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와 백남준 선생
-2006년 겨울방학에 학생들에게 보내는 통신문-
나는 방학 때면 자주 설거지를 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부엌 창문으로 수리산이 보이고 그 산자락에 자리 잡은 초등학교의 운동장이 보입니다. 운동장 아래 큰 길로는 자동차들이 쉴 사이 없이 질주합니다. 나는 매일 수리산에 오르는데 겨울철이어서 잎이 다 떨어졌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면 그래도 나무들의 싱그러운 냄새(芳香 phytoncide)가 있습니다.
내가 방학 때 자주 설거지를 하는 까닭은 미력이나마 가사를 돕는 한편, 설거지를 하면서 내 마음의 상태를 정화(淨化 catharsis)하자는 데 있습니다. 이때 나는 항상 [三國史記] <악지>(樂誌)에 나오는 중국 후한(後漢) 시대 사람 마융(馬融)이 한 말
“…또 적(笛 피리)은 씻어버린다는 척(滌)의 뜻으로써 간사함과 더러움을 씻어서 아담하고 바른 곳으로 들게 함”(…又笛滌也 所以滌邪穢而納之於雅正也)
이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이 문헌은 지난 학기에 여러분이 report를 썼던 신라 시대의 만파식적(萬波息笛)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지저분한 것들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설거지는 우리 생활이 정화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오늘 오전에 여러분에게 메일을 보내고 오후에 설거지를 하면서 뉴스로 백남준 선생(1932~2006)의 부음(訃音)을 들었습니다(2006년 1월 29일). 그는 원래 음악공부를 하기 위하여 유럽으로 건너가서 video arts라는 독창적인 예술 장르를 창안해 내었습니다. 내가 아는 한 그의 일생은 기인(奇人)으로써 창의적이었고 고난 속에서 기행(奇行 performance)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진 두 장을 삽입합니다. 이것은 백남준 선생이 한국에 와서 벌였던 무속적 기행의 한 가지입니다.
▲ 백남준 shaman performance-ritual(祭儀). Gallery 현대/서울. 1990. 7. 20. 촬영/이해식.
▲ 백남준 비디오굿-祭儀. Gallery 현대/서울. 1990. 7. 20. 촬영/이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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