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作文 my compositions)

러셀 크로우와 잠언 2008. 4. 13.

노고지리이해식 2008. 4. 13. 02:48

 

러셀 크로우와 잠언

-칼재비에서 총재비로-

 

           <잽이>는 <잡이>(holder)의 사투리이다. holder의 의미일 때는 사투리도 <잽이>

           이지만 <피리 재비>. 또는 <해금 재비>처럼 player의 의미일 때는 보통 사투리로 <재비>로

           쓴다. 따라서 칼재비ㆍ총재비는 칼이나 총을 연주한다는, 즉 잘 휘두르거나 잘 쏜다는 의미이다.

 

   호주 출신의 명배우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라면 단연 2000년에 개봉된 검투사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이다.

   검투사는 대형 목욕탕과 함께 로마 사람들의 대중적인 오락 문화였고 또한 그들이 멸망한 원인의 하나였다. 79년에 폭발한 베수비오(Vesuvius) 화산재에 묻혔다가 발굴된 폼베이(Pompeii) 유적을 보면 그들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목욕탕은 결코 현대에 버금가지 않는다.

   검투는 사람끼리 뿐만 아니라 맹수와도 대결시키는 잔혹성으로 보아서 로마 사람들의 본성을 들어낸 경기였다. 이러한 검투는 검투사를 통한 구경꾼의 경기적 충동을 대리 만족하는 로마 사람들의 카타르시스(catharsis)이며 공공유희(公共遊戱 ludi publici)였다. 로마 사람들은 이러한 경기를 자유와 희열의 의미가 결합된 <놀이>(ludus)라고 간단히 불렀는데, 그 정도가 지나쳐서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Titus Livius, ?BC 59~AD17)는 “미친 경쟁에로의 타락”이라고 개탄했으며 마침내 로마 후기에는 이를 금지하였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도 맹수와의 검투 장면이 나온다. 오늘날 로마와 그들의 정복지에 남아있는 수많은 원형극장의 흔적으로 보면 검투는 아마 로마인들의 국민오락이 아니었나 싶다.

   트라키아(Thracia)에서 출생한 스파르타쿠스(Spartacus)는 BC 73년에 카푸아(Capua)에 있는 노예 검투사 양성소에서 동료들을 이끌고 탈출하여 로마의 지배 계급을 크게 놀라게 할 정도로 대규모의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원로원에서 보낸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 BC 115~BC 53)에게 패하여 그의 6천 여 명의 오합지졸(烏合之卒)들은 수 십 km에 이르는 아피아(Appia) 길거리에 십자가로 처형되어서 세워져 있었다. 그런 후에 스파르타쿠스에 관한 여러 전설이 생겨나고, 현대에 들어서는 영화와 발레 등의 소재가 되었다.

   발레로는 1968년에 유리 그리가로비치(Yury Nikolayevich Grigarovich)의 안무(choreography)가 세계 발레사를 새롭게 장식한 획기적인 공연이었다. 이 발레 음악은 카차투리안(Aram Il'ich Khachaturian, 1903~1978)의 1954년 작품이다. 카차투리안은 현재의 그루지아(Georgia)에서 아르메니아(Armenia) 사람들의 집안에서 태어난 관계로 그의 작품에서는 중앙아시아 이슬람 풍의 강열한 민속성이 특징이다.

 

                            크라수스 군단에게 체포된 스파르타쿠스가 창 끝으로 들어 올려

                            지는 이 장면은 볼쇼이 발레 “스파르타쿠스”의 압권이다.

                                The Bolshoi Ballet "Spartacus"(1984)

                                                  Music by Aram Khachaturian

                                                  Choreography: Yuri Grigaorovich

                                                  Conductor: Alygis Zhyaraitis

                                                  Spartacus: Erek Moukhamedov

                                                  Crassus: Mikhail Gobovich

 

                          여러 사람의 손 위에 바쳐진 스파르타쿠스를 프리지아가 방패를

                          들어 올리면서 장송(葬送 requiem)하는 이 장면은 마치 Stabat Mater

                          (슬픔의 성모는 서 있도다), 또는 Pieta와 같이 깊은 연민과 함께 경건함이

                          있다. 주검을 이토록 장엄한 발레로 안무할 수 있다니….

                                The Bolshoi Ballet "Spartacus"(1984)

                                                Phrygia: Natalia Bessmertnova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건 무용음악이다. 서양 작곡가들의 무용음악은 <스파르타쿠스>와 같이 무용이 없는 연주회용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또한 볼쇼이 발레 이전에 스파르타쿠스는 1960년에 커크 더글라스(Kirk Douglas)가 주연하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검투사 영화는 최근에 와서 러셀 크로우가 막시무스 장군으로 주연한 글래디에이터이다. 막시무스 장군은 글래디에이터에서 칼재비(검투사)로 전락하였고 American western <3:10 to Yuma>에서는 악명 높은 총재비 벤 웨이드가 되었다.

