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소고(唱劇小考)
이해식(R-고전음악반)
1. 창극과 가극
창극은 판소리 바탕의 창(唱 소리)으로 전개되는 음악극이다. 서양의 가극(opera)과 같다고 할 수 있으나 발생과 구조면에서 상이점이 있다.
참고로 서양 가극의 역사를 들추어 보면 이탈리아 피렌체(영어로는 Florence)의 음악 애호가인 바르디 (Giovanni Bardi 1534∼1612) 백작의 궁정에 신진 음악가와 시인들이 모여서 새로운 음악을 연구했는데 이 집단을 카메라타(camerata)라 불렀다. 서양의 가극은 이 camerata에서부터 발생했는데, Greece 극을 바탕으로 리누치니(Ottavio Rinuccini 1563~1621)가 대본을 쓰고 폐리(Jacopo Peri 1561∼7633)가 작곡한 <다푸네>(Dafune)란 가극이 1597년 코르시(Jacopo Corsi 1561~1602)의 집에서 발표된 것이 최초의 서양 가극이다(1. 이성삼, [세계 명작 오페라 해설]).
한편 우리 나라 창극의 발생은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원각사 설립에 명목상으로 참가했던 이인직(李人稙 1862~1916)은 당시 신연극을 보여주기 위한 연극 개량의 일환으로 자신의 신소설인 [은세계]를 realistic한 창극으로 만들어서 1908년 11월 15일부터 수일간 한국 최초의 신연극이라 하여 역사적 공연을 가졌다. 그 이듬해 판소리 춘향가를 창극으로 공연했으나 관객들의 반발이 컸다고 한다(2. 柳敏榮, “草創期 近代劇의 樣相,” [韓國演劇散考]).
창극이 종합무대예술의 형태를 갖추어서 공연된 것은 우리 나라 최초의 국립극장이었던 원각사(圓覺社)에서이다. 그러나 창극의 모체가 되는 일인극 판소리의 기원부터 얘기하자면 창극의 발생은 원각사 시절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에 발생한 서양 오페라는 그 시초를 작곡으로부터 시작해서 aria(詠唱)로만 전개되는 비극적인 grand opera(正歌劇)와 가벼운 터치의 operetta(輕歌劇), R. Wagner가 발달시킨 music drama(樂劇), 그리고 미국에서 발달한 musical play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양식으로 관현악의 장대한 발전을 비롯해서 문학ㆍ연극ㆍ미술ㆍ의상ㆍ무용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가극은 종합 예술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 창극은 그 역사도 짧으려니와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아직 원시성을 벗어나지 못한 채 국립극장과 텔레비전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2. 창극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국음악, 즉 우리 나라 국악은 작곡이나 악리(樂理) 이전에 필요한 음의 생성이 연주가들에 의하여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이어 왔다.
판소리에 익숙해지면 어느 얘기꺼리(story)나 사설을 마치 언어처럼 자유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데 이러한 판소리에는 일정한 가락의 pattern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판소리나 산조의 전문가들은 이 가락의 pattern을 자유분방하게 즉흥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이 바닥에서는 군목질이라 하는데(3. 李輔亨, “恨 맺힌 庶民의 가락,” [月刊東西文化], 1978년 8월호), 이것이 판소리나 산조의 작곡이라는 것이며 현재 창극 작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순수한 서양의 창작 개념으로는 완전한 작곡이 아니다(黃秉冀, “가야금 作曲法에 對한 硏究,” [藝術論文集] 第十四輯).
판소리는 창자(唱者) 혼자서 고수(鼓手)의 북 장단에 맞추어 소리(aria)와 아니리(recitative), 발림(action) 등으로 온갖 배역을 감당해 가면서 전개된다. 창극은 이 일인극 판소리의 배역을 분창(分唱)하는 데서 시작되며 극본조차도 통상 판소리 사설을 각색하는 데서 그치는데 문제는 여기부터 생긴다.
