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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 흐뭇한 환상ㆍ感興에 젖어/대구매일신문(1984. 9. 20)

노고지리이해식 2007. 4. 17. 00:57
 

대구매일신문(1984. 9. 20)


시종 흐뭇한 환상ㆍ感興에 젖어

「시립국악단 연주를 듣고…」


9월 17일 밤 대구 시민회관에서 具潤國씨의 執拍으로 첫 선을 보인 대구시립국악단 창단 연주회는 국악분야에서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부족했던 이곳에서 심리적 양식적으로 새로운 음악정보를 접촉케 하는 기회를 주었다. 더불어 청중의 표정에서는 색다른 미적 경험의 끝에서 얻어지는 기쁨이 충만하게 흐르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는 국악 발생의 원천적인 현장이며 현실적으로도 영남 문화권의 중심이 되는 달구벌에서의 국악문화는 이미 오랫동안의 전통으로 가장 융성해 내려 왔어야 마땅한 것이었으며 국악단 창단이란 오히려 새삼스러운 감이 없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젯밤의 창단 연주회는 마치 저 [三國遺事]에 전 해저 오는 「萬波息笛」 소리를 듣는 듯한 흐뭇한 환상과 감흥 속으로 젖어들게 하였다. 신라시대의 국보인 만파식적을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는 비가 오고 비 올 때는 개며 바람이 자고 물결이 잔잔해진다고 했으니 이번 창단연주는 국악이 가물었던 달구벌에 촉촉이 내리고도 남는 비였다.

대구시립예술단은 교향악단ㆍ합창단ㆍ무용단ㆍ어린이합창단 등의 명색을 고루 갖춘 거대한 조직인데 이중에서 교향악단만 겨우 정상적이 처우를 받을 뿐 이번 창단을 본 국악단을 포함한 여타 단체는 단원과 리더의 열성으로 공연에 임하는 힘이 크다고 한다. 이러한 단체들이 전적으로 시민을 위한 것이라면 현재적인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예술문화란 어느 만큼 자생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가꾸어줄 때 인간심성을 살찌우고 생활공간을 충족케 하는 기능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북대와 영남대 국악과의 재학생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악단이 그 탄생과정에서 어려운 팀웍과 진통이 있었음을 프로그램 표지의 적절치 않은 배색과 구도에서 읽을 수 있다. 프로그램이란 막이 오르기 전 에 일종의 기대심리를 가지게 하는 작용을 하므로 공연관계자들이 가히 깊은 정성을 기울여야할 분야인 것이다. 또한 의상의 粗惡한 느낌도 창단준비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한국음악이 樂(器樂)ㆍ歌(노래)ㆍ舞(춤)의 삼위일체인 특징에 비추어서 궁중무용의 소개는 낡은 녹음기에 의한 재생음악보다는 기왕 생음악이었더라면 이질감 없이 더욱 錦上添花였을 것이다(스테레오도 아닌 시민회관의 낡은 음향 시설은 모든 공연예술의 음향효과를 반감시키고 있음).

서구의 전시적 매머드 타입를 맹목적으로 흉내 내어서 국악의 독특한 산조나 가야금병창 등을 여럿이 齊奏하는 것은 국악계의 美學적 근거가 부족한 병폐이며 더구나 沈香舞와 같은 창작곡을 齊奏하는 데서는 작곡자가 주장하는 이디엄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어느 예술이든 가장 순수한 것이 가장 개성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창단연주의 質朴하게 짜여진 프로그램과 열성에서 우러나오는 연주에 더하여서 앞으로 국악에 담겨진 계시와 특유한 시김새가 엿보이는 연주를 충분히 기대할만 하다. 국악의 행진곡(吹打)은 이미 넓고 드높이 울려 퍼졌으니 말이다. 市立 단체는 철저히 시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시민의 것 일 바에는 보다 알차며 사랑스럽고 또 아름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물론 시민 스스로가 문화예술의 열렬한 패트런(patron)이 되어야 한다(이해식, 영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