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KBS 시절

민요의 고장-김제 정당리 audio

노고지리이해식 2009. 7. 19. 20:00

 

민요의 고장-김제 정당리편.

93.1MHz KBS-1 FM. 방송/1980. 4. 27. 10:30 pm.

 

 

학술회의 “아시아 음악의 전통과 현대적 변용,”

전주소리축제위원회ㆍ아시아음악학회 공동주최,

2007. 10. 11.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세미나실

 

 

이 발표문은 아시아음악학 총서 8 [아시아음악의 어제와 오늘](서울: 아시아음악학회, 2008), 315~348쪽에 게재되었음.

 

 

 

 

민요의 고장(김제)

 

이해식(영남대 교수)

 

 

<목 차>

 

 

 

      1. 첫 멘트(ment)

      2. 채보

          긴 모심기(긴 농부가)

          자진 모심기(자진 농부가)

          긴 논매기

          자진 논매기

          위염 소리

         벼 베는 소리

         등짐 소리

     3. 끝 멘트

         참고 문헌

         Abstract

         종합토론에서

 

 

 

1. 첫 멘트(ment)

 

    내가 국악 프로듀서로 재직했던 한국방송공사(KBS) 라디오국 제작부의 고전음악반(반장 권오성)에서 1979년에 93.1㎒로 FM방송을 시작하였다. 그후 1980년에 고전음악반이 FM부로 독립하여 KBS 제1FM 방송으로 개칭되고 2007년부터는 KBS-classic FM으로 개칭되었다.

    내가 고전음악반 시절에 제작했던 <민요의 고장>은 전국의 토속민요를 발굴 채집하여 방송하는 format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내가 FM부에서 퇴직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본문은 나의 FM 시절인 1980년 4월 27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되었던 <민요의 고장> 전라북도 김제군 진봉면 정당리 편이다. 본문은 방송 당시의 script에 정당리 민요를 채보, 삽입하여 이를 주석으로 설명하는 틀로 전개된다. 주석이 많으면 독자의 가독성(可讀性)이 저해되겠지만 <다시 듣기>로써 과거의 방송 분위기를 반추해 보고, 무엇보다도 학술회의 “아시아 음악의 전통과 현대적 변용”에서 음원(source)을 청취하면서 공개발표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발표한 <민요의 고장> 특집 프로그램 “한국의 상여소리 연구”와 “노작의 율동”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집필되었다.

    주석으로 설명되는 정당리 들노래(農謠)는 <긴 모심기ㆍ자진 모심기ㆍ긴 논매기ㆍ자진 논매기ㆍ위염 소리ㆍ벼 베는 소리ㆍ등짐 소리>이다. 전라북도의 서쪽 평야인 김제(金提)를 택한 까닭은 김제가 “아시아 음악의 전통과 현대적 변용”의 학회 장소인 전주의 인근이어서 그렇다.

 

 

전라북도 김제군 지도.

[MBC 한국민요대전] 전라북도 김제편(서울: 문화방송, 1995), 389쪽.

 

             2. 채보

 

   <민요의 고장>을 5선보(staff)에 채보하는 순서는 민요 제목 아래에 채록한 장소와 민요를 부른 사람(唱者 informant)을 적는다. 그 다음 빠르기를 채보의 왼편 위에 M.M.으로 표기하고 그 오른쪽에 채록자와 채보자를 적는다. 민요의 핵심이 되는 메기는 소리(앞소리 call)와 받는 소리(뒷소리 response)를 한 마루(절)씩만 실음(實音 real tone)으로 채보하며 나머지 사설은 채보의 밑에 따로 적는다. 채보에는 강세표(dynamic)ㆍ장식음(ornamentation)ㆍ휘어내는 소리(꺾는 소리 sliding tone)ㆍ요성(搖聲 vibration) 등을 자세하게 표기한다. 채보의 끝에는 채록한 녹음기(recorder) 명칭을 쓴다.

