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MBC-FM fan(글ㆍ사진·이해식)

민속-줄에 관하여-. 95.3㎒ 대구 MBC-FM fan, 1985년 5월호,「음악과 민속

노고지리이해식 2009. 2. 6. 23:19

국악의 이해

음악과 민속-줄-

1985년 5월호

 

사진/이해식

 

죽마지우(竹馬之友), 또는 죽마고우(竹馬故友)는 어린 시절 긴 대나무를 다리 사이에 넣고서 여럿이 발 맞춰 뛰어 놀던 친구를 말한다. 어리지만 호흡이 잘 맞아서 노래까지 부르며 온 동네 고샅을 누비고 다니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새끼줄을 묶어서 그 안에 여러 사람이 들어가 한 줄로 서서 달리며 맨 앞사람의 지휘에 따라서 기차놀이 하던 모습을 나이 든 세대라면 거의 기억할 것이다. 이와 같이 줄은 여러 사람의 호흡을 일치시키고 또 행동이 하나 되게 하는 역할을 하며 음악적인 리듬을 만들어 내게 한다.

우리의 승천설화에서 줄은 생명선이 되는데 이것은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의 삼재(三才)를 연결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출상(出喪)할 때 상여의 앞뒤로 연결된 긴 줄을 여러 사람이 어깨 위에 메고 감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씻김굿에서는 고풀이라 하여 광목천으로 여러 개의 매듭을 지어서 하나씩 풀어가는 거리(科場)가 있는데 이것은 저승에 못가고 떠도는 원혼의 한을 풀어서 저승과 연결해주는 상징적 행위이다. 매듭을 짓고 풀어감은 한국음악에서 리듬의 변주로 연결된다.

역시 굿에서 기원한 살(煞)풀이춤은 해로운 빌미가 되는 독하고 모진 기운을 풀어가는 수건춤이며, 그 길다란 수건은 서로의 인간적인 유대를 줄로써 연결하려는 염원의 상징이라 하겠다. 레스리 화이트에 의하면 상징한다는 것은 곧 의미를 창조하고 부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함을 포함한다.

명절에 민속적인 행사로 벌어지는 줄다리기는 동네끼리 또는 남녀끼리 어우러지는데 김제 지방에서는 여자 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줄다리기는 줄이 매체가 되는 일종의 농사놀이며 사회적인 협동놀이이다. 공격과 반격, 상승과 하강, 질문과 답이라는 이러한 사회적인 놀이 속에서 운율의 언어와 음악, 무용 등의 원리를 찾을 수 있다고 J. 호이징하는 주장한다.

우리 나라와 같은 농경민족의 줄다리기는 농사를 위한 협동을 단속하는 예행연습이기도 하다. 양편으로 갈라져서 대결하는 놀이에는 풍물도 함께 대결되는데 풍물은 모두 둥그런 타악기로써 여성을 상징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주술과 맥락을 같이한다. 풍년이란 참으로 긴 시간과 노력의 보상인 순수한 창조 행위이다. 줄은 또한 금기(禁忌 taboo)의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출산(出産)을 하면 외부의 부정을 막기 위하여 문간에 건너질러 매는 인줄이 바로 그것이다. 출산이야 말로 가장 신성하고 완벽한 창조이기에 금줄로써 그 테두리를 정해둔다.

 

 

                                        : 「김제 입석 줄다리기」. 여자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남자쪽이 저줌).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을

                                            입석(立石 선돌)에 감아둔다. 제2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1981. 10. 22. 인천공설운동장.

                                       가운데: 장산도 씻김굿(전남 신안군 장산면 공수리 1구 마초부락).

                                                  원혼을 달래고 위로하는 상징으로 공중에 매달아 놓은 광목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는 거리. 1980. 8. 17.

                                        아래: 청도 풍각농요. 한쪽에 늘어놓은 둥그런 북과 삿갓이 풍년을 기원한다.

                                               제2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1983. 10. 21. 안동시민운동장.

 

  

 

지금까지 인간과 관계된 줄에 관한 여러 가지 민속적인 보기를 들었는데 이러한 줄을 음악으로 바꾸어서 보면 그것은 곧 긴 지속음으로써 한국음악이 선율적으로 발달된 것과 동질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민족의 음악이든 지속음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양음악사를 거슬러 올라 갈수록 지속음(organ point)의 형태가 뚜렷해지며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운명」의 제2악장이나 모차르트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지속음을 쉽게 들어볼 수 있다. 인도의 라가음악은 드론(drone or bourdon 지속음)을 계속하면서 그 위에 미묘한 가락이 전개된다. 더욱이 오늘날은 신서사이져(synthesizer)의 발달로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이르기까지 지속음은 참으로 유용하게 쓰인다. 지속음이 음악의 커다란 줄기가 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맨 처음 줄로써 소리의 높이(音高 pitch)를 측정하기도 했으니 줄은 곧 소리요 지속음이 된다. 한국인은 줄로써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들었으며 이들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피아노나 하프처럼 정지된 것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악기에 매는 줄은 철사가 아닌 명주실을 써서 항상 유동적인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여유를 둔다. 이 여유란 무엇인가? 거문고칠 때 소리와 소리 사이를 헤아림이며 춤출 때 정중동(靜中動)의 춤사위와 같음이다. 또 가야금이나 거문고의 줄을 움직이는 농현(弄絃)으로써, 젓대나 피리는 소리를 흔드는 요성(搖聲)으로써 다 같이 소리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이와 같이 한국음악은 정지된 소리가 아니라 항상 생동하는 것이다. 줄다리기 할 때의 긴박감처럼 지속음의 주변에 특징적으로 긴장과 이완을 교체함으로써 인생의 희ㆍ노ㆍ애ㆍ락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이니, 이렇게 보면 음악이란 소리의 줄다리기라 하겠다.

풍년이나 출산은 창조에 의한 생명력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출산, 즉 창조가 없다면 어떤 예술이든 생명의 연속이 없는 거나 다름 아니다. 돌이켜 보면 역사란 새로운 생명들의 활동을 기록한 흔적이라 하겠는데 음악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음악도 재즈와 같이 작곡-창작-보다는 연주가 앞선 것이기 때문에 창작에 의한 시대적, 개인적 양식(style)을 이룰만한 특별한 계기가 별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면 옛부터 전해오는 판소리에 이어서 새로운 판소리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음이 현실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국극(國劇 국악연극)이 성행하였다. 여자가 판소리를 하려면 허스키(husky)가 되어서 남자역을 할 수 있으므로 여성으로만 구성된 국악극단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극과 음악으로서의 순수한 창조성 결핍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한다.

인구가 많아지고 시간과 공간개념의 상황이 달라지면 거기에 맞는 음악이 창조되어져야 한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국악이나 씨름판에서 접할 수 있는 국악, 그것이 국악의 전부인양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오해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러한 것들은 단지 관광음악(terminal music)으로써 어느 분야에나 있으며 또한 필요성도 있다.

줄은 인간의 마음과 마음의 울림을 전해주고 연결하는 창조의 끈이며 그것이 곧 음악이다. 줄에 음악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 생명은 영속되고 활기에 넘칠 것이다. 또한 줄이 진실한 인간미가 교감(交感)되는 미디어임을 밤 10시 대구 MBC-FM의 명곡순례에서 격주로 방송되는 토요일 밤의 국악프로에서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의 해설자는 이해식이다. (95.3㎒ 대구 MBC-FM fan, 1985년 5월호, 14~15쪽, 「음악과 민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