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매일춘추, 1991년

고대광실(1991. 9. 11)

노고지리이해식 2006. 8. 21. 11:10
                   

 

高臺廣室(1991. 9. 11)


 李海植<嶺南大 교수ㆍ국악>


남 날 때 나도낳고 내 날 때 남도 낳는데

어떤 사람 팔자좋아 고대광실 집을 짓고

이내팔자 어이하여 논밭에서 땀만 흘리는가

우리 인생 불쌍하다


위의 토속민요는 구룡포 지방에서 채록한 풀베는소리(樵夫歌)인데 경북 지방 일원에 널리 퍼져 있다. 나무꾼들이 지게 가지에 도시락을 꿰어지고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산으로 나무하러 가면서 부르는 신세 한탄조의 산타령이다. 사설의 끝에서 몰아쉰 숨을 풀어 버리는 외마디 소리(喚聲)를 붙이는 것이 특징이며 신세 한탄에 까마귀가 등장하므로 갈가마귀 소리라고도 부른다. 호남지방에서는 산타령으로 <육자배기>를 부른다.

지구상의 모든 만물은 알게 모르게 서로 얽힌 생태계를 이루고 사람은 또한 더불어 산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위의 산타령은 더불어 사는 인간의 삶이 심히 불균형을 이루었을 때의 절박한 가난타령이다. 어느 시대건 사람은 굉장히 크고 좋은 고대광실에서 살고 싶어 하는데 이것 또한 지나치면 더불어 사는 삶의 불균형이다. 그런 사람들에겐 다음의 장자(莊子)의 말이 좋을 것 같다.


지금 저 부자가 귀로는 쇠북ㆍ북ㆍ퉁소ㆍ피리의 음악을 즐겨듣고 입으로는 맛있는 고기와 좋은 술을 실컷 먹어 자기의 정욕을 만족시키면서, 한편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잊고 있는데. 이것을 어지러움(亂)이라고 말 할 수 있다. *


세간에 망신스런 해외여행과 수입 건축재의 초호화판 주택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웬만한 아파트 한 채인 12평짜리 부엌은 넓어서 조왕굿(정지굿) 치기 좋겠고 거기에 일억 원짜리 주방시설을 들여 놓으면 어떤 음식이 조리될진 몰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편히 누울 자리만 있으면야 이것이 곧 천하의 고대광실이다. 소련공산당이 저 지경이 된 것은 자기들만의 호화저택과 별장을 짓는 도끼에 자기 발등 찍히는 걸 몰랐기 때문이리라. 너무 높은 고대광실은 어지러울 뿐이다.


*참고 문헌

今富人 耳營鐘鼓 筦籥之聲 口磏於芻豢醪醴之味 以感其意 遺忘其業 可謂亂矣. 莊子 第29 盜跖篇

 

 

 

'대구 매일춘추, 199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멘트(1991. 10. 10)  (0) 2006.08.21
쑥대머리와 토스카(1991. 10. 3)  (0) 2006.08.21
지르박(1991. 9. 26)  (0) 2006.08.21
오디션(1991. 9. 18)  (0) 2006.08.21
프로듀서(1991. 9. 4)  (0) 200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