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도회의 촌사람
인터넷으로 주문한 서우석의 [음악을 본다](See the Music)를 받았다. 내가 재학할 때 서우석은 자신이 번역한 피게(J. Claude Piguet)의 [음악미학]을 강의했는데 나는 졸업 후에 이 책으로 많은 공부를 하였다.
흔히 음악을 듣고 춤을 본다고 하는데, 춤은 음악을 한 자락 깔고 추므로 춤을 통해서 음악을 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음악을 보고 춤을 듣는다 함은 일찍이 스트라빈스키((Igor Fedorovich Stravinsky 1882~1971)가 말한 바인데 나는 이런 견해를 나의 여러 글에 인용한 적이 있다. 서우석의 [음악을 본다]는 글자체(font)가 작고 행간(行間)이 촘촘한 327쪽에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차례를 보니 현상학 관련의 글이 많고 국악과 대중음악에 관한 담론도 들어 있다.
서우석은 평소에 여러 권의 현상학 기호학 관련의 명저와 번역으로써 한국음악학에 적잖게 공헌하고 있으며 그의 어느 저서든 국악과 대중음악에 관한 담론이 들어 있다. 특히 그의 국악에 관한 시각이 남 다름에 나는 관심을 가진다. 그가 [예술과 비평] 7(서울신문사, 1985 가을), 244쪽에 게재한 논문 “한국음악미의 현상학적 서술”은 방금 말한 그의 국악을 보는 남다른 시각의 명문이다. 이 논문은 [서울신문]의 문화상을 받은 우수 논문이며 그가 책임편집한 [음악과 이론] 2에 재게재 되어 있다.
영화보기로 정기적인 친구모임을 갖기로 하여 서울 코엑스 몰에 있는 영화관에서 한국영화를 보았다. 코엑스 몰은 지하 도회여서 몇 년 전에 이화여대의 구조적인 지하 캠퍼스로 탱고 영화를 보러 간 기억이 난다. 영화관에 가본지도 오래지만 요즘 한국영화를 제작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단순히 흥행에만 목적을 두고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가 10년 20년 후에도 명화로써 후세 사람들에게 감동을 일으킬지 의문이다. 영화는 그렇다 치고 친구모임은 이색적이어서 모두들 만족한 표정이었다.
나오는 길에 차를 마시고 거대한(mammoth) 지하서점에 들렸다. 앞 서우석의 [음악을 본다]는 이곳에서 미리 보아둔 책이다.
지하도회의 촌사람.
지하도회의 휴대전화 광고(Ad.)는 현대인이 강력한 IT 유목민임을 반증한다. 지하도회의 촌사람이란
현대의 지하유목민으로 세련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참다운 선비들은 대부분 촌에 살면서
학문을 닦았는데 오늘날 남아있는 서원(書院)은 세련된 그들의 흔적이다.
삼성역과 연계된 지하 코엑스는 젊은이들이 유동 유목하는 현대의 광활한 초원처럼 보인다. 유동 유목은 원시 인류의 생활상이요 역사상에서는 유라시아(Eurasia: Europe and Asia)에 걸친 대초원을 누빈 유목 민족의 생활상이다.
기자(journalist)인 김종래의 [CEO 칭기스칸]은 -유목민족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2010년에 초판 36쇄에 이른 이 책은 800년 전에 이미 현대를 실현한 칭기스칸 사람들의 경영 마인드(mind)가 그 내용이다. 저자는 몽골 정부로부터 친선훈장을 받고 몽골국립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유목민족 저술가이다. 그가 2002년에 출판한 -바람에 새겨진 역사-라는 부재를 붙인 [유목민 이야기]는 품절이어서 헌책방을 뒤진 끝에 다행히 새책처럼 양호한 책을 샀다.
먼 옛날 칭기스칸이 밤하늘의 별과 함께 초원 위를 갔듯이 앞으로의 인류는 문명 속에서 문명 속으로 어두운 모니터 안에서 깜박이는 커서와 함께 한없는 질주를 계속하리라.
위에 인용한 저자의 말과 같이 현대의 인류는 이미 넓이-거리감-의 한계치를 벗어난지 오래이며, 혈통이나 문명사적으로 디지털 문명 속에 들어앉은 현대의 새로운 유목민이라는 것이다. 나는 잠시 지하도회를 배회한 촌스럽고 외로운 유목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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