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MBC-FM fan(글ㆍ사진·이해식)

마네킹 경찰과 담뱃대. 95.3㎒ 대구 MBC-FM fan, 1992년 8월호, 20쪽.

노고지리이해식 2009. 4. 3. 12:56

국악 이야기 ①

 

마네킹 경찰과 담뱃대

1992년 8월호,

 

사진/이해식

 

차를 몰고 거리를 달리다 보면 더러 깜짝 깜짝 놀라는 때가 있음은 곳곳에 세워둔 모조 경찰관의 모습이 진짜와 꼭 닮아서 순간적으로 과속이나 법규위반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마네킹(Mannequin) 경찰은 거의 같은 장소에 세워져 있건만 지나칠 때마다 조금씩 놀라는 것이 요즘 운전자들의 공통된 심정이리라.

경찰관이나 경찰차는 운전자들에게 지레 찔끔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효과를 노려서인지 충북 청주에는 폐차를 이용한 모의 순찰차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면 모의 순찰차든 마네킹 경찰이든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여기 '국악이야기'를 처음부터 국악과는 거리가 먼 모조 경찰 이야기로 시작하는 걸까? 우선 다음 민요를 유심히 읽어 보자.

 

 

                                                 이물코 저물코 다 헐어놓고

                                                 쥔네양반 어디갔노

                                                 문어야 전복 손에 쥐고

                                                 첩의 방에 놀러 갔네

 

 

 

 

 

모내기철은 부엌의 부지깽이조차 쉴 틈이 없을 만큼 가장 바쁜 농번기인데 주인은 여기저기 물코만 터놓고 보이지 않는다. 몸에 좋다는 문어 전복을 들고서 첩의 집에 놀러 갔다고 모내기 일꾼들이 한탄 반 야유 반으로 부르는 모내기소리가 위에 소개한 가사이다. 가락이 애달픈 이 민요는 특히 경북지방을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주인 양반이 첩의 집에 그냥 놀러갔으면 좋았으련만 머슴들에게 일거리를 주문한 후 담뱃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채워서 불을 붙여놓고 간다. 그 담배가 타는 동안은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머슴들은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또 담배가 다 타더라도 주인이 불시에 담뱃대를 가지러 올 것이다.

담뱃대와 주인의 보이지는 연결이 일의 능률을 올리듯이 큰 길가에 세워둔 사이드카(Side car)만 보아도 운전자는 자연스레 제동 페달을 밟게 된다. 이제 담뱃불도 시들고 해질녘이 되어도 돌아오지는 주인의 인생은 다음의 민요가 잘 말해준다.

 

 

                                             해다지고 저문날에 옷갓하고서 어디가요

                                             첩의집에 가실라거든 나죽는꼴 보고가시요

                                             첩의 집은 꽃밭이요 나의 집은 연못이라

                                             꽃나비는 한철이요 연못의 금붕어는 사시철이라

 

 

그동안 대구 MBC-FM 애청자에게 애독되던 FM fan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무척 반가운 마음이다. 지난 1988년 3월호까지 「국악의 이해」로 연재했던 칼럼을 이 번 호부터는 「국악 이야기」로 바꾸어서 연재한다. 집필방향을 서양음악과 연계함은 특히 젊은 계층이 국악에 쉽게 접근하고 친근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필자가 직접 찍은 사진은 본문을 이해하는 데 주석(註釋)의 역할을 한다.  (95.3㎒ 대구 MBC-FM fan, 1992년 8월호, 20쪽, 「마네킹 경찰과 담뱃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