3. 창극의 문제점
가. 전조(轉調 modulation)
전조란 쉽게 말해서 음악의 기분을 바꾸어 보는, 서양 음악에서는 가장 기능적으로 발달된 작곡 기술의 하나이다. 전조가 없는 음악은 쉽게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또 전조는 화성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데 이러한 화성의 바탕이 거의 빈약한 우리 음악은 오히려 가락(melody)이 고도로 발달했으며, 서양음악처럼 전조 기능을 분석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는 단음악(單音樂 monophony)이기 때문에 이러한 전조 이론을 훨씬 능가하는 변청(變淸 소리바꿈)으로써 장시간 청중을 사로잡는다. 진양조ㆍ중모리 등의 소리나 아니리, 발림 등이 다 전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가 창극으로 연출되었을 때는 음악이 평면적으로 흘러버리는 예가 허다하다. 이것은 소리(aria)로써 대화를 하기 때문에(이러한 스토리를 이 바닥에서는 입체 판소리라고도 한다) 작곡에 의하지 않고는 소리의 전조적 연결이 어렵다. 상황 전개에 고저가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無味乾燥)하겠는가?
창극 소리라 해서(3. 李輔亨, “판소리 전승의 방향,” [드라마], 1973년 5호) 창극의 창우(唱優)들이 판소리는 법통대로 부르고, 창극에서는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또 판소리보다 수월하게 부르는데(4. 許圭, “韓國的 劇場藝術의 定立可能性에 對하여,” [藝術論文集] 第十六輯), 창극에서의 이러한 경향은 단순한 음악으로 흘러서 결과적으로 창극의 예술적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나. 창극에서의 기악
우리 나라 음악 중에서 가락이 가장 발달된 음악이 판소리이다.
판소리는 북 반주 하나로써 소리를 하는 것이 전통적인 연주 행위, 또는 연주 형식인테, 창극이 생기면서 가락을 뒤쫓아 연주하는 수성(隨聲) 가락으로써 국악반주가 따라 붙게 되었다.
근세조선 말기에 피리로써 심청가 한 마당을 불어냈다는 피리의 명인 최용래도 있으나( 7. 李在淑, “散調,” [大世界百科事典] 8 音樂) 음역이 좁은 국악기로써 변화무쌍한 판소리를 흉내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판소리보다 수월한 창극 소리를 수성 가락으로 뒤쫓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면 요즘 창극에서 기악의 역할은 어떠한가?
창극의 소리가 군목질에 의하여 일단 작곡된 후에(이 경우 按曲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소리를 채보하여 반주를 작곡하는 수도 있는데 이것은 작곡자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창극의 continuity에 부자연스러움이 없을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요즘 창극의 음악 작곡이라 것이 장면 전환이나 극 효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더구나 텔레비전 창극은 지금도 수성 가락으로 반주를 하는 형편이다.
서양에서는 무용음악 또는 연극에 따르는 부대(附帶) 음악이 더 유명해진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악이 창극에서 제 구실을 하려면 순수하게 작곡 되어져야 한다.
다. 배역
앞서 말한대로 판소리는 모든 배역을 혼자서 감당하며 설명조나 해설조의 narration도 곁들이는데, 창극에서도 이러한 스토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소위 도창(導唱 leading aria)이라는 역할이 생긴다. 서사적인 도창이 극을 이끌어내는 창극의 특징이라고 고집하는 이도 있겠으나 이것은 초창기 원각사 시절의 구극(舊劇 唱劇)이 배우 부족으로 1인2역이 많아서(8. 金在喆, “舊劇과 新劇,” [朝鮮演劇史]) 극의 전개가 어려웠는 데다 판소리의 각색 미숙으로 인하여 도창의 역할은 부득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국립극장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창극의 도창은 우선 무대 공간의 처리가 어렵고 연극의 중간에 넣는 신파적(新派的)이고 부자연스러운 narration과 같은 것이어서 지루한 관극이 되기 십상이다. 또한 도창은 극을 너무 서술적으로 치우치게 해서 생략의 묘미라든지 상상의 재미를 앗아가 버린다. 서양 오페라에서는 극의 유도를 이미 관현악에 맡김으로써 서곡(序曲 overture)이나 전주곡(前奏曲 prelude)의 음악양식을 밭달 시키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작곡가인 바그너가 그의 후기 오페라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한 Leit motiv(leading motive)도 기악에 맡기고 있다. Leit motiv는 유도(誘導) 동기의 의미로, 음악상의 동기에 의해서 인물ㆍ장면ㆍ상념 등을 나타낸다. 창극에서의 도창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라. 여류(女流) 창극
1847년 전북 고창 출신인 진채선(陳彩仙)이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문하에서 성장하여 명성을 떨침으로써 여류 판소리 명창의 효시가 되며(9. 朴晃, “女流名唱의 유래,” [판소리 小史]), 갑오경장 이후 소위 서구의 신문화가 서서히 들어오면서 여류명창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10. 柳敏榮, “女性演劇의 발자취,” 앞의 책). 이 여류 판소리는 1960년대 초까지도 볼 수 있었던 여성 국극단(國劇團)과도 이어지는데 여성창극은 1950년대의 <햇님창극단> 등으로 전성기를 이룬다.
