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80년 KBS의 특집방송 방향
음악특집 부분
李海植(라디오局 古典音樂班長)
정규 기본편성표에 특집편성의 선을 그을 때는 사업성이라든가 순수, 또는 대중문화적 요구, 시사적인 필요성, 계절적인 주기성, 기념일, 또는 지역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이다. 그러 나 일반적으로 특집 프로그램의 개념은 정규 프로그램 편성에서 벗어나 그때그때의 방송 형편과 요구에 따서 Pro. title을 바꾸고 급하게 제작되는 게 상례이고 또 특집이란 그런 것이 아니냐는 통념 속에서 소위 진정한 특집성을 망각해 버리는 사례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업무 추진과 진행에 있어서는 급한 것과 덜 급한 것,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의 차이에서도 특집의 감도는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급하면서도 중요한 것이나 덜 급하면서도 중요한 것이나 다 수용자(청취자)에게는 특집다운 느낌을 주어야 한다. 여기서 덜 급하다 함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기획되는 특집을 말한다. 그럼 특집이라고 해서 제작비를 특별히 많이 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적은 비용으로도 우수한 특집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인가도 특집기획의 문제점이며 이 두 가지는 다 가능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덜 급하면서도 비용이 많이 드는 쪽의 음악특집을 얘기하고자 한다.
음악특집은 수용자의 반응이 극히 소극적이기 때문에 기획상의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소극적인 반응이라고 해서 결코 덜 중중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응의 저변은 측정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꼭 일 년 전인 작년 1월에 기획했던 특집 교성곡 <민족의 전진 3부작>의 보기를 들어보면, 100명의 합창단과 100명의 관현악단을 동원하고 작시ㆍ작곡 등 3곡의 제작비가 적어도 2500여만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계획서를 제시했더니 처음부터 벽에 부딪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장장 일 년에 걸쳐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교성곡 제1부 <민족의 시련>편 3.1절, 제2부 <광복의 기쁨>편 광복절, 제3부 <민족의 전진>편 연말특집을 제작, 방송하는 데 일천 만원이 조금 못되는 비용이 들었다. 참으로 목을 비틀고 비틀리면서 시작한 보람으로 금년부터는 이 3부작을 유익하게 울궈 먹을 수 있으니 투자된 본전을 건져 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제작된 음악의 질이 결코 좋을 수가 없음이 사실이다. 가령 한 개의 섹소폰으로 20 phone의 소리를 낼 때와 20개의 바이올린으로 20 phone의 소리를 내는 것은 본질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수준에도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 이다. 결국 이런 문제들은 눈보다 귀의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선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기 쉽다. 일천 만원이 내는 20 phone의 음악과 2500만원이 내는 20 phone의 음악은 공식적으로 분석하기 어려운 데서 업무추진의 애로가 생긴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금년도 신춘 특집으로 교성곡을 제작하는 데 570여 만원을 들였다. 전자 <민족의 전진> 3부작 보다는 곱절의 연주료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제작비 가 껑충 뛰게 된 것이다. 곡 하나의 제작비가 이렇게 많이 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일면으로는 소액의 작곡료가 음악계에서는 웃음거리가 되었고 반대로 우리 사례규정 보다는 몇 100%가 넘는 것이어서 특집 실무자가 이러한 괴리를 메꾸는 데 곤욕을 치러야 했던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일국의 중앙방송임을 자처면서도 방송관현악단이 없음을 부끄럽게 여길 수 없음은 아직 그 중요성이 덜한 때문일까? 그렇다면 방송관현악단의 운영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음악특집을 자주자주 편성표에 그려 넣음이 바람직하겠다. 더구나 stereo 방송에선 새롭고 수준 높은 음악이 항상 요구된다.
FM 방송이라면 누구나 먼저 양질의 레코드를 연상하게 되고 레코드는 수용가의 청각 수준을 아주 높여 놓는 데 공헌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record mechanism은 우리를 완벽증이란 중독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녹음의 목적이 생음악에 접근하는 데 있지만 발달된 문명은 너무 완벽한 음악만을 disc에 담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레코드가 새 음악을 앞서 갈 수 없기 때문에 너무 완벽한 레코드에 실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지난 1월 14일부터 2주일간 매일 저녁 6시부터 2시간씩 방송된 FM 방송의 신춘특집 <세계음악의 현장>은 청취자의 생음악 추구심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었다고 믿는다. 이 특집은 Netherland의 Amsterdam Concertgebouw Orchestra가 직접 생산(연주)하는 싱싱한(?) 음악이어서 현장감에 접근하는 데는 그만이었다. 세계 제일의 교향악단이 연주하면서 악보 넘기는 소리, 지휘자가 속삭이는 소리, 청중들의 기침소리가 나지만 오히려 음악에 몰입되는 청중들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가 하면 열기 띤 박수소리가 터진다. 참으로 산(生) 음악을 공수해다 듣는 재미를 부분적으로 편집되는 레코드 음악에 비할 것인가? 이것은 또 비용이 적게 드는 쪽의 음악특집이어서 좋다.
금년에는 어느 event가 될지 질 높은 음악을 생산(창작)하는 특집을 기획해야겠다.
[放送月報][서울: 韓國放送公社(KBS), 1980년 2월호], 3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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