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악 소 식
•발행일:1990년 4월1일(통권 제6호) •정부관행물심의번호:90-26-4-8 •발행처:국립국악원
현실의 국악을!
李 海 植(영남대학교 음대 국악과 교수)
어느 대중교통수단이든지 음악과 소음이 가득가득 흘러 넘쳐서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공해가 된지 오래다. 나처럼 버스를 자주 타는 사람은 좋든 싫든 전적으로 운전기사의 맘에 달려있는 음악의 횡포에 시달려야 하는 것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가끔은 국악이나 서양 고전음악을 차 속에서 접하는 때도 있다. 이런 때는 오히려 내가 이상해지는 것이 "저 운전기사가 참으로 그 음악이 좋아서 다이얼을 고정시킨 것인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운전기사가 그저 무의식적으로 흘려듣는다는 것이 이내 밝혀진다. “아니 내가 왜 이런 방송을 듣고 있지?” 하듯이 곧장 다이얼을 바꾸어 버린다. 그 바꾸는 순간이 국악이면 보다 황급하다는 것이 버스를 탈 때마다 느끼는 나의 공통된 어림짐작이다.
이번엔 다른 에피소드를 하나 더 들어보자.
지난3월 9일 겸사겸사해서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정기연주회를 보러 갔었다. 이날의 연주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국악 유망주들의 역량을 소개하는 협주곡의 밤이었다. 창작 국악곡으로 짜여진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의 연주회 분위기는 사뭇 흐뭇하였다. 공연 막간에 내 앞에 앉아있는 청중끼리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거 참 국악은 독특한 맛이 있어, 참 독특해!”
유달리 ‘독특’이란 단어에 강세를 주어서 반복하는 이야기 소리이다. 국악을, 창작국악의 감상 소감을 진솔하게 주고받는 청중의 대화와는 달리 우리는 지금도 국악의 또 다른 독특함에 어떤 자기 위안이나 안주 의식에 빠져 있는 것이나 아닌지?∙∙∙∙∙∙∙
이 시대에도 우리는 국악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지금 내가 말하는 국악은 물론 춤을 포함한 것이다. 국악이 융성하게 보이는 것은 단지 우리나라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판국에 텔레비전에 비치는 국악은 희화(戱畵)되고 이것을 국악의 전체로 알고 또 저런 것이 국악이겠거니 여기는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적지 않다. 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보이지 않는 삶의 길을 모색해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국악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국악의 길을 지금보다 더 열심히 모색하고 처절하게 천착해 가야 한다. 편안 스럽게 안주할 겨를이 없이.
유명한 국악작곡가의 작품일수록 왜 매너리즘 투성이인가? 매스컴의 국악은 왜 덤벙거리는가? 국악 관현악단의 레퍼토리는 홰 항상 제자리 걸음인가? 대학의 국악과 운영은 정말 공정한가? 이런 가상의 질문들도 국악의 밝은 길을 모색하는 동참의 길이요,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일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좋은 자리 하나 차지한 국악가(?)들이 과감하게 열려있는 상태가 된다면 한국의 국악계는 눈부시게 찬란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악의 거듭나는 현실 적응이다. 현실 적응은 좋지만 매너리즘은 경계해야한다. 천재 프로듀서가 나와서 좋은 국악 프로를 만들면 운전기사들도 다이얼을 고정시킬 것이다(여기서 운전기사로 지칭된 계층은 중산층을 의미한다). 천재 흥행사가 나와서 현실에 맞는 변모된(거듭난) 국악을 요구하는 국악가는 이를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그리하여 국악에도 선망의 star player가 나온다면 연주회장의 막간에 들려오는 감탄스런 감상 소감은 가득가득할 것이요, 생기가 넘칠 것 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악교육 여건에서 star player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국악의 모든 분야가 지금보다 더 변모되어야 함은 당면 과제이다. 국악이 일부 사람만 할 줄 아는 너무나 독특한(앞에서 쓴 ‘독특’의 의미와는 다른) 분야라는 주장은 한참 낡은 생각이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음악이든지 제각기 독특한 것이니까. 이제 국악은 모든 사람, 특히 중산층이 수용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신문 기사(Journ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종 흐뭇한 환상ㆍ感興에 젖어/대구매일신문(1984. 9. 20) (0) | 2007.04.17 |
---|---|
期待되는 젊은 作曲家 /전북일보(1968. 2. 16) (0) | 2007.04.17 |
소멸돼 가는 토속민요/한국일보(1976. 3. 14) (0) | 2007.04.17 |
나의 80년대 설계, [중앙일보], 1980. 1. 12. (0) | 2007.01.08 |
종교와 음악. 1979년 1월 31일 (0) | 2006.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