   음고(音高 pitch)는 채보의 조성(tonality)에 따르는 계명과 괄호 속에 영ㆍ미(英美) 음명을 함께 쓴다. 아래와 같이 중앙 C의 음역에서부터 one line을 붙임을 표준으로 한다(line을 붙이는 위치가 이와는 다르게 표시된 국내의 일부 전적도 있다). 이것은 5선 보표가 없어도 옥타브의 근거를 청각적 공간의 질서에 둠으로써 특정한 위치의 옥타브나 음고를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이며, 이것은 Grove Dictionary와 Donald J. Grout의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edited by Stanley Sadie)와도 일치한다. 이러한 음고 표기를 국악의 정성(正聲)ㆍ중성(中聲)과 관련하여 이미 나의 다른 논문에서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여기서 음고 표기를 재론함은 거개의 국악 논문에 small과 capital letter를 구별하지 않은 음고를 표기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do' re' mi'… 등과 같이 계명에 line을 붙인 음고 표기도 있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채보는 상대적 음고(relative pitch)와 절대적 음고(absolute pitch)를 병행한다. 본문 채보에서 상대적 음고란 토속민요를 채보할 때 처음에 잡은 실음 음고와 조성(調性 tonality)을 끝까지 유지하는 채보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민요를 채보할 때 미세하게 변화되는 음고를 처음에 잡은 조성의 음으로 이해하는 채보이다. 이것은 인위적이 아니라 첫 조성의 분위기에 젖어서 그렇게 된다.

   절대적 음고란 변화되는 미세한 음고를 피아노나 다른 평균율 장치와 비교하여 자세한 음고를 표기하는 채보를 말한다. 절대적 음고는 음표 위에 +와 -로 표기된다.

   상대적ㆍ절대적의 두 가지 채보 방법의 융합은 소리가 들리는 대로(表音 phonetic) 자세하게 적는 것인데 어느 쪽을 택하든 채보를 재연(replay)할 때 원본대로는 되지 않는다.

   상대적 음고에 의한 채보는 음고가 정확치는 않지만 재연주가 부드럽고, 절대적 음고에 의한 채보는 음고는 정확하지만 재연주가 부자연스럽다. 이와 같이 5선보로 채보할 때의 한계점을 아래 인용문이 잘 대변해 준다.

 

5선지에 채보하는 데는, 잘 훈련된 귀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원시 음악과 동양 음악의 여러 가지 특수성을 파악하고 표현한 테크닉까지도 필요로 한다. 결국 우리들의 5선보는 우리들의 알파벳과 똑같은 것으로써, 그 언어와 가까워지는 데는 쓸모가 있지만, 그것으로 그밖의 다른 언어의 발음과 스피치ㆍ멜로디를 타나내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주로 근대의 서양 음악을 위하여 만들어진 5선보로는 표준화된 온음(全音)과 반음 이외의 음정은 나타낼 수가 없다.

 

   본문은 30분 프로그램을 17분으로 축소한 음원을 함께 듣는 환경으로 집필되었다. 그러면 아래 <민요의 고장> Staff 소개로부터 정당리 편을 <다시듣기>로 펼쳐보겠다.

 

                                     Staff

producer: 이해식

scriptor: 이해식

field work: 이해식

recorder/Uher 4200(open reel, 2-channel stereo)

camera/Nikon FE

narrator: 신원균

mixer: 문종철

duration: 30'

type: 7½ i.p.s. mono.

 

                                           방송 일시: 1980년 4월 27일 밤 10시30분(93.1 ㎒ KBS-1 FM)

                                              재방송:  5월 4일 저녁 5시 30분(711 ㎑ KBS 제1라디오)

 

 

SIGNAL

 

TITLE 민요의 고장

 

SIGNAL up

 

NARRATOR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매주 일요일 이 시간엔 우리겨레의 얼과 정서가 새겨진

                  민요의 고장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전라북도 김제군 진봉면 정당리의 들노래를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SIGNAL

 

NAR. 진봉면 정당리는 김제읍에서 만경 쪽으로 약 40분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있는 아담한 동네입니다.

