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매일춘추, 1991년

금슬(1991. 10. 17)

노고지리이해식 2006. 8. 21. 11:22

 

                                                                                                   


금슬(1991. 10. 17)


 李海植<嶺南大 교수ㆍ국악>


결혼 주례사에 자주 오르는 금슬(琴瑟)이라는 말은 부부 사이가 좋은 것을 말한다.

금슬은 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잘 어울린다는 뜻으로 중국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있는 말이다. 역시 소아에서 맏형은 훈(壎)을 불고 중형은 지(篪)를 분다고 하여 악기의 어울림으로 형제 사이의 의합을 나타내고 있다.

흙을 구워서 만드는 훈은 우리 나라 고려시대에 들어온 것이 최초의 기록이고 대나무로 만드는 지는 이미 우리 나라 삼국시대에 쓰였음이 문헌에 있는 중국 고대의 제례(祭禮)용 악기들이다.

금슬조화(琴瑟調和)나 훈지상화(壎篪相和)처럼 어울림(和易)의 에토스를 논하는 동양음악에는 서양처럼 인위적인 반음이 없으므로 심한 불협화음도 없다.

서양음악사의 안목을 바꾸어 보면 그것은 반음에 의한 불협화음의 체계적인 음악 사조사(思潮史)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은 불협화음의 용법에서 각기 비창감과 처절감을 느끼게 한다. 쇼팽의 주옥같은 피아노곡들은 모두 불협화음을 구슬처럼 꿰는 숨은 비법으로 끈끈한 순화작용을 느끼게 한다.

불협화음이 없는 자연주의적인 아악(雅樂)은 긴장과 이완의 교차가 빈번할 수 없고 슬퍼도 비탄에 빠지지 않는다(哀而不悲). 느린 데다 어울림만 있으니 바람이 숭숭 빠져 나가는 돌담처럼 비어있는 공백이 많다. 그림으로는 여백이 많은 동양화요 춤으로는 정중동(靜中動)이다.

동서 음악의 진수는 무릇 느린 음악 속에 배어 있다. 재즈도 그 진맛은 느린 블루스에 있다. 비어 있는 아악의 여백을 이해할 수 있음을 마치 그윽한 향기를 맡는 것과 같다고 한다면 과장이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겐 꼭 필요한 생활의 여유이자 마음의 도량이다.

비어 있는 연주자의 마음에 따라서 좋은 소리가 나오듯 우리 시대의 많은 불협화음들을 훈지처럼 도량을 넓히는 원동력으로, 금슬처럼 화합의 추진력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妻子好合 如鼓瑟琴"  [詩經] 「小雅」, 常棣.

          "伯氏吹壎 仲氏吹篪"  [詩經] 「小雅」,  何人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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