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매일춘추, 1991년

오디션(1991. 9. 18)

노고지리이해식 2006. 8. 21. 11:12

 

                  


 

                                               오디션(1991. 9. 18)


 李海植<嶺南大 교수ㆍ국악>


퇴계(退溪) 선생의 문하에 들고자 정구(鄭逑)ㆍ정인홍(鄭仁弘)이라는 두 젊은이가 도산서원에 찾아 왔었다.

이들이 머무르는 동안 무더운 여름인데도 정인홍은 옷자락 한 겹 흩어짐 없는 선비다운자세로 매우 교양 있게 처신했고 정구는 그와는 정반대로 날씨가 덥다면서 조금도 꾸밈없이 행동했다. 그런 다음 퇴계선생은 정구의 폐백만 받아들이고 정인홍은 돌려보냈다. 이 일에 의아해 하는 제자들에 대한 퇴계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정인홍의 행동은 인간의 보편적인 상정(常情) 뒤에 숨은 것이고 정구는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 후 정인홍은 다른 문하에서 학문을 닦고 벼슬을 얻고 사색당파를 빚고 계축옥사(癸丑獄事)를 일으키고 영창대군을 증살(蒸殺)하고 드디어 인조반정 때 참형 당하고, 그의 스승도 화를 입고 말았다.

위의 고사(故事)는 퇴계가 사람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었음을 말한다. 요샛말로 제대로 오디션(audition)을 한 것이다. 연전의 외국영화 <코러스 라인>은 무용단원을 오디션해서 합격선(Chorus Line)에 세우는 줄거리이다. 완벽한 춤 공연을 위한 오디션의 과정이 얼마나 엄격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다.

취직이나 대학입시와 같은 관문을 나서면 옛말로 등용문(登龍門)을 나섰다고 말한다. 등용이란 중국 황하(黃河)의 상류에 있는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만이 용이 된다는 전설에서 생긴 말이다.

연초부터 대학입시 부정이 사회문제로 크게 거론되고 있다. 당장의 몫에 어두워진 눈과 무디어진 직능(職能)으로 모자란 잉어를 끌어올리면 그것이 과연 용이 될 것인가. 한국 출신의 세계적 음악가들은 외국의 냉정한 오디션의 등용문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막을 치는 음악대학의 실기시험은(무용ㆍ체능시험은 가면을 씌워야겠지만) 등용은커녕 감시와 불신 이상의 효과는 없다.

가장 중요한 점은 차별이나 망집(妄執)의 생각을 버리고 퇴계처럼 진리를 통찰하는 안식을 가진 사람이 오디션을 맡아야 하는 것이다.


참고 문헌

 鄭飛石, [退溪逸話選], 서울: 社團法人 退溪學硏究院, 1983(再版).

 鄭飛石, [退溪小傳], 서울: 社團法人 退溪學硏究院, 1983(五版).

 

참고

Chorus Line/미국 뮤지컬, 드라마(113분), 1985. 국내 개봉/1988. 4. 9. 감독 /리차드 어텐보로. 출연/마이클 브레빈스(마크)ㆍ야밀 보게스(다이아나)ㆍ잔 갠 보이드(코니)ㆍ샤론 브라운(킴)ㆍ그렉 버게(리치 월터스)ㆍ마이클 더글라스(잭)ㆍ카메론 잉글리쉬(폴)ㆍ토니 필즈(알).


 

 

'대구 매일춘추, 199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멘트(1991. 10. 10)  (0) 2006.08.21
쑥대머리와 토스카(1991. 10. 3)  (0) 2006.08.21
지르박(1991. 9. 26)  (0) 2006.08.21
고대광실(1991. 9. 11)  (0) 2006.08.21
프로듀서(1991. 9. 4)  (0) 200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