        흔히 김제라고 할 것 같으면 드넓은 김제평야를 생각하기 쉬운데 이 마을은 조그마한 산에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동네입니다.

 

back music 정당리 풍장굿 

 

<정당리 풍장굿>을 치는 전북 김제군 진봉면 정당리 사람들.

1980. 4. 17. 밤. Nikon FE 촬영/이해식.

 

NAR. 자! 그러면 이 마을에서 가장 연로한 74세 송명식 노인의 얘기를 들어보시겠습니다.

 

back music(농부가)

 

송명식(宋明植 74세, 정당리 배경 설명) 여그가 다산다하라고 하는 동네여. 예,

           그래서 많을 다(多) 자입니다. 산세가 다산다하(多山多河)라. 여그는 못이 많아서 정당리여.

           못 정(?)자, 못 당(塘)자. 예, 정당리(淨塘里 못 정(?)자가 아니고 깨끗할 정 자임)라 읽습니다.

           그러고 여가 강남샘이라고 있어요. 강남샘, 여그가 한 오백여 평이 되는디, 그 전에 옛날에

           가물어서, 비가 안와서, 도무지 물이 없어 못 사는디, 그 새암물을 먹고 여그 구석쟁이서 살았어요.

           어찌서 강남이라고 했는지 모르겄어요. 그러나 그 샘물은 특수한 것이 있어요잉. 물이 사철

           흘러내려요 좋은 물이…, 아무리 가물어도. 아까운 샘물을 흘려 내보낼 수가 없으니깐,

           공그리(concrete) 히(해)서 사물이 히 놨더니, 아! 물이 안 나와 버려. 넘어가는 디는 잘 나오는디,

           그 물을 안 내보내고 말이여.  이것을 말하면 녹깡입니다. 녹깡을 이렇게 딱 하니께 물이

           안 나와요. 그래서 녹깡을 띠내 버렸어요. 아 그랬더니 아 무지허니 그냥 물이 나오네. 동네 사람

           강남샘이라 하는 것은 옛날에 뭐 선비들이 -못서당이라고 있어요- 거서(거기서) 어른들이 옛날

          공부헐 때에 강남샘을 먹고 공부도해가지고 참, 과거도 보고 했다 말이여, 내가 그런 소리를 들었어요.

 

music up

 

NAR. 자 그러면은 모심기 노래로부터 정당리 들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제 만경 평야답게 들노래도

        다양해서 모심는 소리도 흥겹기만 합니다.

 

MUSIC 긴 모심기12)

 

 

 

<정당리 들노래>를 부르는 전북 김제군 진봉면 정당리 사람들.

1980. 4. 17. 밤. Nikon FE 촬영/이해식.

 

NAR. 남녀노소가 품앗이로 서로 도와가면서 모를 심는 논배미에 모심기의 흥이 돋아지면 그 소리는

        더욱 흥겨워지고, 자연히 더 빨라집니다. 그래서 자진모심기 노래가 불러지게 마련인가 봅니다.

        아직도 모심기 철이 아니라서 들녘이 아닌 마당에서 모심는 흉내를 내며 부르는 소리지만 무릎

        장단이 더욱 생기를 갖게 합니다.

 

MUSIC 자진 모심기13)

 

 

NAR. 모내기가 끝난 후에 가장 힘 드는 농사일이 논매기(除草作業)라고 하겠습니다.

         세 번에 걸쳐 잡초를 뽑고 호미질을 하는 일이 논매기가 되겠습니다.

         작렬하는 태양, 깊숙이 구부린 허리, 이마에서 흐르는 구슬 같은 땀방울, 논매기가 힘 드는 만큼

         그 소리도 처음에는 아주 느리게 느리게 시작됩니다.

