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이야기 ②
한국의 랩 뮤직-목도소리-
1992년 9월호
글ㆍ사진/이해식
지난(1992년) 8월 16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연은 그 이전의 New Kids on the Block의 열광이 식기도 전에 불을 붙인 젊음의 용광로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들이 날마다 집에서 틀어대는 이 두 그룹의 카셋트 테잎에서 이제 내 귀에도 익숙해진 이들의 무엇이 그토록 젊은 청소년들을 통째로 사로잡는 것일까?
난 알아요 이밤이 흐르면요!
그대 떠나는 모습을 뒤로하고
마지막 키스에 슬픈 마음 정말 떠나는가?
서태지 그룹의 「난 알아요」의 일부이다. 젊은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사랑의 말을 빠른 운(韻 rhyme 또는rime)으로 엮어갈 때 -rapping- 생기는 율동성이 역동적인 몸짓(춤)을 유발하고 그 몸짓의 후면에 흐르는 메랑코릭(melancholic)하며 끈끈한 정서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접착제보다도 더 강력하게 붙들어 맨다.
랩송(rap song)처럼 운을 떼는 음악은 우리 나라 민요에도 진작부터 있어 왔다.
우리댁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메고 찍어메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강원도 정선아리랑을 보기로 들면 느리게 부르는 부분을 긴아리랑, 위에 소개한 가사처럼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부르는 부분을 엮음아리랑이라 하는데 바로 <역음>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날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랩송과 리듬에 있어서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다만 정서적인 통시성만 다를 뿐이다. 서태지의 「난 알아요」에 랩과 멜로디가 섞여 있음과 같이 정선아리랑도 느린(긴) 멜로디와 빠른 엮음(rap)이 섞여서 변화를 준다.
<엮음>이란 볏짚으로 나래를 엮듯이 말을 촘촘하게 박아서 또는 엮어서 부른다는 뜻이다. 낭송조(recitation)의 엮음을 다른 민요에서는 가락이 <빨라진다ㆍ잦아진다ㆍ자지러진다>는 뜻의 <자진>을 붙여 부른다. 즉 <자진농부가ㆍ자진난봉가> 등이 그런 것들이다.
우리나라 민요 중에서 가장 중요한 랩송은 노동과 관련된 <목도소리>이다. <목도>란 산판에서 통나무나 돌산(채석장)-石山-에서 무거운 돌덩어리를 밧줄로 얽은 다음 굵은 막대기에 걸어서 목어깨에 메고 옮기는 노동이다. 이 운반용 막대기(carrying pole)를 목 뒤에 멘 데서 목도라고 한다. 이때 목도꾼은 반드시 2·4 등의 짝수로 양편에서 목도하면 2목도 또는 4목도라 하며, 랩과 같은 구성지고 리드미컬한 구호에 맞추어 발을 떼고 호흡을 일치시킨다. 이때의 구호가 곧 목도소리이다.
목도꾼들은 목도소리를 부름으로써 힘의 균형과 노동의 동작을 일치시켜서 운반노동의 효율을 높인다. 동일한 리듬반복은 쉽게 사람의 몸짓을 불러일으키고 드디어 황흘경(ecstasy)에 빠지게 한다. 마찬가지로 랩 리듬과 같은 목도소리는 목도의 힘겨움을 덜어내고 협동을 유발함으로 보인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현대생활에서 젊은이들이 랩에 심취함은 원초적 혼돈으로의 회귀본능이며 이들을 끌고가는 현대적 의미의 무당이 서태지나 수시로 출몰하는 가수 또는 그룹사운드가 아닌가 한다. 온 세계의 젊은이들이 랩에 신들려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은 현상을 사시(斜視)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성이 완성되고 재창조 되어가는 에너지 분출의 한 과정으로 보는 긍정적 시각이 좋으리라. (95.3㎒ 대구 MBC-FM fan, 1992년 9월호, 18쪽, 「한국의 랩 뮤직」).
목도꾼들은 목도소리를 부름으로써 힘의 균형과 노동의 동작을 일치시켜서 운반노동의 효율을
높인다. 위 사진은 제45회 전국민속예술축제 <하빈들소리>에 나오는 목도소리.
2004. 10. 6. 부여 백마강 변 구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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