   <3 :10 to Yuma>는 미국의 남북전쟁 직후에 무법자 벤 웨이드를 아리조나 주의 지방법원이 있는 Yuma행 오후 3시 10분 열차까지 압송하는 과정을 전개하는 영화이다. 벤 웨이드는 잔인하기로 소문난 총재비인 일면에 데셍(dessin 描寫)도 하고 성경 구절을 외우는 로멘틱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있음을 보인다.

   영화에서 벤 웨이드가 나무 위의 새를 그림은 몇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새소리와 총소리는 허공에 울려 퍼졌다가 곧 사라진다. 이것은 허무(虛無)이다. 새가 창공을 날아다니는 야생(野生)인 거처럼 무법자도 황야를 배회하는 야생이다. 무엇인가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는 거처럼 데셍하는 무법자에게도 화목한 가정을 꿈꾸는 미래가 있다. 새가 평화와 사랑의 상징인 거처럼 무법자의 가슴에도 사랑이 흐른다. 그래서 그의 머릿속에는 항상 스스로를 일깨우는 잠언(箴言 The Book of Proverbs) 구절이 저장되어 있다.

 

 

 영화 <3:10 to Yuma>에서 벤 웨이드가 위의 새를 데셍하여 아래의

나무 가지에 꽂아 놓는다. 여기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새소리와

      총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가 사라짐은 허무(虛無)이다. 새는 창공을

날아다니고 무법자는 황야를 누비는 야생(野生)이다. 새가 평화와

      사랑의 상징인 거처럼 무법자에게도 사랑이 흐른다. 무엇인가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는 거처럼 데셍하는 무법자의 가슴에도 꿈꾸는

미래가 있다.

 

   [구약성경] 잠언의 첫 장 첫 절에서 10절까지는 잠언의 서론 격이다. 특히 첫 절은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덕훈(道德訓)과 올바르게 살기 위한 실천적 격언과 교훈 모음집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혜운동은 고대 중동의 영향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잠언과 정신생활로써 구전되어오는 탈무드(Talmud)는 다 같이 그들의 율법(律法 Tora)이다.

   영화에서 벤 웨이드는 부하의 실수를 잠언 13장 3절로 경고 한다.

 

               입을 다무는 자 살 것이며 말이 많은 자는 자멸할 것이다(“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

               1989, 233판).

 

   마오저둥(毛澤東)은 모든 권력은 총구(銃口)에서 나온다고 말했는데, 무법자 벤 웨이드의 입을 다무는 자가 살 거라는 말은 총 함부로 발사하는 자가 자멸한다는 우회적인 경고인가? 동양(중국)에는 “질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病從口入, 禍從口出)는 성어(成語) 경고가 있다. 이로 보면 어쨌든 가장 조심할 건 입이다. 그래서인지 잠언 21장 23절에서도 입을 지키라고 한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란에서 보전하느니라[성경전서].

 

   벤 웨이드가 압송되어가면서 저녁식사 중에 암송하는 잠언은 21장 2절이다.

 

                자기 눈에는 다 옳게 보이겠지만 주의 눈을 피할 수는 없도다(“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성경전서]).

 

 

   자기 행위가 옳음을 주장하면 그것은 곧 고집이다. 고집이란 편협한 사고에서 생기고 객관성이 결여되어서 남의 눈에 쉽게 띄고 때로는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남 부족한 점을 말하지 말고 자기 잘난 점을 말하지 말라”(無道人之短, 無說己之長)는 중국의 성어(故事成語)와 상통하는 격언이라 하겠다.

   개신교 찬송가 뒤편에 있는 교독문(交讀文)은 목회자와 회중이 서로 주고받으며(交讀) 낭송(recitation)한다. 이 교독문에는 구약성경의 시편이 가장 많고 잠언과 신약성경 구절도 포함되어 있다. 본문의 의도는 잠언과 관련하여 이 교독문을 음악사적 의미에서 설명하려는 데 있다.

   시편송(詩篇誦 (psalmody)은 기독교 신자들의 집회에 동반하여 로마에 들어와서 유럽 여러 나라로 전파되고, 오늘날까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전통적인 그레고리오 성가(聖歌 Gregorian chant)로 남아 있다.

   이델죤의 오래 동안의 연구에 의하면 그레고리오 성가의 대부분은 거의 고대 헤브라이(유대) 음악의 유물(遺物)이다. 그레고리오 성가에는 고대 그리스 음악의 자취도 남아 있는데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그리스 선법에 근원을 둔 교회선법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는 이집트와 오리엔트(orient 소아시아 등의 동방)의 음악 사상을 도입하여서 헤브라이 음악에 영향을 끼쳤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고대 유대의 창법인 응창(應唱 reponsorial)과 교창(交唱 antiphonal)으로 불리어지며 또 직창(直唱 direct)도 있다. 교창 또는 답창(答唱)이라는 antiphonal은 그리스어로 ‘소리의 회귀’라는 뜻이다.

교창이란 두 개의 합창단이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교대로 부르는 스타일로써 엄밀하게는 합창음악에만 사용된다. 교창은 16세기에 빌라르트(Adrian Willaert, 1490?~1562)ㆍ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 1556?~1612)와 그 후계자들에 의해서 베내치아 악파의 2중합창과 복음악(polyphony) 양식을 빛나게 했다. 이러한 중세의 교창은 음절이 단순하고 낭독에 가까운 가락을 사용했다. 직창은 교대하지 않고 부른다.