 

MUSIC 긴 논매기 16)

 

동네 사람. 옛날에는 인자 호미로 메고 그러니께 그런 것이 나왔습니다마는,

               현재는 제초제(除草劑)를 쓴 게요. 그런 소리를 듣기가 에려워요. 그래서 그런 소리를

               시방도 들으면 참 새롭게 듣겨요. 그러면서 한 번 그런 소리를 허면서 한 번 놀아봤으면

               이런 생각이 나요.

동네 사람. 누가 옆에서 헌다고 허면요, 그냥 맴(마음)이 어쩔 수 없이 금방 나온다고요,

               그러나 그것이 인자 스스로 한 10년, 20년 넘어 가지니까 이것이 그냥 다 수포로 돌아갔시유.

               지금도 그냥 누가 넘겨준다고 하면요, 그 대답은 다 싹 헐 수가 있어요.

NAR. 논매기 소리를 대개 자세히 듣다 보면 퍽이나 서정적이고 그리고 사랑가적인 가사가 아주 많은데요.

        그것은 아주 많은 힘이 소모되는 작업을 이 사랑가를 부르면서 견디어내려는 노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그럼 조금 빠른 논매기 소리가 되겠습니다.

 

MUSIC 자진 논매기 18)

 

NAR. 다하 부락 사람들이 불러주는 자진 논매기 소리였습니다. 헌데 그 넓디넓은 논바닥을 쓸고

        다니면서 호미나 맨손으로 김을 매는 일이란 여간 힘 드는 일이 아닙니다. 이제 논 구석이 조금

        남아서 쉴 참이 된다는 기대감에 찬 노래는 더욱 들어 볼만 합니다. 이런 때의 논매기 소리를

       정당리 다하부락 사람들은 위염 소리라고 부르고 있더군요.

   

조그마한 산에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정당리 다하마을 전경>.

2008. 4. 6. SAMSUNG SDC-K60B 녹화/이경준.

 

MUSIC 위염 소리19)

 

 

송명식. 위염이라고 해서, 한참 지심(김) 메고 끄트머리 이제 거진 다 미어가잖아요?

           그때는 손일이라고 말이여, 이제다 미었다 그 말이지요잉. 참 좋았습니다 거! 쥔(주인)

           기분도 좋고, 재미가 있어요. 그리서 쥔이 집이(에) 가서, 기양 아무케도 밥 대접 할래도 말이여,

           거 참, 일꾼들이 말이여, 소리를 험서 김을 매고 말이여. 위염이라고 해서, 끄트머리 이케(이렇게)

           참 소리를 메겨감서, 이케 헌다고 허지만 집에 가서 없는 술이라도 더 갖다 주라고 더 갖다 주라고….

동내 사람. 그러니까 하루 종일 히었다가서 마무리 단계에 두고 허는 말씀이지요.

                옛날에, 일제하에서는 술이 귀하지 않았어요? 젊은이들은 인자 모르시겠지만요. 술이 귀헐

                적에요. 그 오후에 한 잔씩 갖다 주먼요. 그 한 잔씩 자신 기분에 지금 마냥으로 두세 잔

                자시는 것이 아니였었어요. 한두 잔 자시고도 기분이 좋아서요. 거기서 인자 참 농부가 저절로

                나왔었어요.

 

music up (위염 소리) 20)    

 

 

NAR. 구성진 소리와 함께 세 번에 걸친 논매기가 끝나면 농부들은 검푸른 벼 포기를 정성스럽게 가꾸면서

        오직  “풍년이 들어 주소서!” 기원을 할 뿐입니다. 땀 흘려 애쓴 여름이 지나고 이제 가을, 탐스럽게

        고개 숙인 벼이삭을 낫질하면서 부르는 것이 <벼 베는 소리>입니다. 다시 이 마을 송명식 노인의

        얘기와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송명식. 그전에 보릿고개도 있었고, 배고팠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정시대…,

           그랬다고 해서 배고파서 노래가 나오는 거고, 뭐 술을 안 줬다고 노래가 나오는 거 아니에요.

