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의 말

춤을 추다 보니. 2005. 5.

노고지리이해식 2006. 8. 2. 23:53

 

 

                                  

                 

                                  이해식의 paso doble entry shape. 

                               Para Club 제20회 정기 파티, 2001. 9. 23.

                          Hotel Hyatt, Grand Ballroom/서울. 촬영/윤덕수

 

 

 

춤을 추다 보니

 

이해식( 영남대 교수)

 

건강검진을 하면서 키를 재 어보니 1㎝가 자랐다. 한 번은 악수를 하면서 여자의 손보다 더 부드럽다는 말을 들었고, 학생들과 디스코를 추면서 몸이 아주 부드럽다는 말을 들었다. 내 나이에 키가 더 자랄 이는 없겠지만 내 처지에 1㎝의 키는 아주 큰 은사(恩賜)나 다름없다. 실제로 춤을 출 때는 키가 커 보인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이런 일들은 내가 오래 동안 춤을 추어 오면서 바른 자세를 갖도록 체형(體型)을 교정하고 팔의 근육이 이완되도록 피아노 운동을 계속하는 결과로 본다. 젊은 시절엔 피아노를 친다거나 연습한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건강과 관련하여 절실한 피아노 운동이라고 말한다.

 

또 나는 “춤을 춘다”는 말을 자주 “춤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나는 운동적 춤(gymnastical dance)을 추고 운동적 피아노를 치는 것이다. 왜냐면 피아노 치기와 춤의 매체는 몸이기 때문이다. 춤이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첫째 이유는 창조의 주체인 몸이 동시에 표현의 소재를 겸하기 때문이다.

춤과 인류문화의 발생은 거의 때를 같이 하는데, 주로 모방본능, 잉여 에너지의 발산과 종교적 사회적 행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미학자 C. 작스에 의하면 원시인들은 춤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으며 춤은 이미 석기시대에서부터 예술작품이 되어 있었고, 철기시대 초기에는 전설(傳說)과 결합되어서 극(劇)으로 끌어 들였다고 말한다.

지(智)ㆍ덕(德)ㆍ체(體)는 고대 서양(그리스)과 동양(중국)에서 인성 수양과 인격 수련의 중요한 과목이었는데 춤은 물론 체에 들어 있다. 고대 중국의 [오경](五經) 중의 하나인 [예기](禮記) 「악기」(樂記)는


사람이 힘차게 노래 부르는 것만으로는 만족치 않아서 손이 춤추고 발이 뜀을 알지 못하기에 이르는데(...嗟歎之不足 故不知手之舞之 足之踏之也)


이것이 춤이 생기는 원인이라고 끝을 맺고 있다. 손발의 움직임을 알지 못할 정도의 춤은 오늘날 춤출 때의 ecstasy(怳惚境)와 별반 다름이 없다고 보아도 된다.

유학(儒學)의 입문이라 할 [천자문](千字文)에


손 들고 발을 굴러 춤을 추니 기쁘고 즐거우며 편안하기 그지 없네(矯手頓足悅豫且康)


라는 글귀가 들어 있는데, 이것은 점잖은 옛 선비들의 오늘날 테크노 댄스로 상정해 볼 수 있다. 또  우리 나라 조선조의 성종 때(1494)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 머리말에 들어 있는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혈맥을 뛰게 하고 정신을 통하게 한다(樂也者 …動盪血脉 流通精神也)


라는 구절도 다름 아닌 음악과 춤과의 관련이다.

동양춤 얘기만 했으니 서양으로 건너가 보면, 


대저 춤은 조직화된 움직임의 연속이다. 음악의 본질이 소리이듯 움직임은 춤의 본질이다. 움직임이란 원래 그 스스로가 미학적이고 정서적인 한 개념을 개인의 의식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전이(轉移) 시키기 위한 매체인 것이다. 이런 움직임의 전이를 고대 그리스사람들은 메타키네시스(metakinesis)라고 하였다(John Matin, 金泰源 譯, [현대춤의 인식], 서울/1993, 현대미학사, 31ㆍ34ㆍ39쪽).


