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海植<嶺南大 국악과 교수ㆍ작곡>
영어의 composition은 작문(作文)과 작곡(作曲)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작문은 글짓기요 작곡은 곡조짓기라 할 수 있다. 이 곡조짓기의 중심은 리듬이며 리듬은 수(數)의 개념과 동질성을 가진다. 음악과 수학은 겉보기와는 달리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이에 대한 학설을 처음 남긴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경~500경)이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기록된 한국음악도 의외로 수학과의 관계가 깊다.
작문은 폭 넓은 독서로써, 작곡은 치밀한 감상으로써 사고를 논리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composition이라는 조립, 구성력의 밑바탕을 삼는다. 단지 표현과정에서 작곡은 연극처럼 연주라는 추창조(追創造)의 한 단계가 더 있는 것이 그 특성이다.
그런데 86년도부터 대학입시에 작문이 포함된다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다행한 일이다. 자기의 의사를 구변(口辯)이나 글자로써 합리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체득한다는 것은 특정과목에 편중하는 현재의 입시제도로서는 불가능한 편이다.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의하면 과거를 보기위한 학문은 인간본연의 마음을 파괴하지만 그러나 국가고시제도인 만큼 부득불 익숙토록 권장치 않을 수 없다고 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입시에 따르는 폐단은 마찬가지인가 싶다.
작곡은 그 전개방법이 작문과 같으며 역사상 시인과 음악가가 동일인인 시대도 있었다. 작곡에는 종합적 문학적 유기적 사고가 필요하며, 사회학적인 독서가 따라야한다. 피아노를 배우는 것도 기초적이며 조직적 종합적 사고증진에 큰 도움이 되는데 과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피아노는 생활 필수품”이란 말이 이에 합당하다.
천하의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가 온 유럽에 자기의 음악적인 핵우산을 배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뛰어난 민속학자요 문학자요 사상가이며 철학자로서의 종합적인 전략전술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그너와 사귄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도 소나타 정도는 쉽게 작곡할 수 있었던 철학자였으니,*** 당시의 사회적인 종합영양소가 바그너란 작곡가를 길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불세출의 스트라빈스키는 모든 음악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로 돌아가란 말을 남겼는데 바흐의 음악은 우선 논리정연하고 수학적이며 어느 벽돌 한 조각이라도 들어낼 수 없는 지극히 섬세한 고딕건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첫 보기가 [평균율 피아노곡집](The Well-Tempered Clavier)이니 <바흐>(bach)의 뜻은 <작은 실개천>이란 독일어인데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지없이 깊고 한량없는 음악사의 커다란 강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바흐의 음악을 섭렵해보지도 못한 채 제대로 구사하지도 못하는 12음기법의 나열로 현대음악이라 자처하는 나르시즘(narcism)의 작곡가는 이제 우리 나라에선 무익한 존재이다. 12기법은 이미 본고장의 음악사에서는 고전으로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어(작문)를 모르는 작곡이란 거짓 창작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민족 언어는 곧 악상(樂想 idea)의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 [樂學軌範].
** 科擧之學 壞人心術然 選擧之法 未改不得不勸其 肄習此之謂課藝. 丁若鏞, [牧民心書] 「課藝」.
*** “에피소드的 니이체傳,” [니이체 全集] 第5卷, 서울: 徽文出版社, 1970년(三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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