           우리 민요! 옛날부텀, 식관상(습관상)으로써 지켜 나온 노래에요. 이제 풍장을 칩니다이.

           침서(치면서) 이놈 치고, 징 치고 맞춰서 허면는요. 논두렁에 서 있는 쥔이 말이요,

           췸()이 저절로 나와요. -웃음- 그래서 으떤 소리고 말여, 쥔이 말이여, 자진이 해서

           술도 갖다 주고, 욕봤다고 더 먹으라고 허고, 이렇게 했습니다.

 

MUSIC 벼 베는 소리21)

 

 

 

NAR.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황금물결,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배가 부른 풍년의 기쁨 속에

        한 아름씩 베어진 벼 포기는 논바닥이나, 또는 논두렁에서 얼마동안 말려지게 됩니다.

        이 볏단들이 주인집 마당이라든가, 동네의 넓은 터에 옮겨지는 작업을 등짐이라고 합니다.

        헌데 이 등짐이야말로, 건장한 청장년이 아니면 해낼 수가 없는 일이며, 보다 많은 볏단을 지게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서로 힘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볏단을 나르는 지게의 행렬이야 말로

       지금은 볼 수 없는 농가의 풍년행진이었을 것입니다. 헌데 이때에 부르는 것이 <등짐소리>

       또는 <지게목발 소리>입니다.

 

MUSIC 등짐소리22)

NAR. 민요의 고장! 지금까지 전라북도 김제군 진봉면 정당리 다하 부락에서 녹음한 정장

        들노래를 보내드렸습니다. 지금은 좀 들어보기 어려운 정당 들노래를 불러 준 정당리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면서 오늘의 순서를 마칠까 합니다.

 

SIGNAL

3. 끝 멘트

 

    <민요의 고장>은 내가 KBS-Radio(FM)에서 국악 프로듀서일 때 전국의 사투리(토속) 민요를 발굴 채록하여 제작, 방송했던 프로그램이다. 나는 그때 몇 개의 테잎을 보관해 두었는데 본문의 내용인 전라북도 김제군 진봉면 정당리 들노래도 그 중의 하나이다.

    당시 정당리에서 온존(溫存)한 들노래는 <긴 모심기ㆍ자진 모심기ㆍ긴 논매기ㆍ자진 논매기ㆍ위염 소리ㆍ벼 베는 소리ㆍ등짐 소리>의 순서이다. 이 순서를 비록 좁은 방 안에서 불렀지만 농경 동작에 따르는 음조는 다양했다.

    상사 소리로 부르는 <긴 모심기>와 <자진 모심기>는 통속적인 <긴 농부가>와 <자진 농부가> 보다는 덜 세련되어 있어서 정당리 사투리처럼 순수한 시골티(田園色)가 배어 있다.

    아래에 다섯 단으로 묶은 <긴 모심기>와 <등짐 소리> 채보는 “욕”이라는 토속적인 언어와 선율이 밀착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d"(Mi)음을 반복하는 악절 a1은 완전4도 아래에서 a'(Si)음을 반복하는 메아리(echo) 악절 a3이 된다. 그 사이 중간 악절이 되는 a2에서 가장 높은 g"(La)음으로 “보”(見)라는 시각적 언어를 윤색한다. <등짐소리>에 있는 악절 a4는 a1을 단3도 더 높은 f"(Mi)음 반복으로 “욕”이라는 사설을 강조한다. 다루치기로 d"(Do)음을 반복하는 a5는 a4의 메아리 악절이다. 이와 같이 a1ㆍ3ㆍ4ㆍ5는 동음(同音) 반복 수법으로써 사설을 이면 윤색(裏面潤色)하는데 특히 a5는 동음 반복에 단2도 장식음을 붙이는 다루치기로써 계면조 정서를 강조한다. 음악이 슬퍼지면 음정이 좁아지고 춤의 보폭(step)도 촘촘해진다.

