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품명시-동아일보

최승범 백제금동대향로+최명희 대하소설 <혼불>

노고지리이해식 2016. 4. 11. 02:54

 

이 블러그는 동아일보 매주 수요일에 게재되는 <이근배의 ,신품명시>를 근거로 꾸며진 것이다. 아래에 <신품명시> 기사를 전재한다.

 

 

                                                  ▲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

                                               국립중앙박물관(모조품). 2011. 6. 25)

 시방세계 다함없는 향훈이거라 동아일보 입력 2015-09-02 03:00:00

 수정 2015-09-02 03:42:04

 

동아일보사진/백제금동대향로

 

백제금동대향로

시방세계 다함없는 향훈이거라―최승범(1931∼) 

1천300여 년 
겹겹 어둠 인고의 세월을  
아 용하게도 끝내 
견디어냈구나 
부스스 
어둠 털고 현신하던 날 
사비성 날빛도 
눈이 부셨다 

부소산 밝은 등성마루 
자운 피어오르고 
백강 굼니는 용들 
현란한 별빛이었다 
둥둥실 
날앉은 봉황의 
저 영걸스런 
눈빛이여 

 

한 동산 날짐승 길짐승뿐 아냐 
저승 이승 귀신도 사람도 
연꽃으로 벙근 가슴 
하냥 산그러졌구나 
아 이제 
옷깃 여며 합장하노니 
시방세계 펑퍼지는 
향훈이거라 
 

 


    불꽃이 인다. 하늘을 찌르던 백제왕국의 영화가 오랜 어둠을 사르고 마침내 깨어나 문화대국의 제향(祭香)을 뿜어 올린다. 나당(羅唐)의 말발굽에 무너져 궁궐도 사찰도 찬란무비의 예술품도 거의 소실되어 정수(精髓)를 찾을 길 없더니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 450여 점과 함께 ‘백제금동대향로’가 마치 램프 속에서 잠을 깬 마왕인 듯 눈부신 광채를 쓰고 큰 몸뚱이로 걸어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백제가 여태껏 살아있었구나. 한국 고미술학계가 발칵 뒤집히고 학자들은 눈을 비비고 탄성을 내지른다.

 

    향로의 뚜껑에는 선계(仙界)를 나타낸 듯 23개의 산으로 첩첩이 둘러싸여 신선 새 호랑이 멧돼지 사슴 코끼리 원숭이를 비롯한 상상의 동물들이 우글거리고, 5명의 악사가 거문고 완함(阮咸) 종적(縱笛) 배소(排簫) 북 등을 연주하고 있다. 상상봉에서는 봉황이 여의주를 물고 날갯짓을 하고 있다.     아랫도리에는 포효하며 승천하는 용의 기상이 자못 사납다. 높이 61.8cm, 지름 19cm의 몸통에 물결과 연꽃과 불로초가 어우러진 신의 조각과 더 어찌할 수 없는 과학적인 설계로 구성된 이 대향로는 스무 해 전 처음 발굴되어 국보 제287호(1996년 5월 30일 지정)로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같은 대형 박물관에 가도 이렇듯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천상의 세계, 누구도 갈 수 없는 나라의 복락과 평화를 새겨낸 예술품은 만날 수 없는 것. 시인은 시조의 가락을 빚어 헌사를 바친다. “저승 이승 귀신도 사람도/연꽃으로 벙근 가슴” “옷깃 여며 합장하노니/시방세계 펑퍼지는/향훈이거라” 이 불꽃, 이 향기 온 겨레 억만 년 다함없는 축복이어라.
                                                                                               이근배 시인  

 

혼불

-백제금동대향로-

 

-이 해 식-

긴 글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에 편성된 배소와 동일한 악기 Pan Pipe(배소 排簫)로 연주하는

<철새는 날아가고>를 들으면서 읽으세요!!!!!

