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의 말

장영실과 스파르타쿠스(Spartacus). 1991. 7.

노고지리이해식 2006. 8. 13. 01:34

 

 

장영실과 스파르타쿠스(Spartacus)


이해식/영남대 교수


내가 어려서 살던 동네에 아코디언을 가진 집이 있었다. 검은 건반도 없이 흰색 버튼 키(button key)로만 되어 있는 이 악기는 당시 우리 동네의 귀물이었다. 내가 이 악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틈만 있으면 빌려다가 연주(?)를 해 보았다. 그러나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탈이었다. 그래도 구멍 난 바람통(bellows)을 손질하고 리드 블럭(reed block)을 청소해서 가지고 놀았다. 이렇게 낡은 아코디언의 손질은 교회의 오르간으로 이어지고 내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의 분해와 조립의 악취미(?)로 발전하였다. KBS 재직 시절 민요수집 출장을 떠나기 전날 밤은 녹음기 손질로 밤이 깊었다. 당시 내가 속한 제작부의 많은 프로듀서들이 외부 취재를 나갈 때 사용하는 휴대용 카세트 녹음기는 Sony TC-3OA 한 대여서 이 녹음기는 대단히 낡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KBS를 떠나기 전까지도 각기 종류가 다른 방송기재들을 연결하는 연결선(connector)이나 플러그(plug)을 손수 만들어 써야 했던 때도 있었다. 나에게 이런 에피소드는 지면이 모자랄 정도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던가? 어렸을 적의 모든 장난감이나 놀이기구, 대나무 악기는 거의 모두 손수 만들어서 가지고 놀았으니까. 이러한 회상들이 문일지 안무의 국무(國舞) <장영실․뎐>(1991. 5. 26~31)과  오버랩(overlap) 되면서 내가 마치 장영실(蔣英實)이나 된 것처럼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國舞’라는 용어는 문일지씨가 최초로 사용했음). 어느 지역이나 민족이든지 발달된 춤과 음악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기층문화(基層文化)에 닿는다. 서양의 고도로 발전된 음악형식의 근저는 기층의 민요가 자리 잡고 있다. 춤의 원질(arche)도 곧 기층이며 기층사회의 에토스(ethos)가 통시성에 스며들어 오늘에 이른다. 기층(fundamental)이란 측면에서 장영실과 스파르타쿠스(Spartacus)의 이항(二項) 등방(等方)과 이방(異方)을 생각해 본다.

두 사람은 지구의 양편에서 노예의 신분이다. 장영실은 과학자이고 스파르타쿠스는 노예 검투사이다. 장영실의 출몰(出沒)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스파르타쿠스의 출생은 모르나 BC 71년에 처형 되었다. 장영실은 같은 민족의 질투나 모함에 걸리어도 현실에 어쩔 수 없이 순응했으나 스파르타쿠스는 트라키아(Trachia) 출신으로서 로마제국이 뜨끔할 만큼 반항한 반란군의 우두머리였다.

장영실은 ‘영실’(英實)이란 이름만큼이나 그의 생활과 창조성이 다부지고 영글었다. 스파르타쿠스는 오늘날도 강한 힘과 근육의 상징으로 일컬어진다. 나는 하차투리안(Aram IL'yich Khachaturian 1903~1978)의 스파르타쿠스를 좋아한다. 스파르타쿠스의 시대 배경이 고대 로마인데도 그의 음악은 고향 아르메니아(Armenia)와 여러 지역의 토속적 이디엄(idiom)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쿠스가 1956년 12월 27일 레닌그라드(Leningrad)의 국립 아카데미 키로프(Kirov)극장에서 대성공리에 초연된 이래 여러 차례 악보(score)가 수정되고 안무도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가 대할 수 있는 스파르타쿠스는 1968년 4월 9일에 막을 올린 그리고로비치(Yuri Nikolayevich Grigorovich] 1927~) 안무의 볼쇼이 발레(Bolshoi ballet)이다. 그리고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는 1975년 뉴욕에 소개되어 입장권에 웃돈이 붙는 등의 난리를 피울 만큼의 명작이다. 나는 이 그리고로비치 안무의 스파르타쿠스를 좋아한다. 움직임의 양식과 구성이 분명하기 때문이다[Eleanor Metheny, Movement and Meaning(文一枝 驛),  󰡔���움직 임의 意味󰡕���(서울: 塔出版社, 1986) 61쪽 참조].

양식(style)과 구성(composition)은 춤뿐만 아니라 작곡에서도 텍스츄어(texture)의 필수 조건이다. 춤을 짜는 것(按舞 choreography)이나 글짓기(作文 composition)나 곡조짓기(작곡 composition)가 동일선상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춤이나 작곡의 패러그래프(paragraph)는 같은 것이다. 나는 내 스타일의 새로운 작품을 위해서 오랫동안 춤을 추구해 오고 있다. 그래서 나의 레슨 시간이나 강의의 많은 시간이 더러 춤과 민속학 얘기로 채워진다.