 

 

    <자진 모심기>와 <위염소리>에서 즉흥적으로 치는 무릎 장단이 아마 야외였더라면 풍장이나 지게목발치기였을 것이다. 또한 <자진 모심기>ㆍ<위염소리> (F)에서 높게 질러내는 통성 발성은 정당리 사람들이 계면조 정서를 구두적으로 보강하는 독특한 표현이다. 특히 <자진 모심기> (F)에서 auftakt 리듬에 부쳐내는 아주 유니크(unique)한 추임새가 그렇다.

    음악이 세련되거나 현대의 빛을 받을수록 박자가 일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1960년대만 해도 판소리나 산조에서도 불규칙한 진양조나 중모리 장단을 어렵지 않게 들어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그렇지 않다. <긴 논매기>에서부터 끝까지 박자표를 붙이지 않고 고동박이 되는 음표(  )만 제시했음은 악절의 길이가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당리 들노래가 그만큼 옛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음이며 앞에서 온존하다고 한 까닭이 된다.

    <긴 논매기>ㆍ<자진 논매기>는 주음(본청)에서 제3음이 되는 소리가 자주 장ㆍ단 음정으로 변화된다. 나는 이것을 이론적으로 동주음조라고 설명했다. 단음계를 계면조에 적용하면 항상 상ㆍ하행하는 제6음을 반음 올려야 하는데 동주음조를 쓰면 제3음 변화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6음을 반음 올려 부름은 단조의 나태함에 빠지지 않는 애이불비요 민속의 힘이요 민속적 활력이라고 하겠다.

    서양의 장ㆍ단음계에서 제7음은 주음(tonic)을 향한 이끔음(leading tone)인데 정당리 계면조에서는 주음과 이끔음 사이의 예리한 반음 감각을 없애고 부드럽게 부른다. 이른바 더음청이란 명칭을 붙인 소리이다. 이러한 보기는 <긴 논매기>ㆍ<자진 논매기>에 있다. <벼 베는 소리>에서는 이 더음청을 아래로 휘어내려서 계면조 멋(맛)을 더 낸다.

    정당리 계면조는 주음에서 완전4도 아래의 Mi음을 분명하게 요성(떠는 소리)한다. 또 <긴 모심기ㆍ긴 논매기ㆍ위염소리> 등의 느린 소리에서는 악절(phrase)의 종지를 아래로 휘어 낸다. 이 휘어짐은 아래로 떨어진다는 의미의 cadence와도 부합된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악보로 다시 부연(敷衍)하자면,

아래 예보는 G minor로 채보된 정당리 <긴 모심기> 구성음인데, 괄호(┎┒)로 표시한 주음(본청)과 제3음(the third 꺾는 윗청) 사이가 자유분방(自由奔放)하게 단ㆍ장음정으로 변화하여 선율을 세부적으로(detail) 아름답게 한다. 이를 더 이론적으로 말하면 주음이 동일한 단조와 장조라는 뜻의 동주음조라는 용어가 있다.  

  

 

    전통음악을 5선보로 역보(譯譜)하거나 민속음악을 채보할 때, 대개 음계의 제6음은 항상 ♮, 또는 #여서 맨 오른 쪽의 조표는 필요치 않다. 그래서 왼쪽 예보와 같이 조표를 괄호 속에 넣어 보았지만, 역보나 채보에 5선보를 차용할 뿐이라고 전제하면 오른 쪽 예보와 같이 필요한 조표만 표시해도 된다. 이럴 때 조표만 보고서 조성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참고로 서양 음악에서는 조표와 조성이 일치하지 않음은 대수롭지 않다. 특히 유럽 교회선법(church mode)은 조표와 조성이 일치되지 않는다.