   응창은 독창에 대해서 합창으로 응답하는 스타일이다. 이 스타일은 우리의 농경 민요에서 메기고 받는 스타일(call and response style)과 비슷하다. 즉 독창으로 메기면 여러 사람이 합창으로 받는다. 이것을 흔히 모든 국악이론에서 <메기고 받는 형식>(call and response form)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형식(form)이 아니고 양식(style)이다. 독창으로 메기는 앞소리는 멜로디나 리듬을 즉흥적으로 변주하며 부르는 사람의 소리 기교를 자유롭게 발휘한다. 여러 사람이 받는 뒷소리는 일정하다.

   문묘(文廟)와 종묘(宗廟) 제례악에서는 댓돌 위에 진설된 등가(登歌 )와 뜰(마당)에 진설된 헌가(軒架)가 교대로 연주한다. 베네치아 악파가 활동했던 저 베네치아 교회에서는 제단의 양편에 있는 오르간과 바닥 쪽에 있는 두 개의 오르간 발코니에 두 개의 합창단이 서로 공간적으로 분리되어(corispezzati) 서서 교대로 합창하기도 하고 모두 함께 불러서 거대한 음향을 만들어 내다.

 

 

                    <종묘 제례악>에 앞서 미리 진설된 등가(댓돌)의 편경과 헌가(마당)의 편종.

                    이밖에 다른 아악기들도 진설된다. 등가와 헌가는 서로 반제적으로 연주되지

                    만 투쟁적이지는 않다. 2008. 5. 4. 서울 종묘. Sony DSC-V1.

 

 

   우리 나라의 농경 민속에서와 같이 메기고 받는 두 편에 구경꾼도 있는 공동놀이는 본질적으로 반제적(反題的 또는 對立的) 성격을 띠고 있다. 제례악에서의 등가와 헌가, 베네치아 교회에서의 교창 등은 이따금 경쟁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조금도 투쟁적일 필요가 없는 반제적(대립적) 놀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시편송의 응창도 일종의 반제적 놀이 문화에 속한다

   시편송에서 메기는 소리, 즉 독창에 ArabiaㆍPersiaㆍEgypt, 또는 유대 등의 동방 교회에서 독창으로 부르는 명인 기교적이고 화려한 콜로라튜라(coloratura) 창법(唱法)이 채용되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콜로라튜라는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헤브라이의 할렐루야(hallelujah)에서 유래한 알렐루야(alleluia)이다. 이들 가사에 선율을 붙이는 방법으로, 가령 hallelujah나 alleluia의 마지막 음절에 수 많은 음표를 붙여서 장식적으로 화려하게 부를 때의 멜로디를 멜리스마틱(melismatic 一字多音)이라고 하며, 이 melisma passage 부분을 유빌루스(jubilus)라고도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 음절에 한 음표씩 부르는 멜로디를 실러빅(syllabic 一字一音), 한 음절에 몇 개의 음을 붙이는 멜로디를 네우마틱(neumatic 一字數音)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성가를 부르는 방식은 예배의식보다는 가사와 음악에 치중하여 노래 불러짐에 음악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 개신교 예배에 들어있는 교독문 낭송은 카톨릭 시편송에서 온 응창의 모습이다.

   영화 <3:10 to Yuma>에서 벤 웨이드는 잠언을 혼자서 응창하고 스스로 Yuma행 열차에 오름은 잠언을 실천함이라고 본다.

   서양 영화에 성경 구절이 자주 인용되는데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에서는

 

           마가 13장 35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른지,

                                 밤중엘른지, 닭 울 때엘른지, 세벽엘른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요한 8장 12절: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서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위의 성경 구절은 <쇼생크 탈출>의 내용과 결말을 암시함으로 보인다. 성경, 즉 기독교는 영화는 물론 서양의 모든 음악의 정신적인 근원이다. 그래서 서양에서 <음악>이라고 하면 중세 후기의 기독교 음악에서부터 시작한다.

    

         참고 문헌

                 개혁 한글판 [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 1989(233판).

                 오수형, [한자 이야기]<384>, [東亞日報], 2008. 3. 27. A29면.

                 Donald J. GroutㆍClaude V. PaliscaㆍJ. Peter Burkholder(민은기 外 옮김),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제7판 상), 서울: 이앤비풀러스, 2007.

                 Hugo Leichtentritt(金晋均 譯), [音樂의 歷史와 思想], 서울: 螢雪出版社, 1975.

                Johan Huizinga, [호모루덴스], [月刊中央] 1974년. 5월호 별책부록, 서울: 중앙일보사.

                Johan Huizinga(權寧彬 譯), [호모루덴스], 서울: 弘盛社, 1981.

               동영상: The Bolshoi Ballet "Spartacus"(1984).

                영화: 3:10 to Yuma.

                사진: <종묘 제례악>. 2008. 5. 4. 서울 종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