 

                                (검색)

                                Pan Flute로 연주하는 안데스 산(山) 사람들(Andeans)의 애환이

                               서린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Los Incas

                              

 

 

 

백제금동대향로(국립중앙박물관. 2011. 6. 25)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 저녁, 부여 능산리 공방터 수조(水槽) 구덩이에서 발굴되었음은 당시 백제를 향안 나당 연합군의 사면(四面)을 초가(楚歌)하는 공격이 얼마나 급박한 상황이었던가를 말해준다. 이렇게 묻힌 백제 사람들의 혼불이 실로 1400여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에 비로소 그 생생한 불꽃으로 세상을 밝힌 것이다.

 

 

    최명희(崔明姬 1945∼1998)의 소설 [혼불]은 일제 말기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이 배경인 10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이다(서울: 한길사). 이 소설은 작가가 말기 암과 투병하면서 탈고한 대작이다.

    소설의 실마리는 이(李) 씨 집성촌에서 벌어진 사촌 오누이 사이의 근친상간으로부터 농경사회를 지배한 종가(宗家) 청상과부의 일생이 중첩된(overlap) 줄거리이다. 소설은 근친상간의 주인공이 만주로 가서 일제 강점기의 만주와 구한말의 시대 상황을 실감나게 전개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만주로 갔음은 무의식적(無意識的)으로 그 옛날 백제를 건국한 온조의 고향을 찾은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아닌가 한다.

    이 소설은 전편을 관통하는 전라도 탯말(胎生語)이 마치 판소리의 구수한 너름새처럼 구사되면서 토속적인 흥미를 더하니, 헐거운 옷을 걸친 가난한 아낙들의 걸쭉한 욕 짓거리조차 리드미컬하게 들린다.

 

 

 

 

(검색) 최명희 [혼불] 문학비(http://namwon.grandculture.net)

 

 

 

 

    동네 사람들이 이씨 종가에서 혼이 나가는 걸 보았노라고 수군거림에 이어서 종가 과부가 세상을 하직한다. 이씨 종가에서 혼이 나감의 의미는 우선 이씨 종가의 몰락이요 구한말의 종말과 함께 일본이 패망하는 세상의 변화일수도 있다. 묵은 시대의 혼이 사그라짐이라 하겠다.

    내가 어렸을 적에 동네 고샅에서 여러 구신(귀신) 얘기, 혼불 얘기를 듣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혼불로써 백제금동대향로와 최명희 소설 [혼불]을 함께하는 까닭은 이 둘이 백제 사람들의 정신이고 지금도 생생하게 타오르는 혼불이기 때문이다.

    이 향로가 발굴될 당시의 명칭은 <금동용봉봉래산향로>(金銅+龍鳳+蓬萊山+香爐)였다. 용봉(龍鳳)이란 제의(祭儀)를 위하여 용이 밑에서 향로의 불꽃을 역동적으로 받쳐 밀어 올림이고, 동시에 위에서는 봉황새 솟대가 세밀하게 불꽃을 끌어올림이라고 생각한다.

    이 향로는 발굴이후 연꽃 모양으로 보면서 여러 가지 학술적인 연구가 나왔지만, 나는 이 향로를 백제 사람들의 영원한 혼불로 본다. 불꽃은 신을 향한 인간의 제스처(gesture)이다. 영락없이 타오르는 불꽃 형상인 이 향로에는 백제 사람들의 많은 상징들이 새겨져 있다. 그 중에서도 가시적(可視的)인 오행(五行) 관련으로 향로 뚜껑에 새겨진 거문고ㆍ완함ㆍ배소ㆍ북ㆍ피리를 연주하는 다섯 주악상(奏樂像)은 백제 사람들의 수준 높은 음악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검색) 아래 주악상과 설명은 국립부여박물관 홈피(http://buyeo.museum.go.kr. 학예연구실 (041)833-8563 / (041)834-3193)에서 검색하여 요약한 것이다.