    음계의 제3음 변화와 제6음의 ♮, 이 두 가지는 정당리 <긴 모심기ㆍ긴 논매기ㆍ자진 논매기ㆍ위염소리 후반ㆍ벼 베는 소리>의 특성이다. 이 중에서 <자진 논매기>ㆍ<위염 소리> 후반은 C# minor로 기보해야 하는데 D minor로 했음은 #보다는 flat 계통의 조성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내가 KBS에서 fieldwork로써 수집하고 채록한 민요 사투리는 유익한 방송 프로그램과 내 작곡의 중요한 소재가 되는 나머지, 본문과 같이 문헌이 되어서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보람이겠다. 내가 이러한 자료를 제작하고 남기는 데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은 모두(冒頭)에서 staff로 소개한 녹음기사 문종철과 지금은 이 세상과 시간을 달리한 성우 신원균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들에 대한 감사를 본문에 남긴다

    본문 집필에 앞서 테잎을 파일로 워로싱(word processing)한 영남대 대학원의 엄지연과, 사투리 민요 채보를 파일로 작업한 영남대 국악과 윤준호의 수고에 감사한다. 또 바쁜 가운데 다하마을 사진을 보내준 이인수 정당리장과 신경숙씨에게도 감사한다.

    끝으로 본문의 바탕이 된 “민요의 고장(김제)” 음원 파일을 독자 여러분에게 전파하여 채보에 도움을 얻고 싶다. 나의 연락처는 아래와 같다.

 

 

이해식(011-256-0992. hsik42@hanmail.net)

작곡가

KBS-FM 국악 프로듀서

영남대학교 음악대학장

영남대학교 교수

이해식 논문집 [산조의 미학적 구조론], 2007년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

저서 [이해식의 작곡노트 넘겨보기]

국악관현악곡집 [해동신곡]ㆍ[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국악기독곡집 [흙담]

창작국악 LP [바람과 여자]

창작국악 CD [바람과 기도]

 

 

참고 문헌

 

논저

Alan P. Merriam(이기우 옮김), [민족음악학], 전주: 新亞, 1988.

Donald J. Groutㆍclaude V. PaliscaㆍJ. Peter Burkholder( 민은기 外 옮김),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제7판(상ㆍ하), 서울: 이앤비플러스, 2007.

[MBC 한국민요대전] 전라북도 김제편, 서울: 문화방송, 1995.

Herbert Read(金炳翼 譯), [圖像과 思想], 서울: 悅話堂, 1993(四刷).

John D. White(金成男 譯), [음악사를 통한 音樂 鑑賞], 서울: 音樂春秋社,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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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http://blog.daum.net/hsik42

사진: 정당리 풍장굿

정당리 들노래

정당리 다하마을 전경

학술회의 “아시아 음악의 전통과 현대적 변용,” 전주소리축제위원회ㆍ아시아음악학회 공동주최,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2007. 10. 11.

 

 

Abstract

             

The Place of Folk Song(Gimje)

                                   

Lee Haesik(Yeungnam university)

 

    The Place of Folk Song produced and aired when I was a Korean music producer at KBS-FM was a format searching for and recompiling the native folk songs of each district. Jeongdang-ri(淨塘里) piece broadcasted in 1980 is the basis of this thesis. Jeongdang-ri is a small farming village in Gimje(金提) field.

    This text was written to the setting of "listen again" along with music source with Jeongdang-ri field song (farming song) inserted to broadcast script. Thus each collected music is explained with footnotes.

    The collected music was combined with relative pitch and absolute pitch as sound listened(phonetic). The absolute pitch was indicated with +ㆍ- on the note. Whichever it may be collected, it is different from the original at the time or replay.

    Jeongdang-ri field song is kind of having the pure ancient picture as it is not so refined. But the third of the composition scale is frequently flatted(♭), and naturalized to ♮, so the tonality is changed to minor and major, in general, it is kind of minor mood(界面調). At the minor pitch, the 6th of the scale is not flatted, so it forms the same as jazz scale. This situation can be said to be Koreans' musical emotion not falling into grief though they are sad(哀以不悲).