여자가 관소리를 익히면 거의 husky가 되기 때문에 남역(男役)이 가능하여 여성극이 이루어지겠지만, 발림이나 너름새가 남자보다 뒤처지고, 특히 남성적 요구의 연기력이 부족하고 극본이 진부해서 신문화의 홍수에 휩쓸려 오늘날 여성국극단은 거의 도태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여성창극은 우리 나라 창극사에 독특한 장르로써 남게 될 것이다.
한편 남성창극에서의 여성이 husky일 때 여성역으로서의 실감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판소리는 서양의 성악에서 sopranoㆍtenor 등, 남녀의 성역(聲域)을 같라 놓은 구별이 없기 때문에 음악으로써의 연극을 실감하기 어려운 것이다.
반주음악과 창의 일치를 위한 일율적인 청(淸 pitch)의 유지도 문제가 된다(11. 허규, 앞의 책). 가사 전달이 뚜렷한 맑은 성음의 여창우가 많이 나올 때 좋은 창극을 볼 수 있을 것이다.
4. 창극의 현재 상황
전통적인 양식을 갖지 못했던 창극은 신파극의 도입, 무사극(武士劇)의 도입, 탈춤의 도입 등으로 아직도 뚜렷한 방향을 못 잡고 있다(12. 이보형, “판소리 傳承의 方向,” 앞의 책).
현대생활의 총아인 텔레비전 매체는 민속악극인 창극의 창작 발전에 기여할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가끔 창극마저 구태의연(舊態依然)하고 오락적 기능의 유행으로만 치다를 것이 아니라 긴 안목과 정성으로 적어도 답습의 일각만이라도 벗어날 때 화면이 새로워지리라 믿는다.
5. 맺음말
창극은 첫째 전체l적으로 창작되어져야 하며, 정통적인 창법과 기교틀 체계적으로 익힌 창우들이 계속 양성되어 나와서 창작창극을 제대로 소화시켜 가면서 올바른 창극문화를 꽃피워가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음악과 연극의 전문가들이 자리를 자주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창극을 차원 높은 무대예술로 정립하는 데는 연기자들의 과학적인 교육훈련이 필요하며( 13. 허규, 앞의 책), 창작 창극을 위해서는 연기자의 독보력이 능숙하도록 훈련해아 된다. 이것은 음악교육기관에서 성악(唱)을 교육해야 된다는 얘기이며, 우수한 작곡가가 자국의 음악을 천착해야 한다.
창극은 꼭 대형 무대가 아닌 salon drama의 소극장 행위로도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다. 창극은 반드시 풍자와 유도 등의 엄정한 의의가 있어 부분적이라도 권선징악(勸善懲惡)ㆍ화민성속(化民成俗)의 책무를 맡는 것이 극의 본분이라는 것을(14. 咸和鎭 , “唱樂,” [朝鮮音樂小史]) 상기하면서 새로운 소재로 대본이 씌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한국적인 musical로써 창극의 발달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放送月報][서울: 韓國放送公社(KBS), 1978년 10월호], 89~93쪽.
참고 문헌
金在喆, [朝鮮演劇史], 서울: 民學社 民學叢書 3, 1974.
朴 晃, [판소리 小史], 서울: 新丘文1化社, 1974.
柳敏榮, [韓國演劇散考], 서울: 文藝批評社, 1978.
李輔亨, “판소리 傳承의 方向,” [드라마], 서울: 드라마社, 1973년 5호.
李輔亨, “恨 맺힌 庶民의 가락,” [月刊東西文化], 1978년 8월호.
李成三, [世界 名作 오페라 解說], 서울: 玄文社, 1960.
李在淑, “散調,” [大世界百科事典] 8 音樂, 서울: 太極出版社, 1973.
咸和鎭, [朝鮮音樂小史], 서울: 民學社 民學叢書 5, 1975.
許 圭, “韓國的 劇場藝術의 定立可能性에 對하여,” [藝術論文集] 第十六輯, 서울: 大韓民國 藝術院, 1977.
黃秉冀, “가야금 作曲法에 對한 硏究,” [藝術論文集] 第十四輯, 大韓民國 藝術院,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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