 

 

북을 두드리는 사람  鼓奏樂像 Percussion Player

 

 

북 주악상은 편안하게 정면으로 앉아서 무릎 위의 북을 왼손으로 감싸고 오른손에 든 북채로 북을 두드리고 있다. 북을 어떻게 놓고 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이 붙는다. 대향로에서는 앉아서 치기에 좌고라고 부른다.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 玄琴奏樂像 String Instrument Player

 

 

거문고는 진나라에서 고구려에 보내온 7현금을 왕산악이 본디 모양을 그대로 두고 개조한 악기이다. 이 주악상은 왼손을 줄 위에 얹고 오른손에 잡고 있는 무엇인가는 거문고를 연주하는 술대이다. 거문고는 안악3호분과 무용총, 오회분4호묘, 장천1호분 등에 등장한다. 대향로 거문고는 3현이며, 고구려 고분벽화의 거문고는 4현이다.

 

 

 

배소를 부는 사람 排簫奏樂像 Pan Pipes Player

 

배소 주악상은 두 발을 오른쪽으로 무릎을 꿇은 모습이다. 서양의 팬파이프(pan pipe)와 비슷한 배소는 길이가 다른 대나무 관을 차례로 묶어서 한 관에서 한 음만을 내는 악기이다. 대향로의 배소는 왼쪽으로 관의 길이가 길어진다.

 

 

종적을 부는 사람 縱笛奏樂像 Pipe Player

 

종적 주악상은 무릎을 정면으로 꿇고서 오른손을 위, 왼손을 아래로 세로로 잡고, 연주자의 입술에서 떨어진 모습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적은 대향로의 것과는 달리 횡적이어서 당시에는 종적과 횡적이 함께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완함을 연주하는 사람 阮咸奏樂像 String Instrument Player

 

완함 주악상은 두 발을 오른쪽으로 무릎 꿇고서 오른손으로 줄을 튕기고 있다. 약간 측면을 향한 연주자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완함은 원래 4현인데 대향로에서는 3현만 표현하고 있다. 비파와 비슷하며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함이 비파에 능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위 다섯 주악상 중에서 거문고로 설명된 악기를 [삼국사기]에서 백제 악기로 소개된 <쟁>이라고 밝히고 거문고인지는 더 연구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전인평, 74쪽). 본문에서는 특히 배소(排簫)에 관심을 둔다. 배소의 영문인 Pan flute, 또는 Pan pipe에서 Pan은 <전(全)ㆍ범(汎)ㆍ총(總)>이라는 의미인데 여기에 flute 또는 pipe를 더한 것이다. 이러한 Pan flute 또는 Pan pipe는 고대로부터 안데스 산마을(山村 Andean)까지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된 악기이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孔子 Confucius, 552~479 BC)의 편집으로 알려진 [시경](詩經) 「주송」(周頌) “유고”(有瞽)에 나오는 <소관>(簫管)이라는 악기가 곧 배소이다(旣備乃奏 簫管備擧)(서정록, 84쪽). 대부분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중국 고대의 악기는 제례악기인데 [시경]의 소관도 그러하다.

    유럽에서는 제3기 청동기 시대 이탈리아 북동쪽 고대 일리리안 문화(Illyrian culture)에 Pan pipe가 있었으며, 그리스 신화의 시링크스(syrinx) 목신(牧神)이 곧 Pan pipe이다(Stanly Sadie, p. 13). 또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오페라 「마적」(魔笛 Die Zauberflöte)에서 새잡이 파파게노(Papageno)가 Pan pipe를 불면서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고국원왕(재위 331~371)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황해도 안악3호고분, 408년에 축조된 평안남도 덕흥리 고분의 행렬도에서 배소가 확인되고, 현재 중국 집안 오회분 5호묘의 천정벽화에 그려진 사다리꼴 배소가 대향로의 배소와 가장 비슷하다. 대체로 서역(西域 silk road) 북방계 유목민의 악기인 배소가 백제까지 내려와서 대향로에 남아있음은 역사적으로 흥미있는 일이다.

