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전라도 기질(blood)은 전라도 민속음악에 흐르는 흥과 한입니다.
흥겨움 속에 한을 그리는 민속음악의 본산은 전라남도이며 흔히 놀이(遊戱)로 표현됩니다.
이런 놀이의 기원을 고대 한국사의 농경축제에서 찾아보면,
마한 사람들은 항상 5월에 씨를 뿌리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면서 떼를 지어서 밤낮을 쉬지않고 가무와 술을 즐겼다. 여러 사람이 서로 땅을 밟으면서 손발을 흔들어 택무와 리듬을 맞추었다. 10월에 농사가 끝나면 역시 이런 행사를 반복하였다(馬韓 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 群聚歌舞食酒 晝夜無休 其舞數十人 俱起相隨 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以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三國志] 「魏志」 東夷傳)
한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삶의 원동력-energ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한을 국악에서는 눈물을 흘리면 얼굴에 금이 생기는 계면(界面)이라고 합니다.
천경자 화백의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후반에서 추려본
<오돌오돌ㆍ놀놀한ㆍ푸덩푸덩ㆍ아슴아슴ㆍ빠득빠득ㆍ초로누름한ㆍ뽀치고> > 등은
고흥 사람들의 독특한 修辭(rhetoric)이며, 이곳 사람들은 2인칭을 <인역>이란 말로 독특하개 표현하므로서 이 책을 흥미롭게 하는 중에
그야말로
천 화백의 슬픈 전설이 흐르고 있습니다.
또
소설가 박경리는 천경자 화백을 가리켜 “좀 고약한 예술가”라고 읊었는데
이 표현이 바로 전라도 기질이 아닌가 합니다.
천 화백의 자서전 속에는 고독함을 여러 번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출판과 동시인 2006년에 구입해서 이제야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은 현대 한국의 미술소사여서 당시 유명했던 화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오고
외국 명화 이야기와 배우들도 더러 등장합니다.
맨 위는
자서전의 표지 사진인데
이 사진이 서울시립미술관에 설치된 천경자 화백 코너에 있습니다.
맨 아래는
천경자 화백에 관한 동아일보 사설입니다.
그는 drawing과 sketch를 일기 쓰듯 했는데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과 꽃과 뱀은 그가 태어난 고흥에서의 성장배경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해식 dream-
-동아일보-
[사설]꽃과 恨을 원색의 예술로 남기고 떠난 천경자 화백
동아일보 입력 2015-10-23 00:00:00 수정 2015-10-23 00:00:00
화가 천경자 씨는 타고난 예술가였다. 미술에 대한 천부적 재능뿐 아니라 생각도 행동도 유별났다.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17세 때 일본 유학을 떠났으며, 방학 때면 요란한 옷차림으로 나타나 어머니는 기차역에 마중을 갈 수 없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꽃과 여인을 테마로 그린 강렬한 채색화로 상징된다. 대중은 독특한 그림에 열광했고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품 값이 비싼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한국화단의 독보적 거목인 천 화백의 별세 소식이 어제 뒤늦게 알려졌다. 미국 뉴욕의 자택에서 천 화백을 돌보던 큰딸 이혜선 씨가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투병 생활을 하다 올 8월 6일 새벽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며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다”고 전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천 화백이 자식처럼 아끼던 작품 93점이 전시 및 보관된 상설전시실과 수장고가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어제 “이 씨가 8월 고인의 유골함을 들고 미술관 수장고를 다녀갔다”고 확인했다.
천 씨는 국내 화단에서 ‘왜색풍’이라고 외면했던 채색화에 아찔한 감각으로 새 획을 그었다. 1952년 부산에서 35마리 뱀을 그린 ‘생태’를 발표해 주목받은 뒤 신명과 한(恨)의 정서가 공존하는 원색의 그림들,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같은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문화의 향연을 선사했다.
노년의 삶은 1991년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소용돌이에 빠지기도 했다. 10·26사태 이후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집에서 압류돼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미인도’를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이다. 이후 1998년 큰딸이 사는 미국행을 택했고 뇌출혈로 거동을 못하면서 사망설까지 나돌았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무얼 한 가지 옹골지게 하는 여자라면 팔자가 세다고 하는데 그게 뭐가 나빠요. 재능도 없으면서 젠체하는 사람이 꼴불견이지.” 소설가 박경리는 오랜 지기인 천 화백에 대해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정직한 생애/그러나/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라고 시를 썼다. 남다른 삶의 무게와 여자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이자 문화계의 슈퍼스타. 화려했으나 고독했던 그 여정은 한국미술사에서 ‘슬픈 전설의 91페이지’로 남게 됐다. 그 치열했던 예술혼을 기리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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