나는 문일지 씨의 춤에 강한 공감(synesthesia)을 가진다. 그가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제40회 정기연주회(1974. 11 .5. 국립극장)에서 일련의 전통무용을 선보인 이래 지난번의 <장영실․뎐>까지 꾸준하게 학문춤을 안무해 오기 때문이다. 나의 음악이 서울시립무용단 제13회 정기공연(1982. 12. 21~23.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의 창작무대에서 문일지 씨와 만나게 되었을 때도, 지난번의 <장영실ㆍ뎐> 때도 그의 안무는 철저하게 구조(structure)ㆍ기능(function)ㆍ관계(relationship)를(앞의 책 11쪽 참조) 기저로 해서 끈끈한 총체 안무(total  choreography)로 끌고 가기 때문에 그의 춤을 과감히 학문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구조ㆍ기능ㆍ관계의 삼위일체의 춤에서 줄거리가 흐르는 <장영실ㆍ뎐>의 패러그래프는 아주 선명하다. 그 중의 선비춤ㆍ별춤ㆍ질투의 춤ㆍ에필로그 등은 퍽 인상에 남는 부분들이다. 구조ㆍ기능ㆍ관계는 역시 곡조짓기에서도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이 삼위가 일체된 <장영실ㆍ뎐>의 음악은 독립된 패러그래프의 연결인 동시에 바람의 소리를 모아놓은 것들이다. 이 글의 첫 머리에서 내가 장영실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던 것은 내 작품의 후경층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고 장영실의 일생이 끝 간 데 없는 바람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바람끼 있는 음악들이 연습 기간이란 여건 때문에 춤바람을 제대로 일으킨 편은 아니어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다. 덧붙여서 그 동안 간간이 국내의 창작 무용에 관심 가졌던 바를 얘기해 보는 것도 무익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음악은 신체적 움직임과 느낌에 관련되는 것이며 거기에 일체되는 것이 곧 춤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나의 작품은 쓰여지며 내가 춤에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이다.

국내의 창작춤은 대체적으로 조명이 어둡고, 장치나 소품이 많고 음악은 모자이크가 많고 편집이 덜 매끄럽다. 어두운 조명은 긴장의 연속이어서 자칫 관객을 지루하게 할 수 있다. 앞에서 양식과 구성ㆍ구조ㆍ기능ㆍ관계를 얘기했는데 춤이든 음악이든 이런 아이템(item)들은 반복되고 순환한다. 반복과 순환에서 생기는 길에 무용가ㆍ음악가의 독특한 개성이 담긴다. 다시 말하면 긴장(tension)과 이완(relaxation)의 교차와 맺음(tie)과 풀이(untie)의 적절한 연속이 좋은 작품이다. 하물며 비극으로 끝나는 장영실과 스파르타쿠스의 춤에서도 재미스런 풀이와 이완이 설정되고 있다. 어쨌든 예술이란 인간이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근엄한 유교의 입문서인 [천자문](千字文)조차도 그 글월 속에 <교수돈족 열예차강>(矯手頓足 悅豫且康)이 들어 있는 즉


손 들고 발을 굴러 춤을 추니 기쁘고 즐거우며 편안하기 그지없네.


춤은 진솔한 몸짓이다. 내가 감동한 춤일수록 장치나 소품의 배경보다는 몸둥이의 움직임 그 자체에서다. 사진에서 배경이 강조되면 피사체가 돋보이겠는가? 춤꾼이 음악에 가장 신경을 쓰는데도 당면한 음악은 매너리즘을 벗어나지 못하는 무대를 종종 보아왔다. 나의 작품들은 모두 순수한 댄스 뮤직(dance music)들이다. 효과음악(effect music)이나 효과음향(effect sound)이 아니다. 그래서 나의 작품들은 춤 없이도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듣는 춤이라 하겠다.

작곡가에게는 모든 춤(몸짓)이 모든 음악이 된다. 무용가에겐 모든 음악(소리)은 모든 춤이다. 새로운 음악이 자기의 재산이 되었을 때 새로운 춤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국악소식](서울: 국립국악원, 1991년 7월호), 16~17쪽.   (수정)

 

 



참고 문헌

Eleanor Metheny(文一枝 驛), [움직임의 意味], 서울: 塔出版社, 1986.

[천자문](千字文) 

 

 

 

↑ 국립국악원 國舞 <장영실-뎐> banner. 1991. 5. 26~31. 촬영/이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