    여기서 다시 설명하자면 배소는 여러 개의 단소(短簫)를 묶어서 배열(排列)한 악기이다. 단소는 짧은 퉁소라는 의미도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여러 개의 단소를 묶은 다관식(多管式, pan)에 대한 단관(短管, single)이라는 의미인가 한다.

    단소는 부드럽고 아주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서 흔히 생황이나 양금과 병주(倂奏 unison duet) 편성을 이루며, 내가 구사하는 국악관현악법(orchestration of Korean music)에서는 소리를 융화하는 탁월한 filler이다. 내가 1979년에 작곡, 발표한 관현악 작품 「해동신곡」(海東新曲)에서는 10개의 단소가 소리덩어리(音塊 tone cluster or pan sound)를 이루어서 제의(祭儀 rite)를 표현한다. 이러한 단소를 여러 개 묶은 배소는 백제 대향로 주악상에서 다섯 악기의 음향을 충분히 공명(共鳴)하게 하는 <화>(龢 best ensemble)를 이루어서 신을 부르고 즐겁게 한다.

    이렇게 최선으로 화합된 다섯 주악상의 음악은 대향로의 맨 위에 서 있는 봉황(鳳凰 Chinese phoenix) 솟대를 통하여 신(하늘)에게 전달된다. 마을이나 공동체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솟대는 대개 하늘과 땅, 물속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물새 한 쌍을 긴 장대 위에 앉혀서 높이 새우는데, 대향로에서는 이상향(理想鄕 utopia)의 새로써 모든 새(鳥類)의 으뜸인 봉황을 세웠다. Pan flute 봉소(鳳簫)는 아름다운 소리로써 이런 이상향을 추구하는 인간의 악기이다. 

 

 

봉소(鳳簫)는 봉황의 두 날개 모양으로 된 나무틀에 여러 개의 소(多簫 pan flute)를 배열한 배소(排簫)이다. 국악박물관 소장 봉소(2009. 12. 17).

 

 

 

오른쪽: Pan flute로 Andes 원주민의 애환이 서린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를 연주하는 Equador 사람들. 서울 사당 전철역, 2011. 6. 17

   왼쪽: 서울 용산역, 2005. 4. 1.  

 

배소(排簫 Pan flute)는 틀이 없이 여러 개의 관(多管 pan pipe)을 나란히 묶은 악기이다. pan pipe를 연주하는 한국의 처자(處子)들(산본 중심가 거리음악회, 2010. 4. 18).

 

 

 

                       사다리꼴(梯形) Pan pipe.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악기 우리음악>. 2011. 6. 25.

 

 

 

이해식 작곡 「해동신곡」에서 pan sound로 제의(祭儀)를 구사하는 단소 성부(part). 국립국악관현악단 제40회 정기연주회 -The MasterpieceⅠ 두레에서 매굿까지-, DVD capture. 지휘/이상규. 2006. 6. 2~3.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서울.

 

   

    무릇 소리의 생성이나 어울림, 또는 동서 음악이론의 근본은 근친상간으로부터 시작한다. 동양음악에서는 아예 반음을 배제한 5음(五音 pentatonic)으로 중용(中庸)의 어울림(和)만 추구하는 소리 상간이다. 고대 중국의 악기 중에서 금슬조화(琴瑟調和)는 부부 사이를, 훈지상화(壎篪相和)는 형제 사이의 두터운 우애를 상징하지만 역시 소리의 어울림(和聲)으로는 근친상간이다. 대향로의 다섯 주악상도 소리가 잘 어울리는 근친 악기끼리의 상간이라 할 수 있으며 이중에 특히 배소는 백제 혼의 소리인 오악(五樂)의 어울림을 북돋우는 탁월한 filler이다.

    

 

참고문헌:

Stanly Sadie(EDITED),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al Instruments 3, NEW YORK, NY, 1984.

국립부여박물관(http://buyeo.museum.go.kr. 학예연구실 (041)833-8563/(041)834-3193).

서정록, [백제금동대향로], 서울: 학고재, 2001.

전인평, [새로운 한국음악사], 서울: 현대음악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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