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海 植<國樂作曲家>
국악을 배우고 싶은데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은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영어를 배우는 알파벳처럼 국악을 배우는 순서가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국악에의 입문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가 망설여지는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어떤 경로로든지 국악과 자주 접촉하라고 권한다. 자주 만나는 사람끼리 친구가 되듯이 국악도 자주 접할 때 친근해지고 국악의 흐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세대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학업을 마칠 때까지 음악 시간에 변변스럽게나마 제대로 국악을 배워본 적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러한 처지에서 국악음반은 우리가 친근해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단지 요즘 젊은 세대가 국악에 관심을 두는 만큼 국악음반 출반이 기업의 영세성을 면하면 좋겠으나 그나마 거의 국악인 스스로의 자비 출반으로 국악음반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는 보통 인간문화재라고 부르는데 1964년부터 정부에서 지정하기 시작하여 우리의 전통유산들이 보존되고 우리의 생활 속에 이어지게 하려는 작업으로써 일익이 되고 있다.
수궁가(水宮歌) 창/박초월(朴初月)
박초월씨는 19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더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판소리의 명인이다.
박초월씨는 1913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하여 12세 때부터 판소리에 입신했는데 그의 호령조의 판소리는 지금도 일세를 풍미하고 있다.
박초월씨가 1979년도 서울시 문화상 수상 기념으로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출반한 <수궁가>는 그의 장기이며 그가 한창 전성기이던 49세 때의 소리를 비장했다가 비로소 출반하여 판소리 애호가들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조(時調) 창/김월하(金月荷)
역시 인간문화재인 김월하씨는 그 본명이 김덕순(金德順)인데 은쟁반에 옥구슬 굴리는 소리란 그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의 청아한 소리는 가히 천부적이며 가곡ㆍ가사 등, 정가(正歌)의 명가(名歌)이나「 세간엔 시조의 명인으로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읊은 시조가 유니버살 레코드사에서 2매 1조로 출반되었다. 시조창을 총망라하여 32곡이 수록된 이 음반에서 김월하씨의 진지한 시조 삼매경(三昧境)에 접근해 볼 수 있다.
서도(西道) 소리집(集) 창/김정연(金正淵)
어느 민족이든지 한(恨)이 바뀌어 음악으로 승화되는 사례가 많다. 우리 나라의 여러 민속음악도 이러한 한의 응어리들과 직결되어 있다고 하겠다.
인간문화재 제29호 김정연씨는 평안남도 출신이며 지구레코드공사에서 출반한 그의 서 도소리집은 북쪽 산간지방 사람들의 한스러움을 청승스러우리만큼 가슴으로부터 읊어내고 있다.
흔히 서도소리는 배우기 어렵다는 것이 국악애호가들의 말이지만 김여사의 <수심가>(愁心歌)를 듣노라면 서도창에 대한 친근감을 쉽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심청가(沈淸歌) 창/김소희(金素姬)
만정(晩汀) 김소희 여사는 현존하는 판소리 명창 중의 여류명인이다. 판소리의 고장인 전북 고창에서 1917년에 태어나서 15세 때부터 판소리 바닥에 발을 들여놓은 후 오늘에 이르렀다.
한 번 무대에 서면 청중의 마음을 휘어잡고 매혹시키는 그의 화려한 판소리 입신사는 이루 글로 다 적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의 명확하고 뚜렷한 발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귀를 바로 가지게 하니 가사전달을 으뜸으로 치는 판소리 바닥에서 이는 다른 사람이 추종할 수 없는 그만의 재능인 것이다.
이러한 그의 판소리 <심청가> 전판이 성음사에서 나왔다. 그의 소리에 금상첨화(錦上添花) 격으로 장단의 인간문화재가 된 김명환(金明煥)씨가 북채를 쥐고서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의 판소리 가경(佳境)을 이룬다.
경기민요(京畿民謠) 창/이춘희ㆍ최창남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우리의 전통음악의 원형 보존에 대한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따라서 민요창의 수요가 많아지고 민요 음반의 출반이 많아지는 것도 기쁜 일이다.
그런데 이들 민요음반이 대중 취항을 이유로 서양식 편곡에 의한 장단이 가미되고 심한 경우에는 서양악기와 한국악기가 함께 연주되어 출반되는 사례가 적지 않음은 우리 문화의 원형 보존에 대한 역행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마땅히 지양해야 될 일이다.
경괘하고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경기민요이다. <신고산타령>ㆍ<태평가> 등의 구성진 민요가 신예 이춘희씨와 중진 명창인 최창남씨의 소리로 지구레코드공사에서 나왔다.
대금(大笒)과 아쟁산조(牙箏散調) 연주/서용석ㆍ윤윤석
민속음악이라 하면 자칫 소리 쪽이 더 많은 듯 하나 소리 대신 손가락 끝에서 익어나오 는 허튼 가락의 참다운 맛은 이루 표현하기가 어렵다.
국악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 세대가 많음은 반가운 현상이지만 허튼 가락의 느린 진앙조 가락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들어내 놓고 국악을 안다고 자랑해도 좋을 것이다.
젓대(대금)잽이 서용석씨와 아쟁잽이 윤윤석씨가 뽑아내는 산조(허튼 가락)는 젊은이의 가슴에서 어쩌면 저렇게 심금을 울리도록 무르녹는 가락이 끝도 없이 나오는가 할 만큼 원숙한 기교를 보여준다.
아세아 레코드사에서 나온 음반에 수록되어 있다.
가야금산조(伽倻琴散調) 연주/김죽파(金竹坡)
산조는 느린 진양조에서 시작하여 점차 빠른 장단으로 엮어지는, 장고 반주가 따르는 독주곡인데 가야금으로 연주하면 가야금산조, 젓대로 연주하면 젓대산조라고 부른다.
이 가야금산조의 거장인 김죽파씨가 작년에야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은 것은 자기를 들어 자랑치 않고 후진양성에만 열중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의 이러한 품성처럼 그가 연주하는 산조도 자제하는 듯한 선비다움이 깃들어 있다. 산조란 감정표출이 격동적 직접적인 음악이다. 그는 더구나 근세에 가야금산조를 틀 잡은 김창조(金昌祖)의 손녀이기도 하다. 그의 산조가 성음사에서 나왔다.
한국음악선집(韓國音樂選集) 연주/인간문화재 다수
이밖에 문화재관리국에서 인간문화재들의 음악을 통틀어서 한국의 음악으로 엮었고 국립국악원에서 매년 한국음악선집을 출반하지만 이.양자가 다 비매품이어서 일반이 쉽게 구하기는 어렵다. [女性東亞](서울: 東亞日報社, 1980年 4月號 別冊附錄2), 5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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