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신입생 OT에 부치는 말
전지훈련(轉地訓練)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주로 운동 선수들이 장소를 바꾸어 가며 여러 가지 환경에 적응하는 훈련을 말합니다. 오늘 영남대학교 국악과 신입생 여러분도 본교가 아닌 경주에서의 OT(orientation)도 일종의 전지훈련입니다.
또 orientation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을 지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지훈련과 orientation은 서로 맥락이 닿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Orientation의 원형인 orient는 고어(古語)에서 “(태양 따위가) 떠오르는, 출현하는; 발생하고 있는(nascent)”이 원래의 뜻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신입생 여러분은 유서 깊은 경주에서의 전지훈련으로 대학생활의 첫 출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만약에 학교에서라면 여러분 각자의 가정에서 학교로 모이겠지만 여기서는 정해진 기간 동안 한 지붕 밑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생활하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특별한 의미란 한 솥밥을 함께 먹는 사이를 식구(食口)라고 하는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민속사회를 말합니다.
민속(folk)이란 통시적(通時的 diachronic)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고 현재의 생동하는 삶이 흐르는 계곡(溪谷)을 말합니다. 우리 국악은 민속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특히 민속악(folk music)이라고 할 때는 민속사회(folk society)에서 생성된 음악 그 자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현대 민속사회에서 국악을 배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지역 어떤 사람들의 음악이든 실로 그곳의 민속이 바로 기층(基層 fundamental)인 것입니다. 이러한 민속이 여러분의 심신(心身)을 적셔서 곰삭은 민속 정서(folk emotion)로 우러나올 때 참다운 국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학문으로 연구할 때 민속학(Folklore)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민속학까지도 함께 몸으로 익히고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비바람을 가리는 한 지붕 밑에서 한 솥으로 지어낸 밥을 나누어 먹음은 여러분 각자의 양식을 가져와서(potluck) 한 솥에 넣고 지은 밥을 다시 함께 나누어 먹음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이 말을 바꾸어 보면 여러분 각자가 전공하는 악기가 모인 합주, 즉 앙상블(ensemble)를 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음악이든 실로 그 목적은 함께 한다는(together) 뜻을 가진 앙상블에 있습니다. 앙상블이 잘 되는 학교일 때 우리는 미래 사회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환영하는 말에서 “함께”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썼습니다. 바로 이 “함께”가 음악의 합주이고 나아가 삶의 합주입니다. 부디 오늘 여러분의 OT가 건강한 우애와 대학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협동(함께) 의식이 싹트고 대학 4년 동안을 공부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2007. 2. 26. 경주 토비스 콘도에서
영남대학교 국악과장 이해식
2007 신입생을 위한 입사의식의 말
신입생 여러분의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입학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영남대학교의 상징인 천마(天馬)는 우리 영남대학교의 유서(由緖) 깊음을 한 마디로 말해줍니다. 이제 여러분은 영남대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웅비(雄飛)하는 천마와 같이 여러분의 기개와 역동성을 마음껏 펼치는 천마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 여러분 각자의 음악성을 연마할 기회를 가졌음에 또한 축하의 말을 보냅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동안에 알게 모르게 여러 단계의 의식(儀式) 절차를 치르는데 이것을 입사의식(入社儀式 initial rite)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여러분의 학업과 관련된 입사의식은 아마 대학 입학식이 가장 지고(至高)하고 기쁜 지선(至善)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이미 대학입학식을 위하여 경주 토비스 콘도의 한 지붕 아래에서 한 솥밥을 먹는 민속적 의미의 입사의식을 사흘 동안에 걸쳐서 치렀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여러분은 이미 영원한 영대인(嶺大人)이 될 성대한 부정(不淨)풀이 과장(科場)을 거친 것입니다. 굿(祭儀)을 하기 위하여 사전에 준비하는 일을 부정(不淨)풀이라고 합니다. 즉 부정풀이가 의식(또는 祭儀)을 치르기 위한 자리를 정결하게 한다는 뜻이고 보면 오늘 여러분의 입학식은 이런 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본(本)풀이, 즉 대학에 입학하는 의식인 입사의식을 치른 것임을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대학(大學)이란 글자 그대로 큰 공부요 공력을 쌓는 배움의 터전입니다. 동시에 청년으로서 마음껏 자유와 낭만을 구가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다고 자유와 낭만을 방종(放縱)과 혼동해서는 결코 안 되는 일입니다. 왜냐 하면 이러한 대학생활에는 분명한 자기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 자기 책임이란 대학 생활뿐만 아니라 일생을 통하여 무거우면서도 자기완성을 위한 필연적인 덕목인 것입니다. 이 덕목은 자기 자신이 세상살이의 근본이라고 일깨워질 때 가장 떳떳하게 보일 것이 극명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환영함과 동시에 여러분 각자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여러분의 날임을 축하합니다.
2007. 3. 2.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장 이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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