 

 

종합토론에서

 

    학술회의 <아시아 음악의 전통과 현대적 변용> 종합토론에서 내가 발표한 <민요의 고장>(김제)의 토론자는 이화동(전북대 교수)이었다. 그는 본문에 제시된 채보가 <민속사회>에 맞지 않는다면서 채보와 관련하여 sol 본청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민속사회>는 각주 13)에 나오는 용어이다.

    채보를 재검토하면서 상대적 음고에 +와 -로 절대적 음고를 표기하였다(phonetic). 이 과정에서 <위염 소리> 채보를 수정하였는데, 아래 채보에서 윗 단은 수정된 <위염 소리>이고 잘못된 아랫 단 채보가 단3도 아래로 일관되었음을 보면 아마 채보를 옮겨 적었을 때의 착오인 듯하다. 또 첫 사설 “뒤집어”를 처음에는 장식음으로 채보하고 수정된 채보에서는 분할된 음표로 적었다. 빠르게 분할되는 음표를 장식음으로 인식함이었는데 채보에서는 이런 사례가 종종 있다.

 

 

 

     만약 아시아 음악학회(전인평)가 이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즉시 논문집으로 발간했더라면 위와 같은 오류의 채보가 그대로 나갈 뻔 했다. 민요 채보에서 이러한 사례를 그대로 지나친다면 진정한 민속사회에 진입할 수 없고 따라서 민속의 활력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화동의 토론은 매우 적합하였는데, 나아가 채보의 어느 부분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했더라면 그게 정곡이 되었을 것이다. 이때 내가 말한 phonetic과 phonemic은 채보에 관한 참고 사항일 뿐이다.

    한편 이화동이 말한 <Sol 본청>은 채보와 관련하여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Sol 본청이라면 어떤 조(調)에서건 Sol이 본청이 된다는 뜻이겠는데 내가 이 부분을 제대로 알아듣질 못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날 이화동의 발의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사후에 정확한 응답을 위한 E 메일 질의를 요청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전에 집필자와 토론자 사이에 원고를 교류했더라면 보다 적확한 질의와 응답이 가능했을 것이고 아래와 같은 소통에 관한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토론의 끝에 이보형은 토론자와 응답자 사이에 소통(疏通 communication)이 되지 않는데 이것은 응답자(이해식)가 토론자의 보편성 -국악이론- 을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요지로 발언하였다. 그러면서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곁들였다. 나는 이 발언에서 <소통ㆍ보편성ㆍ개념 정리>, 이 세 가지는 이날 종합토론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국악이론 마당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어떤 학문이든 문화든 소통의 장애가 되는 벽을 제거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소통이라는 말을 듣는 즉시 본문에서 참고 문헌으로 인용한 백대웅의 저서 [한국전통음악의 선율구조](1985)가 떠올랐다. 이 책에서 판소리의 전조 이론 등은 서양음악과 상통하기 때문에 국악이론이 소통되는 데 아주 유익하다. 앞서 Sol 본청에 관한 의문도 이 책과의 관련이다.

    나는 한국민요학회 제18차 하계 전국학술발표대회, “아리랑의 문화적 성격과 문학 및 음악적 국면,” 종합토론에서(정선, 2007. 8. 22),

 

국악이론에서

 

① 악보를 제시하면 설명이 간단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사례를 구태여 문장으로 -길고- 어렵게 설명함과

② 국악에서도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서양음악용어가 있는데 따로 국악용어를 만들어냄이 <음악학>을 하는 일이어서 그런가?

 

라는 질의를 하였다. 이 질의는 보편성(universality)에 반하는 <특수>(特殊)함이 아닌가? 라는 의미이다.

    개념(concept or general idea) 정리야 말로 내가 글로 말로 여러 번 주장했던 사안이다. 어떤 사안이든 개념이 분명하면 소통도 원활해질 것이매, 내가 쓴 <민요의 고장> 김제편이 정당리 들녘의 바람처럼 소통되었으면 보람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