는 사람을 위한 바람의 색깔」 25현 가야고 독주곡(2000)
No.107.「나위사위」 25현 가야고 독주곡(2000)
No.108.「25현금을 위한 불꽃으로부터의 명상」25현 가야고 독주곡(2001)
[중주 및 앙상블]
No.2. Piano trio(1968)
No.4. Torso for Cello and Piano(1969)
No.13. Contrast and Frisk(clarinetㆍpianoㆍjing. 1971)
No.21. Clay Statues Clarinet Quintet(1977)
No.22.「사위」 細樂(1977)
No.28.「삼위 위상」(三爲 位相) 중주곡(1979)
No.29.「바람의 춤」(風舞) 실내악(1979)
No.32.「맥류」(脈流) 실내악(1980)
No.33.「삼굿」(三祭)(oboeㆍtimpaniㆍjing. 1981)
No.36.「管을 위한 流」 실내악(1983)
No.37.「압량벌소리」 중주곡(1983)
No.41.「피리를 위한 호드기」(1984)
No.71.「바람의 여자」 피리와 실내악(1992)
No.84.「기도」 단소와 18현 가야고
No.89.「춤바래기」 해금․25현 가야고․거문고(1997)
No.97.「바람터」 Flute과 25현 가야고(1999)
No.100.「달춤」 Clarinet과 25현 가야고(1999)
No.101.「두 대의 양금을 위한 Prepared」 양금 2중주(2000)
No.103.「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춤두레」(2000)
No.104.「춤 불러내기」 해금과 21줄 가야고(2000)
No.111.「소리질내기」 거문고와 25현 가야고(2003)
No.113.「현대의 거믄 학 접어보기」실내악(2003)
[국악관현악]
No.12.「당산」(堂山) 국악관현악(1970)
No.14.「원풍」(苑風) 국악관현악(1971)
No.15.「춤거리」 국악관현악(1973)
No.17.「탑원」(塔苑) 국악관현악(1974)
No.24.「사위 제2번」 국악관현악(1977)
No.26.「원심과 구심」(遠心․求心) 국악관현악(1978)
No.27.「승천」(昇天) 국악관현악(1978)
No.30.「해동신곡」(海東新曲) 국악관현악(1979)
No.38.「들굿」(野祭) 국악관현악(1983)
No.40.「산굿」(山祭) 국악관현악(1984)
No.49.「대굿」(竹祭) 국악관현악(1985)
No.49.「대굿」(竹祭) 국악관현악(1985)
No.51.「국악관현악을 위한 굿연습」(1986)
No.56.「디스코」(DISCO) 국악관현악(1987)
No.60.「춤을 위한 支와 干」 국악관현악(1988)
No.62.「춤을 위한 국악연습」 국악관현악(1989)
No.66.「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국악관현악(1990)
No.67.「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제2번」 국악관현악(1990)
No.72.「길춤」 국악관현악(1992)
No.75.「성주춤」(城主舞) 국악관현악(1992)
No.77.「춤맞이」 국악관현악(1993)
No.98.「국악관현악을 위한 디스코」(1999)
No.119. .「국악관현악을 위한 전이(轉移)」(2006)
[관현악과 독창, 또는 합창]
No.18.「뜰모리」 국악관현악과 합창(1976)
No.20.「밧삭」(外數) 국악관현악과 합창(1976)
No.31.「두레사리」 국악관현악과 합창(1980)
No.45.「어방굿」(漁坊祭) 국악관현악과 합창(1985)
No.46.「향발굿」(響鈸祭) 국악관현악과 합창(1985)
No.52.「종굿」(鍾祭) 국악관현악과 합창(1986)
No.92.「새 취풍형」(新醉豊亨) 국악관현악과 독창(1998)
No.96.「등장춤」(登場舞) 관현악과 독창(1998)
[합주 및 협주]
No.90.「축제를 爲한 춤피리」 피리 합주(1997)
No.93.「해궁」(奚宮) 해금 합주(1998)
No.102.「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두레」 피아노협주곡(2000)
No.109.「플루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두레맞이」 협주곡(2001)
No.115.「Piano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춤질내기」협주곡(2004)
[무용음악]
No.54.「흙」 무용조곡(1986)
No.61.「갈숲」 무용음악(1989)
No.63.「춤을 위한 두 사람의 연주」 무용음악(1989)
No.68.「가문 날의 꿈」 무용음악(1990)
No.112.「현대인을 위한 춤덜구」춤음악(2003)
No.114.「국악원 삼바―그리움으로 부르는 노래」춤음악(2003)
[그 외]
No.16.「호랑이와 두 남매」 인형극(1974)
No.43.「달아 달아 밝은 달아」 연극음악(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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