움직임의 의식과 미학으로 보면 원시인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더욱 춤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사회간접자본(SOC/Social Overhead Capital)이라는 경제 용어가 있다. 이것은 도로ㆍ항만ㆍ공항 등의 간접적인 기반 시설이 잘 되어 있어야 사회적인 경제가 번성한다는 뜻이겠다. 나는 이 경제 용어에 춤을 넣어서 사회춤간접자본(SDOC/Social Dance Overhead Capital)이라는 어휘를 생각해 냈다. 춤학원ㆍ춤파티(舞蹈會) 등, 춤사회의 간접적인 자본을 가리키는 것이다. 작금의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춤의 조기교육이 널리 확산되고 잘 가르치고 시설이 좋은 춤학원엔 입시생들이 붐비고 춤동아리의 단체수업이 성황을 이룬다. 좋은 현상이다.

내가 다니는 춤 학원에 어느 날 아주 비만한 중학생이 와서 댄스 스포츠를 배우기 시작한 3개월 후에 그 학생의 체중은 무려 3㎏이 빠져서 아주 핸섬(handsome)한 몸짱이 되었고 비만 속에 감추어졌던 나르시스(Narcissus)와 같은 미소년의 얼굴을 들어내었다. 나는 춤 학원에서 남녀의 이런 사실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살찌기는 순간이지만 살빼기는 그리 간단치가 않아서 현대 사회의 관심 있는 화두가 되고 그에 따른 약물 사용의 부작용이 심심찮게 보도된 적이 있다. 몸짱이 되려거든 어떤 춤이든 지금 당장 땀이 나도록 춤추기를 권한다.

춤추기가 일석이조인 것은 아름답고 즐거운 음악과 함께 partnership의 사회성(sociality)을 기르고 건강을 증진하는 데에 있다. 음악의 앙상블(ensemble 合奏)이 협동과 일치를 추구한다면 춤의 첫째 덕목은 예절(etiquette)이다. 앙상블은 프랑스 말로 together의 의미를, 에치켓은 동업자의 뜻과 함께 동물사회학자 M. 데스몬드에 의하면 역시 프랑스 말로 <들어온다>는 뜻이겠다. 이로 보면 음악과 춤은 의미추구뿐만 아니라 그 실천에 있어서도 동전의 앞뒷면처럼 일체이다.

춤파티는 대개 주차 등의 접근성이 편리하고 마루(floor)와 오디오 등의 시설이 좋은 일류 호텔이 선호된다. 호텔 춤파티는 높은 비용 면에서 동참자들에게 실속 없는 우월의식을 가지게 하거나 국외자들에게는 선망(羨望 envy)의 적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아직 간접적인 춤 자본의 저변확대가 덜 되었음의 반증이다. 일본 동경처럼 여성들이 드레스를 입고 갈 수 있는 상시적인 무도장, 즉 춤사회간접자본의 컨셉(concept)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춤파티에서는 대개 international style의 춤을 추는데 그 기술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음을 볼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춤의 기술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기술은 인간이 처음으로 손가락을 집게로 사용하고 돌멩이를 탄알로 던질 때부터 시작된 실용(practice)이요 만드는 인간(homo faber)의 일면이다.

예술은 처음부터 인격적인 영역이 포함된다. 더 이상 기술과 예술을 설명하자면 장황해진다. 앞에서 춤의 기술만 향상되었다 함은 춤추는 사람이 자신을 자기 통제력의 외부에 둠으로써 일종의 회피형식이 되고 꿈꾸는 기회가 된다 해도 그것은 음악과 관련하여 공감(sympathy)과 감정이입(empathy)이 결핍된 한갓 몸짓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춤은 인간을 위해 의미있고 가치있는 세계를 창조해 내려는 과정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체험의 밑바닥을 흐르는 지하수와 같이 공유하고 눈으로 볼 수도 있고 마실 수도 있는 샘물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편 춤의 기술이 향상되었다 함은 그만큼 춤학원의 가르치는 수준이 높아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예와는 달리 젊은 유망주들이 춤의 유학길에 자주 오르고 정보교류도 빨라져서 이런 변화를 읽을 수 있어야 도태되지 않는다.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은 춤 경연대회가 있다. 거의 호텔의 오래된 CD 재생 장치는 춤 행사에서 자칫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음악 CD를 미리 들어보지 않음에서 오는 진행이 미숙한 무도회는 함량미달일 수밖에 없다. 좀더 세심한 파티라면 성년이나 장년층이 구성원이 되는 파티에서는 음악의 템포가 조정되는  CD 재생 장치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춤은 자아(自我)와 몸을 극적으로 부정함으로써 극적으로 전시한다”(McRobbie). 사회춤간접자본(SDOC)이 보다 더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한다.

                                          [댄스스포츠월드] 2005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